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64화 (64/1,303)

64화 못 하는 게 뭐야 (2)

“여기 있습니다.”

인턴은 아주 빠릿빠릿한 태도로 절개 배농 세트를 준비해 대령했다.

간호사들의 도움까지 받아서였는데, 당연하게도 일반적인 일은 아니었다.

비록 수혁이 1년 차이긴 하지만 아예 내과에서 대놓고 밀어주는 1년 차이지 않던가.

더군다나 제일 잘나가는 이현종 원장의 아들이기도 했고.

태화 의료원에서 계속 수련을 받고 싶은 인턴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할 수 있었다.

[확실히 이현종이 세긴 셉니다.]

거의 3년 차 치프나 펠로우에 준하는 대우에 바루다가 흡족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반면 수혁은 약간은 긴장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진단이야 노상 해 온 일이었지만.

환자의 몸에 칼을 대는 건 익숙하지 않은 일 아니던가.

여기서 긴장을 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자, 일단 절개 포인트는 딱 관 꽂았던 지점입니다. 쉽죠?]

‘어.’

물론 바루다의 도움이 있기에 완벽하게 해 낼 자신은 있었다.

[거길 중심으로 해서 베타딘으로 닦아 내세요. 둥글게. 점점 넓어지는 방식으로. 네, 지금 좋습니다.]

교과서를 통달하다 못해, 유튜브 영상까지 짜깁기해서 눈앞에서 보여 주고 있으니 못하면 그게 바보였다.

다행히 수혁은 바보가 아니라 상당히 똑똑한 축에 속하는 사람이었으니, 수술은 일사천리로 진행 중이었다.

[인턴에게 거즈 들고 대기하라고 하십시오.]

‘아, 응.’

수혁은 바루다의 말대로 인턴을 대기시킨 후, 마취 주사를 집어 들었다.

예전, 그러니까 환자도 의사도 파이팅 넘치던 시절에는 절개 배농 따위 마취도 없이 하기도 했다고 하는데.

그건 정말이지 옛날얘기였다.

안 아프게 할 수 있으면 무조건 안 아프게 하는 게 옳은 방식이었다.

“따끔합니다.”

“네…….”

수혁은 일단 환자에게 마취할 것임을 알려 준 후, 절개가 딱 들어갈 부분 근처에 마취제를 주입했다.

애초에 덴탈 시린지라고 불리는, 어마어마하게 얇은 주삿바늘을 이용한 방식인 데다가 바루다의 조언을 철저히 따르고 있었기 때문에 통증은 거의 없었다.

[이거 더 잘하면 아예 안 아파한다고 하던데. 방금 환자 찡그렸습니다.]

‘됐어. 이만하면 잘했지. 내가 뭐 외과 할 것도 아니고.’

[그건 그렇긴 하죠. 그냥 조금 아쉽다는 겁니다.]

‘다음이나 알려 줘. 칼로 째면 되지?’

[네. 아까 소독 시 중심이 되었던 그 부위를 대략 1cm가량 0.5cm 깊이가 되게 절개하면 됩니다. 예상되는 출혈이 있기는 합니다만 심각한 수준은 아닐 겁니다.]

‘오케이.’

수혁은 약간의 꾸지람을 듣기는 했지만, 정신력이 흔들리는 일 없이 메스를 집어 들었고.

바루다가 알려 준, 동시에 본인이 보기에도 고름집의 핵심으로 보이는 지점을 그었다.

“아프진 않죠?”

“네?”

“아뇨. 지금 그어서요.”

“아, 네.”

깨알같이 마취된 것을 확인하면서였다.

지익.

동시에 관이 삽입되어 있던, 즉 이식된 신장까지 이어졌다고 판단되는 곳에서 왈칵 고름이 빠져나왔다.

“인턴 샘. 위에서 좀 눌러요. 환자분 아플 수 있습니다.”

“으, 네.”

수혁의 지시에 따라 인턴이 거즈를 이용해 꾹 하고 누르자, 기껏해야 1cm밖에 되지 않는 절개창을 통해서 무수히 많은 고름이 콸콸 흘러나왔다.

“오.”

“조, 좀 편해지는데요?”

인턴은 자신이 절개한 것도 아니면서 아주 뿌듯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원래 고름 짤 때면 많은 의료진이 이런 표정을 짓긴 하는데, 정작 그 장본인인 수혁은 그럴 수가 없었다.

‘이거 이미……. 망가진 건 아니겠지?’

[기능이 있긴 합니다만……. 이 정도의 감염이 지속될 경우, 무조건 망가질 겁니다. 원인균을 찾아서 치료해야 합니다.]

‘일단 이거 배양 검사 나가자.’

[좋은 생각입니다.]

혈액에서도 물론 배양 검사를 나갈 요량이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검체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않겠는가.

