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국보급 인재 (2)
“혀, 형.”
차마 봐 주질 못하겠다는 생각에 고개를 돌리고 있던 신현태가 부리나케 달려왔다.
둘도 없이 친한 형이 없는 아들을 만들고 있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왜 인마. 넌 알지?”
하지만 이현종은 눈이 좀 돌아가 있었다.
우리 잘난 수혁이를 빼앗기기 싫다는 일념 때문이었다.
“뭐…… 뭘 알아 형. 왜 이래, 무섭게.”
“알잖아. 이수혁이 내 아들인 거.”
“아니…….”
신현태는 뭐라고 말해야 하나 하는 얼굴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우창윤과 박국진을 비롯한 여러 교수가 몰려들어 있었다.
딱히 수혁에게 관심이 없던 사람들까지 죄 모여 있었다.
평소 학문과 결혼했다고 알려져 있던 이현종이 난데없이 숨겨 둔 자식을 폭로한 마당 아닌가.
‘아 시발 뭐라고 해 이거…….’
신현태는 의구심 가득한 눈빛들을 마주하고 있다 보니 머리가 새하얘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태화 의료원 내과 과장을 지낸 지도 2년 째라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생각했거늘.
이제 보니 공중전이 남아 있었던 셈이었다.
“수혁아. 이제 아빠라고 해도 돼. 그동안 미안했다.”
그사이 이현종은 이제 수혁에게 몸을 틀고 있었다.
아까보다도 더 미친 소리를 하면서였는데.
덕분에 수혁은 신현태보다도 더 곤란해하는 얼굴이 되어 있었다.
‘야, 어떡해. 진심이야? 이거?’
[분석이 안 됩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아들…… 이라고 해?’
[일단 이현종의 아들이라고 할 경우의 장점에 대해 분석하겠습니다.]
‘빠, 빨리!’
[네. 약간 어지러우실 수 있습니다.]
‘어? 아.’
바루다는 수혁이 보유한 연산 기능을 최대한 활용하기 시작했다.
강제로 혈액 내의 포도당이 주르륵 소모되면서, 수혁은 잠시 행동을 완전히 멈추어 버렸다.
본래 우리의 뇌 기능의 대부분은 운동에 쓰이고 있는데, 그게 중단된 탓이었다.
다행히 그의 정면에 있던 이현종은 수혁의 이러한 기행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우리 수혁이 또 시작이네.’
아니, 알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이뻐하는 사람이었다.
해서 이현종은 이상하게 여기는 대신 다른 사람이 수혁을 볼 수 없도록 가려 주었다.
다소 과격한 방법으로.
“이놈, 한번 안아 보자!”
수혁은 그렇게 불세출의 기인 이현종의 품속에 안긴 채, 바루다의 도움을 받아 연산을 완료할 수 있었다.
[대외적으로 이현종의 아들이 될 경우, 교수가 될 수 있는 확률이 거의 100%에 수렴합니다.]
‘개꿀 아냐?’
[다만 수혁의 친부모님을 부정하게 되는데 그건 괜찮습니까?]
바루다는 다소 인공지능답지 않은 질문을 던졌다.
아무래도 다른 인공지능들과는 달리 인간의 오감을 가지고 있는 데다가, 수혁과 24시간 소통하고 있다 보니 조금은 달라진 모양이었다.
수혁은 오히려 자신보다 더 인간 같은 바루다의 말에 잠시 할 말을 잊었다.
‘내 부모님이라…….’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모르는.
‘뭐 상관없을 거 같아.’
하지만 수혁은 이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지금까지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아무도 없이 살아온 몸이 아닌가.
비록 이현종 같은 조금은 이상한 아빠라 할지라도.
한 번쯤은 있어 보는 게 좋을 거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럼 아빠라고 하시죠.]
‘하아.’
물론 아무리 그렇다 해도 원장에게 아빠라고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를 품 안에 안고, 너무도 따스한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이현종과 마주하고 난 후에는 약간이나마 입이 열렸다.
“아…….”
“그래, 수혁아! 내 아들!”
“아빠…….”
“옳지! 잘했다!”
수혁이 아빠라고 부름과 동시에 이현종은 수혁을 번쩍 안아 들고 빙글빙글 돌았다.
60이 넘은 나이라고 하기엔 믿기지 않는 건강과 용력을 지닌 그였기에 수혁은 마치 바람개비처럼 핑글핑글 돌았다.
“헐.”
“이게 진짜야?”
