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35화 (35/1,303)

35화 맞다니까요? (2)

달칵.

수혁은 부리나케 손을 움직여 양재원 환자의 영상을 띄웠다.

그사이 김진실 교수는 팔짱을 낀 채 수혁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원장님이랑 신현태 과장님이 틈만 나면 칭찬을 해 대던데.’

어찌나 수혁 얘기를 해 대는지, 이젠 영상의학과 교수이자 부원장이기도 한 이하언 교수는 수혁 얘기만 나오면 경기를 일으킬 지경이었다.

- 알았어, 알았다고! 우리 과에는 그런 인재 없다고!

원래 이하언 교수라고 하면 복부 영상의학회에서는 거의 입지전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전이가 없는 간암 또는 다른 곳, 특히 대장에서 전이되어 온 간암 병변을 수술 없이 고주파로 태우는 것을 우리나라 최초로 시도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런 사람이니만큼 자존심이 어마어마하게 강한데.

저런 발언까지 했을 정도니, 이현종이 얼마나 집요하게 떠들었는지는 안 봐도 뻔한 상황이었다.

“여기……. 이 부분입니다, 교수님.”

수혁은 김진실 교수가 잠시 회상에 빠진 동안 복부 CT 영상을 띄웠다.

바루다가 CT 영상 번호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실수는 없었다.

덕분에 진실은 딱 고개를 돌리자마자 병변이 제일 잘 보이는 컷부터 볼 수 있었다.

“흠.”

조영제가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찍힌 영상이었다.

이른바 동맥기(Arterial phase)인데, 조영 증강이 잘되는 녀석들은 이때 벌써 증강이 되기도 했다.

바로 눈앞에 있는 이 종양처럼.

‘췌장 머리 쪽……. 동맥기에 조영 증강. 모양도 그렇고……. 확실히 인슐리노마를 의심할 만하기는 한데.’

문제는 모든 질환을 영상의학적 판단만으로 진단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데 있었다.

특히 췌장처럼 흐물흐물한 장기의 경우에는 CT만으로 진단하는 건 퍽 위험한 일일 수도 있었다.

“임상 증상은 어떻다고?”

해서 반드시 임상적 추정과 동반해서 생각을 해 봐야만 했다.

다행히 수혁은 거의 완벽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추론을 끝마친 상태였다.

“지금 주된 증상은 경련 및 발작입니다.”

“경련?”

“네. 저혈당이 만성적으로 계속될 경우, 초조함이나 손 떨림 등과 같은 자율신경계통 증상은 사라집니다. 대신 발작, 경련, 어지럼증, 정신 착란 등과 같은 신경학적 증상만 남게 됩니다.”

“아…….”

그 말을 듣고 보니, 과연 그런 내용을 공부했던 기억이 있었다.

영상의학과라 직접 환자를 보지는 않지만.

그에 못지않게 많은 공부를 하고 있지 않던가.

척하면 척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환자는 증상이 나타날 때 혈당이 50이 되지 않습니다. 당을 주면 호전되고요.”

“위플 트리아드(Whipple’s triad: 위플이 고안한 세 기준)에 부합하는구나.”

“네. 거기에 더해 영상의학적 특이 소견까지 보입니다. 그래서 인슐리노마라고 판단했습니다.”

“흠.”

김진실 교수는 수혁의 말과 다른 검사 결과를 토대로 다시 한번 영상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증상과 혈액 검사 등과 종합해서 봤을 때, 인슐리노마 외의 다른 질환을 떠올리는 건 무리였다.

‘얘……. 진짜 천재긴 하구나.’

기록을 보니 환자가 온 이유는 발작과 경련 때문이었다.

환자의 보호자는 이것이 신내림을 받지 않아 생긴 증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탓할 만한 일은 아닌 것이, 그 어떤 병원에서도 명확히 진단을 내려 주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걸 저혈당에 대해 협진 보러 간 내과 1년 차가 진단을 해 낸 것이었다.

2차 병원이고 정신과 의원이고 다 놓친 진단명인데.

‘이거 이하언 교수님한테 말씀드리면 어떻게 될까.’

아마 난리가 날 터였다.

김진실 하나 키워 낸 것으로는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으니.

“아, 근데. 이 환자 왜 응급실에 있어? 입원장도 안 나간 거 같은데?”

진실은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환자 차트가 응급실 앞으로 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이렇게 진단까지 다 되었는데 응급실이라니.

병실이 없나 하는 생각을 하며 수혁을 돌아보았다.

“그게…….”

