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이게 뭐여 (2)
해부학적 변이.
일정 확률로 확인되는 소견을 칭하는 단어였다.
대개는 일정 확률이라고 해 봐야 10% 내외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즉 수술이나 시술을 하는 입장에서 어느 정도는 예측을 하고 들어간다는 뜻이었다.
애초에 술기 자체가 해부학적 변이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지는 경우도 많았고.
‘이……. 이럴 확률은 몇이냐?’
[좌우 관상동맥이 하나의 혈관으로 대동맥에서 분지되는 것 자체가 0.1% 미만입니다.]
‘그중에서 우측으로 뻗는 혈관이 이렇게 짧고, 좌측으로 뻗는 혈관에서 또 분지가 있는 건?
[제가 가지고 있는 데이터에 한해서는 통계로 잡힌 적이 없습니다.]
‘케이스 리포트에서도 못 본 거 같은데.’
[아뇨, 한 번 본 적이 있습니다. 딱 한 번.]
‘아……. 그랬나.’
말하자면 정말, 정말 드문 케이스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 뜻이었다.
뒤에서 보조만 하고 있는 수혁도 이렇게 당황스러울 정도이니, 직접 시술을 맡고 있는 이현종은 진짜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제라도 흉부외과를 불러?’
그는 호기롭게 들어갔던 가이드 와이어를 후퇴시키며 흉부외과 쪽 옵션을 떠올렸다.
혈관 하나에서 시작한 것도 감수하고 우측 관상동맥 분지를 향해 가이드 와이어를 집어넣었건만.
이게 불과 5cm도 채 안 될 줄이야.
‘아……. 껄끄러운데.’
이현종이 누구인가.
한때 무조건 흉부외과에서 가슴을 열어야 한다고 굳게 믿어 와서 케이스들을 하나하나 안 열고 스텐트 넣어도 된다고 내과 영역으로 품고 들어온 장본인이 아니던가.
심지어 이현종은 칼 들고 심근경색 쫓는 흉부외과 의사들 뒤에서 화살로 경색을 맞추는 만화까지 그려서 대대적인 순환기내과 홍보를 했던 적도 있었다.
‘원수지, 원수.’
실제로 흉부외과 교수들은 이현종이 원장이 된 이후에도 인사를 잘 하지 않았다.
학회 차원의 원수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쩐다?’
게다가 지금은 의학적으로도 좀 늦었다 싶은 상황이었다.
아까 혈관이 하나인 것을 확인했을 때 그냥 빼고 가슴 열 걸 하는 후회가 복받치는 와중이었다.
“저, 원장님.”
바로 그때 수혁이 입을 열었다.
“응?”
“일단 제가 흉부외과 콜하겠습니다. 개흉 가능성 있다고 하면 오기는 오지 않을까요?”
“아, 네가 그렇게 해 줄래? 내가 시술 중인 것만 얘기 안 하면 해 주긴 할 거야. 근데…….”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았다.
흉부외과 입장에서는 이미 죽은 사람 떠넘겨 받는 느낌이 들 테니까.
“그래도 부르긴 해야 합니다. 너무 위험합니다.”
“그건……. 그렇지.”
“그리고.”
“그리고?”
“전화만 드리고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이현종은 이제 가이드 와이어를 다시 대동맥에서 관상동맥 전체 가지가 뻗어 나오는 곳으로 빼 낸 참이었다.
아예 대동맥 쪽으로 빼진 않고 있었는데, 한 번 더 도전을 할까 말까 고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차에 수혁이 뭔가 다른 말을 하려고 하는 것 같으니, 귀가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수혁은 자신을 향해 귀를 기울이고 있는 이현종을 힐끔 보고는 기사에게 부탁해 전화를 걸었다.
여느 병원이 그러하듯 심혈관 조영술실에는 흉부외과 당직의와 핫라인이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연결은 즉시 이루어졌다.
“네, 선생님. 저는 내과 1년 차 이수혁입니다.”
“1년 차? 왜요? 사고 났어요?”
흉부외과 측에서도 조영술실 번호 정도는 숙지하고 있었다.
때문에 전화를 건 사람이 비록 1년 차라 해도 절대 무시하는 일은 없었다.
