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22화 (22/1,303)

22화 야 이거 헷갈리네 (2)

“래디올로지(Radiology: 영상의학과 학술지)……. 2014년 5월 발간된 거에 있다 이거지.”

수혁은 혼잣말을 해 가면서 병동 스테이션에 있는 컴퓨터를 켰다.

하지만 바로 검색에 들어가진 못했다.

박상아 환자가 병동으로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조태진 교수에게 전해 들었던 대로 40대 여성이었고, 생각했던 것보다 수척해 보이거나 하진 않았다.

‘오히려 건강해 보이는데……. 일단 걸음걸이가 힘이 있어.’

탈모가 발생했는지 모자를 쓰고 있긴 했지만.

그 외에는 별로 병색이 완연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았다.

주관적인 느낌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의외로 만성 질환자에서는 이러한 것이 상당히 중요했다.

의사는 암을 치료하는 것도 맞지만, 뭐가 어찌 되었건 그 암에 걸린 환자를 돌보는 사람이었으니까.

[체중 감소도 없어 보입니다. 석 달 전 입원했을 때 기록보다 오히려 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바루다도 그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듯 비슷한 말을 전해 왔다.

“박상아 님 맞으시죠? 병실 안내해 드릴게요.”

수혁이 바루다와 함께 환자의 외견상 알 수 있는 정보를 토대로 잠시 대화를 나누는 사이 담당 간호사가 환자를 데리고 병실로 향했다.

늘 병실이 꽉꽉 들어차 있는 태화 의료원답게 그녀가 안내되어 간 곳은 2인실이었다.

‘진짜 전이가 아니려나?’

[전이가 일어났다면 그 전이에 기반한 증상을 보여야만 합니다. 현재 환자는 별다른 증상이 없는 듯해 보입니다. 물론 반드시 그런 건 아니지만, 뭐 전이가 아닐 가능성을 의심해 볼 만한 가치는 충분하죠.]

‘외래 기록에서는 어땠지?’

[조태진 교수가 별다른 기록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영상만 보고 바로 입원을 결정한 모양이었다.

사실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암 치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또 가장 무서운 것이 바로 전이였으니까.

누가 뭐라고 해도 이건 반드시 확인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뭐 이런 얘기였다.

대부분의 혈액종양내과 의사가 제일 좌절하게 되는 순간이기도 했고.

‘일단 나오기 전까지 논문이나 좀 뒤져 보자.’

[제발 좀 그래 주시죠. 제가 손만 있으면 바로 했을 텐데. 참 안타깝습니다.]

‘말 좀 얄밉게 하지 마.’

수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병동 스테이션 컴퓨터를 이용해 논문 사이트에 들어갔다.

계속 뭔가를 중얼거리는 그를 보고도 간호사들은 별로 수군대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우리 특이한 1년 차가 또 이상한 버릇을 내보이기 시작했구나 하고 여길 뿐이었다.

그사이 수혁은 자신이 원하던 학술지에 로그인했다.

Radiology.

영상의학과 단독 학회지 중에서는 가장 큰 학회지답게 사이트에는 상당히 많은 논문이 게재되어 있었다.

그중 수혁이 뒤져 봐야 할 것은 2014년 5월에 발간된 호였다.

‘아이고, 뭐가 이렇게 많냐……. 이걸 언제 다 해…….’

어렵지 않게 찾아 들어갔더니, 그달에 발표된 논문만 수십 개에 이르렀다.

[그러니까 한 번 할 때 졸지 말았어야죠.]

‘알람을 울리든가 하지 그랬어.’

[와……. 언제는 그거 하면 머리에서 떼어 낸다고 해 놓고서는? 어떻게 이런 식으로 나오죠?]

‘그래도 이게 꼭 필요한 지식이다 싶으면 울렸어야지.’

[와, 이 시……. 알겠습니다. 방금 발언은 제가 반드시 제 행동 지침에 숙지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그렇게까지 할 건 없고…….’

수혁은 그 말을 해 대면서도 화면에 뜬 수많은 제목을 훑어보았다.

다행히 태화 의료원은 국내 제일의 병원이다 보니 모든 논문에 열람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따로 어디 전화해서 요청해 가면서 논문을 읽어 볼 이유가 전혀 없다는 소리였다.

