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23화 (23/1,303)

23화 야 이거 헷갈리네 (3)

“으……. 좋은 아침이다, 수혁아. 넌 잘 잤냐?”

1년 차 잘 만난 덕에 꿀잠 자고 나온 치프 레지던트 김인수가 미소를 지은 채 인사를 건네 왔다.

정말이지 푸근하고도 친절해 보이는 미소였다.

그 모습을 본 병동 간호사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수혁이 혼자 중얼거리는 모습이야 ‘버릇이라 그래’ 하며 넘어가 주는 모양이었지만.

무려 3년을 함께 지지고 볶고 있는 김인수의 처음 보는 따뜻한 모습은 도저히 그렇게 넘어가 주기가 어려운 것 같았다.

“웬일이래. 웃을 줄도 아는 사람이었네.”

“와……. 사람 차별 너무 하는 거 아니에요?”

“황선우 선생님이 보면 울겠다, 울겠어.”

“근데 황 선생님은 조금…….”

“아무튼!”

김인수는 간호사들의 친근함이 묻어나는 나무람에 또다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3년 차 돼서 그래요. 마음이 넓어지는 거 같아. 이제 막 병원이 예뻐 보인다니까요?”

“하긴……. 1년 차 때 악마 같던 사람들이 3년 차 되면 천사 되기도 하죠. 계속 악마인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곳간 있는 곳에 인심 있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비유가 좀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일단 자기가 살 것 같아야 남들에게도 인정을 베풀 수 있지 않겠는가.

방금 간호사가 말한 상황은 딱히 드문 것도 아니었다.

레지던트 1년 차는 거의 사람 사는 꼴이 아닌 수준이지 않던가.

거기서 벗어나는 순간 인성에 지대한 개선이 찾아오는 건 드문 일이 아니었다.

물론 권력을 쥐자마자 더 개차반이 되는 놈들도 있긴 했지만.

“아무튼, 환자 별일 없지?”

김인수는 잠시 더 웃어 보이곤 수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짙은 신뢰감이 묻어나는 그런 얼굴이었다.

“네, 선생님. 어제 입원한 환자분도 별문제 없이 주무셨고, 회진 때도 별다른 말씀 없었습니다. 다만…….”

“다만? 뭔데?”

김진용은 수혁 뒤로 보이는 시계를 힐끔 바라본 채 물었다.

시계는 이미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곧 조태진 교수가 올 시간이라는 뜻이었다.

‘뭐 사고가 있었나?’

당연하게도 김인수의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원래 같으면 치프 회진이 대략 7시에 있어야만 했다.

특히 1년 차가 주치의인 경우에는 그보다 더 일찍 도는 경우도 많았다.

밤새 사고 친 것을 때워야 했으니까.

‘아……. 일찍 올걸……. 너무 믿었나.’

그런데 수혁은 2년 차보다도 더 능숙하게 환자를 보는 1년 차다 보니.

김인수로서는 마음 놓고 방심하게 된 상황이 된 지 오래였다.

그래서 교수보다만 일찍 오자란 마음으로 출근을 했는데, ‘다만’이라는 얘기를 들었으니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 박상아 환자분.”

“어, 빨리 말해 봐. 이러다 교수님 오시겠어.”

“전이가 아닐 수도 있지 않나 싶어서요.”

“뭐? 그게 뭔 소리야 인마! 그건 교수님 의견인데. 그리고 영상 보면…….”

김인수는 생각 같아서는 더 크게, 더 오래 떠들어 대고 싶었다.

로열에게 소리치는 행위가 마음에 걸리더라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못하고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왜 그렇게 시끄러워?”

어느새 조태진 교수가 곁에 다가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외래가 없고 연구 시간만 있는 날이라 그런지 어제 좀 달린 모양이었다.

머리칼이 아직도 약간 헝클어져 있었다. 입에서 은은한 술 냄새도 약간씩 풍겨 나오는 듯한 느낌이었고.

“그……. 그게, 저…… 음…….”

김인수는 바로 뭐라 말을 하고 싶었지만.

미처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바로 이럴 때 꿀 먹은 벙어리라는 표현을 쓰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사이 조태진 교수가 재차 입을 열었다.

