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아니 무슨 이런 문제를 내? (2)
‘1일 전 시작된 호흡곤란으로 내원한 78세 남자라…….’
[이현종은 순환기내과 교수이므로 일단 순환기 쪽 원인을 감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냐, 아냐…….’
수혁은 바루다의 말에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오래전, 본과 4학년 때를.
그러니까 딱 지금 우하윤만 했을 때를 떠올렸다.
‘이현종 교수님이 괜히 천재라고 불리는 게 아냐. 이건 100% 다른 분과 환자야.’
[다른 분과 케이스를 문제로 내면서, 그걸 어렵게 낼 수 있단 말씀입니까?]
‘그래, 그러니까 변태 천재지.’
[일단 현 병력으로 넘어갈 것을 요청합니다.]
수혁은 바루다의 말에 따라 마우스를 클릭했다.
그러자 주소, 즉 주된 증상에 멈추어 있던 화면이 현 병력으로 넘어갔다.
과연 이현종이 낸 문제답게, 현 병력부터 괴상하기 짝이 없었다.
“이것 좀 보세요. 무슨 현 병력이 이렇게 기냐구요…….”
우하윤은 벌써 몇 번이나 시도했다가 실패를 했는지, 울상이 되어 있었다.
“길긴 길다……. 게다가 복잡하네.”
수혁은 그녀의 의견에 십분 공감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이 바루다는 현 병력을 데이터화 하고 있었다.
[6주 전 냉동 연어를 먹고 1일 후부터 발열, 설사, 두드러기 등이 있어 로컬 의원에서 항생제 치료를 받았군요.]
‘식중독 정도로 진단을 받았겠지?’
[쓰여 있진 않지만, 네. 그렇다고 판단됩니다.]
‘퇴원 직후……. 왼쪽 다리에 가렵지 않은 피부 발진이 있어 다시 로컬 의원에 입원했어.’
한쪽 다리에 가렵지 않은 피부 병변.
별거 아니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상당한 힌트를 함축하고 있는 문장이었다.
확실히 실제 환자 케이스가 아니라 문제로 만들어진 케이스라는 느낌이 팍 왔다.
[약물에 의한 알레르기 반응 가능성은 크게 떨어지겠군요.]
‘그렇지. 양쪽 다리도 아니고, 가렵지도 않고.’
[실제 로컬 병원에서는 봉와직염이라고 진단 후 세페핌(Cefepime: 세팔로스포린계 항생제)을 쓰다가 반코마이신(Vancomycin: 내성균주에 쓰는 항생제)으로 넘어갔군요.]
‘그런데 안 좋아졌어.’
사실 단순 봉와직염이었다고 한다면 세페핌 선에서 정리가 되었어야 했다.
그런데 반코마이신을 썼는데도 증상이 진행했다니.
수혁의 얼굴에 가는 주름이 잡혔다.
“환자 감염이……. 계속 심해지는 것 같아요.”
우하윤은 패드와 수혁의 옆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딱히 잘못된 판단은 아니었다.
실제 현 병력에도 그렇게 쓰여 있었으니.
“그렇네요. 보면 메로페넴(Meropenem: 슈퍼 박테리아에 쓰는 항생제)까지 썼는데도……. 진행해서 결국에는 엠포테리신 비(Amphotericin B: 광범위 항진균제)까지 썼어요.”
이를테면 쓸 수 있는 약은 다 썼다는 얘기였다.
그럼에도 환자의 피부 병변은 점점 넓어지기만 했고, 내원 1일 전에는 쇼크가 발생해 태화 의료원 응급실로 왔다고 쓰여 있었다.
[100% 산소를 줬음에도 산소 포화도가 적절히 유지되지 않아 기관 삽관 후 중환자실로 입실했군요.]
‘뭐 같아?’
[전신의 피부 발진을 일으킬 수 있는 감염 질환부터 배제해야 하지만, 일단은 그 발진이 어떻게 생겼는지 확인하고 싶군요.]
‘역시 그렇겠지?’
발진의 모양은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저 얼룩덜룩 붉게만 보이겠지만.
