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60화 (60/1,303)

60화 발표 (3)

“해부학적 변이는 단지 해부학 교실에서만 강조되어야 할 주제가 아닙니다. 해부학적 변이가 환자의 예후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왕왕 있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경우가 바로 관상동맥의 변이일 것입니다.”

수혁은 딱 연습했던 대로 발표를 이어 나갔다.

비단 그 내용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목소리 톤과 제스처 그리고 몸의 동작 등.

모든 것을 연습했던 대로 진행하는 중이었다.

즉 모든 전공의나 교수 대부분이 그러하듯 한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발표하는 것이 아니라 강단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이놈 봐라?’

당연하게도 좌장을 맡은 김경래 교수의 관심을 확 끌 수 있었다.

본래 노련한 강연자들이 가장 잘 쓰는 것이 바로 이 ‘이동’이었으니까.

단지 발표 중에 자리를 옮기는 것만으로도 집중도를 끌어 올릴 수 있다는 건 단지 경험담에 의한 것만이 아닌 논문으로도 나온 적이 있었다.

물론 강연자 대부분이 방법을 쓰지 않고 있는 이유가, 이 사실을 몰라서는 아니었다.

단지 너무 긴장하게 된 데다가, 내용을 까먹을까 봐 걱정돼서일 뿐이었다.

‘아예 달달 외웠나 본데?’

하지만 눈앞의 이 1년 차는 강단을 종횡무진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그러면서도 단어 하나 빠뜨리지 않고 있었다.

“관상동맥의 해부학적 변이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습니다. 위 그림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중에서 가장 환자의 예후에 영향을 미치는 형태는 좌우 관상동맥이 좌측의 한 줄기를 통해 빠져나오는 형태입니다.”

“흐음.”

그 때문에 김경래 교수는 이제 수혁이 아니라, 그의 발표 자체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처음엔 1년 차라는 사실에 기분이 언짢았지만.

이젠 수혁이 1년 차라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마당이었다.

수혁의 완벽히 준비된 발표에는 그럴 만한 힘이 있었다.

더구나 대상자가 순환기내과, 즉 심장을 다루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본래 위와 같은 형태에서는 심혈관 중재술을 통한 치료보다는 개흉 수술이 좀 더 선호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심근경색 환자는 그 질환의 특성상 사전 검사가 어려운 경우가 많아서 위와 같은 형태의 변이가 있음을 확인한 후에는 개흉 타이밍을 잡기가 힘들 수 있습니다.”

처음엔 그냥 목소리와 태도만이 좋은 줄 알았는데.

내용이 정말 좋았다.

말하는 것만 들어보면 1년 차가 아니라, 무슨 심혈관 중재술에 평생을 몸 담가 온 달인 같았다.

아니, 아마 이현종이 직접 얘기한다 해도 저렇게까지 자연스러울 것 같진 않았다.

“때문에 그대로 중재술을 강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마 이 자리에 계신 여러 선생님들 중에도 위와 같은 해부학적 변이를 겪어 보신 분들은 그런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겁니다.”

수혁은 거기까지 말한 후, 한차례 한숨을 쉬었다.

숨이 차서는 아니었다.

그저 주의를 환기하기 위한 한 가지 방편일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건 꽤 효과가 있었다.

“후우.”

곧장 여기저기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발표에 불만이 있거나 피곤해서는 당연히 아니었다.

그저 지금까지 수혁의 발표에 정신이 팔려 있어서 쉬지 못했던 숨을 몰아쉬는 것일 뿐이었다.

수혁은 그렇게 대략 10초 가량을 기다려 준 후 재차 입을 열었다.

이제 곧 본론이었다.

“그러나 이 경우, 기회는 단 한 번뿐입니다. 잘못 들어가게 된다면 돌이킬 수 없습니다. 심혈관 중재술 시에 돌이킬 수 없다는 말은 곧 환자의 생명이 꺼질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즉 모든 순환기내과 의사는 적어도 관상동맥의 해부학적 변이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물론 다른 과 의사들도 알고 있다면 당연히 좋을 터였다.

하지만 현대 의학은 너무 많은 발전을 거듭해 온 참이었다.

그만큼 세분화되어 있으며, 한 사람의 의사가 모든 의학 지식을 습득하는 건 불가능했다.

수혁처럼 바루다를 탑재하고 있다면 얘기가 좀 달라지겠지만.

이 세상에 그런 사람은 오직 한 명, 수혁뿐이지 않은가.

그러니 그냥 불가능하다고 보면 되었다.

