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28화 (28/1,303)

28화 환자나 보자 (4)

“환자는 좀 어때?”

“다행히 진단이 그렇게 느리게 되진 않아서 항암 요법에 반응은 좋습니다. 다만…….”

조태진 교수는 말끝을 흐리고 있는 수혁을 보며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암을 죽이는 작업 자체는 잘되어 가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암을 치료하는 데 있어 고려해야 할 것은 비단 ‘암’ 그 자체만은 아니었다.

그 암을 앓고 있는 환자를 생각해야만 했다.

그걸 간과하다 보면 오히려 치료 때문에 환자를 죽이게 되는 수도 있었다.

“환자가 너무 고령이지?”

조태진 교수는 수혁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이 달래는 듯한 말투로 물었다.

“네. 아무래도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아지고 있습니다. 최대한 부작용을 막기 위해 수액도 많이 주고 있고, 스테로이드도 쓰고 있긴 하지만…….”

수혁 또한 씁쓸한 얼굴이 된 채 환자가 입원해 있는 병실 쪽을 바라보았다.

[신장 기능이 악화되고 있습니다. 투석을 병행할 것을 요청합니다.]

그리곤 바루다가 오전에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의 말을 쫓아 투석까지 시작했지만.

여전히 환자의 상태는 그리 좋지 못했다.

아니, 좋지 못하다기보다는 최악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구역, 구토에 설사까지 발생했다는데. 급성 신부전인가?”

“네. 아마도…….”

“흠. 큰일이네. 그래도 진단이 2개월 안에 된 거면 빠른 편인데……. 아프기 전에는 건강했다고 했지?”

“네. 원래는 별문제가 없었다고 합니다.”

수혁은 바루다가 저장해 놓은 환자의 데이터를 떠올렸다.

기록에 따르면 환자는 이번에 아프기 전까지는 일상생활이 가능했던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의 도움도 필요 없이 혼자서.

그러던 사람이 지금은 간병인이 없이는 화장실도 못 가는 지경이 되고야 말았다.

[화장실까지 가면 다행입니다. 지금은 요독이 너무 많이 쌓여서 거의 물처럼 설사가 나오는 실정입니다.]

‘나도 아까 봤어……. 아무래도 지금 이 치료를 계속하는 건 무리야…….’

수혁이 뭔가 결심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일 때쯤, 조태진 교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속에 품은 생각은 둘이 전혀 달랐다.

“환자 소생 거부 동의서 받았나? 혹시?”

조태진 교수는 환자의 나이와 보호자들의 경제적 상황을 고려하고 있었다.

‘나으면 좋지. 나으면 좋기야 하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계속 항암 치료를 권하는 건 의사도 환자도 괴로운 일이 될 터였다.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의 관록을 따르면 좀 더 현실적인 부분도 고려 대상에 넣어야 한다는 배움이 있어 왔던 것이다.

지금껏 이런 케이스를 너무도 많이 보아 온 조태진으로서는 이쯤에서 치료를 종결하고 환자에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 좀 더 옳은 길로 보였다.

그의 오랜 경험이 이런 결론으로 이끌고 있었다.

‘나아야 해.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아냐.’

반면 수혁은 아직 젊디젊은 의사이니만큼, 아직 환자의 죽음을 충분히 경험해 보지 못한 만큼 조태진 교수와는 생각이 많이 달랐다. 그가 추구하는 이상이라고도 할 수 있고, 패기라고도 할 수 있었는데.

수혁에게 환자의 나이는 극복해야 할 하나의 시련일 뿐 치료 포기의 단서가 되지 못했다.

보호자들의 경제적 상황이라면 얘기가 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환자의 치료에 있어 합당한가 다시 한번 고민해 보게 되는 이유라고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아직 수혁은 치료와 돈을 바로 결부 지을 만큼 경험을 쌓지는 못한 새내기 의사라 할 수 있었다.

“아뇨. 받지 않았습니다. 교수님.”

해서 수혁은 아직 환자나 보호자에게 죽음을 얘기하지 않은 참이었다.

당연하게도 심폐 소생술 거부 동의서 따위는 받아 놓을 생각도 없었다.

아니, 아예 떠올리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거 오늘 오후에 받아 놓지.”

