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41화 (41/1,303)

41화 섬망이 아니면 뭔데? (3)

약.

약이라면 부작용이 충분히 있을 수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수혁은 즉시 들고 있던 차트를 내려놓고는 모니터를 향해 달렸다.

타닥.

타닥.

달렸다고는 해도 속도가 아주 빠르진 않았지만.

아무튼, 덕분에 주변을 지키고 있던 간호사들과 외과 레지던트 몇몇은 무사히 수혁을 피해 저 멀리 도망할 수 있었다.

“로열…… 맞죠?”

“그렇다니까요.”

“저도 좀 들은 게 있는데요.”

간호사들이 수군거리는 사이에 외과 레지던트 하나가 끼어들었다.

얼굴에 뭔가 알고 있다는 표정을 지은 채였다.

별 재미날 게 없는 병원에서 이런 가십거리는 언제나 환영이었다.

해서 간호사들뿐 아니라, 저 멀리 구석에 있던 다른 과 펠로우까지도 귀를 쫑긋거렸다.

“내과에 김인수랑 제가 동기잖아요. 거기 치프.”

“아. 김인수 선생님.”

김인수는 좀 무섭긴 해도 해야 할 일은 반드시 하는 종류의 인간이었다.

다른 곳이라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대학 병원에서는 환영받을 수밖에 없었다.

여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너무 많아서 나동그라지는 이들이 너무 많았으니까.

해서 간호사들은 어떤 신뢰감까지 가진 채 레지던트를 바라보았다.

레지던트는 그런 눈빛이 좋은지 잠시 머뭇거리고서야 재차 입을 열었다.

“걔가 그러는데, 다음 달 순환기라 그랬거든요?”

“아, 빨리 본론! 본론!”

나이 많은 간호사 하나가 레지던트를 다그쳤다.

시니어 중에서도 시니어급인지라 레지던트도 그녀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는 없었다.

당장 환자 처치에 대해 그녀에게 배운 적도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현종 원장님 주치의를 원래 인수가 맡아야 하는데.”

“헐?”

“설마?”

“그거 이수혁 선생한테 줬대요.”

“와……. 진짜 아들이네.”

이현종 교수에 대한 소문은 비단 내과 안에서만 도는 게 아니었다.

외과에서도 그에 대한 전설은 여러 버전으로 각색되어 돌아다녔다.

워낙 젊은 시절부터 명성을 얻은 사람인 데다가, 성격 또한 독특해서였다.

특히 흉부외과 쪽에서는 거의 악명이라고 불러야 좋을 정도로 소문이 좋지 못했다.

원래 흉부외과에서 개흉 수술로 했어야 할 케이스를 멋대로 카테터로 뚫어 버렸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런 사람이 1년 차를 주치의로 쓴다고 하니 아들이란 말이 나오는 게 정상이었다.

“뭘 저렇게 수군거리냐…….”

반면 수혁은 귀를 한번 후비적거리곤 마침내 의자에 털썩 앉았다.

잠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외과 인원들을 바라보았지만, 아는 얼굴은 없었다.

‘나 좋아하나?’

[그럴 가능성은 제로에 수렴합니다, 수혁.]

‘근데 뭘 저렇게 나만 오면 수군거려. 몰래 숨어서.’

[수혁의 청각이 저기까지 미치지 못해 저로서도 분석은 어렵습니다.]

‘쓸모가 없네.’

[쓰, 쓸모가 없다뇨!]

‘아무튼, 약이나 잘 봐 봐. 뭐 쓰고 있나.’

수혁은 버럭거리는 바루다를 애써 무시한 채 마우스를 움직여 박태수 환자의 차트를 띄웠다.

[항생제가……. 레보플록사신, 메트로니다졸, 세프트라이악손. 이렇게 세 개군요.]

‘부작용 각각 어떻게 되지?’

[위장관 장애, 신장 장애, 간 장애 등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섬망은?’

[기록된 바 없습니다.]

‘약물끼리 상호 작용은 어때?’

약 부작용이라는 건 일일이 대응하기가 참 까다로운 경우가 많았다.

특히 지금 이 환자처럼 너무 많은 약을 한 번에 사용하고 있을 땐 더더욱 그러했다.

한 가지 약만 썼을 땐 나타나지 않는 부작용이 뜬금없이 나타날 수 있었다.

[제게 기록된 데이터상에는 관찰되지 않습니다.]