“아마 여기 계신 선생님들께서는 모두 해부학적 변이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하지만 적어도 한 종류의 변이에 대해서는 아예 들어보지 못하셨을 거라 확신합니다.”

수혁의 말에 이때까지 말없이 잘 듣고 있던 사람 중 일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미 관상동맥의 해부학적 변이가 완성되었다고 공표된 것이 벌써 십수 년도 더 된 일이지 않던가.

아직까지도 해부학 교실에서 다양한 연구가 진행 중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상동맥의 해부학적 변이에 대해서만큼은 더 연구할 것이 없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정설이었다.

“자, 이 케이스 리포트는 1994년 유니버시티 오브 캘리포니아 어바인에서 발표한 리포트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의문은 그렇게 오래 계속되지 못했다.

아니, 의문 자체야 좀 더 계속되었으나 의문에 대한 표현은 가로막히고야 말았다.

지금은 발표 시간이었고, 발표 시간의 주인공은 이수혁이었으니까.

게다가 방금 이수혁이 꺼내 든 화면은 꽤 흥미로운 것이었다.

“당시 환자는 흉통을 주소로 응급실로 내원하였으며 흉부외과에서 환자를 즉시 인계받아 개흉 수술을 진행했습니다. 병원으로 내원 당시 이미 흉통이 발생한 지 40분이 지난 상태였으며 도착 직후 의식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거기에 더해 수술장에서 지금까지 알려진 바 없었던 관상동맥 변이가 관찰되었습니다. 다음은 환자 사망 후 시행한 부검을 통해 획득한 환자 심장 및 관상동맥의 도식도입니다.”

수혁이 또다시 화면을 넘기자 이번에는 그림 하나가 떴다.

그냥 대강대강 그린 그림이 아니라, 의사 출신 의학 전문 삽화가가 정성껏 그린 심장 그림이었다.

여러 각도에서 그렸기 때문에 심장의 형태와 혈관의 주행 경로 등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보시면 관상동맥이 대동맥에서 단 하나의 줄기를 통해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드물기는 해도 여태까지 관찰되었던 다른 해부학적 변이와 크게 차이를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좀 더 뒤로 따라가 보면 어떻습니까.”

수혁은 바로 너에게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이라는 식으로 고개를 앞으로 돌린 채 청중을 돌아보았다.

빛 때문에 보이는 건 없었지만.

적어도 청중들에게는 수혁이 자신과 눈을 마주치고 있다는 착각이 일었다.

“허.”

물론 즉시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처음 보는 관상동맥의 형태에 탄식 비슷한 것을 토해 낼 따름이었다.

수혁은 그들의 탄식을 배경음 삼아 계속해서 발표를 이어 나갔다.

“세 개의 관상동맥이 한 줄기에서 뻗어 나갑니다. 몇 가지 특이한 점이 있는데, 우선 우측으로 향하는 줄기는 무척 짧고, 다른 두 줄기가 메인을 이루고 있습니다. 또 다른 특이점으로는 좌측으로 향하는 두 줄기가 서로 꼬이면서 진행한다는 점입니다. 심혈관 중재술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무척 까다로운 형태를 지니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수혁이 말을 마치자마자 누군가 손을 슬며시 들었다.

하고 싶은 질문이 있는 모양인데, 수혁은 그와 눈이 마주쳤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무시했다.

어차피 질문이 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해서 그를 지목하는 대신 화면을 넘겼다.

“물론 이런 특이한 형태가 94년 케이스 리포트에서만 보인 건 아닙니다. 단순 돌연변이를 따지면 케이스 리포트 된 것만 수십 가지가 넘습니다.”

그러자 아까 손을 들었던 교수가 다시 슬며시 손을 내렸다.

수혁은 그럼 그렇지 하는 얼굴로 또다시 화면을 넘겼다.

이번에는 아까와 같은 그림이 아니라 사진이었다.

심장을 직접 찍은 건 아니었고.

투시경 사진이었다.

“하지만 동일한 형태의 변이가 이번 태화 의료원 케이스에서 확인되었습니다. 위 사진은 94년 당시에 찍힌 사진이 아닌, 이번 태화 의료원 이현종 교수님이 찍은 사진입니다.”

“허.”

여러 교수의 입에서 다시 한번 탄식이 터져 나왔다.

아무리 봐도 아까 봤던 그 그림과 이 심장의 형태가 동일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혈관의 주행 경로는 빼다 박은 것처럼 같았다.

같은 사람의 심장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하지만 그건 말이 안 되는 얘기였다.

이 투시경은 나온 지 몇 년 되지도 않은 물건이니까.

아니, 지금까지도 저만 한 해상도를 지닌 투시경은 나오고 있지 않았다.