사실은 어떤 균에 감염되었는지, 아니면 원인이 바이러스인지 그것도 아니면 독소에 의한 영향인지를 판별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었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겼을 때 화면에 출력된 것은 환자의 과거력이었다.
“환자는 고혈압이 있고, 그레이브스병이 있어요. 하지만 둘 다 약으로 아주 잘 조절되고 있어요.”
우하윤은 벌써 몇 번이나 환자를 치료하려고 시도했던 사람답게 과거력 정도는 술술 꿰고 있었다.
[두 과거력 모두 현재 질환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 보이진 않습니다.]
안타깝게도 바루다의 판단은 ‘별 관련이 없다’였다.
해서 수혁은 계속해서 페이지를 넘겼다.
“환자는 내원 당시에는 이미 쇼크 상태여서 직접 호소한 증상은 없습니다.”
하윤의 말대로 환자의 리뷰 오브 시스템, 즉 전신 문진표는 비어 있었다.
대신 신체 검진란은 아주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내원 당시 혈압 119.51, 심장박동 수 129, 호흡수 33/min, 체온 37.9. 전반적으로 감염 상태를 시사하고 있습니다.]
‘의식은 흐렸고……. 아, 반점 사진이 있네.’
아무래도 이 문제는 실제 케이스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모양이었다.
여러 장의 실제 사진이 떴는데, 환자의 팔, 다리, 몸통 등에 있는 반점이 찍혀 있었다.
[주변과 잘 구분되는 붉은 반점이군요.]
‘크기는 중구난방이네.’
[딱히 침범하지 않은 곳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흐음…….’
이른바 비특이적인 소견이었다.
내심 반점을 보면 수없이 쌓아 둔 데이터를 통해 감별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했던 수혁은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우하윤은 그의 한숨에 다시 한번 미안함을 표했다.
“죄송해요. 괜히 쉬는 날에 귀찮게 해 드린 거 아닌가 모르겠어요.”
“어? 아니에요, 아니에요. 어차피……. 이거 꽤 재밌어요. 몰입해서 그래요.”
“아…….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제 말씀 놓으셔도 돼요. 나이도 더 많으신데요.”
“편해지면 놓을게요.”
수혁은 그리 말한 후, 검진 소견을 향해 눈을 돌렸다.
[호흡이 거칠군요.]
숨을 쉴 때 갈비뼈 사이가 들어간다는 묘사가 있었다.
호흡이 워낙 가쁘다 보니, 갈비뼈 사이의 근육들까지 모두 사용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양쪽 폐음 모두 좋지 않고.’
[폐렴이 이 감염의 원인은 아니겠지만, 충분히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겠군요.]
‘그렇지.’
직접 사인은, 특히 고령에서의 사인은 대개 폐렴인 경우가 많았다.
그 환자가 암 환자였건 다른 환자였건.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하기 전에 발생하는 건 폐렴이란 뜻이었다.
우하윤 또한 그렇게 이 케이스에서 막혔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댔다.
“폐렴으로 계속 죽더라고요…….”
“아, 아직도 그…… 플래시 게임처럼 ‘사망했습니다.’가 떠요?”
“이거 원장님 지시로 게임회사에 외주 줘서 만든 거잖아요. 이거 좋아 보인다고 아빠네도 도입한대요. 올해부터.”
“아하……. 이거 게임회사에서 만든 거구나…… 어쩐지…….”
지금이야 이미 시행된 검사 결과를 보고 있는 것이지만.
이걸 다 끝나고 나면 뭔가 선택지가 주어졌다.
어떤 검사를 할 것인지, 어떤 치료를 할 것인지.
그럼 그 행위에 따라 환자 상태가 변했는데, 잘못되면 환자 사망으로 이어지기 일쑤였다.
[혈액 검사상 백혈구가 증가해 있으며 그중에서도 중성구가 메인을 이루고 있습니다. 세균성 감염을 시사합니다.]
‘크레아틴은 왜 이렇게 높냐? 신장 나가고 있는데?’
[나트륨도 떨어져 있군요. 쇼크가 왔다고 하니……. 아마 그로 인한 신부전 증상이 발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걸 살리라고 낸 거지? 학생들한테?’
