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여기서도 (1)
“어……. 환자 의식이!”
혈당이 48이라는 걸 확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환자의 의식이 훅 꺼져 버렸다.
정말이지 꺼졌다는 표현이 딱 맞을 정도로 급작스러운 변화라 할 수 있었다.
“호, 호흡이……. 산소 포화도 떨어집니다!”
심지어 호흡까지 제대로 유지되지 않을 정도의 의식 변화였다.
대개의 경험 적은 의사들이 그러하듯 수혁 또한 돌발 상황에서 즉각 대응하기는 어려웠다.
거의 같이 의식 변화를 맞기라도 한 것처럼 숨만 거칠어질 따름이었다.
[삽관하십시오, 수혁!]
하지만 수혁의 머릿속에는 바루다가 있었다.
‘아, 그래. 맞아……. 삽관!’
덕분에 수혁은 공황에서 금세 벗어나 환자의 머리 쪽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처치실에 들어와 있던 간호사들은 전원 베테랑으로 이루어져 있다 보니 척하면 척이었다.
벌써 자발 호흡이 약해졌다는 걸 확인했을 때부터 삽관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여깄습니다, 선생님.”
“네, 음.”
수혁은 물에 끝이 적셔진 플라스틱 튜브와 금속으로 이루어진 후두경을 받아들고는 잠시 신음을 내뱉었다.
[뭐 합니까?]
당연하게도 바루다의 질책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혁은 당장 움직이지 못했다.
‘나 이거…… 딱 한 번 해 봤는데.’
[네? 기관 삽관술을 한 번 해 봤다고요?]
‘나 1년 차야……. 아직 중환자실도 안 돌아 봤다고…….’
[다른 사람 머리로 들어갔어야 했는데.]
‘뭐?’
[아, 아닙니다. 자, 일단 차분하게 기다리세요.]
‘기다리라고? 이 상황에서?’
수혁은 황당하다는 듯, 환자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자발 호흡이 사라지면서 사지의 힘도 훅 빠지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얼굴 근육의 경직도도 많이 줄어서, 어딘지 모르게 편안해 보일 지경이었다.
[괜히 지금 후두경 쑤셔 넣었다가 환자 발버둥 치면 이 다 부러집니다.]
‘아.’
[약을 써서 재운 게 아니란 것을 유념하세요, 수혁.]
‘그, 그렇지.’
이렇게 급작스럽게 호흡이 정지된 상황에서 초보 의사들이 하기 제일 쉬운 실수가 바로 조급해하는 것이었다.
아직 사지에 힘이 빠지지 않았고, 아직 의식이 완전히 나간 게 아닌데 딱딱하고도 거대한 후두경을 목구멍으로 쑤시면 어떻게 될까.
환자는 통증 때문에 몸부림치게 될 테고, 그러다 보면 이가 부러지든 뭐가 됐든 피가 주르륵 흘러나오지 않겠는가.
그 피는 시야를 가려서 그 이후에 있을 삽관까지 방해하게 될 터였다.
‘더 기다려?’
[아직 근육의 긴장도가 남아 있습니다.]
‘산소 포화도 떨어지는데! 그냥 응급실 선생님 부르면 안 돼?’
[정 자신 없으면 그렇게 하시죠. 삽관 못 하는 내과 의사라……. 이현종 원장이나 신현태 과장이 이 얘기를 들으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
‘개새꺄! 그럼 네가 넣든가!’
[저한테 그 정도의 신체 장악력이 있기를 소망합니까?]
‘아, 아니. 아니요. 잘못했어.’
바루다에게 지배당하는 몸이라니.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쫙 돋았다.
“선생님! 산소 포화도 60대입니다!”
그때 옆에 있던 간호사가 외쳤다.
퍼뜩 정신이 들어 모니터를 바라보니 과연 환자의 산소 포화도는 65까지 떨어져 있었다.
‘더 기다려?’
[아직.]
‘이 시발……. 이제 곧 50이야!’
[지금! 이제 넣으세요. 괜찮을 겁니다. 아마.]
‘아마? 너 지금 아마라고 했냐?’
딱 숨넘어가기 직전까지 기다리라고 해 놓고선 하는 말이 ‘아마’?
수혁은 정말이지 바루다가 손에 잡히는 놈이었다면 지금쯤 두들겨 팼을 거라 다짐했다.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선생님! 환자 포화도 49입니다!”
