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5화 (15/1,303)

15화 발표까지? (2)

“우선 렙토스피라랑 감별해야 할 질환이 뭐가 있지? 증상별로 다 말해 봐.”

안국태가 던지는 첫 질문부터 꽤 묵직한 편이었다.

단답형으로 대답할 수 있는 종류의 질문이 아니지 않은가.

솔직히 어엿한 전문의라 해도 해당 분야에서 계속 일해오지 않은 이상에는 대답하기 쉽진 않을 터였다.

당연하게도 좌장 자리에 있던 신현태 과장과 이현종 원장의 얼굴이 썩어들어 갔다.

이 위치에서는 수혁의 얼굴이나 표정이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 어떨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원장은 신 과장에서 심심한 위로의 말을 미리 건네기로 했다.

“야, 이따 양주 줘라. 위로 좀 하면서. 나도 그럴게.”

“알았어요……. 하…… 저 인간은 진짜…… 저도 발표 잘 못 하면서 저래.”

해서 둘은 벌써 어떤 방법으로 위로를 하면 좋을지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해 대기 시작했다.

그건 딱 수혁이 입을 열기 전까지 이어졌다.

“네, 교수님. 우선 급성 발열에 대해서는 말라리아와 뎅기열이 있겠습니다. 하지만 두 질환 모두 환자와는 딱히 지역적 연관성을 보이지 않으니 배제할 수 있습니다.”

막힘없이 술술 답을 이어 나가는 모습에 좌중이 한 번 술렁였다.

“음?”

“황달, 신부전, 출혈 성향 등은 간염, 장티푸스, 리케차, 한탄 바이러스 등과 감별이 필요합니다. 간염은 첫 혈액 검사에서 음성으로 나왔으니 감별 가능하며 장티푸스는 위장관계 증상이 없어 감별 가능합니다. 리케차는 진드기에 물린 흔적이 없었으며, 한탄 바이러스는 유행 시기가 다릅니다.”

“쟤 봐라, 쟤.”

그야말로 막힘이 없는 답변이었다.

이현종 원장은 자신이 지금 좌장 자리에 앉아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수혁을 향해 손가락을 휘둘러 댔다.

그나마 신현태 과장이 있어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뛰쳐나갔을지도 몰랐다.

‘어이구, 내 새끼’ 하는 말을 내뱉을 만한, 그런 얼굴이었다.

그만큼이나 놀란 상황이었다.

“가만히 좀 있어요. 가만히. 애도 아니고 대체 왜 이래?”

“지금 그러게 생겼어? 쟤 답 못 들었냐? 어쩜 저리 똑 부러지냐……. 꼭 나 어렸을 때 보는 거 같아.”

해서 원장은 수혁을 향한 애정을 인정하기로 마음먹었다.

“또라이라고 해 놓구선? 좀 잘하니까 자기 닮았대. 양심 어디 갔어요?”

“그야 요새도 가끔 허공 보고 속삭인다며. 그래서 그랬지. 근데 이건……. 이건 천재야. 천재라고!”

“조용히 좀 해요. 솔직히 나도 놀랐으니까.”

지금 수혁의 답은 그가 방금 열거한 질환들도 아주 잘 숙지하고 있어야 해 낼 수 있는 답이었다.

1년 차가 저 많은 질환을 딱딱 알고 있다고?

그것도 이 많은 사람 앞에서 술술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신 과장은 어쩌면 수혁이 자기 생각보다도 더 뛰어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질문을 던진 안국태 교수의 마음에는 들지 않았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괘씸하게까지 느껴졌다.

좀 모르는 척도 하고 그럴 것이지, 따박따박 대답하는 게 마음에 쏙 들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그래. 음.”

하지만 놀란 건 그 또한 마찬가지였던지라 바로 촌철살인 하는 다른 질문을 던지진 못했다.

“그래, 그래. 질문이 너무 쉬웠지.”

해서 졸렬한 말을 해 대며 질문하기에 앞서 잠시 시간을 벌었다.

반면 수혁은 그야말로 여유가 넘치는 얼굴이었다.

적어도 렙토스피라에 대해서라면 종일 질문을 받아도 자신이 있었으니까.

