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섬망이 아니면 뭔데? (2)
섬망은 주로 밤에 찾아오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무슨 신데렐라도 아니고.
정해진 시간에 띵동 하고 찾아오는 건 아니었다.
특히 지금처럼 2시라는 지극히 애매한 시간이라면 더더욱 이상한 일이었다.
툭.
수혁은 이제 완전히 뻗어 버린 환자를 내려다보며 생각에 빠졌다.
늘 그렇듯 바루다와의 대화를 해 대면서였다.
‘2시라…….’
[지금 생각하신 바이오 리듬은 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나도 말도 안 되는 거라고 생각해서 굳이 말 안 한 거거든?’
[그런데 이상하군요. 같은 시간에 찾아오는 섬망이라니. 주기적인 이벤트가 뭐가 있을까요?]
‘흠.’
수혁은 잠시 눈을 감은 채 중환자실의 일정을 떠올려 보았다.
‘일단 면회. 정해진 시간에 하지.’
[아내에 관한 망상을 하는 환자가 정해진 시간에 아내를 보니까……. 그게 연관이 있다? 이건 좀 억지인데.]
‘그래. 억지지.’
망상이 왜 망상이겠는가.
현실적으로 아무 개연성이 없어서 망상이었다.
아내가 바람을 핀다는 망상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남편이 평소 아내를 의심하고 있었다거나 하는 식으로 생각을 해서는 절대 안 되었다.
‘회진?’
[회진이라.]
실제로 중환자실에 입원했던 환자들 중 섬망을 앓았던 환자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꽤 충격적인 답을 낸 적이 있었다.
그 당시 근처를 돌아다니는 간호사들이나 다른 의료진들이 모두 자신을 괴롭히려는 악마 같은 것으로 보였다는 것.
그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회진이 시발점이 된다는 것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가능성은 떨어져. 대체 뭐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군요.]
‘흐음…….’
수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환자를 내려다보았다.
아무리 그렇게 바라봐도 답이 나오진 않았다.
그저 답답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답답한 마음을 안고 회진을 돌고 몇 시간 뒤, 저녁이 찾아왔다.
[우선은 올라가서 공부하고 취침할 것을 권유합니다. 더 생각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있을 거 같진 않습니다.]
‘그래. 섬망 관련해서 좀 더 봐야겠어.’
[훌륭한 의견입니다.]
시험을 딱 한 번이라도 쳐 본 사람은 알 수 있을 터였다.
모르는 문제 붙잡고 있어 봐야 아무 소용 없다는 사실을.
시간 낭비일 따름이라는 사실을.
특히 지금처럼 공부할 시간이 충분히 있는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했다.
해서 수혁은 바루다와 동조해 병동 당직실로 향했다.
당직실은 텅 비어 있었다.
‘이상해. 원래 이렇게까지 여유롭지는 않다고 들었는데.’
희한하게 수혁은 계속 혼자 방을 쓰고 있었다.
북적거리던 당직 방도 수혁이 들어가면 다른 사람들이 슬금슬금 다른 방으로 옮겨 갔다.
[좋은 일 아닙니까? 공부하기도 좋고. 자기도 좋고.]
‘그야, 그렇지.’
당직의들로 가득 찬 방에서 자다 보면 겪게 되는 문제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일단 다른 당직의한테 콜이 올 때마다 깨야만 했다.
게다가 코들은 왜 그렇게들 골아 대는지.
예민한 사람은 아예 잠들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귀마개를 하면 되지 않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랬다간 콜도 못 받지 않겠는가.
거의 지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디…… 섬망이…….’
[전에 봤던 내용 말고 다른 거로 보시죠.]
‘교과서는 벌써 봤는데.’
[그럼 논문을 보시면 됩니다.]
‘이야…… 벌써 논문으로…….’
[남들은 본과 4학년 때도 논문 보긴 했을 텐데요.]
‘이야.’
수혁은 애써 바루다의 말을 무시하곤 논문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이 논문 찾는 거 자체가 하나의 일이었을 텐데.
그나마 최근 논문들을 워낙 많이 뒤적거린 탓에 찾는 건 도가 터 있었다.
덕분에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논문 수십 개를 주르륵 띄워 놓을 수 있었다.
‘음…….’
[흠…….]
‘으음…….’
[흐음…….]
다만 아주 영양가 있는 내용을 얻지는 못했다.
오후 2시마다 찾아오는 섬망이라니.
이런 걸 다룬 논문은 단 하나도 없었다.
결국, 수혁은 궁금증을 해결하지 못한 채 잠들어야 했다.