“음.”

더 나아가 조태진 교수의 말에 예라고 대답하지도 않았다.

조태진 교수는 고집스럽게 다물어진 수혁의 입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털었다.

“너 설마 환자 죽은 적이 없었나?”

조태진 교수라 해서 왜 레지던트 시절이 없었겠는가.

그 또한 파릇파릇했던 시절이 있었고, 의지만 있으면 모든 환자를 살릴 수 있을 거라 굳게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현대 의학의 한계를 인정하지 못했던 시절도 있었지.’

솔직한 얘기로 그렇게까지 뛰어났던 레지던트가 아니었음에도 그러했었는데.

수혁처럼 독보적인 천재라면 어떠할까.

조 교수는 어쩐지 알 것 같았다.

“네, 교수님. 아직은…….”

“내과를 택한 이상, 언젠가는 보게 될 거란 거 알고 있지?”

“네…….”

“이 환자는 가망이 없어. 네 마음하고는 관계없이.”

“하지만 아직 병기는…….”

“그래. 네 말이 맞아. 병기만 따지고 보면 환자는 반드시 살아야 하지.”

여기서 병기란 소위 1기, 2기, 3기, 4기와 같은 병의 진행 정도를 의미했다.

지금 환자의 병기는 2기로 태화 의료원의 데이터상 벌써 죽어서는 안 될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 환자는 고령이야. 신장이 버티지 못하고 있어. 여기서 더 항암 치료를 하는 건 환자를 괴롭게 할 뿐이야.”

이 말에는 수혁 또한 깊이 공감하고 있었다.

조태진 교수가 오기 전 김인수와 함께 돈 회진에서 이미 환자가 종일 얼마나 고통스러워했는지 다 봤으니까.

하지만 공감한다고 해서 동의한다는 건 아니었다.

[현재 계획 중인 항암 치료 후 골수 이식은 환자의 신장 기능 부전으로 인해 수정을 요합니다. 미니 조혈모세포 이식법을 추천합니다.]

바루다 또한 그러했다.

해서 지금 하려고 했던, 항암제로 환자의 골수를 완전히 지우고 새 골수를 받아들이고자 했던 치료법은 폐기할 것을 주장해 왔다.

대신 최근 들어 일부 병원에서 시도하고 있다고 알려진 새로운 치료법을 들고 나왔다.

‘미니 조혈모세포 이식이라…….’

[현재로서는 선택 가능한 치료법은 이것뿐입니다.]

‘그래……. 이식할 골수가 있는데 아예 써먹지도 못하고 보낼 수는 없어…….’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조혈모 이식, 즉 골수 이식과 기증은 우리나라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는 못했다.

때문에 적합한 골수만 있으면 살 수 있는 환자들 중 상당수가 그 골수가 없어서 죽고 마는 사태가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 환자는 운이 좋은 건지 어쩐 건지 이식 대기에 명단을 올리자마자 조혈모세포 은행 협회에서 연락이 와 버렸다.

[확률로 따지면 20만분의 1입니다.]

‘그걸 그냥 날려 먹어서야 안 되겠지.’

해서 수혁은 이미 마음을 정한 것으로 보이는 조태진 교수를 향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고, 동시에 무례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수혁은 혈액종양내과를 가히 전설적으로 돌고 있는 데다가 조태진 교수와 개인적인 친분도 제법 쌓은 마당이었다.

덕분에 부담감을 어느 정도는 덜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교수님……. 아직 시도해 보지 않은 치료가 있습니다.”

“시도해 보지 않은 치료? 뭐.”

“미니 조혈모세포 이식법입니다.”

이 말에 묵묵히 듣고만 있던 치프 김인수가 조용히 뒤로 빠졌다.

‘이 자식은 대체 어디서 자꾸 처음 들어보는 진단명이랑 치료법을 가지고 오는 거지?’

약간은 볼멘 얼굴이 되어서였다.

반면 조태진 교수의 얼굴에는 미미한 미소가 번져 나갔다.

아직은 실험적이라 할 수 있는 치료법을 알고 있는 1년 차가 대견해서였다.

“미니 조혈모세포 이식이라.”