그런데 지금까지 내내 똘똘한 모습을 보이던 수혁이 말끝을 흐렸다.

대학 병원에서 잔뼈가 굵었다고 할 수 있는 진실은 즉각 뭔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고 보니……. 레지던트 당직이 있는데, 굳이 나한테 왔단 말이지?’

수혁이란 이름을 들어봤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어이없어서 가라고 했을 터였다.

아니면 레지던트한테 먼저 물어보고, 모른다고 하면 오라고 하든가.

아무튼, 일반적인 상황은 결코 아니었다.

“괜찮으니까, 말해 봐. 어차피 지금 뭐, 할 것도 없고.”

김진실 교수는 일부러 주변을 돌아보았다.

평일이라면 가득 차 있을 판독실 컴퓨터들이 텅텅 비어 있었다.

수혁도 그녀를 따라 고개를 돌려 보니, 정말 할 일이 별로 없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뭔데.”

“노티를 드렸는데, 인슐리노마가 너무 희귀한 병이라고 해서요. 3년 차 선생님이.”

“희귀? 그거랑 환자 깔아 두는 거랑 뭔 상관이야?”

김진실의 반응에 수혁은 재차 머리를 굴렸다.

‘아……. 나 노티한 거 아닌 거로 하라고 했는데. 어쩌지?’

[수혁, 이제 곧 6월이 옵니다.]

‘그게 뭐.’

[김진용은 전문의 시험 준비 때문에 10월이면 치프직에서 물러납니다.]

‘아…….’

예전 내과가 4년제였던 시절엔 진짜 병원을 안 나왔더랬다.

내과 전문의 시험이라는 건 결국 의학 전체가 시험 범위라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공부량으로만 말할 거 같으면 모든 과를 통틀어 내과가 제일이었다.

하지만 3년제가 된 지금은 병원을 안 나오게까지는 하지 못했다.

그래도 업무에서 상당 부분 배제되었는데.

이 말은 곧 권력에서도 밀려난단 얘기였다.

[틀어져도 그만입니다. 김진용은 군의관을 가야 하니까요. 돌아오면 오히려 수혁이 위입니다.]

‘그건……. 그것도 그렇네.’

상당히 솔깃한 제안이었다.

악마의 제안인가 싶을 정도로.

바루다는 그렇게 수혁을 홀린 상태에서 말을 이었다.

[게다가 내일 발표는 김진용만 듣는 발표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가 인슐리노마를 진단했다고 하겠지.’

[분석 결과 그러고도 남을 놈입니다.]

‘안 되겠는데?’

[하지만 인슐리노마를 진단했다는 것을 다른 교수들이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그건 계속 가겠지. 지금도…… 사실 교수님들이 나 특별 대우 해 주시는데.’

수혁은 무언가를 결심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니까 김진용이라는 개새끼한테 설설 길 이유 따위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평범한 1년 차였다면야 기어야 했겠지만.

지금 수혁에게는 모든 것을 압도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이 있었다.

그게 바루다 때문이라고 해서 써먹지 않을 것도 없었고.

“1년 차 판단이라 믿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아, 그럼 지금 오는 중이야?”

“그건…… 아닙니다. 내일 아침에 보자고 했습니다.”

“아침? 환자는 응급실에 깔아 두고?”

“네.”

“이해가 안 되네. 누군데?”

수혁은 다시 한번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했지만.

[고.]

바루다의 충동질에 홀랑 넘어갔다.

“김진용 선생입니다.”

“김진용?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김진실 교수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자기네 레지던트와 눈을 마주치고는 책상을 탁 쳤다.

“아, 그…… 그래.”

1년 차로 들어온 녀석이, 자기 인턴 때 제일 괴롭혔던 놈이 바로 김진용이라고 했더랬다.

실제로 현 3년 차들은 김진용 환자라고 하면 판독도 잘해 주려고 했고.

그녀는 소문이 괜히 나는 게 아니란 생각을 하며 수혁을 돌아보았다.

“아무튼, 그래서 응급실에 깔려 있고…… 판독은 왜 나한테 받은 거지?”

“그……. 김진용 선생이 레지던트 구두 판독 말고 교수님 정식 판독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설마 내일까지?”

“네.”

“흐음.”

김진실은 바로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김진용이라고 하는 모자란 3년 차가 이수혁을 엿 먹이려고 한 모양이었다.

‘아마 인슐리노마일 리가 없다고 생각했겠지.’

그렇게 크게 잘못된 일은 아니긴 했다.

정말이지 엄청 드문 질환이었으니까.

‘그런데 맞았네?’

