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8화 (18/1,303)

18화 이건 좀 어려운데? (2)

[음…….]

애석하게도 바루다의 분석은 삽시간에 끝나거나 하진 않았다.

녀석이 말했던 대로 본체 대신 사용해야 할 수혁의 머리가 아무래도 좀 기능이 떨어지는 모양이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확실히 그게 맞는 거 같긴 했다.

“저……. 선생님들, 검사가 좀 이상합니까?”

둘의 대화가 심상치 않자 방사선사가 말을 걸어왔다.

수혁은 아직 바루다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기에 답은 신경과 레지던트의 몫이 되었다.

“네……. 이상이 전혀 보이질 않네요. 흠…….”

“이상이 없어요? 아, 진짜네…….”

방사선사는 늘 MRI 검사를 맡아 오고 있던 사람인 만큼 정상이다, 아니다 정도는 구분 가능했다.

그가 보기에도 지금 MRI 안에 들어간 환자의 머리는 정상으로 보였다.

이상한 일이었다.

상태를 보면 정상으로 보여서는 안 되었으니까.

[추가 검사를 요청합니다.]

기사와 신경과 레지던트가 아직 왜 정상으로 나왔을까에 대한 고민에서 채 빠져나오지 못했을 때, 바루다가 말을 이었다.

‘뭔 검사?’

[두경부 영역까지 MRI 검사를 확장할 것을 요청합니다.]

‘확장이라.’

[네, 머리가 괜찮다면 다른 원인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척수 쪽 원인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긴……. 그거라면 가능은 하지.’

왜 척수에 병변이 생겼을까를 고민하는 건 일단 다음 순서가 될 터였다.

지금은 일단 사지 마비가 왜 생겼을까를 확인하는 편이 우선이었다.

[빨리 결정을 내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곧 검사가 끝날 겁니다.]

‘아.’

수혁은 자신도 모르게 촬영실 앞쪽을 바라보았다.

투명한 창으로 되어 있었는데, 그 창을 통해 검사 중인 환자를 볼 수 있었다.

CT실과는 달리 MRI실 내부는 모든 전자 기기 작동이 불가하기에 직접 보도록 설계된 덕이었다.

둥둥둥.

미약하게나마 전달되어 오는 진동과 오르내리고 있는 환자 덕에 아직 검사가 다 안 끝났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저…….”

해서 수혁은 신경과 레지던트와 방사선사를 동시에 불렀다.

둘은 제법 오랜 시간 떠들어 댔지만, 딱히 이렇다 할 답을 내리진 못한 상황이었다.

때문에 수혁이 입을 열자마자 이쪽을 바라보았다.

“네, 내과 샘.”

신경과 레지던트는 아직 수혁에 대한 소문을 듣지 못한 상황이었다.

원래 소위 마이너 과로 분류되는 곳은 병원 소문에서 좀 소외되는 경우가 많았다.

“사지 마비의 원인이 뇌가 아니라면…… 검사를 좀 더 밑까지 찍어 보는 건 어떨까요? 아직 조영제 안 들어갔으면…… 가능할 거 같긴 한데.”

“아. 지금 어떻죠? 진행 상황이?”

둘의 말에 방사선사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네, 조영제 안 들어갔습니다. 조영제 이후 검사를 그럼…… 영역을 좀 내려 볼까요?”

“가능하시면 그렇게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음. 알겠습니다. 조영제 전 영상에서는 경부는 안 나올 텐데, 그래도 되나요?”

기사의 말에 수혁이 잠시 머뭇거렸다.

이제 1년 차 된 지 겨우 1달 남짓한 그가 어떻게 된다, 안 된다를 결정할 수 있겠는가.

“괜찮습니다. 제가 컨펌할게요.”

다행히 이 자리에는 신경과 레지던트가 자리하고 있었다.

덕분에 환자에 대한 검사는 조영제가 들어가기 직전에 머리에서 경부까지 포함하도록 변경될 수 있었다.

“인턴 선생님, 검사 약간 변경되어서 앞으로 20분 더 소요됩니다!”

방사선사는 인턴의 얼굴이 잔뜩 찌푸려질 만한 말을 전달한 후, 변경된 세팅으로 검사를 다시 진행했다.

시간이 얼마간 지나자 재차 영상이 하나하나 전송되어 오기 시작했다.

먼저 머리부터.

“역시 정상인데…….”

조영제가 들어갔다고 해서 정상이었던 머리 사진이 어떻게 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영상 컷이 점점 더 넘어올수록 신경과 레지던트와 수혁의 표정이 묘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비인두.