[이현종 원장은 말 그대로 변태군요.]
이 상태의 환자가 응급실로 실려 온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현 내과 레지던트 중에도 혼자 보라고 하면 환자 죽일 놈들이 수두룩할 터였다.
그런데 이걸 학생한테 냈다고?
이현종은 미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의 주치의가 된다 이 말이지.’
[제가 최선을 다해 보필하겠습니다.]
‘그렇게까지 위로가 되진 않는데.’
[일단 이것부터 풀어 보죠. 예행 연습이라고 치고.]
‘그래…….’
수혁은 일단 눈앞에 놓인 숙제부터 해결하기로 마음먹은 채 재차 검사 결과를 살폈다.
환자는 로컬 병원에서 시행한 흉부 X-ray 사진을 첨부해 온 모양이었다.
날짜별로 표기가 되어 있었다.
[4일 전부터 급격히 진행했군요.]
‘너무 빠른데. 항생제를 사용하고 있었다는 걸 감안하면……. 말이 안 될 정도야.’
환자의 흉부 사진은 불과 4일 만에 까만 정상 폐 모양에서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CT도 찍었어요, 선배.”
“그래? 어디?”
“여기요. 흉부랑 복부.”
“아, 거기 사이에 끼어 있었네. 모르고 넘어갈 뻔.”
수혁은 그리 중얼거리며 CT 영상을 살폈다.
[흉부는 X-ray와 거의 정확히 일치하는군요. CT는 태화 의료원에 와서 찍은 것 같습니다.]
‘복부엔……. 이거……. 설마 다 임파선인가?’
[불규칙하게 종대되어 있군요. 악성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반응성 임파선 종대가 이렇게 다발적으로 나타난다라? 역시…….’
[전신 염증 반응을 시사합니다.]
사실 CT를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 환자는 내원 당시 38도 이상의 열이 있었고, 분당 호흡수가 무려 33회로 숨이 가빠져 있었고, 심장 박동도 빨라져 있었으며, 백혈구 수치도 크게 올라가 있었으니까.
모두 전신 염증 반응에 합당한 소견이었다.
“뭐가 이렇게 만든 거지?”
이제 중요한 것은 원인을 찾는 것이었다.
화면에는 먼저 추가하고 싶은 검사 목록이 주르륵 떴다.
간단한 혈액 검사 및 소변 검사부터 PET CT까지.
아예 병원에서 가능한 검사가 다 떠 있었다.
‘설마 이 결과를 다 구현해 놨나……?’
수혁은 그런 생각을 하며 하윤을 바라보았다.
하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뭘 눌러도 검사 결과는 떠요…… 근데 그러다 시간 보내면 환자가 죽어요.”
“나 원. 그럼 진짜 검사 하나도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뜻이잖아? 설마 돈도 뭐 제한 있고 그런 건 아니지?”
“아, 아뇨. 그건 아니에요.”
“다행이네.”
수혁은 어느덧 자신이 말을 놓고 있다는 것도 잊은 채 케이스에 몰입했다.
[우선 심각한 감염이 의심되니, 원인부터 감별해야 합니다. 혈액 배양 검사, 객담 배양 검사 및 염색, 균주에 대한 PCR 등을 요청합니다.]
‘음.’
타당한 의견이었다.
저 위에 있는 검사들만 보면 원인이 뭔지 알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문제도 있었다.
시간.
‘그거 결과 보려면 최소 2주는 걸릴걸.’
[음.]
‘그사이에 환자는 죽겠지.’
수혁은 이게 그저 시험 문제에 불과하다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
그 정도로 케이스는 리얼했다.
‘뭔가 치료를 같이 해야 해. 메로페넴까지 안 들었으니, 일단 테이코플라닌을 추가하지. 어때?’
[타당한 선택입니다.]
‘신장에 대해서는 투석을 돌리고.’
[필수적인 선택이 될 거 같습니다.]
‘그런데…….’
수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화면을 앞으로 넘겼다.
그가 멈춰 선 것은 환자의 발진을 찍어 둔 사진이 있는 페이지였다.
‘여기서 암만 봐도 뭔가 더 알아내야 할 거 같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