아주 재밌겠다는 표정을 한 채였다.

“사실 들었어. 박상아 환자분이 전이가 아닐 수도 있다?”

그는 그렇게 말을 하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거의 의자 속으로 다이빙으로 하고 싶어 하는 듯 보였다.

어차피 시간도 있겠다, 어제 술을 진탕 마셔서 힘들기도 하겠다.

여기서 좀 쉴 겸 겸사겸사 진득하게 대화를 좀 나누어 보겠다는 의지가 팍팍 느껴졌다.

“왜 그런 생각을 했지?”

조태진 교수는 여느 내과 교수와 마찬가지로 제법 흥미롭다는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아마 외과계였다면 감히 자신의 의견을 무시했다느니 하면서 뭐라도 집어 던졌을 수도 있었을 텐데.

확실히 내과 쪽이 좀 더 점잖기는 했다.

속으로 꿍해서 두고두고 보복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했지만.

다행히 조태진 교수는 그런 사람도 아니었다.

“일단 영상을 좀 보여 드려도 될까요?”

김인수는 잠시 수혁이 ‘그냥 한번 생각해 봤습니다’ 하고 넘어가기를 바랐지만.

수혁은 이참에 본격적인 프레젠테이션이라도 하겠다는 듯 영상까지 떡하니 띄워 버렸다.

어제 회진 돌기 전에 보았던 바로 그 영상이었다.

박상아 환자의 간 쪽이 선명하게 찍힌 MRI 영상.

‘어떻게 봐도 전이 같은데.’

조태진 교수와 김인수는 동시에 같은 생각을 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수혁의 자신만만한 얼굴을 보니 아닐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누가 들으면 박장대소하고 처웃을 만한 일인데.

실제로 겪어 보면 그렇게까지 시원하게 웃어젖히진 못할 터였다.

지난 1주간 수혁은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활약을 보여 줬더랬다.

무려 교수가 레지던트 1년 차에게 어떤 기대를 걸어 봐도 좋겠단 생각이 들 정도로.

“시작해 봐.”

조태진 교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턱으로 영상을 가리켰다.

수혁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간에 선명하게 박혀 있는 덩이들을 가리켰다.

주변 간 조직에 비해 현저히 어두운, 대장암 전이 병변에 합당해 보이는 소견을 가지고 있는 덩이들이었다.

“이게 잘 보시면……. 일단 경계가 조금 무너진 듯 보이지 않습니까?”

“응?”

“여기 보시면 이 덩이들……. 경계가 깨끗하지가 않습니다.”

“흠.”

수혁의 말을 들으니 좀 그런 거 같기도 했다.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둘을 향해 말을 이었다.

“아시다시피, 대장암에서 간으로 전이되는 병변들은 경계가 아주, 아주 뚜렷한 것이 특징입니다. 여기……. 제가 따로 캡처한 건데요. 지금 입원해 계시는 환자분 영상입니다.”

“흠……. 그래. 그렇긴 하지. 근데 지금 상황에서 이 여러 개의 덩이를 일으킬 수 있는 병변은 전이가 가장 가능성이 커. 고작 그것만으로는 감별 요소가 안 돼.”

조태진은 꽤 재미나게 들었다는 듯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그럴싸하긴 하지만 아직 납득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물론 수혁도 단지 이것만으로 얘기를 꺼낸 것은 아니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 다음 얘기로 넘어갔다.

“네, 교수님. 하지만……. 음영도 보십시오.”

“음영?”

“박상아 환자분의 덩이는 조금 밝지 않습니까? 실제로 전이로 밝혀진 환자의 덩이보다?”

“아……. 이거……. 이거 왜 이러지?”

따로 놓고 볼 때는 보이지 않던 특성이었다.

수혁처럼 바루다의 도움을 받아 딱딱 기록해 둘 수 없는 사람에게는 구별이 어려울 수도 있었다.

조태진이 아무리 혈액종양내과 교수라고는 해도 영상의학과처럼 영상만 주야장천 보는 건 아니어서 더더욱 그러했고.

“이유가 있습니다.”

수혁은 늘 그러했듯 중요한 말을 하기 전에 뜸을 들이는 스킬을 발휘했다.

