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야 이거 헷갈리네 (1)
“환자 어때?”
오후 외래를 마치고 병동으로 올라온 조태진 교수가 치프 김인수 선생을 향해 물었다.
김인수는 잠시 수혁을 돌아보았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예정대로 항암 치료 받으신 분들은 뚜렷한 합병증 없이 퇴원 예정입니다. 주말 사이 항암 치료 위해 입원하신 분들도 이번이 첫 사이클이 아니라 아마도 별일 없을 거라 생각됩니다.”
모두 무서워하는 심각한 약물 부작용은 대개 초기에 나타나기 마련이었다.
처음에 괜찮았으면 대개 계속 괜찮을 가능성이 아주 컸다.
물론 항암제는 약물 용량과 사용 기간에 따라 부작용이 커지는 경향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 그냥 다 루틴 환자들이란 거지?”
“네, 교수님.”
“좋네. 우리도 좀 이럴 때도 있기는 있어야지.”
조태진 교수는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전 병동에서 단위 병실당 가장 많은 환자가 죽어 나가는 곳이 바로 이곳 혈액종양내과 병동이기 때문이었다.
그중에서도 그가 담당하고 있는 15층 서 병동 쪽은 말기 환자들도 많이 입원하고 있어서 제법 많은 죽음을 목격해야만 했다.
“그래, 그 환자는 좀 어때?”
조 교수는 잠깐 그렇게 웃고 있다가 수혁을 돌아보았다.
누구라 말은 하지 않았지만, 수혁은 즉시 조 교수가 말하는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네, 박경원 환자 이틀 전에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동으로 전실했습니다. 현재 혈액 검사상 염증 수치 가라앉고 있으며 해당 부위 통증 또한 주관적 보고 9점에서 4점으로 가라앉고 있습니다.”
“약은?”
“진통제 들어가는 횟수도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잘됐네.”
통증은 때론 아무것도 아닌 지표일 때도 있지만.
어쩔 땐 모든 지표 중 가장 중요할 때도 있었다.
주관적인 점수 감소도 물론 좋은 소견이었지만.
진통제 사용 감소가 객관적으로 확인된다는 것은 더 좋은 일이었다.
“운동은 어때?”
“아직은 운동 수준이 들쑥날쑥해서 휠체어 보행만 하고 있습니다. 움직임에 크게 제한이 있지는 않습니다. 신경과 의견으로는 영구적인 후유증은 없을 거라고 합니다.”
“이비인후과에서는 뭐래?”
“매일 아침저녁으로 내시경 검사를 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협진 방 진료 보고 찍은 사진 소견은 이렇습니다.”
수혁은 굳이 사진 소견을 입으로 설명하는 대신 직접 보여주었다.
당연하게도 조태진 교수나 김인수의 시선이 그리로 모였다.
울긋불긋한 것이, 확실히 좋아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처음 상태와 비교하자면 어마어마한 진전을 보이고 있는 셈이었다.
그땐 진짜 암이 재발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엉망이었으니까.
“여기 이거 뼈 녹은 건 어떻게 하래?”
조태진 교수는 사진상에서도 뻥 뚫려 보이는 비인두의 뒤쪽 벽을 가리켰다.
염증 자체는 많이 가라앉았지만, 그래서 더 구멍이 크게 보인다는 단점이 있었다.
게다가 여기 있는 의사 셋은 그 구멍이 척수로 바로 이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물이라도 들어가서 감염을 일으키면 어찌 되겠는가.
그땐 지금처럼 잘 회복되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일단 지금 치료 유지해서 괴사한 조직 좀 더 좋아지고 나면 수술적 재건 하겠다고 합니다.”
“수술? 여길?”
비인두는 코 가운데에 있는 조직이었다.
말하자면 얼굴 중앙이라는 뜻.
접근하기가 그야말로 최악이란 얘기였다.
수술하려면 얼굴 반쪽을 가르고 들어가야 할 가능성이 컸다.
“네. 다행히 빨리 치료에 들어가서…… 내시경으로 가능할 거라고 합니다. 정확한 얘기는 못 들었지만…….”
[몰라서 말끝 흐린 것이죠? 대퇴근막장근(Fascia lata)으로 재건할 가능성이 큽니다.]