즉 환자의 암이 있던 부위 근처가 너무 지저분하게 변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재발…… 인가.”

신경과 레지던트가 낭패라는 얼굴로 고개를 저어 댔다.

수혁은 그저 안타까워하는 대신 바루다와의 대화를 시도했다.

‘이상한데? 이비인후과 외래 본 게 불과 저번 달이잖아.’

[당시 외래 기록을 보면 재발의 증거는 전혀 없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영상이나 내시경 사진도 그랬는데?’

수혁은 응급실에 오자마자 확인했던 환자의 차트를 다시 한번 떠올렸다.

이미 바루다가 차곡차곡 정리를 해 두었기 때문에 그렇게 어려운 과정은 아니었다.

‘역시 그땐 재발이 아니었어.’

하지만 지금 전송되어 오고 있는 영상은 재발을 시사하고 있었다.

조영제에 의해 제멋대로 증강된 조직 하며.

비인두 뒤를 뚫고 들어간 병변까지.

“아.”

그리고 그 병변은 심지어 척추뼈를 녹이고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척수를 침범했다는 말이었다.

“이게…….”

수혁은 방금 전송되어 온 영상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말을 이었다.

“이게 사지 마비의 원인이었군요.”

“네, 내과 샘. 신경과 원인이 아니었네요. 흐음……. 비인두암이 이렇게까지 공격적인 건 또 처음 보는데…….”

절대적으로 예후가 좋은 암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위치가 눈에 보이는 곳에 있는 곳이 아닌 데다가, 일으키는 증상이 코피라 아주 늦게 발견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하지만 이 환자는 치료가 가능할 때 발견되었고, 치료도 제대로 들어가 있었다.

항암제도 사이클에 맞추어서 딱딱 들어갔고.

방사선 치료도 정확히 비인두암 쪽을 목표해서 들어갔더랬다.

‘차트 기록하고 소견이 너무 다른데……. 이상하지 않아?’

[일반적인 행태는 아닙니다만, 의학은 결국 통계입니다.]

바루다의 말은 곧 무슨 일이든 벌어질 수 있는 게 의학이라는 뜻이었다.

아직 제대로 된 인공지능 진단 틀이 등장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물론 오감을 다 계산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없다는 것이 훨씬 더 큰 이유긴 했지만.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이 문제를 해결한 인공지능 바루다가 말을 이었다.

[영상에서 보이는 병변은 암의 재발로 추정됩니다. 재발에 대한 프로토콜대로 치료하실 것을 권유합니다.]

‘흠…….’

하지만 수혁은 아무래도 그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뭔가 놓친 게 있을 것만 같았다.

[수혁, 수혁은 셜록 홈스가 아닙니다. 프로토콜대로 움직이십시오.]

물론 바루다는 그런 수혁을 개무시했지만.

“그럼 신경과 노트 남기겠습니다. 입원하시고 나면 사지 마비에 관해 협진 주세요.”

자기 과 문제가 아니란 것을 확인한 신경과 레지던트 또한 수혁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촬영실을 빠져나갔다.

그사이 검사가 모두 끝났고, MRI실에서 환자를 데리고 나온 인턴이 환자의 얼굴을 가리켰다.

들어갈 때는 분명 눈을 감고 있었는데, 나오니까 눈을 뜨고 있었다.

“어?”

“검사 도중 너무 시끄러워서 그런 건가……. 모르겠는데 눈을 뜨셨습니다.”

“잠깐 비켜 볼래요?”

“네.”

지금 전송되어 온 검사 결과만 보면 눈을 뜨는 건 사실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머리가 멀쩡한 이상 의식은 제대로 깨어 있었어야만 했으니까.

[그러고 보니 이상하군요. 왜 의식이 없었을까요?]

‘지금 그거 물어보려는 거야.’

[아하.]

수혁은 바루다를 잠시 침묵시킨 후, 환자에게로 다가갔다.

환자는 눈동자만 돌려서 아주 힘겹게 수혁을 바라보았다.

“말씀…… 하실 수 있습니까?”

“네…….”

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단순히 목이 말라서일 수도 있겠지만.

MRI에서 확인된 병변을 보면 성대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아서일 가능성이 컸다.

‘불완전 마비라?’

이것 또한 이상한 일이었다.

병변이 암이라면 불완전 마비가 아니라 완전한 마비가 왔을 테니.