눈앞의 환자가 넘어가고 있었으니까.
“수혁아! 빨리 넣어 봐! 아니면 다른 선생님 불러올까?”
심지어 저 침착한 오진승까지 후달려 할 정도로 빠르게.
철그럭.
해서 수혁은 아까 내려놓았던 후두경을 집어 들었다.
올바르게 장착이 되자, 끝에서 밝은 불빛이 켜졌다.
어둡고 컴컴한 목구멍 안을 비추기 위함이었다.
[혀 밑으로 누르면서 왼쪽으로 미십시오.]
‘이렇게?’
[환자 앞니 부러뜨리고 싶으면요.]
‘깐죽거리지 말고!’
[지금 너무 앞만 누르고 있어요. 전체적으로. 음, 지금. 지금 좋아요.]
‘오케이……. 다행히 환자가 말라서 다행이야.’
목이 두껍지 않은 데다가 길다 보니 난도는 무척 낮았다.
혀를 밑으로 내려 누르면서 아래턱을 위로 들어 올리자마자 후두경 끝에 후두개가 걸려서 젖혀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뒤로는 좌우로 벌어진 구조물이 눈에 들어왔다.
[성대입니다.]
‘나도 알거든?’
[별로 안 해 봤다길래.]
‘아오.’
수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아까부터 들고 있던 플라스틱 튜브를 성대 안쪽으로 슥 밀어 넣었다.
그리곤 튜브 끝에 달린 풍선에 바람을 불어 넣었다.
빵빵해진 풍선은 기도에 걸려 튜브를 고정했다.
의식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었다면 어마어마하게 불편했을 텐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환자는 완전히 뻗어 있었다.
“혈당 어때요?”
수혁은 산소 포화도까지 온전히 돌아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간호사 쪽을 돌아보았다.
간호사는 베테랑답게 이미 혈당 체크를 해 둔 참이었다.
질문이 나가자마자 답변이 돌아왔다.
“32…… 입니다.”
“32?”
“네.”
“너무 낮은데.”
세상에 32라니.
이건 낮아도 너무 낮은 거 아닌가.
[에러 가능성이 있습니다. 기준치 이하의 저혈당에서 손가락 측정은 적합한 방법이 아닙니다.]
‘아……. 그렇겠네.’
[우선 지금 즉시 혈액 검사할 것을 요청합니다.]
‘알았어.’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곤 처방을 내렸다.
간호사들이 처방을 따라 혈액을 뽑아내는 사이, 진승이 다가왔다.
“이거……. 아무래도 정신과가 받을 만한 환자가 아닐 수도 있겠다.”
“네, 형. 저혈당이 너무 심해요.”
“왜 저러는 거지?”
“글쎄요……. 음.”
수혁은 아래턱을 긁으며 환자를 돌아보았다.
노영태 인턴이 아까 자신이 넣은 튜브에 인공호흡기를 달고 쥐어짜고 있었다.
일일이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일을 해 내는 타입이었다.
인턴으로서는 최고라고 보면 되었다.
우당탕!
딱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환자가 발작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아니, 발작이라기보다는 발버둥이라는 표현이 더 알맞아 보였다.
“어, 어! 이러면 안 됩니다!”
인턴이 버둥거려 봤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심지어 수혁은 말리려다가 뒤로 밀려 넘어지기까지 했다.
마른 편에 속하는 환자의 힘은 놀랍도록 강했다.
“푸후.”
그 환자는 필사적으로 팔을 놀려 자신의 목에 박혀 있던 튜브를 뽑아내었다.
고정하기 위해 불어 두었던 풍선을 그대로 둔 채 뽑았기 때문에 입가에 피가 약간 맺혀 있었다.
“시발……. 이게 뭐야.”
그는 그렇게 욕설을 내뱉더니,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로 상황 파악이 되지는 않는지 그가 다시 입을 열기까진 시간이 꽤 걸렸다.
인턴이 그사이에 달려가 어떻게든 튜브를 뺏으려 했지만.
수혁이 말렸다.
어차피 제힘으로 일어나서 말까지 하는 사람에게 삽관이 필요하진 않았으니까.
[대체 뭘까요?]
‘네가 그런 말을 하면 어쩌냐…….’
[데이터가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뭐만 하면 데이터래. 내가 너 때문에 얼마나 공부를…….’