“네. 오늘까지 들어간 항암제만 해도 사실 환자의 골수 기능은 심대하게 억제가 되었을 겁니다. 암세포들도 많이 죽었을 거고요.”

“하지만 다 죽지는 않았을 거야.”

본래 항암제를 쓴 후 다른 사람의 골수를 이식하는 건, 일종의 초기화라고 보면 되었다.

자신의 골수와 암을 가리지 않고 죽여 버린 후 빈 자리에 다른 사람의 골수를 받아 살겠다는 생각에서 나온 상당히 혁신적인 치료.

거의 기적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이나 효과가 좋아서 현재 각종 골수암에서 이 치료를 활용하고 있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단서가 필요했다.

골수뿐만이 아니라 암도 다 죽일 것.

지금 이 환자에서는 이 전제 조건이 엇나가 있는 셈이었다.

“네. 다 죽지는 않았을 겁니다만……. 그래도 살아 있는 놈들이 적기는 할 겁니다.”

“뭐…….”

조태진 교수는 굳이 반박은 하지 않은 채 달력을 돌아보았다.

입원 기록과 맞춰 보면 벌써 항암제가 들어간 지는 꽤 된 셈이었다.

즉 수혁의 말대로 목표치까지 들어가진 않았지만, 절대적인 수치로만 따지자면 많은 양의 항암제가 들어갔다는 뜻이었다.

“그럼 그 암은 이식받은 골수……. 그러니까 그 골수에서 만들어질 면역 세포가 죽일 수 있을 겁니다.”

아까 골수와 암을 다 죽이고 다른 사람의 골수를 이식받는 것이 혁신적이었다면.

골수만 죽이고 암은 조금 남겨 둔 후, 이식해 준 골수에게 암을 죽이라고 하는 이 방식은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었다.

“모험이라는 건 너도 알고 있지?”

“하지만 가치 있는 모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기증 희망자랑 매칭이 되었다는 것부터가…….”

“뭐……. 그건 그렇긴 하지.”

조태진 교수는 지금까지 기증을 기다리다가 유명을 달리해야만 했던 수많은 환자를 떠올렸다.

그 환자들에 비하면 지금 저 환자는 그나마 좀 나은 셈이긴 했다.

기회를 얻은 거니까.

그 기회를 너무 쉽게 포기해 버리려 했던 건 아닌가 뭐 이런 생각도 들었고.

“시도해 보고 싶습니다.”

“흠…….”

그리고 환자를 살려 보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수혁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좀 더 움직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제 겨우 1년 차 된 지 2달도 채 안 된 녀석에게 골수 이식 치료까지 온전히 맡길 생각은 없었다.

“인수야.”

“네, 교수님.”

“네가 무균실 처방 백 봐라. 환자……. 한번 해 보자.”

“아…….”

“뭐가 ‘아’야? 한번 해 보자고.”

“네, 네. 알겠습니다. 교수님.”

그렇게 해서 수혁은 김인수의 도움을 받아 환자의 면역력을 뚝 떨어뜨린 후, 무균실로 보내게 되었다.

별다른 방법을 쓴 건 아니었고, 한 번 더 항암제를 때렸을 따름이었다.

그러자 원래도 바닥을 기던 환자의 면역이 0이 되어 버렸다.

즉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생존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는 말이었다.

‘이제 이식될 골수가……. 암세포와 싸워 이기기만을 바라야겠네.’

수혁은 무균실에 누운 환자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둘은 시각을 공유하고 있었기에 바루다도 같은 환자를 바라보고 있던 참이었다.

[환자를 앞에 두고 이기기만을 바라야 한다니, 무력한 말이로군요. 수혁.]

‘음? 뭐 뾰족한 수라도 있어?’

[아뇨. 없습니다.]

‘근데 뭔 시비야, 인마…….’

[그냥 무력한 것은 사실이니까요.]

‘그야……. 그야 그렇지.’

수혁은 뭐라 반박할 말을 찾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어 한숨만 쉬어 댔다.

입에서 나온 따스한 입김이 차디찬 무균실 창에 닿아 뿌옇게 맺혔다.

수혁은 거기에 ‘꼭 살아나십시오.’라는 문구를 남긴 채 병실을 빠져나왔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