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때론 원인이 (1)
‘뭘 놓치고 있다고?’
수혁은 아무래도 신현태와 대화 중이었기 때문에 완전히 바루다에게 신경을 돌리진 못했다.
하지만 그간 어느 정도 이런 식의 대화에 익숙해진 덕에 대강이나마 말을 이어 가는 건 가능했다.
[네. 수혁. 이 환자는 어떤 환자입니까?]
바루다는 대번에 자신이 떠올린 바를 털어놓는 대신 질문을 던졌다.
처음엔 이럴 때마다 짜증도 많이 냈지만, 이게 나름대로 바루다 스스로 교육해 나가고 또 수혁을 교육하면서 발전해 나가는 방식이라는 것을 알게 된 참이었다.
해서 수혁은 짜증을 내는 대신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하기로 했다.
‘면역 억제제를 먹고 있는 환자지.’
그것도 두 개나 먹고 있었다.
아직 이식 수술을 시행한 지 불과 한 달가량밖에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맞습니다. 일반적인 사람에 비해 면역력이 억제되어 있다는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래. 그래서 우리가 슈퍼 박테리아 감염을 의심하고 있는 거잖아.’
수혁은 답을 하면서 동시에 신현태를 바라보았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대강 그의 말에 답을 해 주면서였다.
방금 수혁이 바루다에게 대꾸한 것처럼 수혁과 신현태는 이 환자의 면역 억제가 어떤 식으로든 슈퍼 박테리아 감염에 영향을 미쳤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합리적인 추론이라고 할 수 있었다.
우선 환자는 슈퍼 박테리아와 접촉했을 만한 기회가 수차례 있었을 터였다.
중환자실에도 꽤 오랫동안 입원해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슈퍼 박테리아의 수가 소량이더라도 감염이 일어날 만큼이나 면역이 떨어진 상태 아닌가.
‘지금으로선 이게 가능성이 가장 커.’
[저도 슈퍼 박테리아 감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겠다는 건 아닙니다.]
‘음? 그럼 뭔가 다른 걸 의심할 수 있다고 보는 거야? 바이러스 질환이라고 하기엔 고름 양상이 완전히 균이었어.’
[바이러스를 의심하는 것 또한 아닙니다.]
‘음.’
수혁은 바루다가 의심하는 질환군이 지금 그의 생각이 미치지 못한 곳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할 말이 없어진 것도 있었고.
또한 바루다의 질문을 기다리기 위함이기도 했다.
바루다는 수혁이 예상했던 것처럼 오래지 않아 또다시 질문을 던졌다.
[이 환자는 왜 면역 억제제를 복용하여, 면역을 억제하고 있습니까?]
약간은 멍청해 보이기까지 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수혁은 바루다가 제아무리 인간과 유사성을 띄게 변해 왔다고 해도.
본질은 인공지능이라는 점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 말은 쓸데없는 짓은 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아니, 쓸데없는 짓을 할 수는 있겠지만.
아무 이유 없는 짓은 하지 않았다.
‘억제가 필요하잖아. 한 달 전에 신장 이식술 받았어.’
해서 수혁은 순순히 답을 해 주었다.
[네, 이 환자는 신장 이식을 받았습니다.]
바루다는 마치 그 답이 아주 결정적이라는 듯 강조하여 다시 한번 확인해 주었고.
‘뭐야.’
수혁으로선 이해가 잘 가지 않았기 때문에 고개를 갸웃거릴 따름이었다.
그때까지도 신현태는 이미페넴 다음 단계로 어떤 항생제를 써야 할지만 고심 중이었다.
심지어 수술을 시행했던 이식외과 측과도 연락을 취해 면역 억제제 유지 여부까지 묻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신장내과 측에도 현재 상태에 대한 고견을 구하기도 했고.
하지만 모두 이렇다 할 답을 내진 못했다.
그저 이 환자에게 남은 시간이 일주일은 될까 하는 생각만을 떠올리고 있을 뿐이었다.
보통 이런 식으로 장기 이식 후 급작스러운 감염이 생긴 경우엔 아주 빠르게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이어지기 때문이었다.
‘뭔데. 이 환자가 이식받은 게 뭐가 중요해.’
신현태가 아예 다른 과 교수들과의 통화에 정신이 팔린 덕에 수혁은 이제 온전히 바루다와의 대화에 빠져들 수 있었다.
바루다는 상황이 이렇게 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아까보다 좀 더 활기찬 어투로 대꾸했다.
[이 환자는 신장 이식을 시행 받았으며, 내원 당일 시행한 검진, 문진 그리고 CT상 그 신장이 감염원으로 강하게 의심이 되는 상황입니다.]
‘그렇지. 이 환자는 신장이 현재 감염원으로 의심이 되고 있지.’
잘 납득이 되진 않지만.
수술장에서나 중환자실에서 어떤 식으로든 감염이 생긴 것이 아닐까 하고 두루뭉술하게 확정을 짓고 있었다.
‘아.’
그리고 수혁은 그제야 자신이 가장 중요한 감염 원인에 대해 잘 이해를 하지 않고 넘어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루다는 수혁이 그런 식으로 깨닫고 있는 것이 대견하다는 듯 누군가의 웃음소리를 따라 한 후,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제일 먼저 출발해야 할 것은 수술장이 아니라, 이 환자에게 신장을 공여한 뇌사자의 감염원일 겁니다.]
‘장기 공여자……. 아……. 그렇구나. 그래!’
