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38화 (38/1,303)

38화 이 1년 차는 격이 다릅니다 (2)

“절대 안 넘어간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주말 사이에 누구 입원했다고?”

내분비내과 교수, 서효석은 여전히 졸음이 묻어 있는 얼굴로 물었다.

보아하니 또 전날 밤새 술이나 처먹고 온 모양이었다.

대학 병원 교수란 사람이 일요일 날 저렇게 술을 먹다니.

괜히 지각 없는 사람이란 말이 도는 게 아니었다.

“양재원, 인슐리노마 진단되어 입원했습니다.”

그런 서효석을 향해, 수혁이 직접 노티했다.

김진용이 치프에서 주치의로 격하되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서효석은 주말 내내 노닥거리느라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하나도 알지 못했다.

심지어 과장 신현태가 직접 문자까지 보내 놨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했다.

“왜 네가 말하냐? 치프는 어디 팔아먹었어?”

“아…….”

수혁은 자기 입으로 말하기가 좀 그래서 김진용을 돌아보았다.

김진용으로서는 울화통이 터지는 순간이었지만.

그걸 지금 터뜨렸다간 징계위원회가 열릴 판이었다.

‘과장에 원장에…….’

그렇게 되면 정말 병원에서 쫓겨날 수도 있었다.

지금까지 죽어라 수련받아 온 것이 모두 물거품이 될 수 있단 말이었다.

“제가…… 주말 사이에……. 이 환자 관련해서 실수를 좀 해서 과장님께서 치프 박탈…… 했습니다.”

해서 차마 자기 입으로 늘어놓기엔 너무 부끄러운 말을 하고야 말았다.

당연하게도 서효석 교수의 눈이 길게 찢겨 올라갔다.

“과장님이? 내분비내과 치프를?”

“네.”

“아니, 내가 알지 못하는 걸 왜 과장만 알아?”

당연히 서효석이 전화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과장까지 합세해서 건 전화도 받지 않았더랬다.

병원에서 나가는 순간, 병원 사람들이 알고 있는 번호의 핸드폰은 꺼 버리는 위인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주제에 이토록 뻔뻔스러운 반응이라니.

똑같은 개차반 김진용조차도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 그게…… 영상의학과 김진실 교수님 통해서 노티가 가서 그렇게 됐습니다.”

하지만 감히 과장 앞에서 함부로 떠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서효석은 이렇게까지 개판을 치는데도 병원에서만큼은 그 누구도 건들지 못하는 막강한 백을 지닌 위인 아니던가.

“김진실? 누군데, 그게?”

“그…….”

“아냐. 됐어. 내가 과장한테 직접 물어봐야겠어.”

서효석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백으로 교수가 된 위인이었다.

당연하게도 그런 사람 특유의 열등감이 있었다.

진짜 실력으로 된 사람들에 대한.

이런 인간들은 대개 그냥 벌어진 일도 그냥 넘어가지 못하기 마련 아니겠는가.

뭔가 사실을 곡해하고 자기 마음대로 받아들이는 법이었다.

“아, 과장님.”

“서 교수? 웬일이야? 이 시간에?”

“저 모르게 김진용 선생이 치프 박탈이 됐다는데,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아. 그거.”

신현태는 회진을 돌다 말고 걸음을 멈추어 섰다.

얼굴이 상당히 굳어 있었다.

평소 같은 교수라고 인정해 주지도 않는 인간이 냅다 전화를 걸어 시비를 걸어 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신현태는 일단 한 과의 과장이었다.

그래서 장답게 행동하기로 했다.

“당직의가 인슐리노마라고 진단까지 했는데 병원도 안 와 보고 환자를 깔아 뒀어. 게다가 나한테는 거짓말도 했고. 그리고…… 알잖아? 김진용 평판.”

“그 결정이 잘못됐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왜 제가 모르게 일이 처리됐냐는 거죠. 지금 김진용을 치프로 쓰고 있던 건 난데.”

“전화했는데 안 받았잖아.”

“집 전화번호 아시지 않습니까?”

“과장인 내가 아랫사람한테 그렇게까지 연락을 해야 하나? 그리고 핸드폰 켜면 콜키퍼에 다 잡혀 있을 텐데, 씹은 건 자네 아냐?”

구구절절 옳은 말씀이었다.

그래서 서효석은 더 화가 났다.

원래 소인배들은 그런 법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제 잘못이다, 이거죠?”