게다가 바루다와 입씨름하며 환자 상태에 대해 알아내는 것만도 바빴다.
“무, 무슨 일 있습니까?”
그때 밖에서 대기 중이던 환자의 보호자가 달려왔다.
중년 남성이었는데, 아무래도 환자의 아버지 같았다.
“아, 아버님. 지금은 괜찮습니다.”
“괜찮긴! 저거 입에 피 아니야? 당신들 뭐 하는 거야? 얘는 그냥 신내림 받으면 낫는 거라니까?”
신내림.
수혁이나 다른 현대 의학의 세례를 받은 이들에게는 그저 주술일 따름이었다.
하지만 이미 여러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여전히 설명할 수 없는 증상으로 고통받고 있는 환자와 환자의 아버지에게는 그렇지가 않은 듯했다.
“저, 아버님. 하지만 아직 검사가 다 끝난 건 아닙니다. 어떤 질환인지 알게 되면 치료를…….”
“그놈의 검사! 머리 MRI도 찍었는데 정상이었다고!”
“하지만…….”
“에이! 시골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이게 뭐야! 야! 가자!”
오진승 정신과 레지던트가 나서서 차분히 설명을 이어 나가려 했으나 잘 통하지 않았다.
지금껏 허비한 시간과 돈이 보호자를 한껏 예민하게 만든 까닭이었다.
“잠깐, 아빠! 그래서 여기 큰 병원까지 온 거잖아! 일단……. 일단 검사부터 해 보자고. 그다음에도 뭐가 없으면 그때 신내림인지 뭔지 받게 하라고!”
다행히 보호자는 아버지만 있는 건 아니었다.
환자의 누나로 보이는 사람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녀는 신내림이란 처방에 그렇게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야! 네가 뭘 안다고 떠들어! 보살님이…….”
“알았어, 알았다고! 그래도 여기 검사도 한번 받아 보자니까? 시골 병원이 아니라 진짜 큰 병원이잖아!”
“그래 봐야 돈만 나가지.”
“내 돈으로 받게 한다고 했잖아!”
“음…….”
“검사 끝날 때까지는 내 말 들어!”
“스, 승질하고는…….”
“조용해!”
“아, 알았어.”
그녀는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으로 보였던 환자의 아버지를 단숨에 제압한 후, 진승과 수혁을 돌아보았다.
“선생님들. 저희 진짜 검사도 많이 받아 보고……. 병원도 이곳저곳 많이 다녔거든요……. 근데 원인을 모르겠대요. 이러다 제 동생 진짜 신내림 받게 생겼어요. 뭔지 좀 제발 알려 주세요. 네?”
그리곤 진심이 담긴 부탁을 털어놓았다.
이런 보호자의 말을 눈앞에서 들었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는 의사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되었다.
특히 이 자리에 있는 진승이나 수혁처럼 젊은 의사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해서 둘은 거의 동시에 고개를 숙이며 누나의 부탁에 화답했다.
“어, 선생님!”
그리고 그때 인턴이 외쳤다.
환자를 가리키면서.
“환자분 발작합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해 보이던 환자는 또다시 팔다리를 떨며 경련을 시작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기록 및 가지고 온 검사 결과를 봐도 머리 쪽 이상은 없습니다.]
환자의 머리 검사 결과는 종류를 막론하고 모조리 정상이었으니까.
그런데 저런 경련을 한다.
정말이지 이상했다.
“저 봐! 저! 신내림 받아야 한다니까!”
“아빠!”
환자의 발작과 더불어 시작된 소란 속에서 바루다가 중얼거렸다.
[머리 쪽 원인이 아닌 경련에 조절되지 않는 저혈당까지…….]
‘잠깐. 너 지금 뭐라고 했냐?’
[욕 안 했는데요?]
‘아니. 방금 한 말 다시 해 봐.’
[욕 안 했는데요?]
‘병신인가. 그 전에!’
바루다는 수혁의 구박이 낯설었지만 일단 시키는 대로 했다.
수혁의 어조가 너무 단호했던 까닭이었다.
더구나 이 인간은 멍청한 듯하다가 간혹 홈런을 날리는 경우가 종종 있어 왔지 않던가.
[머리 쪽 원인이 아닌 경련에 조절되지 않는 저혈당이라고 했습니다.]
‘그래……. 그래! 저혈당!’
[네?]
‘바루다, 나 아무래도 천재인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