그리고 그런 둘을 보며 우창윤과 박국진 교수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암만 봐도 개소리 같은 상황 아니었던가.
학문과 결혼했네, 어쩌네 했던 이현종이거늘.
심지어 그 사실을 무척 자랑스러워하며 학회 때마다 떠들곤 했었던 것을 우창윤 교수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게 거짓말이라고?’
알고 보니 숨겨 둔 아들이 있었는데, 그게 하필 이수혁이라니.
너무 거짓말 같았지만 방금 수혁이 아빠라고 하는 걸 들은 마당 아닌가.
그렇다 보니 사고의 흐름 또한 완벽히 뒤바뀌어 버리고야 말았다.
‘하긴……. 머리가 좋아도 너무 좋잖아. 아빠가 이현종이라고 하면……. 조금은 이해가 되긴 해…….’
이현종이 저렇게 이상한 짓을 하면서도 대한민국 최고의 병원 원장이 될 수 있었던 건 그가 정말 어마어마한 업적을 남겼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똑똑하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이수혁도 조금 이상한 점이 있다고 하잖아.’
그가 애지중지하는 딸 우하윤의 말에 의하면 이수혁 또한 잘못 보면 진짜 이상해 보일 때가 있다고 했더랬다.
우창윤의 모든 사고가 이현종, 이수혁 부자 관계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을 무렵, 이현종이 재차 입을 열었다.
아까보다 훨씬 당당해 보였는데 그럴 만도 했다.
지금은 수혁과 손을 꽉 잡고 있었으니까.
장담컨대 여기 모인 교수 중에는 친아들이라 해도 이렇듯 단단히 아들과 손잡아 본 기억이 가물가물한 사람들도 있을 터였다.
“봤지? 내 아들이야. 그러니까 내가 책임져. 제일 좋은 조건으로 교수 만들어 줄 거야.”
이현종이 어디 그냥 교수란 말인가.
태화 의료원의 원장이었고, 또 태화 의과 대학의 석좌 교수였다.
그런 사람이 밀어준다고 하면 당연히 어마어마한 힘이 될 터였다.
더욱이 아들이라지 않은가.
여기서 더 뭐라 할 말이 있는 사람은 없었다.
“아, 알겠습니다…….”
해서 일단 박국진 교수가 꼬리를 말았다.
수혁은 그가 들고 있는 봉투 안에 든 금액이 못내 궁금했지만, 지금 얼마냐고 묻는 건 좀 미친 짓 같아서 그저 입맛만 다셨다.
“그……. 저도 뭐. 네. 아들 있으신 줄은 몰랐네요. 얼굴은 엄마 닮았나 보다…….”
우창윤 교수 또한 이 말을 끝으로 멀리 사라져 갔다.
주동자 둘이 사라진 마당에 더 남아 있을 만한 사람은 없었다.
금세 강의실 앞엔 이현종, 이수혁 그리고 여전히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신현태만이 남게 되었다.
“형…….”
신현태는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냐는 얼굴로 이현종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러자 이현종은 아직도 굳게 잡고 있던 수혁의 손을 바짝 끌어당기며 입을 열었다.
“이제 아들이야. 그렇게 알아.”
“그……. 형 명성은 어쩌고요……. 숨겨 둔 아들이 있다고 하면……. 이사회에서도 싫어할 텐데…….”
도덕적 흠결이 될 수도 있는 사안 아닌가.
이제 와서 원장직을 뺏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충분히 뒷말 정도는 나올 수 있는 상황이라고 보면 되었다.
“명성이 중하냐? 의학 발전이 중하지. 얘가……. 얘가 어떤 존재인지 아직도 모르냐?”
물론 이현종은 그따위 것 다 필요 없다는 얼굴이었다.
그간 수혁이 그와 함께 순환기내과를 돌면서 보여 준 모습 때문이었다.
비단 이번에 발표했던 논문에 쓰인 케이스뿐만 아니라, 다른 케이스에서도 모조리 비상한 모습을 보였더랬다.
아니, 비상하다는 말은 좀 식상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대단했다.
수혁이 아직 1년 차라는 걸 떠올려 보면 더더욱 그러했다.
“그야……. 그건 그렇죠. 대단하긴 하죠.”
신현태 또한 수혁의 능력을 십분 인정하는 사람이지 않은가.
이현종의 이러한 말에 토를 달거나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럼 그렇게 알아. 밥이나 먹자. 수혁아 배고프지?”
“어……. 네. 그……. 뭐라고 불러야 하죠?”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돌연 질문을 던졌다.