그러니 저기에 찍힌 심장은 다른 사람의 심장이어야만 했다.

“즉 이 형태의 변이는 단순 돌연변이가 아닌, 극히 드문 형태의 해부학적 변이란 소리가 됩니다. 아직 그 어디에서도 확인된바 없는 형태의 변이로, 아마 공식적으로는 이번 발표에서의 언급이 최초일 것입니다.”

그 말은 곧 이 내용이 얼마 안 있으면 교과서에 실릴 거란 얘기이기도 했다.

눈앞에 서 있는 이 새파랗게 어린 이수혁의 이름 석 자 또한 교과서에 박힐 것이고.

이미 수많은 위업을 달성한 바 있는 이현종 교수도 다시 한번 명성을 떨칠 것이란 얘기가 되었다.

“발표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탓에, 수혁의 발표가 끝나자마자 질문이 쇄도했다.

하지만 좌장을 맡은 김경래 교수는 그 많은 질문자를 대번에 지목하지 못하고 있었다.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버린 탓이었다.

‘내 평생 이렇게 명확한 강의를 들어본 게 몇 번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다섯 손가락을 넘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게 인상적인 발표를 한 것이 1년 차였다.

‘허…….’

그렇게 뜻 모를 한숨만 짓고 있는 좌장의 어깨를 우창윤 교수가 흔들었다.

“교수님, 질문받으셔야죠. 시간 조금 있으면 오버됩니다.”

“아? 아, 아. 그렇지. 미안하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좌장은 맨 앞에까지 나와서 손을 들고 있는 사람을 지목했다.

그러자 그 교수는 즉시 강의실 내에 비치되어 있던 스탠딩 마이크 쪽으로 달려가 입을 열었다.

“좋은 발표 잘 들었습니다.”

늘 그렇듯 처음은 좋았다.

하지만 수혁이나 바루다는 곧이어 날 선 질문이 날아들 것이란 것을 아주 잘 알 수 있었다.

표정만 봐도 딱 느껴질 정도로 얼굴이 굳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경부대학교 병원 최우식 교수입니다. 평소 이현종 교수와 사이가 아주 나쁘다고 합니다.]

게다가 바루다는 사전 조사를 통해 일련의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수혁 또한 이현종과의 대화에서 최우식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었기에 약간은 긴장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발표가 좋아도 너무 좋으니까 합리적인 의심이 듭니다. 이 발표에 관한 연구가 정말 이수혁 선생 주도로 된 겁니까? 아니면 이현종 교수님 주도로 된 겁니까? 만약 후자라면 왜 발표자를 굳이 이수혁 선생으로 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질문은 내용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터였다.

발표는 완벽하니까.

딴지를 걸려면 다른 곳에 걸어야 할 터였다.

예를 들면 지금처럼 이수혁 본인 같은 곳에.

“아, 이거야 원.”

그 말에 이현종이 기다렸다는 듯이 몸을 일으켰다.

정말로 이런 질문이 나올 줄 잘 알고 있었는지, 만면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심지어는 혼자 몰래 준비해 온 무선 마이크까지 들고 있었다.

‘미치셨다…….’

수혁이 남몰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사이 이현종이 껄껄 웃으며 입을 열었다.

“원래 이렇게까지는 얘기 안 하려고 했는데.”

“무슨 얘기요?”

“이 환자 중재술 할 때 94년 리포트를 떠올리고 제게 조언을 해 준 게 바로 저기 있는 이수혁 선생입니다. 덕분에 환자가 살았죠. 논문을 쓰자는 아이디어 자체야 내가 냈지만, 그 이후로는 전부 저 친구가 썼습니다. 그것도 뭐 한 30분 걸렸나?”

“30분?”

“그렇다니까요. 이게 다 우리 태화 의대의 우수한 교육 시스템 덕이고 또 태화 의료원의 우수한 수련환경 덕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 자리에 와 있는 우리 전공의 여러분. 혹시라도 세부 분과를 전공하고 싶다면 일단 태화 의료원부터 지원하십시오. 여기 오면 저기 이수혁 선생처럼 될 수 있습니다.”

이현종의 발언에 질문을 던졌던 최우식 교수의 얼굴이 붉어졌다.

뭔지 모를 위기감이 느껴졌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얌전히 앉지는 않았다.

“이, 이 양반이 왜 여기서 병원 홍보를 해!”

“할 만하니까 하지. 너네 병원에 이수혁 같은 친구 있어? 없지? 없으면 입 다물고 앉아.”

하지만 다음 발언을 들은 후에는 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있는 병원에는 이수혁 같은 괴물이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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