“그래. 자네 잘못이지. 대체 대학 병원 교수가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왜 주말만 되면 연락이 안 돼? 자네 때문에 사고 날 뻔한 거…… 다른 교수들이 막고 있는 건 알고 있어?”

“그…….”

“아무튼, 그렇게 된 거야.”

“음…….”

“애꿎은 전공의한테 화풀이하지 말고. 이번에도 그러면 나 절대 그냥 안 넘어가.”

김진용이나 황선우가 혼나는 거야 넘어가 줄 수 있는 일이었다.

걔들은 꼭 서효석 아니더라도 혼날 일을 만들어서 혼나는 놈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우리 수혁이가?

교수 같지도 않은 서효석한테?

그건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애석하게도 딱 그 말이 서효석의 자존심을 또 한 번 긁고야 말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신현태 과장도 살짝 열이 올랐다.

실력으로 보나, 연배로 보나 한참 아랫놈이 딱딱 대들고 있었으니까.

“과장이 안 넘어간다고 하면, 징계겠지. 자네 논문도 없지? 올해 부교수 심사 또 떨어질 게 뻔하고. 그럼 난 계속 교수직 유지해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드는데?”

“지금 그 말 책임질 수 있습니까?”

“뭐?”

“제 아버지…… 누군지 아시죠?”

결국, 서효석은 진짜 치사한 카드를 빼 들고야 말았다.

어지간한 병원 관계자라면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는, 그런 카드였다.

하지만 상대가 나빴다.

“알지. 저번 주에도 장인이랑 해서 같이 봤는데.”

“음.”

“이제 곧 퇴직이라며? 제아무리 등기이사라 해도 오래 하셨지. 근데 그럼…… 자네 뒤를 과연 누가 봐줄까?”

“그런…….”

“그러니까, 사고 치지 말고 있어. 봐줄 때 잘하라고. 괜히 나 열 받게 하지 말고. 끊는다.”

신현태는 그렇게 전화를 끊어 버렸고, 서효석은 자신의 핸드폰을 내려다보았다.

‘이런 개새끼가?’

자기가 잘못한 건 하나도 생각이 안 나고.

방금 당한 수모만 느껴졌다.

하지만 당장 수모를 풀 수 없는 상대였다.

저쪽 장인도 태화 전자 전무 이사고, 연배는 더 위였으니까.

실력으로 따지면야 아예 비교도 안 되었고.

“어제 당직의 누구냐?”

해서 만만한 애들을 건드리기로 했다.

[좆됐나?]

수혁은 바루다의 말을 애써 씹으며 손을 들었다.

“네, 교수님. 1년 차 이수혁입니다.”

“네가 인슐리노마를 진단한 거야?”

“네, 그렇습니다.”

“그거 김진용한테 노티했고?”

“네.”

“넌 왜 그거 듣고도 안 왔어.”

뒷북도 이런 뒷북이 없었다.

하지만 김진용으로서는 어찌 되었건 입을 열어야만 했다.

“죄, 죄송합니다.”

“왜 내가 과장 통해서 이런 얘기를 듣게 하냐고.”

따지고 보면 자기 잘못이었지만.

권력은 휘둘러야 제맛이라는 걸 몸소 보여 주고 있는 서효석이었다.

[약간 불쌍하군요.]

‘그러게. 똑같이 나쁜 놈이긴 한데.’

해서 수혁은 처음으로 김진용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도와줄 마음이 드는 건 아니었다.

“알아들어? 또 이런 일 있게 하면, 그땐 진짜 가만 안 둬.”

“네, 교수님.”

서효석은 그 뒤로도 한참을 떠들다가 김진용을 노려보며 말을 끝맺었다.

생각 같아서는 정강이라도 걷어차고 싶었지만.

얘기하는 내내 신현태의 으름장이 생각나서 그럴 수는 없었다.

“아무튼, 인슐리노마 환자 플랜은 어떻게 돼.”

그렇게 한바탕 쏟아내고 나니 후련해졌는지 서효석은 비로소 환자 얘기를 꺼냈다.

그제야 수혁은 내내 준비하고 있던 말을 꺼낼 수 있었다.

좀 이상하긴 했지만.

[교수가 왜 플랜을 물어볼까요? 뭘 알면서 묻는 얼굴도 아니고.]

‘실력이 없어서 그래. 아마 잘 모를걸…….’

