소설리스트

A.I 닥터-14화 (14/1,303)

14화 발표까지? (1)

태화 연말 증례 토의.

“와……. 이건……. 이건 대박인데.”

수혁은 이현종 원장에게 증례 토의 발표하라는 얘기를 듣고 난 이후 계속 비슷한 단어만 반복해 대고 있는 상태에 빠져 있었다.

[미쳤습니까?]

수혁의 신체적 건강뿐 아니라 정신적 건강도 챙겨야 하는 바루다의 걱정 또한 이어지는 중이었다.

‘미쳤냐고? 아니지, 인마……. 이게 뭔 뜻인지 아냐?’

[솔직히 전혀 모르겠습니다.]

‘모르겠지. 깡통.’

수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후, 지하 1층에 있는 대강당을 떠올렸다.

강단에 선 모습을 떠올리고 있으려니 벌써 손이 파르르 떨려 왔다.

너무 과한 거 아닌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것도 꽤 덤덤한 반응이라 할 수 있었다.

‘데뷔 무대야, 이건…….’

국내에서 제일가는 병원이자, 세계 일류를 꿈꾸고 있는 태화 의료원의 내과 증례 발표회.

거기서 발표된 사례는 2년에 한 번씩 ‘태화 의료원 증례집’이란 이름으로 출간까지 되고 있었다.

매번 천 부 이상이 찍히는데 전부 완판되고 있었고.

그만큼 전국적인 신뢰를 한몸에 받고 있는 발표회라고 보면 되었다.

‘어쩌면 춘계 학회보다도 더……. 큰 무대야.’

물론 청중은 그보다 더 적긴 하겠지만.

이건 온전히 수혁 혼자서 저 큰 강당에서 한 시간 넘는 발표를 감당해야 할 터였다.

‘이대로 있을 수는 없겠는데.’

[어디 가십니까? 환자 없을 때 쉬겠다더니?]

바루다는 갑자기 당직실 침대에서 튀어 나가는 수혁을 불렀다.

수혁은 바루다가 오직 자신 눈에만 보이는 존재란 사실을 잊은 채 손을 흔들어 댔다.

‘공부. 공부하러 갈 거야.’

[호오.]

‘그거 하지 말랬지.’

[어쩔 수 없습니다. 지금 수혁이 보이는 행태는 아주 비일상적입니다.]

‘그야…….’

수혁은 바루다를 만난 이래 지금까지 자신이 보여 준 모습을 떠올렸다.

하나같이 공부하기 싫다, 환자 보기 싫다 징징거린 것뿐이었다.

물론 제법 잘 따라온 데다가, 바루다가 놓친 지점도 잘 잡아 내긴 했지만.

아무튼, 약간은 한심하다 할 수 있었다.

‘시끄러워. 공부할 거야. 렙토스피라에 대한 모든 걸 알고 발표장에 갈 거야.’

[좋은 마음가짐입니다. 응원합니다, 수혁.]

‘그러니까 데이터나 잘 쌓아 두라고. 그거 꽤 도움 되니까.’

[알겠습니다.]

바루다는 어쩐지 대단히 기뻐 보였다.

한낱 인공지능 주제에 감정이 내비친다는 것이 좀 이상한 일이긴 했지만.

수혁은 ‘오감과 인공지능의 변화와의 연관성’과 같은, 너무 어려운 일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다.

별 관심도 없었고.

『해리슨 20th』

지금은 그저 렙토스피라에 관한 생각만 가득할 따름이었다.

해서 의국에 꽂혀 있던 내과학 교과서 해리슨을 펴들었다.

지금까지 무려 20판이 나온 이 전설적인 교과서는 그 내용이 쇄를 거듭할수록 방대해지고 있었다.

50년대에는 얇은 한 권이었던 것이 지금은 사람도 때려죽일 수 있을 만큼 두꺼운 책 두 권이 되어 있을 지경이었다.

그만큼 의학 발전이 가파르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즉 교과서만 읽어서는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수혁.]

‘흠……. 그것도 그래.’

교과서에 실렸다는 건 벌써 나온 지 몇 년 된 지식이라는 얘기였다.

이미 학계에서는 흔하디흔한 이야기가 된 지 오래인.

더 논쟁거리도 없는 그런 지식.

‘그럼 뭘 보지?’

[논문이죠.]

‘논문이라. 그래, 그게 좋겠어.’

[추가로 감염 질환에 대해선 CDC(미 질병관리본부)에서 매년 지침을 업데이트합니다.]

‘그것도 좋네.’

질병관리본부에서 허튼소리를 떠들어 대진 않을 거 아닌가.