읽으면 읽는 대로 딱딱 저장되는 그로서는 어려울 것이 전혀 없는 일이었다.

안국태는 수혁의 자신만만한 얼굴이 제발 일그러지기를 바라며 재차 입을 열었다.

“방금……. 웨일즈 신드롬이라고 했지? 환자.”

“네, 교수님.”

“웨일즈 신드롬의 특징이 뭐지? 말해 봐.”

“웨일즈 신드롬의 다른 이름이 황달성 렙토스피라입니다. 그러니 황달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술술 답하는 수혁을 보며 놀라고 있는 사람은 비단 이현종이나 신현태 교수뿐만이 아니었다.

처음 이수혁이 증례 토의 발표를 맡게 되었다고 했을 때 분개했던 다른 레지던트 3년 차나 펠로우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로열이라더니……. 신 과장님한테 과외를 받은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대개 이 비슷한 생각을 해 대면서 수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몇몇은 수군거리기도 했다.

“1년 차? 완전 물건 하나 들어왔네.”

“해리슨을 씹어 먹은 거야 뭐야.”

“모르는 게 없어.”

본의 아니게 수혁의 얼굴에 본격적인 금칠을 해 주게 된 안국태 교수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 누구도 그에게 ‘1년 차 기 죽이기’ 같은 걸 해 달라고 한 적이 없건만.

스스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황달뿐이야?”

어딘지 모르게 화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표정이나 손짓 또한 그의 감정을 극명히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수혁은 쫄지 않았다.

[설마 답변 못 하진 않겠죠?]

‘이것도 모르겠냐.’

모르는 게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아닙니다. 일반적인 렙토스피라 감염증에 비해 출혈 성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점상 출혈, 코피 등이 흔하게 나타납니다. 방금 발표한 신장 기능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으며 이 때문에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음……. 그래, 그럼 웨일즈 증후군이 가장 심각한 형태인가?”

안국태 교수는 이제 흡사 수혁이 틀리기만을 기도하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제발 몰라라, 답하지 마라’라고 하는 심정이 강당 전체에 다 느껴질 정도였다.

실제로 안국태는 속으로 무슨 신이라도 좋으니 들어달라고 기도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수혁은 전혀 물러섬이 없었다.

“아닙니다. 렙토스피라에 의한 중증 폐 출혈 증후군이 있습니다. 사망률이 50%까지 보고되는 아주 심각한 형태의 감염입니다.”

“끄응.”

심각한 만큼이나 드문 형태의 감염이기도 했다.

1년에 하나 정도 보고되려나.

그거까지 알 줄이야.

안국태 교수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식은땀이 삐질삐질 흘러내렸고.

손발도 차가워진 듯, 창백해 보였다.

신현태 과장은 그런 안 교수를 보며 혀를 찼다.

“이제 그만하지. 불쌍해지는데.”

“그러게. 여기서 뭐 더 할 게 있나?”

이현종 교수 또한 비슷한 표정이었다.

안국태 교수가 손을 들고 질문을 던진 이래 도리어 그가 이렇게 곤경에 빠진 건 처음 같았다.

그래서일까, 지금까지 안 교수에게 당했던 이들 모두가 낄낄거리며 안국태를 바라보고 있었다.

고소해하는 시선을 느낀 그는 잠시 마른침을 삼키곤 재차 말을 이었다.

“그래. 그……. 렙토스피라가 지금 전염병 중 어느 군에 분류되어 있지?”

질환 자체에 대한 질문으로 안 되니까 다분히 정책적인 질문을 던진 그였다.

이건 당연히 모르겠지 하는 얼굴로.

아쉽게도 수혁은 이것도 다 숙지하고 있었다.

“제3군 감염병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그, 그럼 그전에는?”

“1987년 지정 감염병, 1993년 제2종 법정 감염병, 2001년부터 제3군 감염병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그…….”

설마하니 연도별로 딱딱 답이 나올 줄이야.

이건 안국태 교수는 물론이고 신현태 교수도 모르는 답이었다.

“제가 다 부끄럽네요. 왜 저런대, 정말?”

신 과장은 저도 모르게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혹시나 손이 없어지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반면 이현종 원장은 싱글싱글 웃고만 있었다.

