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이게 뭐여 (1)
타닥.
타닥.
수혁은 지팡이를 짚은 채 어렵게 어렵게 침대를 따라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왜인지 모르게 앰부(Ambu: 인공호흡 주머니)를 짜게 된 신경과 레지던트와 침대를 끌고 있는 인턴 그리고 원장과 함께였다.
“예약은 됐나?”
이현종은 잠시 환자의 혈압과 심장박동 수 등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는 수혁을 돌아보았다.
“네, 원장님. 응급 심혈관 조영술실은 비어 있었습니다.”
“하긴 시설이 없어 못 하나, 사람이 없어 못 하지.”
수혁의 말에 이현종은 뼈 있는 넋두리를 하고는 엘리베이터의 표기된 숫자가 천천히 변하는 것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심혈관 조영술실이라고 해 봐야 3층에 있어서 엄청 가까웠지만.
실시간으로 죽어 가고 있는 환자와 함께 있다 보니 마음은 초조하기만 했다.
“이거 속도 좀 빠른 거로 하라니까……. 병원에 돈 들어오면 다 얻다 쓰는 거야.”
이현종은 그런다고 빨리 가는 것도 아닌데 3층을 연타하고 있었다.
‘역시 좀 이상하긴 해.’
[정신과적인 경험이 더 쌓이면 한 번쯤 진단을 시도해 보고 싶습니다.]
‘미친 소리 하지 말고.’
[아, 문 열립니다.]
‘빨리 가자. 난 걸음이 느려서.’
[이것도 고치긴 해야 하는데.]
바루다는 절뚝이는 수혁의 다리를 느끼며 중얼거렸다.
그 말에 수혁은 약간의 기대감을 품은 채 바루다를 향해 물었다.
‘방법 있냐?’
[아뇨, 아직은요.]
‘왜 기대감을 품게 만들고 난리야.’
[해당 지식을 쌓은 적이 없는데요, 수혁이.]
‘내 핑계 대지 말고…….’
수혁은 끊임없이 조잘거리면서도 용케 단 한 번도 헤매지 않고 심혈관 조영술실을 향해 달려갔다.
수혁이 여기서 실습 학생 노릇을 한 덕도 있긴 했지만.
바루다가 병원 지도를 머릿속에 박아 넣은 덕이 더 컸다.
드르륵.
덕분에 수혁은 다소 느린 걸음임에도 불구하고 제일 먼저 조영술실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아, 원장님 오셨습니까!”
문이 열리자마자 조영술실 기사 둘이 일어나 깍듯하게 인사를 건넸다.
실습 학생 때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 취급을 받았고, 인턴 때는 아예 무시당했던 수혁으로서는 상당히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역시, 역시 사람은 출세하고 볼 일이로구만.’
예전 같았으면 바루다가 바로 태클을 걸었을 발언이었으나.
이제는 바루다도 어느 정도 수혁과 동조를 하고 있는 상황인지라 별말은 없었다.
“어어. 아니, 그런 거 하지 말고 준비나 제대로 하라니까.”
그에 반해 이현종은 허례허식 따위엔 별 관심이 없는 위인이었다.
그저 재밌는 일과 환자, 이 둘에만 관심을 두었다.
“네, 원장님. 이쪽으로 오시죠.”
물론 기사들은 원장의 취향을 아주 잘 알고 있었고, 준비는 완벽하게 마쳐져 있었다.
수혁이 전화를 건 게 기껏해야 10분 전이라는 걸 떠올려 보면 이게 가능한가 싶을 지경이었다.
“좋아. 수혁아 너도 납복 걸쳐. 이거 신경 안 쓰다 고자 된 친구 많아.”
“네.”
고자라니.
다리도 저는데 고자까지 되는 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
수혁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인 후, 비틀거리며 납복을 걸쳤다.
“그 위에 가우닝하고. 거기 그……. 이름이 뭐지?”
“신경과 3년 차 최준용입니다, 원장님.”
“어, 신경과. 계속 짜고. 거기 인턴 샘은 여기 도와서 환자 옮기고. 팔 떨어지지 않게 해. 팔. 맨날 팔 아프다고 컴플레인 듣는데 아주 죽겠어.”
“네…….”
최준용은 어차피 신경과라고 부를 거면 이름을 왜 물어봤나 생각하면서 있는 힘껏 앰부를 쥐어짰다.
“웃차.”
기사들과 인턴은 서로 힘을 합쳐서 환자를 시술대 위로 옮겼다.
[자, 이제 환자 소독하시죠. 우측 허벅 혈관 쪽으로 해야 하는 건 알고 있죠?]