그리고 하필이면 이수혁을 그렇게 이뻐라 하는 이현종, 이하언 라인을 타고 있는 김진실 교수가 이 사실을 알게 된 참이었다.

“환자 무슨 치료 중이지? 디아족사이드?”

“네. 응급실에서 할 수 있는 치료가 제한적이어서요.”

“근데 신경학적 증상이 심했던 거로 봐서는…… 그리고 여기 보면 크기가 크잖아. 약만으로는 안 될 거 같은데?”

“네. 혈당 떨어지는 지점에서 급히 당을 공급하긴 해야 할 거 같습니다.”

“그걸 우리 병원에서 제일 잘하는 곳은 역시 내분비내과 병동이겠지?”

“네. 교수님.”

간호사들이 물론 의사들만큼 과에 따라 다른 전문과 자격증을 따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병원이라는 곳은, 또 의학이라는 것은 과에 따라 하는 일이 그야말로 천차만별이었다.

같은 간호사라 해도 어디서 근무를 해 왔냐에 따라 그 경험치가 달랐고, 또 잘하는 분야가 달랐다.

즉 내분비내과 환자가 제일 안전할 수 있는 곳은 응급실이 아니라 내분비내과 병동이라는 뜻이었다.

“그럼 거기 입원시켜야지.”

“그런데 저한테는 권한이…….”

“잠만 있어 봐. 신현태 과장님 번호가…….”

“네? 과장님이요?”

“그래. 과의 일인데 거기 알려 주긴 해야지.”

“어…….”

수혁은 일이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커지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진실 교수는 안색이 다소 어두워진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걱정 마. 곤란하게 안 해.”

“아, 네.”

“받으셨네.”

그리곤 신현태 과장과 일상적인 인사를 나누었다.

그동안 꽤 친해진 덕에 신 과장은 김 교수에게 완전히 말을 놓은 참이었다.

“공은 좀 맞아요?”

“오늘 뭔 날인지 모르겠는데. 원장님 파 치게 생겼다.”

“파요? 18홀?”

“어. 미쳤어. 어디 나 몰래 레슨 다니나? 근데 웬일이야? 오늘 당직이라더니.”

“아……. 그 이수혁. 아시죠?”

“수혁이? 알긴. 우리 친해.”

신 과장의 과장된 말에 김진실은 고개를 저어 대고는 말을 이었다.

“오늘도 또 홈런 쳤어요.”

“어? 그래? 아, 아까 봤다. 당직이랬지, 참. 뭔데?”

“경련 및 발작을 주소로 정신과로 전원 온 환자인데.”

“어어. 뭐였는데.”

“인슐리노마요. 만성화된 저혈당 때문에 신경학적 증상만 남았다는 걸 캐치해서 복부 CT를 찍었더라고요.”

“그래? 와……. 그걸 어떻게 연결지었지? 하여간 걔 진짜 천재야.”

신 과장은 골프 안 풀려서 쌓인 한이 이제야 좀 풀리겠다는 듯 아주 큰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멀리 서 있던, 아마도 마지막 홀 드라이버를 휘두르려고 하고 있던 이현종이 거품을 물었다.

“매너, 매너 좀 지키자! 누가 드라이버 치려는데 소리를 질러!”

“병원 일입니다, 원장님. 병원 일.”

“저, 저놈 핑계 대는 것 좀 봐. 아오……. 초장에 잡았어야 하는데.”

“아무튼, 진단했는데. 왜 전화를 했어?”

신현태는 타이밍을 한 번 뺏었다는 것에 크게 만족한 채 김진실 교수를 향해 물었다.

김 교수는 그 말만 기다렸다는 듯 대꾸해 주었다.

“저도 영상 보니까 인슐리노마 맞더라고요. 그래서 입원해서 외과로 컨설트 오피 내라고 했죠.”

“근데?”

“3년 차가 입원을 안 시켜 준대요.”

“어?”

이건 또 무슨 미친 소리란 말인가.

당연하게도 신현태는 꽥 소리를 질렀고, 이현종은 공을 놓쳤다.

이현종의 고성이 오가는 상황에서 김진실 교수는 계속 말을 이었다.

“희귀한 진단명이라 맞췄을 리가 없다고 하면서, 입원을 안 시켜 준대요.”

“직접 와서 보기는 했고?”

“아뇨. 내일 온다고 했다는데요.”

“그…… 그 새끼 누구지?”

“김진용? 이런 이름이었던 거 같은데.”

“이 새끼 뒈졌다. 전화 끊어 봐.”

“네, 과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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