“뭔데? 빨리 말해.”

조태진에게도 먹혀들어 갔고.

이제 조태진은 자신이 수혁을 시험하고 있었다는 것도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이미 수혁의 논리와 추론에 빠져 버린 탓이었다.

물론 김인수도 마찬가지였다.

‘뭐지? 뭐야 대체.’

조태진이 옆에 있어 감히 입을 열고 있지는 못했지만.

얼른 수혁이 설명을 이어 나가길 바라는 마음은 조태진에 비할 바가 아닐 지경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MRI 촬영 시에 조영제로 프리모비스트(Primovist)를 많이 쓰는 편입니다.”

“프리모, 뭐?”

“프리모비스트입니다.”

“그게……. 이거랑 무슨 연관이 있지?”

조태진은 아마 대단한 연관이 있을 거란 기대를 하며 물었다.

수혁은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혁은 의학보다 연기에 더 소질이 있는 거 같습니다. 저였다면 바로 말을 했을 텐데.]

‘그렇게 하면 뭔가 대단해 보이질 않잖아, 인마.’

[그러니까요. 제 분석에 따르면 조태진, 김인수 두 개체의 감정은 기대감 100%라고 추정됩니다.]

바루다는 최근 수혁의 표정을 기본 베이스로 한 인간 감정 표현 분석 또한 진행 중에 있었다.

수혁이 보기엔 별 쓸데없어 보이는 짓이었으나.

바루다는 다 배워 두면 쓸 데가 있다고 하면서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었다.

“프리모비스트는 무려 한 바이얼에 15만 원이나 해서 외국에서는 거의 안 쓰입니다만, 우리나라에서는 워낙 간암이 많기 때문에 주로 이 조영제를 쓰고 있습니다.”

“특성이 뭔데?”

“간세포에 흡수가 아주 잘됩니다.”

“아?”

조태진 교수는 뭔가 알 듯 말 듯 한다는 얼굴이 되었다.

김인수는 그런 교수의 표정 변화를 보고 급히 따라 했고.

수혁은 그런 둘을 아주 만족스럽단 얼굴로 바라보면서 재차 아까 띄워 둔 영상을 가리켰다.

“다시 영상을 보시죠. 박상아 환자분의 덩이와 전이가 확인된 환자의 덩이를.”

“음.”

조태진 교수와 김인수는 뭐라 답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영상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당연히 전이라 생각했던 박상아 환자의 덩이들이 진짜 전이로 인해 발생하는 덩이들과는 현저하게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밝아……. 확실히 밝아. 그럼?”

“프리모비스트가 흡수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멀쩡한 간세포에 비하면 적지만 말이죠.”

“그렇군…….”

“이게 대장암에서 전이된 조직이라면 아예 흡수가 안 되어야 합니다. 대장에는 간세포가 없으니까요. 여기 이 환자의 덩이처럼요.”

수혁은 새카맣기만 한 간 전이 환자의 덩이를 가리켰다.

조태진 교수는 멍한 얼굴이 된 채 고개를 끄덕였다.

박상아 환자의 덩이를 가리키면서였다.

“그럼 이건……. 이건 뭐야. 간암……? 아닌데. 이렇게 보이지 않는데, 간암은.”

“간세포에서 유래한 병변입니다.”

“어떤?”

“이 환자, 항암 요법으로 폴폭스를 이용했습니다. 그 용법에 보면 옥살리플라틴이라는 약을 쓰죠.”

“아. 그렇구나!”

그제야 조태진 교수는 확신에 찬 얼굴이 된 채 고개를 끄덕였다.

김인수는 여전히 감을 못 잡고 있었으나 애써 조태진 교수의 얼굴을 따라 하는 중이었다.

뭔가 알아챘다는 듯,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면서였다.

“옥살리플라틴은 간세포에 독성을 일으키는 약입니다. 즉 이 덩이들은 항암제에 의한 간의 국소 병변입니다. 대장암의 전이가 아니라요.”

수혁은 둘을 바라보며 짤막했던, 하지만 강렬했던 발표를 마무리지었다.

조태진은 잠시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허……. 야……. 너, 진짜…….”

거의 감동해서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어 있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