‘알지. 내가 바보냐?’
[음.]
‘음?’
[아닙니다. 베타딘으로, 그래요. 거기. 좋아요.]
그동안 가우닝을 마친 수혁은 일단 가위로 환자의 바지춤을 잘라 낸 후, 베타딘을 집어 들었다.
그리곤 바루다의 가이드대로 환자의 우측 허벅 혈관 쪽을 슥슥 닦아 냈다.
그 모습을 본 이현종은 또다시 감탄을 터뜨렸다.
솔직히 이 정도는 내과 의사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이미 그의 마음속에서 수혁은 뭘 해도 이쁜 놈이었다.
“역시 우리 수혁이.”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기사 쪽을 바라보았다.
단지 바라보았을 뿐인데 기사는 슥 하고 움직여서 엑스레이를 이용한 투시경을 절묘하게 돌려 환자의 우측 허벅지를 비춰 주었다.
“어어. 지금 켜지 말고! 여기 신경과랑 인턴 고자 된다니까?”
“원장님, 아직 기계 안 켰어요.”
“아, 그래? 그 뒤에 비친 거 뭐야. 아, 전에 찍은 거구나. 허허.”
이현종은 버럭 화를 낸 것이 좀 민망한 듯 껄껄 웃었다.
그리곤 손을 휘휘 저어 대며 말을 이었다.
“자, 이제 신경과랑 인턴은 손 바꾸고. 앰부 계속 짜고.”
“네. 원장님.”
“카테터 주고.”
“네. 원장님.”
바로 눈앞에 심근경색 환자가 누워 있다고 하기엔 너무 여유로운 표정과 태도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행이 느린 것은 또 결코 아니었다.
기사들도 원장도 베테랑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심장내과도 멋지긴 하다, 정말.’
[다리 불편해서 할 수 있을까요?]
‘나? 나는 좀 무리지. 벌써 좀 힘든데.’
소독된 가운을 입고, 장갑까지 꼈는데 지팡이를 짚을 순 없지 않은가.
그냥 서 있으려고 하다 보니 아무래도 좀 힘들었다.
[어렵겠군요.]
‘그렇지. 나는 진단이나 해야 해.’
[그렇게 말씀하지 마시죠. 진단이야말로 의학의 꽃이자 전부입니다.]
‘뭐……. 그야 그렇지.’
[솔직히 수술이나 시술은 기술자 아닙니까?]
‘맞는 얘기야.’
둘은 외과 사람이 들었다면 메스 들고 뛰어올 만한 소리를 하면서 환자의 우측 허벅지를 양손을 이용해 슬쩍 당겨 주었다.
“잘했어. 그리고 잘 봐라, 저기.”
이현종은 짤막한 칭찬과 함께 턱으로 화면을 가리켰다.
화면엔 어느새 전원이 들어온 투시 기기에 의해 허벅지 근처 영상이 떠 있었다.
아주 뾰족한 무언가가 살갗을 막 뚫고 있는 중이었다.
폭.
수혁이 좌우로 당겨 준 덕에 카테터는 그리 어렵지 않게 살갗을 뚫고 들어갔다.
“자…….”
이현종은 그가 집중할 때 특유의 그 혓바닥을 반쯤 내미는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하지만 멈추지는 않은 채 카테터를 전진시켰다.
허벅 동맥을 향해서였다.
“잘 보면, 통통 튀는 게 보여. 보이냐?”
“네.”
“그게 동맥이고, 옆에 있는 게 정맥이겠지. 헷갈릴 일은 없겠지만, 뭐 그래도 간혹 사고 치는 경우가 있어.”
숙달된 순환기내과 의사조차도 타겟한 혈관을 헷갈려서 다른 걸 뚫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그렇게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경우도 있었고.
하지만 이현종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인의 실수로 인해 환자를 잃은 적은 없는 의사였다.
이번에도 그러했다.
“좋아.”
그는 순식간에 허벅 동맥을 뚫은 후, 수혁을 돌아보았다.
수혁은 바루다의 조언에 따라 들고 있던 가이드 와이어를 카테터에 난 구멍을 통해 집어넣어 주었다.
“잘하네. 너 처음 맞아?”
“네? 네. 처음입니다.”
“하긴 그렇지. 누가 1년 차 데리고 이걸 할 수 있겠어. 실수라도 하면 골로 가는데. 그저 나 같은 천재나 가능한 거야, 허허.”
이현종은 그렇게 수혁에게서 받아 든 가이드 와이어를 술술술술 집어넣었다.
정말 아무 생각 없는 사람처럼 마구마구 집어넣었다.