“대퇴근막장근을 이용해서 재건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수혁은 살짝 민망하다는 생각을 하며 말을 끝마쳤다.
물론 듣고 있는 조태진 교수로서는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얘 진짜 물건이네…….’
보통 내과 의사는 외과적 처치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진짜 훌륭한 내과 의사라면 최종 치료도 빠삭하게 알고는 있어야 했다.
할 줄 모르는 거야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래야 자기 환자에게 제대로 된 설명을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래. 그럼 그런 식으로 대강이나마 운은 띄워 놔. 갑자기 수술한다고 하면 환자 황당하니까.”
“네. 교수님.”
“그리고…….”
조태진은 그대로 병동 회진을 돌러 가는 대신 병동 환자 목록을 새로고침 했다.
그럼에도 원하는 환자가 뜨지 않자, 오후에 있던 외래 환자 목록을 띄웠다.
“어디…… 아, 여깄네.”
그러고 나서도 한참 스크롤을 위아래로 굴리고 나서는 ‘박상아’란 이름 앞에서 멈춰 섰다.
“이 환자 외래에서 입원장 냈거든? 전화로 확인했을 때 병동에 빈 자리 있다고 들었는데, 아직 입원 수속이 안된 모양이네.”
그의 중얼거림을 들은 병동 간호사가 부리나케 다가와 답을 해 주었다.
“네, 교수님. 외래에서 환자분 한 명 올라온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아직 병동 자리 정리 중이라……. 한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있다가 올라오실 예정입니다.”
“그럼 오늘은 내가 얼굴 못 보겠다. 치프도 그만 퇴근하고. 수혁이가 가서 인사드려.”
조태진의 말에 김인수가 자못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쯤 다른 치프들은 아마 1년 차 뒤치다꺼리하느라 퇴근은커녕 겁나게 혼나고 있을 터였다.
교수들은 1년 차가 저지른 잘못은 곧 2년 차, 3년 차의 잘못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원래 1년 차랑 나랑 둘이 돈다고 다음 달은 진짜 편한 과 배정받았는데…….’
이건 뭐 2년 차랑 도는 거랑 비교해도 훨씬 편하고 좋을 지경이었다.
기분이 좋아진 그는 남몰래 수혁의 어깨를 토닥거려 주었다.
“어떤 환자냐면…….”
조태진은 다시 모니터를 향해 고개를 돌린 채 환자 차트를 열었다.
외래에서 올라오니까 알아서 차트 보고 대강 보라는 말을 할 수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지만.
태화 의료원 내과는 그런 마음가짐을 가져도 버틸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한 곳은 아니었다.
물론 백이 든든한 사람이라면 얘기가 좀 달라질 수도 있긴 하겠지만.
“원래 대장암으로 항암 치료 폴폭스(Folfox: 항생제 치료법) 세 사이클 정도 돌린 환자분이야. 원발 병변은 완전히 제거된 상태로 지내고 계셨는데, 이번에 경과 관찰 위해 시행한 복부 MRI에서……. 이거 왜 이렇게 느려.”
조 교수는 환자 검사 결과 창 옆의 영상 버튼을 누르곤 투덜거렸다.
그런다고 느린 컴퓨터가 빨라질 리는 없었기 때문에 한참을 투덜거린 후에도 잠시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어야만 했다.
“아, 떴네. 보이냐?”
“아……. 간에 멀티플 메타가 있네요.”
치프 김인수가 재빨리 답했다.
확실히 교수를 꿈꾸는 사람인 만큼, 공부도 꽤 열심히 하는 편이었다.
대장암은 전이가 꽤 잦은 암이라는 것.
그중에서도 간으로 잘 가는 암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 이거 워크 업(Work up: 검사) 해 볼 거야. 일단 환자한테는 전이 얘기는 하지 말고……. 간 조직 검사 정도만 설명해 놔. 알았어?”
이제 조태진 교수는 수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수혁은 즉각 답을 하지 못했다.
[전이라고 딱 잘라 말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자세한 것은 지금 데이터 부족으로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만…….]
바루다가 조태진 교수나 김인수와는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이가……. 아닐 수도 있다고?’