아까야 창졸간에 아빠라고 부르긴 했지만.
계속 그렇게 부르는 건 좀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응? 너 편할 대로 불러. 난 뭐 아빠라고 해도 좋아. 진짜 아들같이 생각하려고, 이제.”
“아……. 그럼……. 원장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당분간은.”
“그래, 그래.”
이현종은 아무래도 좋다는 얼굴로 허허 웃고는 수혁과 함께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 나갔다.
“가, 같이 가요.”
원래 따로 돈 쓸 생각 없이 학회에서 주는 도시락으로 때울까 하고 있던 신현태 또한 뒤늦게 둘의 뒤를 따랐다.
그리곤 이현종의 안내에 따라 호텔 2층에 위치한 한식당으로 향했다.
아주 높은 성급의 호텔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호텔은 호텔 아니던가.
상당히 화려한 외관을 자랑하고 있었다.
[우와…….]
‘왜 네가 놀라냐.’
수혁은 인공지능 주제에 감정 표현 비슷한 것을 하고 있는 바루다를 보며 물었다.
그러자 바루다는 약간은 질책하는 듯한 말투로 대꾸했다.
[수혁, 수혁은 한 번도 절 이런 곳에 데려다준 적이 없습니다.]
‘레지던트니까 그렇지. 레지던트가 무슨 호텔 식당을 와.’
[교수 되면 옵니까?]
‘오지. 그러니까 빨리 세계 최고의 의사가 되자고.’
[알겠습니다.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곤 다시 한번 수혁에 대한 전폭적인 서포트를 다짐했다.
그 동기가 좀 이상하긴 하지만.
뭐가 어찌 되었건 수혁에게는 잘된 일인 셈이었다.
물론 그를 서포트하기로 한 것은 비단 바루다뿐만이 아니었다.
“갈비찜 먹어라. 갈비찜.”
“근데, 형. 그럼 진짜 수혁이 교수 자리, 돌아가면 바로 만들 거예요?”
신현태의 말에 수혁의 밥그릇에 갈비찜을 뜯어 주던 이현종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러려고. 안 되겠어. 아까 박국진이 그 새끼 표정 봤어?”
“보긴 봤죠. 작정하고 왔던데.”
“그때 내 제자……. 아니, 그 개새끼 빼가고 거기 센터 확 큰 거 알지?”
“엄청 컸죠. 그 새끼는 저도 진짜 많이 이뻐했는데…….”
“10억에 홀랑 넘어가서. 아무튼, 내 평생 그 꼴 다시는 못 봐. 수혁이 교수 자리부터 일단 받아 놔야겠어.”
이현종은 지금 생각해도 분통이 터진다는 듯 입안에 있던 갈비찜 파편을 신현태에게 흩뿌렸다.
신현태는 능숙하게 파편을 슥 피하면서 말끝을 흐렸다.
“이사회에서 싫어할 텐데…….”
“얘 실력을 몰라서 그렇지! 지금 당장 나가도 어지간한 전문의보다 나은데.”
“왜 저한테 화를 내요……. 저는 같은 편이에요. 같은 편.”
“근데 왜 토를 달아.”
“아니……. 아닙니다. 저도 돕긴 할게요.”
“돕긴 해? 어째 말이 좀 걸쩍지근해? 조카 교수 만드는 건데.”
이현종의 말에 신현태가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카?”
그러자 이현종은 말없이 턱으로 수혁을 가리켰다.
“아, 아들이라고……. 그래요. 알겠어요.”
“자, 손 모아. 수혁이 교수 만들기 작전 돌입이다.”
“무슨 작전까지…….”
“안 내밀어?”
“알았어요, 알았어.”
“수혁이도 내밀자.”
“아, 네.”
그렇게 이현종은 하이파이브까지 한 후에야 다시 식사를 재개했다.
수혁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나쁠 것 하나 없는 일이라 할 수 있었다.
뭐가 되었건 원장과 내과 과장이 그를 바로 교수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나선 셈이었으니까.
“아, 네. 내과 1년 차 이수혁입니다.”
물론 아직은 레지던트였다.
학회에서 돌아오자마자 당직을 서야 하는.
“네, 선생님! 발열 환자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발열? 지금 어떤 처치 하고 있어요?”
“네. 면역 억제제 먹고 있는 분이라, 오자마자 연락드렸습니다.”
면역 억제제에 발열이라.
이렇게 되면 보통 사람보다는 고려해야 할 질환이 비할 수 없이 많아지는 셈이었다.
“알겠어요. 지금 내려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