“이수혁 선생님. 환자분 나오셨는데요.”

미처 첫 논문도 눌러 보기 전에 담당 간호사가 수혁을 불렀다.

고개를 들어 보니 박상아 환자가 뒤에 서 있었다.

멀리서 봤을 때도 그리 아파 보이는 기색이 없었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더더욱 그러했다.

‘진짜 전이가 아닌가?’

[단정 짓기는 이릅니다. 암의 특성을 잘 생각하십시오.]

‘하긴.’

암은 증상을 보이지 않아서 더 무서운 경우가 많았다.

즉 ‘아프지 않았는데, 다른 뭐가 없었는데’ 등의 말은 적어도 암에서는 전혀 소용이 없다는 얘기였다.

“네, 안녕하세요. 박상아 환자분. 주치의를 맡게 된 이수혁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조태진 교수님은 내일 오전 회진 때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일단 여기 앉아 보실까요?”

“아……. 네. 알겠습니다.”

환자는 담당 교수 대신 웬 어린 의사 하나가 덜렁 있는 것이 좀 불안한지 연신 주변을 살피다 마지 못해 의자에 앉았다.

수혁은 환자 근처에 놓여 있던 자신의 지팡이를 급히 들어다 반대편에 가져다 놓았다.

아무래도 아직 지팡이 짚고 다니는 게 익숙하지 않다 보니 이런 일이 잦았다.

“내일 검사에 대해서는 교수님께 설명 들으셨을 거예요. 맞나요?”

“음……. 네. 대강? 근데 그거 왜 하는 거예요?”

“음.”

수혁은 잠시 조태진 교수의 말을 떠올렸다.

- 전이 이런 얘긴 하지 말고.

아직 확진된 것도 아닌데 섣불리 환자 불안하게 만들지 말라는 뜻이었다.

물론 입원이 결정된 시점에서 이미 충분히 불안하긴 하겠지만.

“그냥 확인해 볼 것이 있다고만 들었습니다. 내일 교수님 오시면 직접 아마 설명해 주실 겁니다.”

[능구렁이같이 잘도 빠져나가는군요.]

다행히 수혁은 지난 한 달간 내과 레지던트로 수련받으면서 단지 병에 대해서만 배운 것은 아니었다.

다양한 레지던트와 교수들의 환자 보는 스킬도 익히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다행히 환자는 억지로라도 납득을 해 주는 듯했다.

아마 수혁처럼 어린 의사와 자신의 상태에 대해 더 얘기하기 싫어서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곤란한 질문을 무사히 넘긴 수혁은 재차 입을 열었다.

“그럼 몇 가지 질문을 좀 하겠습니다. 괜찮으실까요?”

“네, 뭐.”

“최근 한 달 간 복부 통증이 있으셨나요?”

“음……. 아뇨 뭐, 특별히? 아, 가끔 속이 쓰리긴 했어요.”

“약을 드셔야 할 정도였나요?”

“아뇨. 그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누차 말하지만, 통증은 상당히 중요한 지표였다.

비록 암 중에서는 어느 정도 이상 크기 전까지는 증상을 나타내지 않는 놈들이 많다지만.

그럼에도 통증은 반드시 확인해 봐야만 했다.

괜찮겠지 했던 통증이 생각보다 큰 문제로 인한 것일 수도 있었으니.

[별거 없군요, 통증은]

하지만 이 환자에서 통증은 꽝이었다.

“구역감이 있던 적은 없었나요?”

“음……. 한 번 정도?”

“실제로 토로 이어졌나요?”

“아뇨.”

이어지는 질문에서도 특이 사항은 없었다.

“특별히 더 피로하거나, 하루의 절반 이상을 주무셨던 적은 없나요?”

“없습니다. 오히려 한 달 전보다 지금이 좀 더 나아요.”

간에 전이가 있어 조직을 파괴하고 있다면 구역, 구토, 복통, 피로감 등을 유발할 수 있었다.

물론 체중 감소나 황달도 따라올 수 있는 증상이긴 했으나.