“아직 CPR 상황은 아닙니다. 하지만 해부학적 변이가 있어서 위험합니다.”
“변이? 뭐……. 혈관 하나예요?”
“네.”
“근데 설마 안으로 들어갔어요? 와이어?”
전화를 받은 사람은 펠로우였다.
혈관이 하나인 변이에서는 내과에서 처리하는 대신 흉부외과가 처리하는 것이 보편적인 경우였고.
그래서 목소리가 약간 높아져 있었다.
“네. 병변이 혈관에서 그렇게 멀지 않을 거로 예상되어서 들어갔습니다.”
“아니, 무슨 그런……. 아.”
펠로우는 계속 화를 내려다 말고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렸다.
“설마 이현종 교수님?”
“네.”
“에이, 씨……. 알았어요. 수술방 수배하고 가겠습니다. 그냥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마시라고 해요. 환자 바이털은. 바이털은 괜찮아요?”
“지금은 안정적입니다만, 기저에 이미 우심실 경색이 있어서 혈압은 낮습니다.”
“네. 알겠어요. 바로 갈게요. 일단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해요.”
“네.”
수혁은 어차피 이현종에게 말해 봐야 들어먹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여태 자신을 향해 귀를 기울이고 있는 이현종을 돌아보았다.
그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정말 이 말을 계속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분석 끝났습니다. 이 환자의 해부는 정확히 제가 확보하고 있는 케이스와 일치합니다. 지금 화면에 떠 있는 투시 화면을 대조해도 결과는 같습니다.]
하지만 망설이려는 순간 바루다가 어마어마한 용기를 지원해 주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후다닥 입을 열 수 있었던 건 아니긴 했지만.
‘정말 괜찮겠지?’
[수혁. 그 케이스는 동일한 상황에서 가슴을 열려다가 사망했습니다. 아마 중재술이 가능했다면 살았을 겁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개흉은 개흉만으로 시간이 어마어마하게 걸립니다.]
‘하긴 그렇지…….’
그냥 수술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30분은 잡아먹을 터였다.
수술이라는 게 그냥 칼 하나 덜렁 들고 뛰어들 수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마취도 해야 하고, 소독도 대대적으로 해야 하고, 소위 말하는 드랩도 쳐야 했다.
[빨리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이러고 있는 동안에도 시간이 흘러갑니다.]
그 말은 곧 환자가 죽어 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수혁이 비록 미친 듯이 사명감이 뛰어난 의사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평균에 못 미치는 사람은 아니지 않은가.
해서 어렵게 입을 열었다.
“원장님. 제가 케이스에 대해 감히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말은 그가 하고 있지만, 실은 바루다의 의견이었다.
여전히 여기서 더 갈까 말까를 고민하고 있던 이현종은 대번에 고개를 끄덕였다.
교수가 1년 차에게 조언이라.
다른 교수 같았으면 어림도 없을 만한 일이었지만.
이현종은 무척 사고가 유연한 사람이었다.
본인부터가 수십 년간 이어져 내려오던 의학적 사고의 틀을 깨 버린 사람이니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해 봐. 흉부외과 부르긴 했는데……. 알지? 이 상황에서 개흉은 죽을 확률 50%가 넘어.”
“네, 원장님. 1994년 유니버시티 오브 어바인 캘리포니아 병원 케이스를 보면 이것과 정확히 같은 해부학적 변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1994년 UCI?”
“네.”
“계속해 봐.”
UCI는 어바인이라는, 엘에이 바로 아래 정도에 위치한 꽤 우수한 대학이었다.
하지만 UCI 병원 자체는 아주 좋다고 부르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는 병원이라 할 수 있었다.
실제로 지역 주민 수용률 또한 근처에 있는 의료원에 밀릴 정도였다.
물론 그렇다고는 해도 기본적으로 미국에 있는 대학 병원이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수준은 유지하고 있었다.
“당시 그 환자 또한 의식 저하를 동반한 우심실 경색을 주소로 응급실로 실려 왔습니다.”
“이 케이스랑 같네.”
“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중재적 시술, 즉 스텐트는 아주 드물게 시행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환자는 즉시 수술방으로 옮겨져 개흉 후, 혈관 우회 수술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됐지?”