[그런데 교수가 됩니까?]

‘세상이 그렇더라.’

수혁은 남몰래 짤막한 대화를 마친 후 입을 열었다.

“지금은 일단 디아족사이드로 저혈당 예방만 하고 있습니다.”

“디아족사이드?”

수혁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얼굴의 서효석을 보며 겨우겨우 한심하다는 표정을 숨겼다.

“네. 인슐린 분비 저해를 위한 약입니다.”

“그렇게만 하면 돼?”

“아……. 일반 외과에 협진 오피 요청했습니다. 덩이가 그렇게까지 크지는 않아서 어려운 수술은 아닐 거라고 합니다.”

“수술? 그럼 외과로 전과하나?”

“네?”

전과라니.

떡하니 환자가 인슐리노마라는 전형적인 내분비내과 질환인데.

외과에서 떼어만 주면 후속 조치는 내과에서 해야 마땅한 병이란 뜻이었다.

“전과시켜. 수술하면 그 과에서 봐야지.”

“하지만 환자 저혈당이나 인슐린 분비 조절은…….”

“아, 시끄러워! 네가 이수혁이지? 1년 차면 1년 차답게 행동해. 과장이나 원장이 이뻐한다고 까불지 말고.”

“아, 네. 죄송합니다.”

“잔말 말고 지금 전과해.”

서효석은 거기까지 말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스테이션을 빠져나갔다.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아직 회진을 안 돌았으니까.

“저, 교수님, 환자 얼굴은…….”

해서 이렇게 물으니 돌아오는 답이 가관이었다.

“어차피 다른 과 환잔데 내가 얼굴은 왜 봐!”

그렇게 서효석은 사라졌다.

그가 사라지자마자 김진용과 황선우도 사라졌다.

환자 보기 싫어하는 거로만 따지면야 서효석 못지않은 인간들이지 않은가.

결국, 병동에 남게 된 것은 수혁 혼자뿐이었다.

‘미치겠네. 이걸 전과를 받아 줄까?’

[분석 결과 서효석은 상당한 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름을 언급하면 효과가 있을 겁니다.]

‘환자 관리는? 외과는 거의 다 수술방 들어가 있느라…… 아무래도 우리처럼 세심하게 보지는 못할 텐데.’

더구나 최근에는 외과 인기가 날로 떨어지면서 미달까지 난 상황이었다.

도저히 중환자실 환자들을 세심하게 볼 여력이 안 되었다.

[혈당 관리는 수혁이 해 주면 됩니다. 이참에 중환자실도 가 보고, 좋은 경험이 되지 않겠습니까?]

‘벌써 중환자실 보는 건 자신 없는데…….’

환자가 내분비내과에 적을 두고 있으면 같은 내과 선배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볼 수 있는 기회가 꽤 되었다.

하다못해 김진용도 루틴 중환자실 처방 정도는 수혁보다 잘할 터였다.

하지만 이미 다른 과 환자가 된 사람을 잘 봐 줄까?

수혁은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무슨 걱정입니까? 제가 있는데.]

‘그래……. 너라도 믿어야겠지.’

[너라도?]

‘아무튼, 전과 요청 해야겠네.’

수혁은 기분 상한 바루다를 무시한 채 외과에 전화를 걸었다.

외과는 당연하다는 듯 무척 황당해하긴 했지만.

서효석 이름을 대니 마지못해 받기는 했다.

수혁은 그게 좀 미안해서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제가 환자 혈당이나 내과적 문제는 도맡아서 보겠습니다.”

“그래요……. 그렇게라도 해 주면 좋죠. 지금 수술방 준비됐으니까, 환자 내리는 것까지만 해 주세요. 다행히 전 처치를 잘해 주신 덕에 오늘 바로 할 수 있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수혁은 즉시 환자를 3층 수술방으로 내렸다.

그리곤 병동 업무 및 논문 아이디어를 위한 공부를 좀 하다가, 환자가 중환자실로 나갈 때 맞춰서 3층 외과 중환자실로 향했다.

당연히 양재원 환자를 보기 위해서였는데.

정작 눈길을 끄는 환자는 따로 있었다.

“마누라! 마누라가 바람을 피운다고!”

웬 건장한 체구의 환자가 침대에 동동 묶인 채 난리를 피우고 있었다.

[섬망일까요?]

‘아마……. 그렇겠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살펴보겠습니까?]

‘그럴까?’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