‘말에 단서 좀 붙이지 말고 좀.’

[아직 데이터가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좀 더 노력하세요.]

‘에이. 아무튼, 이건 그럼 넘어가.’

대개 심각한 부작용이라면 항생제 때문일 때가 많은데.

지금은 아닌 거 같았다.

해서 수혁은 스크롤을 드르륵 내렸다.

‘라식스…… 이뇨제를 쓰네?’

[수술하면서 들어간 수액의 양이 총 3L가 넘는 데 반해, 소변으로 배출된 양이 1L밖에 되지 않습니다. 체스트를 봐도 폐에 약간 물이 차 있고요.]

‘균형을 맞추려고 썼구나. 근데 그럴 목적이면 좀 팍팍 쓰지. 반 앰풀이 뭐야.’

[어어. 처방 함부로 바꾸지 마십쇼. 수혁 환자 아닙니다.]

‘아, 참.’

대세에 큰 지장이 있을 만한 처방이라면 모르겠지만.

사소한 처방은 그저 두는 것이 옳았다.

하지만 아예 이대로 두고 볼 수는 또 없는 일 아니겠는가.

해서 수혁은 경과 기록에 작은 노트를 하나 남겨 두었다.

[오지랖…….]

‘닥쳐. 라식스는 원인이 아니야?’

[데이터 검토 결과 라식스가 섬망을 일으켰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럼 얘도 아니고.’

하나하나 꽝이 반복될수록 약이 원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계인 바루다는 딱히 그런 것에 영향을 받지 않는 모양이었다.

처음과 계속 똑같은 태도를 고수하고 있었다.

[진통 목적으로 들어가는 진통 소염제가 있군요. 하루 세 번. 빈도는 맞지만, 이 역시 부작용 중 섬망이 관찰된 적은 없습니다.]

‘아닌 거 아냐?’

[아직 약은 많이 남았습니다. 좀 더 검토해 보시죠.]

‘알았어.’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스테로이드와 기타 면역 억제제 등을 살폈다.

하지만 역시나 아무것도 확인된 바 없었다.

이쯤 되니 또 다른 생각 하나가 고개를 쳐들었다.

‘내가 공부를 너무 안 했나.’

정황상 약 부작용은 틀림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데이터에 없다고 하지 않는가.

설마하니 바루다가 에러를 일으키고 있을까?

도저히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문제는 수혁 자신일 것 같았다.

[바람직한 태도지만, 지금은 적합하지 않습니다. 시선을 모니터 쪽으로 돌리길 권유합니다. 안 보입니다.]

‘봐도 내가 모르고 있으면 어째.’

[일단 약을 다 보고 그런 말씀을 해 주시겠습니까?]

‘으음.’

하지만 바루다는 역시 기계답게 포기를 몰랐다.

한 번 해야 한다는 명령이 들어가면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모양이었다.

뭐 수혁도 여기까지 내려온 이상 그냥 가기는 좀 아쉽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래서 고개를 다시 모니터로 돌렸고, 새로운 약 하나를 찾아냈다.

‘보리코나졸을 쓰네?’

보리코나졸.

항진균제, 즉 곰팡이균을 처리하기 위한 약제였다.

애초에 이 환자가 이번에 수술을 받게 된 원인균이 아스퍼질러스라는 곰팡이균이었으니, 이 약이 제일 중요한 약이란 뜻이었다.

[하루 세 번. 식후에 들어가는군요.]

‘시간으로만 보면 딱 맞긴 하는데.’

[데이터 분석해 보겠습니다.]

‘그래. 보리코나졸이라면…… 내가 확실히 공부해 본 기억이 있어.’

일반적인 지역 감염 환자들을 보는 의사들에게는 낯설 수도 있는 약이었다.

진균 감염은 면역이 정상인 환자들에게는 아주 드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대학 병원.

그중에서도 국내 제일이라고 하는 태화 의료원이었다.

암 환자부터 해서 희귀 질환자들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이런 곳에서 근무하려면 각종 항진균제에 대해 통달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보람을 바로 오늘, 지금 이 순간 느낄 수 있었다.

[보리코나졸…… 대사가 떨어진 환자에게서 섬망을 일으켰다는 보고가 있군요.]

‘그래?’

[네, 저번 주에 읽은 케이스 리포트에 적혀 있습니다.]

‘근데……. 대사가 떨어진다는 건…….’

