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20화 (20/1,303)

20화 이건 좀 어려운데? (4)

“방사선성 괴사라.”

조태진 교수는 방금 수혁이 언급한 병명을 되뇌며 중얼거렸다.

‘흐음.’

속으로는 맹렬히 머리를 굴려 대면서였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방금 수혁이 말했던 소견들과 방사선성 괴사라는 병명을 맞추기 위한 작업을 해 대었다.

‘확실히…… 자세나 상태에 따라 마비 정도가 바뀌는 건 많이 이상하지.’

조직에 닿으면 바로 파괴해 버리는 것이 암의 특성이었다.

물론 그저 접해 있기만 할 때는 염증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이렇게까지 극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건 무척 드물었다.

아니, 아예 없다고 단언해도 좋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감염을 의심하는 건 뜬금없지.’

비인두염의 원인균 중 이렇게까지 심각한 감염을 일으킬 수 있는 균이나 곰팡이가 있기는 있었다.

환자는 항암 치료를 받았으니 면역력이 떨어져 있기도 할 테고.

하지만 감염의 징후도 없이 이 정도로 빠른 진행을 보인다?

그건 꽤 자연스럽지 않았다.

적어도 훌륭한 내과 의사라면 처음부터 감염을 염두에 두어선 안 되었다.

하지만 완전히 배제를 해서도 안 되었다.

그랬다간 환자를 잃을 수 있었으니.

“그럴싸한데. 어떤 치료를 할 거지? 그럼?”

이제 조태진 교수는 아예 발걸음을 멈춘 상태였다.

이 정도로 대화가 이어 나갈지 기대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즐거운 수혁과의 대화에 푹 빠진 탓이었다.

고작해야 1년 차와의 대화에 이 지경이 되다니.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열띤 토론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마음 같아서는 고용량 스테로이드를 시작하고 싶습니다.”

“왜지?”

“방사선성 괴사에서는 스테로이드가 제일 첫 번째 치료제 중 하나이니까요. 가장 효과가 강할 겁니다.”

“그런데 왜 단서를 붙였지?”

조태진 교수는 이미 방사선성 괴사를 수혁에게 들은 이후 어느 정도 치료 계획을 수립한 후였다.

‘방사선 때렸으면…….’

처음 계획처럼 방사선 때릴 생각은 이제 추호도 없었다.

그랬다간 괴사는 점점 더 심해질 것이 분명했으니까.

어쩌면 그것 때문에 환자를 잃을 수도 있었다.

아니, 잃을 수도 있는 게 아니라 그럴 가능성이 매우 컸다.

실제로 그렇게 보고한 케이스 리포트들도 많았다.

‘감염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어.’

[그렇습니다. 자연스럽지는 않지만, 의학은 결국 통계입니다.]

한편 수혁 또한 조태진의 질문을 듣고 머리를 굴리는 중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신뢰할 수 있는 조언자인 바루다와 대화 중이었다.

‘그럼 역시 스테로이드는 좀 위험하겠지? 쓰고 싶긴 한데…….’

[곰팡이에 의한 감염인 경우, 실시간으로 환자가 죽어 가는 걸 보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보고 싶다면 꼭 고용량 스테로이드를 때리십시오.]

‘넌 말을 꼭 그렇게 싸가지 없게 하냐?’

[진실만을 말할 뿐입니다.]

아쉽게도 바루다의 말은 사실이었다.

스테로이드는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항염증제였다.

그렇기에 아주 다양한 상황에서 극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지만 역시나 강력한 만큼이나 심각한 부작용을 동반하고 있었다.

그중 지금 상황에서 문제가 될 만한 것은 바로 면역 억제였다.

[위 환자는 시스플라틴을 기본으로 한 항암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 말은 이미 치료 도중 면역 억제가 발생했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정상적으로 코 내에 살고 있던 곰팡이…….]

‘알았으니까, 닥쳐 줄래? 슬슬 조태진 교수님이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기 시작했거든?’

[제가 보기에도 수혁의 얼굴이 좀 이상하게 생기긴 했습니다.]

‘닥쳐. 이럴 땐 무조건 내 말이 맞아.’