명색이 CDC면 그래도 세계 최고의 기구 중 하나인데.

수혁이 흡족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에도 바루다의 입은 쉬지 않았다.

[『NEJM』의 증례 보고도 알아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 거기 증례도 있어?’

[물론입니다. 어지간히 공부하지 않으신 모양입니다.]

‘이제 고작 인턴 마치고 1년 차 됐는데, 증례를 언제 보고 앉았어!’

[제 이전 데이터 입력 담당자였던 신현태 감염내과 교수, 이현종 순환기내과 교수는 학생 때부터 증례를 봤다고 진술한 바 있습니다.]

‘그……. 그…….’

수혁은 그 사람들은 ‘태화 의료원 교수까지 된 사람이고!’라고 외치려다가 말았다.

생각해 보니 지금 자신의 목표가 그 둘이지 않은가.

아니, 어쩌면 그 둘보다 더 위에 있다고 봐야 했다.

세계 최고를 꿈꾸고 있었으니까.

[수혁. 수혁은 이현종, 신현태보다 더 뛰어난 내과 의사가 되어야 합니다.]

‘하아.’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있으니까.]

‘그야…….’

[그리고 그렇게 되면 부와 명예는 따라올 겁니다.]

‘그렇지. 그래. 맞아.’

수혁은 자신의 왼쪽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지팡이를 짚으면 별문제 없이 걸을 수 있는 수준이긴 했지만.

어찌 되었건 절름발이가 되어 있었다.

가뜩이나 고아인데 장애까지 생기다니.

이대로 그냥 나가면 취직도 못 할 가능성이 있었다.

취직은 하더라도 후려치기 당할 건 뻔할 뻔 자였고.

그렇다면 여기서 살아남아야 했다.

바루다만 있어 준다면 가능해 보였다.

‘알았어. 자료 있는 곳만 다 대 봐.’

[좋습니다. 좋은 자세입니다.]

바루다는 다행히 아예 모든 데이터를 날려 먹은 건 아닌 모양이었다.

의학 지식이야 거의 다 날아가긴 했지만.

그 의학 지식을 어떻게 습득하고 수집했는지는 대강은 알고 있었다.

덕분에 수혁은 상당히 수월하게 ‘렙토스피라’라고 하는, 흔하지만은 않은 균에 대한 지식을 탐색하고 습득할 수 있었다.

* * *

“준비 잘했지?”

신현태 과장은 강단 옆에 선 채 심호흡을 하고 있는 수혁의 등을 두드려 주며 물었다.

보통 증례 토의가 됐건, 다른 학회장이 됐건 첫 발표 전에는 떨기 마련이거늘.

수혁에게선 그런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베타 블로커를 미리 먹어 두길 잘했습니다.]

‘그러게. 이거 진짜 안 떨리네.’

그가 다른 사람들보다 유의하게 대담해서는 아니었다.

그저 약발이었는데, 내막을 알 리 없는 신현태 과장의 눈에는 그저 대단하게만 보일 뿐이었다.

“네, 교수님. 완벽합니다.”

“완벽이라.”

다른 녀석이 발표 앞두고 이런 말을 했다면 두들겨 팼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수혁이라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녀석……. 진짜 대단하지.’

진단만 잘하는 게 아니라 치료도 제법 훌륭했다.

검사만 내고 그 결과가 뭘 말하는 건지 모르는 녀석들이 태반인데.

수혁은 검사를 낼 때도 반드시 이유가 있었고, 그 결과에 대한 해석 또한 완벽했다.

그 덕에 렙토스피라에 의한 무균성 뇌수막염까지 왔던 박기태 환자도 별 무리 없이 퇴원할 수 있었다.

“그래, 잘할 거라고 믿는다.”

해서 신현태 과장은 수혁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는 단상 위에 올랐다.

연좌 자리에 서지는 않고, 그 옆에 마련된 좌장 자리로 향했다.

의자에 앉은 그는 앞에 놓인 마이크를 톡톡 두드리고는 잠시 강당 내부를 돌아보았다.

태화 의료원 내과 과장 신현태가 그렇게 보고 있는데 감히 입을 열 수 있는 간 큰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자, 그럼 제121회 태화 내과 증례 발표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발표자는 태화 의료원 내과학 교실 전공의 1년 차 이수혁 선생이 맡도록 하겠습니다. 박수로 맞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미 이현종 원장이 각 병원에 전달한 참이었지만 역시나 강당 전체가 술렁거렸다.

대학 병원이라는 곳은 워낙 바쁜 곳이라 아주 중요한 일이 아니면 잘 전달이 안 되는 경우가 태반이었기 때문이었다.

“1년 차? 펠로우?”