“이미 실려 왔을 때부터 시간이 꽤 흘러 있었고, 다른 검사를 하지 못하고 수술에 들어가는 바람에 해부학적 변이를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아……. 거기서도 헷갈렸겠구나.”
하긴 그랬을 터였다.
그때보다 의학이 훨씬 발전한 지금도 황당한데.
그때는 오죽했을까.
당연히 우측 혈관이 문제일 줄 알고 띡 하고 봤더니 다른 곳의 혈관이 우측 심장을 먹여 살리고 있을 줄이야.
“네. 사망 후, 보호자 동의를 받아 해부학 검증을 위한 부검에 들어갔고, 당시 확인한 해부학적 구조가 지금 이 환자와 정확히 같습니다.”
“돌연변이가 아니라 있을 수 있는 변이라……. 이건가?”
“네. 극히 드물 뿐, 변이의 일종입니다.”
“그럼 나 어디로 들어가야 해?”
이현종은 다시금 가이드 와이어를 조금 전진시켰다.
그러자 우측으로 향하는 가지가 보였고, 반대편으로는 좌측으로 향하는 가지가 보였다.
보통 이런 변이에서 보이는 것과는 달리 좌측의 가지는 또다시 두 갈래로 갈라지고 있었다.
정말이지 누군가 의도를 가지고 환자를 괴롭히려고 하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복잡한 구조였다.
“좌측 갈래에서 상단으로 향하는 가지입니다.”
“상단? 하단이 아니고?”
“둘이 조금 지나면 꼬여서 갑니다. 영상에서 저기 두껍게 보이는 위치가 바로 그곳입니다.”
“음.”
이를테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아예 반대로 와이어를 집어넣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현종은 거의 반사적으로 뒤에 있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이미 시술을 시작한 지가 벌써 20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환자가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죽어 가고 있단 뜻이었다.
이미 경색이 온 상황인데 여기서 더 시간을 버렸다가는 100% 환자를 잃게 될 것이 뻔했다.
‘아무리 봐도 하단인데…….’
하지만 방금 아무리 봐도 우측인데 한 번 속지 않았는가.
이번에도 그러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제다가 연도까지 운운하니까 너무 그럴싸하잖아.’
그냥 어디서 발표된 케이스라고 했으면 넘어갔을 수도 있는데.
1994년이라는 구체적인 연도까지 들고 나오니 무시하기가 어려웠다.
애초에 수혁에 대한 이현종의 신뢰도 자체가 어마어마하기도 했고.
‘에라……. 지금 그래도 시도하는 게 환자 살리는 데 확률이 더 높아.’
아예 처음부터 흉부외과로 어레인지가 됐다면 모를까.
지금은 아니었다.
해서 이현종은 거의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가이드 와이어를 밀어 넣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그의 가이드 와이어 조정하는 솜씨가 가히 신의 경지에 다다랐다는 점이었다.
그 좁은 관상동맥에 하나의 길을 헤쳐나가는 데도 전혀 망설임이 없었다.
쑤우욱.
그렇게 밀려 들어간 가이드 와이어는 과연 상단을 향해 가다가 한 번 벽에 퉁 하고 부딪쳤다.
워낙에 끝이 부드럽게 처리가 되어 있기도 했고, 이현종의 손길이 부드럽기도 해서 불상사가 일지는 않았다.
물론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수혁에게 있었다.
“거기, 거기서 꺾입니다.”
제때 해부학적 구조를 알려 주었으니까.
“저, 정말이네. 좋아. 그럼 이제 망설일 게 없지. 자…….”
이현종은 쑥쑥 밑으로 내려갔고, 곧 막힌 지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심장이 박동할 때마다 미리 흘려 넣은 조영제로 염색되는 혈관이 딱 가이드 와이어가 멈춰선 곳에서 뚝 하고 끊겨 있었다.
여기서 막혔다는 뜻이었다.
“스텐트 여깄습니다.”
얼굴에 희열이 번져 가는 현종에게 수혁이 스텐트를 건네주었다.
이현종은 가이드 와이어를 따라 스텐트를 쭉쭉 밀어 넣으면서 껄껄 웃었다.
“야, 살았다. 환자 살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