[자존심이 상하지만, 황선우 사례를 생각하여 입을 다물겠습니다.]

수혁은 그렇게 바루다를 침묵시킨 후 조태진 교수를 바라보았다.

그의 생각대로 조 교수는 수혁을 참으로 복잡한 얼굴로 바라보는 중이었다.

‘진짜 좀 이상하긴 하구나.’

이현종도 신현태도 이수혁이 진짜 인재라고 떠들어 댔더랬다.

신현태야 원래 약간 팔불출 끼가 있어서 아무리 좋게 봐도 좀 노력하는 범재 수준의 레지던트도 곧잘 칭찬했었지만.

이현종은 그에 비하면 훨씬 엄격함에도 불구하고 이수혁의 천재성은 인정했다.

그리고 그 둘 모두 약간 이상한 점이 있다는 말도 해 줬다.

하지만 위험하진 않은 거 같다는 말도 함께였다.

‘정말 위험하지 않은 건 맞겠지?’

해서 조태진 교수는 약간 뒤로 물러서긴 했지만, 딱히 방어 자세를 취하거나 하진 않았다.

수혁은 그런 조태진 교수를 향해 입을 열었다.

“환자는 시스플라틴 계열의 항암제를 이용한 항암 치료를 받았습니다. 이는 면역력의 저하가 이미 발생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잠깐, 너무 똑같이 따라 하는데?]

“그렇기에 코 내에 살고 있던 상재균 또는 곰팡이균이 비인두에 감염을 일으켰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수혁. 양아치입니까? 닥치랄 때는 언제고?]

바루다가 중간중간 계속 끼어들었지만, 수혁은 전혀 흔들림 없이 말을 이어 갔다.

바루다가 자신 있게 꺼냈던 말이니만큼 조태진이 듣기에도 아주 완성도가 높았고, 흡족했다.

“그렇지. 항암 방사선 치료 환자 중…… 특히 안면 쪽에 치료받은 환자들은 감염이…… 특히 곰팡이 감염이 상대적으로 흔하지.”

“네. 아스퍼질러스 균이라면 그나마 스테로이드를 투여한 후에도 기회가 있겠지만, 뮤코마이코시스 균이라면…… 실시간으로 환자가 균에 잡아 먹히는 것을 봐야 할지도 모릅니다.”

말하자면 현 상황에서 스테로이드는 하이 리턴, 베리 하이 리스크라는 뜻이었다.

이게 돈에 관련한 것이거나 뭔가 다른 일이라면 감수해 볼 수도 있겠지만.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에서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 그럼 네 의견은?”

조태진 교수는 거의 동등한 수준으로 토론을 이어 나가는 수혁을 보며 빙그레 웃으며 질문을 던졌다.

어쩐지 수혁의 입에서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그 치료가 튀어나올 것만 같아서였다.

“우선 부담이 적고, 감염에 대한 치료도 될 수 있는 고압 산소 탱크 치료를 하고 싶습니다.”

“흠.”

튀어나올 것 같긴 했지만.

진짜 튀어나오니 솔직히 진짜 놀랍긴 했다.

‘정답을 말했다 이거지?’

고압 산소 탱크란 말 그대로 고농도의 산소에 환자를 노출하는, 일종의 캡슐 같은 것이라고 보면 되었다.

원래는 일산화탄소 중독이나 감압병과 같은 아예 다른 기전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었지만.

쓰다 보니 다른 질환에도 극적인 효과를 보인단 것을 알게 되어 지금은 다른 질환에 오히려 더 많이 쓰이고 있었다.

“좋아. 지금 바로 예약 잡…… 아니, 거기 내가 잡을게. 넌 또 뭐 하고 싶어?”

조태진의 질문이 계속되었다.

보통 레지던트 입장에서, 그것도 1년 차 입장에서 이건 정말 짜증 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수혁은 계속되는 조태진 교수의 질문이 부담스럽기는커녕 기회로만 느껴졌다.

‘감염내과 교수 해야 하나 했는데, 어쩌면 혈종도…….’

[수혁과의 대화를 토대로 미루어 볼 때, 이럴 때 해 줄 수 있는 조언으로 ‘김칫국 마시지 말라.’가 있겠습니다.]

