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33화 (33/1,303)

33화 여기서도 (2)

[미치셨나?]

딥러닝을 통해 끊임없이 학습하고 발전하는 궁극의 A.I. 바루다는 수혁의 발언을 두고 생각했다.

미친 게 틀림없다고.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일개 인간이, 그것도 수혁이라는 아직 많이 미숙한 인간이 어찌 자신보다 먼저 답을 알았다고 외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수혁은 지금 그 누구보다도 더 당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형, 일단 안정제 주시죠.”

“안정제? 이거 줘 봐야 어차피……. 효과가 한시적일 텐데.”

“원인을 알 거 같아서 그래요. 근데 검사하려면 환자가 액팅 아웃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저, 정말?”

오진승은 대번에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이 되었다.

요사이 수혁에 대한 이런저런 소문이 돌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중 태반은 이현종 원장의 숨겨 둔 자식이네 뭐네 하는 말도 안 되는 얘기들이었지만.

분명 태화 의료원 개원 이래 최고의 천재라는 소리 또한 돌고 있었다.

물론 수혁을 제법 오랜 시간 잘 알고 지내 왔다고 자부할 수 있는 진승에게는 다소 황당한 소문이긴 했다.

‘진짜 머리에 뭐 틀어박히고……. 천재가 됐나?’

신경외과 과장 최낙필 교수의 이론에 따르면 이랬다.

극히 드문 확률로 머리를 다친 이후 수행 능력이 좋아지는 경우가 있기는 있다고.

그게 아무래도 이번 수혁에게도 벌어진 거 같다고.

‘뭐가 됐든……. 지금 상황에서 여기서 환자 붙잡고 있어 봐야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어.’

솔직히 무섭기까지 한 상황이었다.

면담을 하다 보면 경련을 하고.

경련을 하다 보면 의식을 잃고.

깨어나면 멀쩡해 보이고.

이 기이한 사이클이 반복되고 있지 않은가.

오진승으로서는 도저히 이걸 타개할 방법도 모르겠고, 자신도 없었다.

“알았어. 줄게.”

해서 일단 안정제를 환자의 복부에 찔러 넣기로 결정했다.

투여는 순식간이었다.

환자는 바닥에 누워 경련하고 있었으니까.

제압이고 뭐고 별 필요가 없을 지경이었다.

“호흡은 괜찮은 거죠?”

“어? 어. 그런 종류의 약은 아냐. 한……. 20~30분가량은 괜찮을 거야.”

“네. 그럼 일단 CT를 찍어 보죠.”

“CT?”

오진승의 얼굴에 재차 불신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CT라면 이 환자가 벌써 열 번은 더 찍은 검사였기 때문이었다.

CT만 찍었나?

Brain MRI도 여러 번 찍은 참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또 찍는다고?

별 뾰족한 수가 있을 거 같진 않았다.

[그러니까요. 도대체 무슨 생각입니까? 수혁?]

바루다도 오진승과 비슷한 생각인지 불신 가득한 반응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혁은 여전히 자신만만해 보일 뿐이었다.

“머리가 아니에요, 형.”

“응? 머리가 아니라고?”

환자가 경련하고 있는 마당에 머리 검사가 아니라니.

이제 오진승의 얼굴에 떠 있던 불신은 더더욱 짙어져만 갔다.

바루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진짜 미치셨나?]

‘닥쳐, 너는. 두고 보기나 해.’

[보기는 할 겁니다. 제가 뭐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반면 수혁은 바루다의 깐족거림이 반가울 지경이었다.

한 방에 갚아 줄 생각이 들어서였다.

덕분에 그는 얼굴 가득 비열해 보이는 미소를 지은 채, 진승의 말에 대꾸했다.

“네. 형. 배를 찍을 거예요.”

“배……. 너…….”

경련인데 배를 찍겠다니.

게다가 이런 이상한 얼굴을 하고?

진승은 수혁을 둘러싼 또 다른 소문을 떠올렸다.

주로 김진용, 황선우 등이 퍼뜨리고 있는 소문이었다.

‘미쳤다는 말도 있기는 하던데…….’

그들에 의하면 지금까지 수혁이 보여 준 놀라운 진단 능력은 다 우연이고, 실제로는 미친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처음에는 꽤 동조를 얻었더랬다.