게다가 지금 복부 MRI에서 보이는 소견은 누가 봐도 전이를 생각할 만한 병변이었다.
심지어 복부 영상의학과 김진실 교수의 이름으로 간 전이를 배제해야 한다는 의견서까지 첨부되어 있었다.
그걸 아니라고 하다니.
[수혁이 지금 환자와 관련된 논문을 읽고 있던 당시 졸아 버려서 기록이 흐릿합니다. 자세한 의견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럼 일단 지금은 그냥 넘어가.’
[동의합니다.]
다행히 바루다와의 대화는 짤막하게 끝났다.
그리고 조태진 교수는 이미 수혁이 간혹 정말로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는 것을 경험적으로나 남들에게 들어서나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위험한 건 아냐.’
해서 위와 같은 생각과 함께 참을성 있게 기다려 줄 수 있었다.
“앗. 죄송합니다. 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부탁할게. 나머지 환자 먼저 돌자. 내가 오늘 모임이 있어서 빨리 나가 봐야 해.”
“네, 교수님.”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부리나케 앞으로 나섰다.
병실 문 여는 일은 철저하게 1년 차의 몫이었다.
심지어 학생이 있어도 그랬고.
인턴이 있어도 그랬다.
엄청 똑똑하건 말건 그건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기본이었다.
드르륵.
수혁은 재빨리 병실 문을 열면서 뒤따르고 있는 둘을 돌아보았다.
“박경원 환자분입니다. 현재 비인두 방사선성 괴사로 고압 산소 탱크 치료 및 데일리 소독 그리고 스테로이드 치료 중에 있습니다.”
“그래.”
1년 차는 문만 여는 게 아니라, 대강 여기 누가 있는지 알려 주기까지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환자분.”
물론 환자에게 인사를 할 때는 귀신같이 조태진 교수 뒤로 빠져야만 했다.
이건 1년 차 회진도, 치프 회진도 아닌 교수 회진이었으니까.
병동에 입원한 환자에게는 종일 기다려질 수밖에 없는 그런 시간이었으니까.
“네, 네. 교수님.”
“좀 어떠세요?”
“많이 좋아졌습니다.”
“네. 그 뒤에 문제 좀 남은 건 이비인후과에서 수술로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간단한 수술이라고 하니, 너무 걱정 마세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비록 그 설명과 시간이 레지던트 회진과 비교할 수 없이 적다고 해도.
환자들이 얻는 위안과 위로는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좋아. 내가 일러 준 대로 하도록 하고. 수혁이는 이따가 그……. 그래, 박상아 환자 올라오면 잘 설명해 드리고. 내일 조직 검사 스케줄 잡아.”
“네, 교수님.”
“그럼 간다. 내일 보자.”
“네, 교수님.”
그렇게 회진을 마친 조태진 교수는 약속이 꽤 급한 것인지 거의 뛰듯이 사라졌다.
그가 시야에서 없어지자마자 김인수도 사라졌다.
“나도 오늘은 약속이 있어서. 너 오늘 당직 아니지? 환자만 받고 얼른 쉬어라.”
“네, 선생님.”
수혁은 김인수까지 사라지기를 기다린 후, 잠시 눈을 감았다.
‘아까 했던 얘기 더 자세히 털어 봐.’
바루다와 대화하기 위함이었다.
[좀 더 정확한 의견을 개진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어떤 데이터? 나 대장암에 관한 논문 꽤 읽었는데?’
[읽으면 뭐 합니까. 졸았는데.]
‘하……. 어떤 논문인지도 몰라? 난 아예 기억에 없어…….’
수혁의 말에 바루다는 한심하다는 투로 쯧쯧 소리를 내고는 말을 이었다.
[「Radiology 2014 May」.]
‘뭔 미친 소리야.’
[그때 읽다 만 논문입니다. 졸아서 제목은 저장이 안 되어 있습니다.]
‘아.’
[방금 좀 미안했죠? 사과하시죠. 아니면 머리 치시든가.]
‘그건 또 뭐야. 어디서 봤어.’
[유튜브요. 수혁이 공부하는 시간을 아껴서 보는 그…….]
‘됐어. 됐어. 논문이나 보러 가자. 전이가 아니면 대체 뭐라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