그건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네, 감사합니다. 오늘은 혈액 검사 하나만 있을 예정이니, 푹 쉬셔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후로도 몇 가지 질문을 더 이어 나갔으나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소득이 없는 게 아니라, 아무 증상이 없다는 소견을 얻은 겁니다.]

‘나도 알거든?’

[그럼 왜 잔뜩 실망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겁니까?]

‘남이사.’

[우리가 남이라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수혁의 표정을 느끼고 있는데요.]

‘꺼져 시발. 소름 돋아.’

수혁은 환자가 사라지자마자 혼자 주절거리다가 이내 아까 보고 있던 모니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무도 그가 치고 있던 컴퓨터를 건드리진 않았던 터라, 논문 목록이 고스란히 떠 있었다.

‘아무래도 복부 영상 쪽을 봐야겠지?’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간염 비슷한 제목이었습니다.]

‘넌 인공지능이라는 애가 기억력이 흐릿해?’

수혁의 도발에 바루다도 지지 않고 받아쳤다.

[드디어 수혁의 뇌를 저장 공간으로 써야 하는 제 고충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나 정도면 인마……. 꽤 준수한 편이야…… 4등 졸업이라고.’

[그럼 벌써 아는 사람 중에 셋이나 있군요. 더 훌륭한 뇌를 가진 사람이. 제가 과연 수혁을 세계 최고의 내과 의사로 만들 수 있을까요? 두려워집니다.]

‘그건 인마 내가 집안이 어려워……. 에이, 시발 됐어. 집어치워. 논문이나 찾아.’

수혁은 이런저런 사정 설명을 하려다 말고 고개를 휘휘 저어 댔다.

너무 구차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내일 조태진 교수가 회진을 돌기 전에 전이가 아니란 증거를 찾지 못하면 이것도 모두 헛수고로 돌아가지 않겠는가.

그러니 지금은 그저 서두르는 게 최우선이었다.

‘복부, 복부…….’

[세 번째, 복부입니다.]

해서 수혁은 바루다의 도움을 받아 논문을 하나하나 읽어 가기 시작했다.

인공지능이 탑재되었다 해도 영어 실력이 비약적으로 느는 건 아니었던지라 속도가 미친 듯이 빠르진 않았다.

기억하는 게 아니라 저장 방식으로 읽을 수 있어서 남들보다는 빠르긴 했지만.

‘이건 꽝이네…….’

[이번에도 꽝이군요.]

덕분에 열 개가량의 논문을 훑어보았을 땐 이미 2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수혁은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너 이거 확실한 거야? 2014년 5월?’

[그건 확실합니다. 바루다는 세계 최고 성능을 자랑하는 인공지능입니다.]

‘지입으로 그런 말 지껄이면 안 부끄럽냐?’

[부끄럽다는 게 혹 수혁이 ‘나는 돈 많이 버는 의사가 되면 좋겠다’라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던 때를 회상했을 때 나타나는 감정 변화를 말씀하신다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개새끼.’

수혁은 한 마디도 지지 않는 바루다에 질렸다는 듯 욕설을 내뱉었다.

‘어.’

그러던 그의 눈에 논문 하나가 들어왔다.

‘소화기암에서 항암 치료에 의한 간의 국소 병변. 이거 아냐?’

[불완전한 기억을 토대로 추정해 봤을 때, 맞을 가능성이 99%를 상회합니다.]

‘좋아. 읽어 보자고.’

[네.]

수혁은 잠시 그 논문을 들여다보았다.

읽으면 읽을수록 확신할 수 있는 게 하나 있었다.

이게 바로 바루다가 말했던 바로 그 논문이라는 것.

[이제 아시겠습니까? 바루다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겁니다.]

덕분에 바루다는 아주 의기양양하다는 태도로 머릿속이 죄 울리도록 외쳐 대기 시작했다.

무척 성가신 상황이었지만 수혁은 끝내 논문을 다 읽어 내었다.

내용이 흥미로운 건 둘째치고서라도.

논문에 나온 케이스와 지금 환자의 상황과 너무 잘 들어맞았기 때문이었다.

‘내일 교수님 진짜 놀라시겠는데?’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시간이 안 갔으면 좋겠더니.

이젠 빨리 내일 오전이 왔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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