“저 새끼 칠성 병원 가더니 인사도 안 하고. 어? 싸가지 없이 굴더니 쌤통이네.”

“이제 그만하겠죠?”

“그만해야지. 뭘 더…… 오, 하네. 파이팅은 넘친다니까.”

안국태 교수는 정말로 아직 마이크를 내려놓지 않고 있었다.

그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진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였다.

이쯤 되니 수혁도 좀 미안함이 올라왔다.

‘연도는 말하지 말 걸 그랬나?’

[아는 건 다 말해야죠.]

‘하긴 그것도 그래.’

[공부한 게 아깝지도 않습니까? 떠올리십쇼. 어떻게 공부했는지. 어떻게 이 발표를 준비했는지.]

‘시발.’

욕이 절로 튀어나오는 시간이었다.

물론 놓치면 안 되는 중요한 기회이기는 했다.

하지만 이거 준비하느라 못 잔 잠들과 허겁지겁 삼켜야 했던 밥을 생각해 보면 두 번은 못 할 거 같았다.

“응?”

공교롭게도 수혁의 마지막 발언은 모두에게 아주 익숙한 입 모양이었다.

“식빵이라고 한 거야?”

“아……. 설마.”

“아무 소리도 안 나긴 했는데…….”

“안 교수님이 좀 시발놈이긴 하지.”

“하하.”

덕분에 몇몇 전공의들이 아주 즐겁다는 듯 웃기 시작했다.

특히 칠성 병원 쪽 전공의들이 그러했는데, 그게 안국태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해서 그는 그대로 마이크를 내려놓지 못하고 또 하나의 질문을 던지고야 말았다.

“웨……. 웨일즈 증후군. 이름의 유래가 뭐지?”

무슨 난센스 퀴즈도 아니고.

의대 교수 즉 의학자라는 사람이 할 만한 질문은 결코 아니라 할 수 있었다.

그 바람에 신현태 과장은 차마 안국태 교수를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추하다…….”

“저렇게라도 이기고 싶은 거냐? 대체 왜 저래? 저 새끼는.”

이현종 원장도 더는 웃지 못했다.

품격있는 지식 토의의 장이 되어야 하는 증례 발표회에서 이딴 질문이 튀어나오다니.

화가 날 지경이었다.

해서 손을 휘저으며 끝내려는데, 수혁이 입을 열었다.

“닥터 웨일이, 자신이 발견하고 분류한 것을 기념해서 붙인 이름입니다.”

이게 정답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병명의 유래 같은 건 교과서나 논문에 나오는 게 아니라 회고록에나 나올 법한 일이었으니까.

이름 자체가 병의 특성을 가리키는 게 아닌, 이런 종류의 이름은 의학적으로 전혀 의미가 없었으니까.

“허.”

하지만 적어도 안국태 교수에게는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마치 침몰하듯 의자에 주저앉았고, 잠시 후에는 옆에 있던 전공의에게 부축을 받은 채 도망치듯 강당을 빠져나가고야 말았다.

‘한동안은 안 오겠는데.’

신 과장은 껄껄 웃으며 마이크를 다시 잡았다.

그리곤 청중을 돌아보며 물었다.

“자, 더 질문하실 분 없습니까?”

마치 ‘또 쥐어 터질 사람 없어?’라고 묻는 듯한 말투였고, 표정이었다.

당연하게도 그 누구도 손을 드는 사람이 없었다.

발표장마다 나타나는 개진상 안국태조차 대박살이 났는데.

누가 감히 나설 수 있겠는가.

심지어 이제 더 할 질문도 없어 보였다.

“자……. 그럼 이것으로 제121회 태화 내과 증례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신 과장은 대략 5분 정도 기다리다가 발표회 종료를 선언했다.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이현종 원장이 벌떡 몸을 일으키고는 기립 박수를 쳐 대기 시작했다.

‘아, 이 형 또 왜 이래.’

신 과장은 몰래 그를 앉히려 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짝짝짝짝!

다행인 점은 청중 쪽에서도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수혁은 그 박수 세례를 들으며 다시 한번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동안의 고생을 모두 보상받는 듯한 기분이었다.

‘됐다. 됐어. 이만하면 완벽한 데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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