원래 너무 뛰어난 놈이 나오면, 그놈이 원래는 아무것도 아닌 흙수저였다면 더더욱, 미움을 받기 마련이었으니까.

하지만 수혁이 점점 성공적인 진단과 치료를 늘려 나갈수록 수그러들고 있는 소문이기도 했다.

“아무튼, 제가 처방 내고 찍고 올게요. 시간 많이 없으니까.”

“어? 어……. 그래. 인턴……. 인턴 샘이랑 같이 가.”

“네. 형.”

수혁은 진승이 고민에 빠져 있는 사이에 환자가 누워 있는 침대를 끌고 밖으로 나섰다.

응급실 내에 있는 아니, 병원 내에 있는 모든 침대는 이송용을 겸하고 있었기에 끌고 나가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서, 선생님. 제가 끌겠습니다.”

“아, 그래 줄래요?”

물론 한쪽 다리가 불편한 수혁에게는 아주 쉽지만은 않기는 했지만.

다행히 인턴이 아니라 1년 차이기는 해서 침대까지 끝까지 끌지는 않아도 되었다.

타닥.

타닥.

지팡이를 짚은 채 환자 침대 뒤를 졸졸 따라가는 수혁에게 바루다가 말을 걸어왔다.

[배? 복부 CT는 대체 왜 찍는 겁니까?]

‘넌 아까 네가 말해 놓고도 이상한 거 못 느끼냐?’

[느껴? 촉각을 의미하는 겁니까?]

‘아니. 새꺄, 그……. 음……. 그래, 직감. 그런 거 없어? 촉 말이야, 촉.’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의사들 사이에서 ‘쟤 촉이 좋다.’라는 말은 어마어마한 칭찬이었다.

실제로 시험 쳐 보면 실력은 고만고만한 거 같은데 진단 실력은 확 다른 그런 녀석에게 하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하게도 바루다에게는 그런 개념이 없었다.

[진짜 미쳤나? 머릿속에 자리한 이물질 이식에 성공했던 케이스가 혹시 없을까요? 이거 난파선 된 거 같은데.]

‘지랄 말고. 영상 찍자마자 내 위대함에 질질 짤 거다.’

[제발……. 실력 있는 신경외과 의사 어디 없나.]

‘닥쳐.’

수혁은 그렇게 중얼거린 후, 곧장 기사실로 들어갔다.

원래 같았으면 같이 따라온 김에 기사를 도와 환자 자세 잡는 것도 함께하고 했을 테지만.

다리가 불편해진 지금은 별 의미가 없었다.

그러다 넘어지지나 않으면 다행이었으니까.

끼익.

곧 인턴을 남겨 둔 기사가 돌아왔다.

모니터에 뜬 화면에는 인턴과 환자가 나란히 잡혀 있었다.

“복부…… 조영제까지 넣고 촬영하는 거 맞죠?”

기사 또한 모니터를 잠시 바라보다가 수혁을 향해 물었다.

수혁은 지팡이를 가만히 쥔 채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전후 다요.”

“알겠습니다. 그럼 찍겠습니다.”

“네.”

기사는 이후 마이크를 잡고는 인턴에게 환자 잘 잡고 있기를 부탁한 후, 버튼을 눌러 촬영을 시작했다.

위이이잉.

CT 기기는 예열이 되나 싶더니 곧 돌아갔다.

MRI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속도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촬영된 영상은 하나하나 기사실 쪽 컴퓨터로 전송되어 왔다.

아직은 조영제가 들어가기 전이라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었지만.

수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뚫어져라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다고 없는 게 생길까요?]

반면 바루다는 시큰둥했다.

복부 CT에서 꽝이 나올 거라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응?]

‘봤냐?’

하지만 전송되어 온 사진이 쌓여 갈수록 바루다의 반응이 조금씩 달라졌다.

[이거……. 뭐죠?]

뭔가 둥근 덩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배 속 장기, 그것도 췌장에.

[암? 이걸 알고 찍은 겁니까?]

‘암? 암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이렇게 동그랗고 이쁘게 생긴 암 본 적 있냐? 전이도 아니고.’

[하긴……. 데이터상 암일 가능성이 적기는 합니다. 그럼……. 이건 뭐죠?]

‘일단 조영제까지 다 보고 얘기하자고.’

[허…….]

바루다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었다.

그사이에도 수혁은 화면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얼굴엔 미소가 가득 피어나 있었는데, 아주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자신이 예상했던 병변이 CT에서 확인되었기 때문이었다.

