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더 어렵게 내냐? (1)
“얼씨구.”
이현종 원장은 월요일 아침이 되자마자 자신의 주치의, 즉 이번 달부터 주치의가 된 수혁이 수거해서 온 패드를 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죄다 죽어서 왔을 거란 생각과는 달리, 딱 한 명이 살아서 왔기 때문이었다.
이름을 보니 우하윤이었다.
“이거 애비가 봐 줬나?”
그렇지 않고서야 살렸을 턱이 없었다.
애초에 맞추라고 낸 게 아니었으니까.
‘설마 진짜 하윤이만 맞췄을 줄은 몰랐네.’
[저도 똥줄 탔던 문제입니다. 학생 수준에서 맞출 수 있을 리가 없죠.]
‘괜히 곤란해지는 거 아냐?’
[글쎄요.]
수혁과 바루다가 이러쿵저러쿵 얘기를 나누는 동안 이현종은 우창윤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간이 워낙 이른 시간이었기 때문에 우 교수 또한 딱히 외래에 들어가 있거나 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네, 이현종 원장님.”
해서 즉각 전화를 받았다.
이현종은 기인 취급 받는 사람답게 앞뒤 다 자른 채로 입을 열었다.
“어. 우하윤이 숙제 네가 풀었어?”
“네?”
당연하게도 우창윤 교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이현종은 이미 답을 정한 상태였기에 거침이 없었다.
“야, 네가 봐 줬잖아. 어차피 우하윤 걔 1등 졸업 거의 확실시되고 있던데. 뭐 하러 이래.”
“네? 아니……. 무슨 소리이신지…….”
“이번 PBL 문제. 네가 풀어 준 거 아냐?”
“무슨……. 아, 그……. 드레스요?”
“그래! 그거.”
“아뇨. 아닌데요. 그거 제가 풀어 주면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 걔한테.”
“그래?”
이현종은 이 새끼가 혹시 거짓말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우창윤이라는 놈이 그렇게까지 세심한 놈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허술한 축에 속했다.
아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라면 벌써 들켰을 터였다.
아니, 애초에 딸 숙제랍시고 봐 줄 생각 자체를 못 했을 게 분명했다.
“근데 이걸 어떻게 맞췄지?”
“맞췄어요? 와, 하윤이 대단하네. 공부 진짜 열심히 했나?”
“이거 공부한다고 맞추는 게 아닌데.”
이현종 원장은 이제 막 오전에 있을 수업에 갈 채비를 하고 있었어야 할 참이었다.
오늘 강의의 주제는 ‘책상에 앉아서 공부만 한다고 환자를 살릴 수는 없다’였고.
너희가 왜 이 환자를 살리지 못했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을 풀 요량이었다.
그런데 맞추다니.
난감했다.
“아, 맞아.”
그렇게 한참 인상을 구기고 있으려니, 우창윤 교수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뭐야. 역시 네가 알려 줬지?”
“아뇨, 아뇨.”
“그럼 뭐야. 골프 치자고? 너 맨날 사기 쳐서 너랑은 안 쳐.”
“아니, 아니. 아뇨. 제가 현태예요?”
“그럼 뭔데.”
“그……. 하윤이가 이번 주말에……. 아, 이거 말하기 싫었는데. 아녜요. 됐어요.”
원래 이런 식으로 말을 끊으면 듣는 사람은 미치고 팔짝 뛰게 되는 법이었다.
특히 이현종처럼 궁금한 거 잘 못 참는 사람은 아예 돌아 버릴 지경이었다.
“야! 전화 끊지 마! 끊으면 너 죽어!”
“아니…… 아녜요. 됐어요.”
“이 새끼가 진짜?”
“그럼……. 화내지 않기. 그거 약속하면 말할게요.”
“뭐……. 무슨 짓을 했길래 이래?”
“약속해 주면 말할게요.”
이현종 교수는 이 새끼가 돌았나 하는 눈빛으로 수화기를 잠시 바라보았다.
도대체 뭔 짓거리를 한 건지 짐작이 가질 않았다.
‘반드시 화를 내야 할 일 아냐, 이거?’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끊기엔 뒷얘기가 너무 궁금했다.
그냥 가면 끙끙 아플 거 같을 지경이었다.