그렇게 신기한 건, 그렇게 들어간 가이드 와이어의 끝이 단 한 번도 꼬이는 일 없이 쭉쭉 위로 올라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게 돼?’
[흐음. 술기도 신기한 점이 있긴 하군요.]
수혁이나 바루다나 지금 두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아마 믿지 못했을 터였다.
하지만 둘은 투시 기기를 통해 가이드 와이어의 끝을 두 눈 똑똑히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방사선사 또한 원장 못지않은 베테랑인지라 투시 기기 조종하는 솜씨가 만만치 않아서 가이드 와이어를 놓치지 않고 쭉 따라가고 있는 덕이었다.
“오케이. 여기서 살짝…… 요렇게 틀고.”
그렇게 들어간 가이드 와이어는 어느새 복부 대동맥을 지나 흉부 대동맥마저 지나서 대동맥 궁을 지나는 중이었다.
원래도 일이 이렇게 빠른가 하면, 역시나 결코 아니었다.
괜히 이현종 교수의 심혈관 조영술을 보기 위해 각지에서 몰려든 것이 아니란 얘기였다.
지금이야 원장이라 다른 거 귀찮다고 고사하고 있긴 하지만.
전성기 때는 미국이고 뭐고 어디서든 와서 그의 이 조영술을 배우고자 했더랬다.
“와.”
“이게 대단한지 알겠어?”
“네? 네. 궁을……. 이렇게 통과하다니.”
“그래. 네가 우리 펠로우 놈보다 낫네. 그놈은 맨날 뚱해가지고.”
이현종은 그렇게 잠시 펠로우 흉을 보더니 마침내 대동맥 궁, 즉 유턴하는 모양으로 휜 혈관 내부를 통과해 가장 중요한 지점에 도달했다.
바로 관상동맥이 시작하는 그 지점이었다.
“클로즈업해 봐. 여기 쫘악 당겨서.”
“네, 원장님.”
기사는 그 말만 기다렸다는 듯 가이드 와이어의 끝을 확대해서 잡아 주었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꽤 작게 보였던 와이어가 거의 볼펜만 한 두께로 보이기 시작했다.
“죽이지? 이거 기계가 몇억짜리야. 병원에서 안 사 준다고 하는 거 내가 가서 몇 번 누우니까 사 주더라.”
“아, 네…….”
어쩐지 누웠다는 게 은유가 아니라 진짜일 것 같았다.
모르긴 해도 지금껏 겪은 이현종이라면 충분히 그럴 것 같았다.
“어디……. 응?”
그런데 지금껏 자신만만하게만 보였던 이현종 원장의 얼굴에 가는 주름이 잡혔다.
뭔가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분명 제대로 잘 찾아서 왔는데, 늘 보던 그 광경이 아니었다.
대동맥에서 분명 오른쪽, 왼쪽 두 갈래로 나가야 할 관상동맥이 아니라 딱 하나만 뻗어 나가 있었다.
“이런 젠장.”
“아나토미칼 베리에이션(Anatomical variation: 해부학적 변이)…….”
외과적인 시술에 있어서 해부학적 변이는 간혹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하기 마련이었다.
특히 지금처럼 극히 드문 형태의 변이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원 베슬이군요. 모든 관상동맥이 좌측 관상동맥의 분지 형태를 하고 있을 겁니다.]
‘0.1% 아냐?’
[맞습니다. 어려울 수도 있겠는데요?]
바루다의 말마따나 이현종은 쉽사리 혈관 안으로 가이드 와이어를 집어넣지 못하고 있었다.
심전도를 통해 우측 관상동맥이 막혔겠거니 하고 들어왔는데, 우측 관상동맥이 없는 상황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교수님, 원 베슬 베리에이션 같습니다. 우선 좌측으로…….”
“그래.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맞겠지.”
하지만 역시 이현종은 베테랑이었다.
수혁의 말이 있기도 전에 벌써 유일한 관상동맥 안에 가이드 와이어를 조심스럽게 집어넣고 있었다.
단 하나의 혈관인 경우 자칫하면 그 혈관 전체가 시술로 인해 틀어막힐 수도 있기 때문에 주의에 주의를 요구하는 작업이라고 보면 되었다.
“천천히……. 천천히…….”
하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 수천 케이스도 넘게 성공적으로 시술해 낸 이현종은 고비에 고비를 넘겨 좌측 관상동맥의 우측 분지 안으로 가이드 와이어를 삽입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곧이어 이현종이나 수혁의 입에서 튀어나온 것은 감탄이 아닌 탄식이었다.
“짧아…….”
“혈관이 짧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