‘이게 환자 활력징후 흔들리는 상황이었다고 생각해 보면 끔찍한데.’
그랬다면 이미 환자는 죽었을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니 평소에 더더욱 데이터를 많이 쌓아 놓아야 합니다.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뭐……. 그렇긴 하지.’
1년 차치고는 잘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 멀고도 먼 것이 사실이었다.
‘밤새 뭐 어떻게 되진 않겠지?’
[단순 섬망일 가능성도 여전히 있습니다.]
‘그럴 거 같아?’
[아뇨. 의학에 우연은 없다고 가정하고 봐야 합니다.]
‘그렇지. 흠……. 대체 뭐야…….’
정해진 시간에 찾아오는 섬망이라.
대체 뭘까.
수혁은 이 생각을 하다가, 겨우겨우 잠들었다.
그리곤 다음 날.
눈을 뜨고, 정해진 오전 회진이 끝나자마자 곧장 중환자실로 향했다.
‘오늘도 진짜 짧구나.’
[이렇게 성의 없는 회진은 처음입니다.]
서효석, 김진용, 황선우로 이루어진 내분비내과 팀은 그야말로 대환장 파티 그 자체였다.
아무도 환자를 주의 깊게 보려고 들지를 않았다.
그나마 3년 차 치프에서 강등된 김진용은 이해라도 할 수 있었다.
원래 자기 일이 아니었으니 얼마나 짜증 나겠는가.
하지만 황선우는 대체 왜 저럴까.
‘사고 칠까 봐 처방 다 바꿔 놨는데, 그걸 모르고 있더라.’
[혼자 회진도 안 도는 거 같더군요.]
‘그래…… 그래서 내가 돌고 있지. 내가…… 어쩌다…….’
엄밀히 말하면 수혁도 원래 막 열정이 넘치고 그런 스타일은 아니었더랬다.
하지만 최소한의 책임 의식은 있는 인간이었다.
그런데 나머지는 그게 없었다.
[수혁이라도 봐야죠. 그나마 환자는 적으니 다행 아닙니까?]
그러다 보니 지금은 아예 혼자 서효석 교수 앞으로 입원한 환자 전원을 수혁이 보고 있었다.
아마 수가 많았다면 엄청 벅찼을 텐데.
바루다의 말대로 환자 수는 열 명이 채 되지 않았다.
서효석 교수 자체가 맨날 있는 환자도 이 과 저 과 던지고 있는 데다가, 다른 과에서는 아예 서효석에게 보내 오질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응급실 당직의들도 이를 다 알아서 어지간하면 다른 내분비내과 교수에게 입원을 시키지, 서효석에게는 노티도 잘 하지 않았다.
‘그야……. 그렇긴 해. 나 원, 이런 사람들이 다 있냐.’
[저 사람들에 비하면 수혁은 진짜 훌륭한 의사입니다. 인정합니다.]
‘비하면? 왜 그런 단서를 붙여?’
[그 이유는 본인이 더 잘 알 거라 생각합니다.]
수혁은 바루다의 비아냥과 함께 아래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각 병동마다 구석에 숨겨져 있는 그런 엘리베이터였다.
식사 때에는 식사가 가득 담긴 트레이가 타는 엘리베이터인데, 당연하게도 환자나 보호자는 이런 게 있는지조차 몰랐다.
교수들이야 원래 교수 전용 엘리베이터가 연구실 안쪽 구역에 있기 때문에 거의 볼 수 없었고.
이를테면 사적인 이동을 할 수 있다, 이런 뜻이었다.
띵.
하지만 5층에서 올라탄 이는 교수였다.
그것도 수혁이 아주 잘 아는.
“오. 우리 수혁이. 어디가?”
바로 신현태 교수였다.
‘아……. 5층에 원장실이 있지…….’
보아하니 또 이현종 교수와 함께 노닥거리다 온 모양이었다.
아마도 1층 외래로 가는 길일 테고.
“안녕하세요. 과장님. 중환자실 가는 중입니다.”
“중환자실? 1년 차한테 중환자 안 주지 않나? 설마 서 교수?”
“아, 아닙니다. 그 인슐리오마 환자 제 환자였다가 외과로 전과되어서 그냥 매일 보고 있습니다.”
“아……. 그래 주치의라면 그래야지. 수혁이가 마음가짐도 참 좋네.”
“아닙니다. 과장님.”
“그래. 그럼 잘 돌고. 뭐 힘들거나 한 일 있으면 얘기하고.”
“네, 교수님.”
수혁은 그렇게 3층으로 내려섰다.