“전공의라는데?”

“아니 그럼 지금 우리더러 1년 차 강의를 들으란 거야?”

“아무리 태화 의료원이라지만 좀 너무한데?”

불평불만이 가득한 가운데 수혁이 천천히 강단 위로 올랐다.

타닥.

타닥.

지팡이로 바닥을 짚어 가면서.

조금 의외의 모습이었던지, 장내는 다시 조용해졌다.

수혁은 씁쓸한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방금 소개받은 태화 의료원 내과 1년 차 이수혁입니다.”

하지만 주눅이 들진 않았다.

[연습한 대로만 하면 됩니다. 발표 준비는 완벽합니다.]

바루다의 말마따나 그는 완벽했으니까.

“오늘 제가 발표할 증례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열로 응급실에 내원한 남자 40세 환자입니다.”

수혁은 담담하게 말을 이어 나가며 화면을 넘겼다.

“다음은 내원 당시 시행했던 혈액 검사 결과입니다. 당시에는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으나 빌리루빈이 약간 증가해 있어, 황달 초기임을 시사하고 있었습니다. 그 외에는 세균 감염을 시사하는 것 말고는 특이 사항은 없었습니다.”

화면은 계속해서 넘어갔고, 수혁의 발표도 계속되었다.

진단은 어떻게 했는지, 치료는 어떻게 했는지.

중간에 발생한 뇌수막염에 대한 의심은 어떻게 했고, 그에 대한 진단은 또 어떻게 했는지.

전혀 막힘이 없이, 마치 물 흐르는 듯한 발표였다.

“역시 천재다, 천재.”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이현종 원장이 무척 흡족한 얼굴로 신현태 과장을 돌아보았다.

과장 또한 비슷한 얼굴이었지만, 약간은 걱정이 묻어나고 있었다.

“발표야 잘해야죠. 실제로 치료를 완벽하게 했는데.”

“근데 뭐가 문제야.”

“질문 시간이 있잖아요.”

“아……. 그렇지. 설마 안국태 그 새끼 왔어?”

이현종 원장은 불안하다는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신 과장이 한쪽 구석을 말없이 가리켰다.

그의 손가락 끝을 확인한 이현종 원장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아, 저 새끼 왔네, 변태 같은 놈.”

안국태 교수는 「칠성 병원」 감염내과 교수로 신현태와 이현종 사이의 연배였다.

그렇게 나쁜 인간은 아닌데, 유독 전공의 발표 시간에는 악마로 돌변하는 위인이었다.

기어코 모르겠다는 말을 듣고 싶은 건지 뭔지.

진땀을 뺄 때까지 질문을 늘어놓는 것으로 유명했다.

“명단에는 없어서 수혁이한테 미리 전달은 못 했어요.”

“야, 너는 일 처리를…….”

“그럼 어째요. 그냥 왔다는데. 가라고 해요?”

“에이…….”

둘이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저어 댈 때쯤, 수혁의 발표가 끝이 났다.

스스로 만족했는지 표정이 아주 밝았다.

“감사합니다. 이것으로 증례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혹시 질문 있으신 분 계신가요?”

해서 처음 시작할 때보다도 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이렇게 물었고.

안국태 교수가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들었다.

‘1년 차 발표가 이렇게 부드럽게 끝나면 안 되지.’

잘하긴 했지만 역시 호된 맛을 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였다.

“여기.”

“아, 네. 교수님.”

“나 칠성 병원 안국태고.”

일단 반말이었다.

보통 이렇게 시작하면 전공의는 쫄기 마련이었다.

[싸가지가 없네요.]

‘미친놈아, 교수님한테.’

[무슨 상관관계가 있습니까? 교수랑 싸가지랑.]

‘그…….’

하지만 혼자가 아닌 수혁에게는 별 소용이 없었다.

멀쩡해 보이는 그의 모습에 살짝 자존심이 상한 안국태 교수는 고개를 한 번 갸웃하고는 재차 말을 이었다.

“치료는 잘했어. 진단도 잘했고. 근데 지정의가 신현태 교수더라고? 그냥 신 교수 처방 따라간 거 발표만 한 건 아닌가? 뭐 이런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정말 렙토스피라에 대해 잘 알고 있나 질문 좀 하자.”

이 말을 들은 신현태 교수가 이마를 짚었다.

증례가 아니라 질환에 관한 질문을 하겠다는 건.

그냥 이수혁을 박살 내려는 것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이따 술이나 한잔 사 주면서 위로해 줘야겠구만…….’

반면 이수혁과 바루다는 들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현존하는 렙토스피라에 대한 거의 모든 지식이 담겨 있었으니까.

‘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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