‘넌 좀 닥치고. 뭐 하고 싶은지나 말해. 난 조직 검사 하고 싶은데. 맞아?’

[저도 동의합니다.]

‘좋아.’

바루다가 그렇다고 하면 거의 그런 거라고 보면 되었다.

아직 정보가 많이 들어가 있진 않아서 부정확할 때도 있긴 했지만.

“조직 검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직 검사? 뭐가 나올 거 같은데?”

“염증 조직이 나올 거라고 봅니다. 다만 동결 절편 검사나 염색 검사에서 곰팡이 감염 정도는 확인할 수 있을 테니, 거기서 음성 소견을 보인다면 본격적으로 방사선성 괴사에 대한 치료를 진행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거기까지 들은 조태진 교수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까지 답을 할 수 있다면 이건 그냥 운이 좋거나, 해당 질환에 관해 책 한번 슥 읽어 본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좋아. 이 환자 네가 맡아서 보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설명해 드려. 나는 고압 산소 탱크 잡아 줄게. 조직 검사는…… 그것도 내가 잡을게. 아무래도 네가 하긴 좀 어려울 테니까.”

어디 시설 예약하거나 다른 과에 부탁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라 할 수 있었다.

특히나 수혁처럼 1년 차 나부랭이는 더더욱 그러했다.

그걸 교수가 대신 해 주겠다고 한 참이 아니던가.

수혁의 고개가 내려간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네. 교수님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가 봐. 환자분 기다리겠네.”

“네, 교수님.”

“아, 그리고.”

조태진 교수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환자를 향해 총총걸음으로 달려가려는 수혁을 멈춰 세웠다.

수혁은 설마 또 학회 발표 같은 게 떨어지려나 하는 눈으로 그를 돌아보았고.

“너 백당이 원래 누구지?”

“김인수 치프 선생님입니다.”

“아, 인수……. 흠.”

예상과는 다른 질문이었으나 수혁은 당황하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그저 인수라는 이름을 되뇌고 있는 조 교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이렇게 하자. 내가 보니까 너 백당 필요 없을 거 같아. 그냥 단독으로 서고. 입원 필요한 환자는 나한테 바로 노티해. 다른 분과 환자들은…… 인수나 2년 차 컨펌 받고. 알았어?”

“아, 네. 교수님.”

수혁은 조태진에게 크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대답했다.

이로써 감염내과에 이어 혈액종양내과에서도 교수에게 직접 노티할 수 있는 권한을 획득한 셈이었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대단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1년 차가 2년 차나 3년 차의 일을 하게 된 것이었으니까.

제일 똑똑한 1년 차가 제일 멍청한 2년 차보다 못하단 말이 진리로 통하는 대학 병원에서 이건 거의 기적이었다.

“그래, 그럼 가 봐. 후딱 환자 정리하고 좀 자야지.”

“감사합니다. 교수님.”

수혁은 마지막으로 인사를 한 후, 환자에게로 달려갔다.

다행히 환자는 아까보다 사지 마비가 좀 풀려 있는 상황이었다.

덕분에 수혁은 자신의 설명이 잘 전달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해서 환자는 자신이 왜 고압 산소 탱크에 들어가는 건지에 대해 묻지 않았다.

‘잘되려나.’

수혁은 그렇게 탱크 안에 들어간 환자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모르죠.]

‘왜 몰라? 넌 알아야지.’

[아직 데이터가 너무 부족해서 예측이 잘 안 됩니다.]

‘공부 열심히 하고 있잖아?’

[공부 많이 한다고 훌륭한 의사가 됩니까? 경험이 필요하죠.]

‘경험…….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데? 시간이 필요하지.’

이제 겨우 내과 의사 된 지 한 달 좀 넘었는데 경험은 무슨 놈의 경험이란 말인가.

바루다는 수혁의 시큰둥한 말을 들으며 그대로 대화를 이어 갔다.

[그 시간을 줄일 수 있도록 수혁이 최대한 굴렀으면 좋겠습니다. 딱 생존할 수 있을 정도로만 수면을 취하면서요.]

‘아주 그냥 죽으라고 저주를 해라……. 이 새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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