[아마 보리코나졸을 대사하는 효소가 떨어진 환자를 의미하는 걸 겁니다. 그건 따로 검사를 해 보면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좋아. 지금으로서는 얘가 제일 가능성이 큰 거지?’

[지금으로서가 아니라, 보리코나졸이 범인일 가능성이 100%에 가깝습니다. 정황상, 이론상 그렇습니다.]

바루다의 확신에 찬 말을 듣다 보니, 수혁도 자신감이 부쩍부쩍 샘 솟았다.

‘그럼 이걸 말을 해 줘야겠는데.’

해서 누구라도 있으면 말해 주려는 생각으로 사방을 둘러 보았다.

그와 동시에 수혁을 남몰래 훔쳐보고 있던 일단의 사람들이 후다닥 흩어졌다.

하지만 꼭 느린 사람이 하나쯤은 있는 법이었다.

하필이면 김인수의 친구가 딱 걸리고야 말았다.

“선생님.”

“으, 응? 저요?”

수혁은 난데없는 존대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알기로 저기 저 사람은 학교 선배였기 때문이었다.

다른 학교에서 온 사람이라면야 서로 존대가 거의 원칙처럼 지켜지고 있지만.

학교 선후배끼리는 반말이 기본이었다.

“선배님, 저 2년 아래 이수혁입니다. 말 놓으셔도 됩니다.”

“아, 아니……. 다른 관데요. 뭐, 네. 무슨 일 때문에요?”

하지만 외과 레지던트는 한사코 말을 높였다.

어쩐지 수혁과 이현종이 겹쳐 보였다.

어떻게 보면 좀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니, 코.

코가 똑같이 생긴 것 같았다.

‘아들이야……. 아들…….’

해서 다른 과 1년 차 앞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경직된 얼굴이 되어 버렸다.

“어…….”

수혁은 이 사람이 왜 이러나 싶었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외과 레지던트의 심리 분석 같은 게 아니었다.

이 환자에 대한 처치였다.

이대로 두었다간 한 서너 시간 있다가 또 야단법석을 피울 터였다.

아니, 약을 끊지 않는 한 계속될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계속 중환자실에 있다 보면 오히려 더 상태가 안 좋아질 게 뻔했고.

“네. 선생님. 이 박태수 환자 말인데요.”

“응? 내과에는 협진 낸 기억은 없는데요.”

외과 레지던트는 머리를 필사적으로 굴렸다.

감히 원장님 아드님에게 협진을 내 놓고 까먹었나 싶어서였다.

하지만 결단코 그런 일은 없었다.

“아……. 네. 협진 온 건 아닌데. 올 때마다 섬망이 있어서요. 이상해서 한번 봤죠.”

“아…….”

그걸 그래서 원장에게 이를 속셈인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류진수 교수님……. 이제 전임 단 지 2년도 안 됐는데…….’

막 정신이 아득해질 무렵 수혁이 말을 이었다.

“그랬더니 이유가 있더군요.”

“이유요?”

설마하니 불친절한 대응을 꼽으려는 건가 싶었다.

돌이켜 보면 중환자실에 계신 분들에게까지 최선을 다하진 못한 것 같았으니까.

‘이 사람은 얼굴이 왜 이렇게 창백해? 빈혈인가?’

[그냥 질린 거 같은데요.]

‘왜 질려?’

[거기까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반면 수혁은 병신인가 하는 얼굴을 간신히 감춘 채 말을 이었다.

“보리코나졸 부작용 중에 섬망이 있습니다. 지금 이 환자 섬망 이벤트를 보면 딱 일정한 시간에 발생하는데, 보리코나졸 혈중 농도 수치와 깊은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

“어?”

그제야 레지던트는 수혁이 아예 다른 짓을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오다가다 본 환자의 섬망이…… 약물 부작용이라고 진단을 한다고? 1년 차가?’

저기 순환기내과의 이현종이나 감염내과 독고다이 정문현 교수도 아니고.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수혁이 들이민 중환자실 차트와 처방 내역을 보니 확실히 그럴싸했다.

게다가 수혁이 자신이 지난주에 읽었던 케이스 리포트까지 찾아서 출력해 준 후에는 도저히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어……. 잠시만요. 교수님 노티드릴게요.”

“네.”

“아. 오실 때까지만 있어 줄 수 있어요? 혼자서는 좀.”

“아,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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