“알았어. 화 안 내. 약속.”
해서 이현종 원장은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우창윤 교수는 그런데도 믿기 어려운지 재차 확인을 받았고.
“진짜죠?”
“알았다니까. 끊으면 뒈져, 진짜.”
“네. 사실 하윤이가 주말에 수혁이를 만났어요. 이수혁.”
하지만 수혁 얘기를 딱 듣는 순간 이현종은 폭발했다.
그가 최근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애가 바로 이수혁이었으니까.
“야, 이 개새끼야!”
“어어, 화 안 낸다고 해 놓고선.”
“화 안 내게 생겼냐? 지금 미인계야 뭐야! 남의 유망주를 왜 만나!”
“에이……. 미인계라뇨. 하윤이 얼굴 많이 봐요.”
“그럼 뭔데!”
“그…….”
그렇게 친해지면 우창윤이 직접 슥 만나 볼 생각이기는 했다.
아선 병원 복지나 교수 연봉 등등에 대해 자세히 얘기해 주려고 했고.
하지만 분위기를 보아하니 그런 말을 했다간 당장 찾아올 거 같았다.
“하윤이도 이수혁처럼 좀 우수한 내과 의사가 됐으면 하는 마음이죠, 뭐. 딴 게 있겠습니까.”
“음……. 수상한데…….”
“아니에요. 아닙니다, 정말.”
“근데 이수혁이랑 주말에 본 게 뭔 상관이야?”
“그……. 하윤이가 그 패드를 수혁이에게 보여 준 모양이던데요. 그래 봐야 1년 찬데 뭘 어쨌을까 싶긴 하지만……. 이수혁이니까 혹시 모르죠.”
“어?”
이현종은 뜨악한 얼굴이 된 채 앞을 바라보았다.
그의 책상 앞은 허공 대신 수혁이 채우고 있었다.
즉 수혁을 마주 보게 되었다, 뭐 이런 뜻이었다.
“너, 네가 이거 풀었냐?”
“응? 앞에 있어요? 그럼 잘 지내냐고 좀 물어봐 줘요.”
“넌 닥치고 있어. 아니, 끊어.”
“야, 수혁아. 나 하윤이 아…….”
이현종은 우창윤 교수가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전화를 끊은 채 수혁을 재차 바라보았다.
“네가 풀었어?”
우하윤의 패드를 탁탁 두드리면서였다.
수혁은 어찌 대답해야 하나 잠시 고민에 잠겼다.
그에 반해 바루다는 별걱정이 없어 보였다.
[뭘 망설이는 겁니까. 이현종은 분명히 칭찬할 겁니다.]
‘엄청 곤란해하던데?’
[그건 그거고. 수혁이 우수하다는 착각은 별개죠.]
‘착각?’
[아, 이번에는 정말 우수했습니다. 정정합니다.]
‘음…….’
수혁은 여전히 고민이 되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감히 햇병아리 1년 차 주제에 원장한테 거짓말을 늘어놓을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까.
“네, 제가 풀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남의 숙제인데…….”
“어떻게? 어떻게 풀었지?”
“네?”
“이거……. 함정이 있잖아. 게다가 드레스에서 이런 식으로 염증이 진행하는 건 진짜 드물다고. 때려 맞췄어?”
“아……. 그건 아닙니다. 제가 어떻게 했냐면…….”
수혁은 차근차근 왜 드레스를 의심하게 되었는지, 그걸 최대한 안전하게 검사하기 위해 어떤 검사와 치료를 선택했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허.”
“하.”
“오.”
이현종 원장은 아주 다양한 감탄사로 수혁의 말에 화답해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결론에 다다랐을 때는 손뼉까지 쳐 주었다.
“잘했네. 그래, 그게……. 거의 정석이지. 흠.”
그리곤 잠시 안타깝다는 표정이 되었다.
사실 이 문제의 베이스가 된 케이스는 실제 태화 의료원 내과 의국에서 본 바 있는 케이스였으니까.
‘모탈리티 콘퍼런스 케이스였지.’
모탈리티 콘퍼런스.
환자가 사망한 경우 그리고 그 사망에 이르게 한 질환이 치료 가능한 질환이었던 경우에 열리는 콘퍼런스였다.