게다가 이건 그냥 균 덩어리가 아니라, 감염원에서 채취한 균 덩어리였다.

물론 아예 균은 아니고, 균과 싸워 죽은 백혈구들이 뒤섞여 있긴 하겠지만.

아무튼, 고름에서 배양 검사는 할 수 있으면 하는 것이 좋았다.

“와……. 저만큼 나오는 거 봐. 진짜 정확히 딱 포인트 집었나 본데.”

“그러니까. 기껏해야 1cm 짼 거 같은데…….”

“괜히 이현종 아들이겠냐. 우리 병원 아니, 대학 생긴 이래 최고 천재라잖아, 그 사람이.”

“근데 그 이현종 교수님이 저 이수혁 선생님이 자기보다 더 천재라고 하고 있잖아.”

수혁은 배양 검사를 시행한 후에도 지속적으로 고름을 제거해 나갔다.

응급실 의료진들이 수군대는 것처럼 어마어마한 양이 빠져나오고 있었다.

덕분에 환자의 얼굴도 아까보다는 훨씬 좋아져 있었다.

몸 안에 들끓고 있던 세균과 고름이 쭉 빠져나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가, 감사합니다.”

“아뇨.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데요. 일단 병실 잡힌 것 같으니……. 위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항생제는 여기서 달고 올라가실게요.”

“네, 선생님.”

수혁은 그렇게 고름을 제거한 후, 관까지 집어넣어 주었다.

생기는 족족 밖으로 빼내기 위함이었다.

그리곤 방금 자신이 말했던 것처럼 반코마이신까지 달아서 병실로 환자를 올려보냈다.

신현태에게 전화한 것은 그다음의 일이었다.

“네, 교수님. 저 수혁입니다.”

“어어. 수혁아. 우리 조카.”

“아니……. 그건 좀…….”

“원장님이 아빠라고 부르라고 한다며. 나도 적응해야지.”

“아니…….”

“알았다. 근데 무슨 일이야. 아, 당직이니?”

신현태는 더없이 친근하게 전화를 받고는 서너 마디를 더 나누고 나서야 본론으로 들어갔다.

수혁은 어차피 요새 맨날 이런 분위기였기 때문에 별 당황하는 기색도 없었다.

그저 담담하게, 하지만 완벽한 노티를 이어 나갈 뿐이었다.

“손금숙, 여자 53세로 20년 전 고혈압 진단되었으며 10년 전 만기 신부전으로 진행하여 투석 치료받다가 1달 전 뇌사자 공여 신장 이식 시행 받았으며 면역 억제제로 사이클로스포린과 미코페놀레이트 복용 중입니다. 내원 2일 전 발생한 전신 쇠약감으로 응급실로 오셨고, 당시 37.8도로 발열 체크되어 노티 받았습니다.”

“아……. 까다롭겠네. 체스트는 어때?”

“폐는 깨끗한데, 신장 이식받은 부위로 해서 염증 소견이 있었습니다. 절개 배농 시행하였고 32cc가량의 농 배출되었습니다.”

“32cc? 너무 많은데……. 그럼 신장 기능은?”

“조금 떨어져 있긴 한데 소변은 나오고 있습니다.”

“음.”

신현태의 목소리가 막 전화 받았을 무렵과는 많이 낮아져 버렸다.

환자 상태가 좋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거의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둬야 할 정도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리 죽음과 늘 맞닿아 있다시피 한 대학 병원 내과 교수라 해도 이런 상황은 익숙해지질 않았다.

“거기에 더해 소변 검사에서도 농이 검출되었습니다.”

“요로 감염이로군……. 근데 그게 하필 이식받은 신장이 감염원인 건가?”

“네.”

“음.”

신현태는 다시 한번 신음을 흘렸다.

치료 계획이 떠오르지 않아서는 아니었다.

단지 환자가 걱정될 뿐이었다.

“항생제는 들어갔지?”

“네. 반코마이신 바로 사용했습니다.”

“잘했어. 내일 오전에 일단 그 환자부터 보자고.”

“네.”

“혹시 밤사이라도 이상 있으면 전화하고. 새벽에 흉부 엑스레이, 소변 검사, 혈액 검사 다시 한번 싹 나가. 아, 심전도도.”

“네, 교수님.”

수혁은 고개를 끄덕인 후, 전화를 끊었다.

그리곤 신현태 교수가 당부했던 것과 자신이 생각할 때 더 필요한 것 그리고 바루다의 지시까지 더해 거의 완벽한 처치를 시행했다.

하지만 다음 날 신현태와 함께 환자를 찾았을 때 마주치게 된 현실은 그리 녹록지만은 않았다.

“열이……. 38.2도. 더 올랐네.”

신현태는 인상을 쓴 채 환자의 바이털 사인을 살폈다.

“하아……. 하아…….”

당장 어젯밤까지만 해도 호흡에는 전혀 문제를 보이지 않던 환자의 호흡이 많이 가빠져 있었다.