수혁은 몇 가지 의문을 차곡차곡 쌓아 나가는 동시에 질문을 던졌다.

“환자분, 아까 의식 잃으실 때 혹시 기억납니까?”

“아……. 네.”

“어쩌다 그러신 거죠? 그냥 누워 계셨나요?”

“아뇨, 아뇨. 화장실에 있다가……. 갑자기 몸에 힘이 안 들어가서 쓰러졌습니다. 그리곤 기억이 없어요.”

“화장실……?”

“네, 소변이 마려워서.”

그 말은 곧 마비가 오기 직전까지는 몸을 움직였다는 얘기가 되었다.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인공지능이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해!’

[그럼 모르는 걸 안다고 거짓말합니까? 그런 인공지능은 없습니다. 있어서도 안 되고요.]

‘망할 놈.’

[말문 막히면 욕하는 버릇이 있으신데, 그거 아주 나쁜 버릇입니다.]

‘이런 개…….’

수혁은 또 다른 욕설을 내뱉으려다 참았다.

어쩐지 바루다의 말대로 움직이는 거 같았으니까.

게다가 지금은 바루다와 입씨름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들이 많이 있었다.

“환자분, 일단. 일단 아까 있던 데로 모시겠습니다. 가면서 몇 가지 검사를 좀 할게요.”

“어……. 네.”

환자는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별로 이상할 것이 없을 테지만.

지금은 너무 이상한 일이라고 보면 되었다.

[방금 고개 움직인 겁니까?]

환자는 분명 사지 마비라고 했으니까.

방금 사라진 신경과 레지던트가 남긴 기록에도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고 했고.

“환자분 제 손 잡을 수 있겠습니까?”

“네…….”

하지만 지금 환자는 분명 수혁의 손을 잡고 있었다.

형편없을 정도로 미약한 힘이긴 했지만.

분명 완전한 마비는 아니었다.

[암이 아닌가?]

‘이 새꺄……. 네가 그러고 있으면 어떡해.’

수혁의 타박에 바루다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이내 반격에 들어갔다.

[발표된 케이스 중 수혁이 읽어 본 극히 소량의 케이스와 현재 환자의 병변을 연관해 분석해 보겠습니다.]

‘분석하면 분석만 할 것이지. 극히 소량은 뭐냐.’

[사실에 기반한 발언만을 한 것뿐입니다.]

‘아오…….’

[일단 문진부터 하시죠.]

‘…….’

수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환자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 사이에 또 변화가 있었다.

“어……?”

환자는 눈만 끔뻑거릴 뿐 다른 움직임을 보이진 못했다.

심지어 조금 전까지 수혁의 손을 붙잡고 있던 손도 툭 떨어져 있었다.

아예 힘이 빠진 모양이었다.

“지금……. 말씀 못 하시겠어요? 그럼 눈 두 번 깜빡여 보세요.”

수혁의 말에 환자는 눈을 두 번 깜빡였다.

사지 마비가 이토록 변화무쌍하게 찾아오는 병이라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위 연차한테 노티부터 할까?’

모르는 걸 끙끙 앓고 있는 건 어찌 보면 죄악이라 할 수 있었다.

손해는 온전히 환자의 것이 될 테니까.

[분석 결과……. 암보다는 감염 또는 괴사성 질환에 합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사이 분석을 마친 바루다가 어쩐지 자신 없어 보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왜 그래?’

[케이스의 양이 극히 소량이라서요.]

‘이 새꺄…….’

[아무튼, 암보다는 다른 질환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달리 생각나는 건 없습니까?]

‘잠만 기다려 봐.’

수혁은 잠시 눈을 감았다.

대체 이 환자에게 증상을 일으키고 있는 비인두 뒤쪽의 병변은 무엇 때문에 생긴 걸까?

‘감염?’

[보고된 감염병 중 비인두염을 이렇게까지 심하게, 또 선택적으로 일으키는 것은 없습니다.]

‘괴사?’

[자가면역질환 또한 비인두 부위만을 선택적으로 침범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웨게너’가 가능한 후보 중 하나입니다만, 확률이 너무 적습니다.]

구구절절 옳은 소리였다.

그중 수혁의 관심을 확 끄는 단어가 있었다.

방금 자신이 내뱉은 단어이기도 했다.

‘잠깐만. 괴사?’

[뭐 짚이는 거라도 있습니까?]

‘이 환자 방사선 치료 받았잖아. 꽤 고용량으로. 비인두에.’

[그야 비인두암이니까……. 아?]

‘대강 알겠어. 노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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