‘역시 저혈당……. 이게 핵심이었어.’

[경련이 아니고요?]

‘그래. 아, 이제 조영제 들어간다.’

수혁은 환자의 혈관을 향해 쏘아져 들어가는 조영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조영제로 인한 부작용은 인구 10만 명당 0.3명 정도로 극히 희박하지만.

그럼에도 대학 병원에서는 종종 저 조영제로 인해 사망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대학 병원에서 CT를 찍는 환자들이 일반 인구에 비해 몸 상태가 많이 안 좋아서 그럴 터였다.

이 환자의 경우엔 꽤 나이가 젊긴 했지만.

그래도 안심은 금물이었다.

쑤우욱.

다행히 부작용은 없어 보였고, 촬영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혈관이 하얗게 염색된 사진이 전송되기 시작했다.

제대로 조영 증강이 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엄청 밝네요?]

바루다의 말대로 아까 췌장 머리 부분에서 발견되었던 작은 덩이는 엄청나게 밝게 변해 있었다.

그 말은 곧 혈액이 많이 몰리는 종양이란 뜻이었다.

또한 뭔가 에너지를 아주 활발히 소모하고 있는 곳이란 뜻이기도 했고.

‘그래. 주로 췌장 머리 쪽에 호발하고, CT상 이렇게 보이는 종양이 뭐가 있냐?’

[잠시만……. 분석이 필요합니다.]

‘똑딱똑딱.’

[다시는 그거 안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똑딱똑딱.’

수혁은 너무도 만족스럽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을 빠져나갔다.

어느새 촬영이 끝나 버렸기 때문이었다.

“고생했어요, 인턴 샘.”

그리곤 납복을 벗어 던지고 있는 노영태 인턴의 어깨를 두드려 준 후, 환자를 데리고 처치실로 돌아왔다.

노심초사 그만 기다리고 있던 진승이 달려와 물었다.

“그……. 뭐 나왔어?”

“네. 나왔죠.”

“그래?”

“네, 형. 저 노티 좀 드릴게요.”

“아……. 그래. 진용이지? 욕봐라.”

김진용의 악명은 비단 내과 내에서만 퍼져 있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다른 과에서 더 싫어한다고 볼 수도 있었다.

협진만 내면 그게 합당하든 그렇지 않든 일단 화를 내고 봤으니까.

해서 진승은 목소리도 듣기 싫다는 듯 고개를 털며 처치실을 빠져나갔다.

그사이 수혁은 심호흡을 한 후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후우.”

그리곤 김진용에게 전화를 걸었다.

원외 당직인 만큼 바로 전화를 받아야 정상이었지만.

김진용은 소문 그대로의 사람인지라 그렇지 않았다.

무려 세 번이나 전화를 걸고 나서야 받았다.

그것도 무척 달갑지 않다는 투로.

“어, 왜.”

그나마 수혁이니까 망정이지.

다른 1년 차였다면 욕부터 박았을 터였다.

개념 없게 주말에 전화한다고.

“네, 선생님. 이수혁입니다. 노티드릴 환자 있어서 전화드렸습니다.”

“내분비 환자 맞아? 우리 응급실로 입원하는 경우는 별로 없는데?”

맞는 말이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절대적으로 없는 건 아니었다.

여긴 태화 의료원이었으니까.

“네, 내분비내과 환자입니다.”

“하아……. 말해 봐.”

“환자 35세 남자로, 몇 달 전부터 지속된 경련 및 발작으로…….”

“야, 내분비 맞아?”

“네.”

“근데 뭔 경련 및 발작이야? 너 아니면……. 뒈진다?”

김진용은 다른 레지던트들과는 달리 뒈진다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었다.

그간의 정보 수집을 통해 수혁이 로열도 뭣도 아니라는 것을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저 똑똑할 뿐.

아무것도 아니었다.

진용은 그런 사람에게까지 친절하게 대해 줄 만한 인격자가 아니었다.

도리어 밟으면 모를까.

“계속해 봐……. 아니, 아니. 일단 진단명이나 말해 봐. 뭔데? 뭐 때문에 내분비내관데?”

“네. 환자분 진단명은…….”

[인슐리노마! 인슐리노마! 저혈당이 계속되면! 다른 증상은 사라지고! 신경 증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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