이현종 원장은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이 케이스를 베이스로 해서 문제를 만들었던 참이었는데.
그걸 수혁이 맞춰 버린 것이었다.
1년 차 주제에.
‘그때 이수혁이 있었다면 이 환자 살았겠네.’
당연하게도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보다 더 큰 감정은 역시 대견함이었다.
“야, 수혁아.”
“네.”
“오전에 뭐 없지?”
“아……. 스케줄 없으면 협진 도우라고 지시받았습니다.”
“누구한테?”
“김인수 선생님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최근 협진 스케줄을 돌고 있는 모든 레지던트들에게 수혁은 거의 블루칩과도 같은 존재였다.
너무 빠른 속도로 환자를 파악하는데, 심지어 너무 정확하기까지 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1년 차인 수혁 입장에서는 그들의 요구를 차마 거절할 수 없는 데다가.
협진 나는 질환 중에서는 꽤 재미난 것들이 많아서 어지간하면 가고 있었다.
“가지 마.”
하지만 원장의 명이 있다면 얘기는 크게 달라졌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수혁은 그리 답하면서 문자를 보냈다.
<원장님이 오늘 오전 협진 방 가는 대신 다른 일을 시키겠다고 하셨습니다. 죄송합니다.>
가뜩이나 ‘원장의 숨겨 둔 아들이다’, ‘아니다. 그냥 흙인데 총애를 받는 거다’ 하는 식의 소문이 돌고 있는 수혁 아니던가.
거기에 원장 핑계를 댔는데 잡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김인수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어, 그래. 알았어.>
당연히 이런 문자만을 보내 왔을 뿐이었다.
그렇게 오전 스케줄이 비게 된 수혁을 향해 원장이 말을 이었다.
“같이 수업하러 가자.”
“네?”
“수업 망쳤잖아, 네가. 책임지라고.”
“네……? 책임을……. 어떻게…….”
수혁은 무척 혼란스럽다는 얼굴로 이현종을 바라보았다.
이현종은 그런 수혁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아니, 뭐 그렇게 심각해질 필요는 없고. 한 십 분 정도만 네가 케이스 만들어서 PBL 진행해 봐.”
“어……. 케이스를요?”
수혁은 자신도 모르게 뒤편에 있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원장이 들어갈 수업 시간은 3교시.
즉 10시 반이었다.
지금 시간은 8시였고.
즉 가는 시간을 빼면 수혁에게 주어진 시간은 2시간이 최대였다.
“그래. 순환기내과 케이스로. 뭐 너무 쉬워도 돼. 어차피 학생 애들은 쉽게 내도 다 틀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라 할 수 있었다.
문제를 푸는 것과 만드는 것은 아예 다른 차원의 문제였으니까.
게다가 2시간밖에 없는데.
그걸 만들라니.
이 사람이 미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혁. 이건 기회입니다. 받아들이십쇼.]
‘뭔……. 뭘 받아들여.’
[왜 수업을 시키겠습니까? 레지던트에게.]
‘수업 망쳐서.’
[아니죠. 아니죠. 그냥 의사들은 평생 할 일 없는 게 강의 아닙니까? 오직 교수만 강의를 합니다.]
‘그, 그럼……. 설마…….’
[바로 그겁니다.]
바루다의 말을 듣고 보니, 또 그럴싸했다.
강의를 시켜 본다는 건 또 하나의 시험이란 생각으로 이어졌고.
‘근데 할 수는 있는 거야?’
[수혁. 그간 데이터가 꽤 많이 수집됐습니다. 케이스 리포트라면 무궁무진합니다.]
‘아……. 하긴.’
다른 사람들이라면 심전도는커녕 혈액 검사 결과 하나도 고심해서 만들어야 할 터였다.
하지만 수혁은 달랐다.
바루다가 딱딱 데이터화를 해 둔 참이었으니까.
그걸 그대로 출력해서 만들면 될 일이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한번 해 보겠습니다.”
이현종은 자신이 기대했던 것보다 너무 자신 있어 보이는 수혁을 보며 허허 웃었다.
“무리하지는 말고. 나도 스페어 케이스는 있어.”
“네. 원장님.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아니……. 무리하지 말라니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