아니, 내리려고 했다.
신현태가 열림만 누르지 않았다면.
“아아. 잠깐잠깐.”
“네, 교수님.”
“너 다음 달에 순환기내과지?”
순환기.
거의 모든 레지던트들이 두려워하는 스케줄이라고 보면 되었다.
심장이라고 하는 다이나믹한 장기를 다루어서도 있었지만.
그 다이나믹한 장기를 평생 보는 교수들의 성질 또한 다이나믹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거의 전 내과를 통틀어서 제일 와일드한 인간들이라고 보면 되었다.
“네. 교수님.”
“원래 원장님 주치의는 2년 차나 3년 차가 맡는 거 알고 있지?”
“네.”
그중에서도 이현종은 독보적인 위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일단 이루어놓은 업적이 너무 대단해서, 그 누구도 건드릴 수조차 없었다.
전 세계의 순환기내과학 교과서를 바꾼 사람 아닌가.
그런 사람이 병원을 옮긴다고 하면 무조건 병원 손해였다.
‘주치의 맡게 되면 진짜 거의 지옥이라고 하던데…….’
순환기 다이어트라는 말까지 있을 지경이었다.
이현종 밑에서 주치의를 하다 보면 하루가 다르게 살이 쪽쪽 빠지기 때문이었다.
‘불안한데…….’
수혁은 설마 하는 얼굴로 신현태를 바라보았다.
반면 신현태는 더없이 밝은 얼굴이었다.
“원장님이 이번 주치의는 수혁이, 너보고 좀 맡으라고 하더라.”
“아……. 네. 교수님.”
수혁은 저도 모르게 말끝을 흐리다가 바루다의 외침이 있고 나서야 부리나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원장이 그렇게 정했다는 거 아니겠는가.
거기다 대고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는 건 결코 현명한 처사가 아니었다.
“원장님이 원래는 조영술이랑 스텐트 하시잖아.”
“네. 미리 공부하겠습니다.”
“응. 그건 뭐 하는 거고. 요새 또 부정맥 꽂히셨어.”
나이 60이 넘었는데 새로 꽂히는 분야가 있을 줄이야.
수혁은 너무 놀라서 입이 떡 벌어졌다.
“고것도 미리 공부해 가는 게 좋을 거야. 기대가 정말 크시거든? 나도 그렇고. 실망시키지 않도록 공부해 봐.”
“아, 네. 교수님.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수고하고.”
“네.”
신현태는 그렇게 결코 좋은 소식이라고 보기 어려운 말을 남긴 채 아래로 내려가 버렸다.
수혁은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 후에도 잠시 그 앞을 떠나지 못했다.
‘이현종 원장님 주치의라…….’
워낙 까다롭고 꼼꼼해서 2년 차들도 절절맨다는 전설의 주치의였다.
그걸 1년 차에, 그것도 첫 순환기 도는 타임에 맡게 되다니.
[잘된 일 아닙니까? 제 분석상 이현종은 수혁을 좋아합니다.]
‘그……. 그게 이번에 바뀔 수도 있다고. 남의 환자 보는 거 보는 거랑……. 자기 환자 보는 건 다르니까.’
[공부하면 되겠죠. 잘됐습니다.]
‘너는 그저 공부, 공부…….’
수혁이 막 바루다와 대화를 하며 고개를 내저으려는데, 중환자실 안쪽에 소란이 일었다.
문이 닫혀 있어서 정확히는 듣기 어려웠지만.
몇 가지 단어는 들을 수 있었다.
마누라라든지, 바람이라든지.
‘또?’
[바로 가 보죠!]
해서 수혁은 지팡이를 짚은 채 부리나케 움직였다.
그래 봐야 달리는 것보다는 훨씬 느려서, 그가 중환자실 안으로 들어섰을 땐 이미 상황이 끝난 후였다.
환자는 안정제를 맞고 쓰러져 있었다.
[9시. 이것도 어제 아침과 같습니다.]
‘아침과 저녁 같은 시간에?’
[아니죠. 어제 오후 2시에도 이벤트가 있었습니다. 오늘 2시에도 있을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즉 아침, 점심, 저녁 일정한 시간에 벌어지는 이벤트가 환자의 섬망과 강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뭐가 있을까요?]
‘흠…….’
[밥?]
밥은 삼시 세끼 정해진 때 먹기는 했다.
하지만 그게 섬망을?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아냐. 그건 아냐. 밥 말고도 시간 맞춰서……. 아.’
[약?]
‘그래. 약이야. 약 부작용일 가능성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