때문에 제대로 된 의사소통까지 어려워진 마당이었다.

새벽에 시행한 흉부 엑스레이는 그 이유를 제대로 보여 주겠다는 듯 새하얗게 변해 버린 폐를 드러내 놓고 있었다.

“폐렴으로 진행했습니다.”

“반코 들어갔다며?”

“네. 어제 내원하자마자 들어갔습니다.”

“배양도 나간 거지?”

“네. 하지만…….”

결과를 보려면 적어도 일주일은 더 있어야만 했다.

일반적으로는 그 시간이 그렇게까지 긴 것은 아니었지만.

이 환자에게는 영겁이나 마찬가지일 터였다.

지금 진행되는 속도를 보면 기껏해야 5일 안에 치명적인 손상이 찾아올 것이 뻔했으니까.

그때 가서는 제대로 된 원인균을 찾아봐야 이미 늦는단 뜻이었다.

“VRE인가?”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VRE.

일명 ‘Vancomycin resistant enterococci(반코마이신 내성 장알균)’의 약어로 애초에 내성균에 대한 약으로 만들어진 반코마이신에 대해서조차 내성을 가진, 슈퍼 박테리아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감염 빈도는 당연하게도 떨어지지만, 이 환자는 만성 신부전 환자인 데다가 장기 이식까지 받은 환자였다.

병원 생활이 길어도 너무 길었다는 뜻이었다.

어디서 어떤 균에 노출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일단 이미페넴으로 항생제 변경하자.”

“네, 교수님.”

본래 항생제를 사용한 지 만 하루도 되지 않아 교체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특히 신현태처럼 아주 우수한 감염내과 교수에게는 더더욱 드문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원래 항생제가 제대로 액션을 취하게 되는 시간이 그 약이 들어간 지 만 48시간 무렵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가끔은 원칙을 깨야만 할 때도 있는 법이었다.

그 어떠한 원칙도 환자 생명보다 위에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중환자실로 내려. 삽관하고 바이털 15분 단위로 보자.”

“네, 교수님.”

바이털 15분이라는 말에 수혁이 약간은 당황스럽단 표정을 지어 보였다.

15분마다 모든 바이털을 체크해야만 한다는 건 담당 간호사를 갈아 넣겠단 뜻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환자가 안 그러면 죽을 거 같은데.

수혁으로서는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다른 수가 없었다.

“삽관은 내가 할까?”

“아뇨 제가 하겠습니다. 진정제 좀 놔 주세요.”

“네.”

수혁은 이미 환자 옆에 준비해 두고 있던, 여차하면 집어넣으려고 하고 있던 플라스틱 튜브를 집어 들었다.

간호사들이 진정제를 넣고, 근이완제까지 넣어서 환자의 의식이 훅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지금입니다.]

그리곤 늘 그러하듯 바루다의 조언을 받아 튜브를 환자의 목구멍 안쪽으로 쑥 집어넣었다.

언제봐도 완벽에 가까운 삽관이었다.

“넌 진짜 못 하는 게 없구나.”

신현태는 짤막한 칭찬을 하고는 환자가 누워 있는 침대를 잡아끌었다.

“일단 아까 말한 대로 항생제 바꾸고 보자. 이미페넴은 듣겠지, 설마.”

“네, 교수님.”

수혁 또한 침대를 끌고 신현태와 함께 중환자실로 향했다.

방금 넣은 튜브를 통해 숨을 불어 넣으면서였는데, 중환자실에 도착하고 나서는 곧장 인공호흡 기기에 연결을 해 주었다.

[처방은 이제 제가 손볼 것이 없군요.]

‘당연하지. 중환자를 몇 명을 받았는데.’

[그나저나……. 진단이 문제입니다. 아직도 원인균을 찾지 못했습니다.]

‘이미페넴이 그나마 듣기를 바라야 하는데…….’

처방까지 후다닥 내린 수혁은 다시 환자를 바라보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의식이 있던 한자는 이제 삽관이 된 채 중환자실에 누워 있었다.

상황이 훅훅 심각해지고 있음이 확실한데, 현재 수혁이 가진 무기는 이미페넴뿐이었다.

물론 아주 강력한 항생제였지만, 솔직히 들을지 안 들을지는 미지수였다.

그리고 그 결과는 바로 다음 날 아침 확인할 수 있었다.

나쁜 쪽으로.

“폐렴이……. 더 진행했어.”

“이미페넴도 꽝…… 이네요.”

“도대체 뭐야 이거? 면역 억제제 탓이라고 하기엔 너무 빠른데…….”

“음…….”

안 좋아진 환자 앞에서 신현태와 수혁이 번갈아 한숨을 쉬는 사이, 바루다가 입을 열었다.

[수혁, 우리가 뭘 놓치고 있는지 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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