태화 의료원의 의료 수준은 가히 세계적이라고 자랑할 만한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그런데 수술장에서 감염이 일어난다고?
그건 너무 희박한 확률이었다.
그리고 그런 희박한 확률에 환자의 생명을 거는 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도박이었다.
물론 중환자실에서는 그럴 만한 가능성도 있기야 하겠지만.
다른 감염이 아니라 바로 요로 감염으로 이어지는 건 좀 이상했다.
[따라서 장기 공여자에 대한 자료 수집을 요청합니다.]
바루다는 수혁이 유레카를 외치는 사이 자신이 하고자 했던 말을 끝마쳤다.
당연하게도 수혁으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는 요청이었다.
해서 여태 의미 없이 전화기나 붙잡고 있던 신현태의 팔을 톡톡 두드렸다.
다른 레지던트와 교수 관계라면야 조금 조심성 없어 보이는 태도일 수 있겠지만.
신현태는 자타공인 수혁 바라기였다.
“어, 왜. 수혁아.”
심지어 다른 과 교수와 통화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수혁을 먼저 돌아보았다.
수혁 또한 지금 사안이 사안이었기 때문에 계속 통화해도 좋다는 사인 대신, 그저 자신이 말해야 하는 바를 털어놓았다.
“교수님. 이 환자 감염원이 신장입니다.”
“응? 그렇지. 여러 정황이 그렇게 가리키고 있지. 그래서 수술장 감염 의심하고 슈퍼 박테리아 치료하려고 드는 거 아냐.”
“그 감염이 혹시 장기 공여자분께 온 건 아닌가 해서요.”
“어? 어…….”
아까 수혁이 그랬던 것처럼 신현태 또한 잠시 할 말을 잊었다.
아예 생각지도 못하고 있던 발상의 전환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환자에게 발생한 감염 원인이 이 환자에 있는 게 아니라, 장기를 공여한 아예 다른 사람에게 있다니.
쉽사리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은 아니지 않은가.
“잠깐. 아……. 유 교수. 미안한데, 지금 일단 전화 좀 끊을게.”
하지만 한 번 떠올리고 나면, 내가 왜 이 생각을 여태 못했지 하는 생각이 드는 그런 종류의 발상이었다.
“어, 그래. 수혁아. 이게……. 그러니까 감염원이 공여자일 수 있다, 이거지?”
“네. 만약 슈퍼 박테리아인데 이미페넴도 듣지 않는 균이라고 한다면 사실상 기회가 없다고 봐야 합니다.”
“그건……. 그건 그렇지.”
신현태는 중환자실에 내려온 지 하루 만에 상태가 더더욱 안 좋아진 환자를 돌아보았다.
이제 폐렴까지 슬슬 퍼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대로 속수무책으로 있다가는 삽시간에 사망으로 이어질 공산이 너무 컸다.
“그렇다면 다른 원인일 경우를 찾아서 그 원인에 대한 치료를 시도해 보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슈퍼 박테리아라면……. 어쩔 수 없지만. 수술장 감염은 조금 납득이 가지 않아서요.”
“그래, 그렇지. 우리 병원 이식외과가 그런 실수를 하진 않을 거야. 그럼 음. 그래, 네 말대로 공여자 측 감염이 더 가능성이 있어.”
“그럼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근데 이미 공여가 한 달 전에 이루어졌다고 하면……. 추가 검사는 불가할 텐데?”
“사망 원인 등만 살펴도 원인을 알 수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음.”
신현태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수혁의 말대로 이게 가장 가능성이 크지 않은가.
더구나 지금까지 수혁 말대로 해서 손해를 본 적은 정말이지 단 한 번도 없다고 봐야 했다.
이번에도 그럴 것 같다는 예감이 아주 강하게 들었다.
해서 곧장 이식외과 측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아아. 유 교수. 미안, 미안해. 아까 갑자기 뭐가 떠올라서.”
이식외과 측 교수는 류진수 교수였다.
얼마 전 수혁에게 보리코나졸 부작용이 발생했던 환자 건으로 도움을 받았던 바로 그 교수였다.
“아, 네. 아닙니다.”
이제 갓 조교수를 달았기 때문에 거물에 속하는 신현태에게는 더없이 고분고분했다.
“그래. 그것 때문에 알아볼 게 있어서 그런데. 이 손금숙 환자분. 장기 공여해 주신 분 정보 좀 알 수 있나?”
“네? 어……. 그건…….”
본래 장기 공여자에 대한 정보는 비밀로 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해서 류진수는 감히 뭐라 말을 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아니, 이 환자 치료 때문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정보가 있어서 그래. 그 정보 없으면 지금 환자 죽게 생겼어.”
하지만 환자가 죽게 생겼다는데 원칙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생판 남이면 또 몰라도.
자신의 손을 탄 아니, 자신에게 수술을 받은 환자였다.
류진수 교수는 잠깐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교수님 이메일로 환자 자료 보내겠습니다.”
“그래, 고마워. 그 보내는 김에 우리 과 이수혁 선생한테도 포워드해 줘.”
“이수혁? 아, 그 선생이 지금 교수님 주치의입니까?”
“어, 그래.”
“네, 알겠습니다.”
다른 교수였다면 레지던트에게 굳이 보낼 필요 있겠냐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류진수는 아주 결정적인 도움을 받은 적이 있지 않은가.
해서 전화를 끊는 즉시 수혁에게도 자료를 보냈다.
이미 각기 다른 자리에 꿰차고 앉은 신현태와 수혁은 동시에 해당 메일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장기 공여자는 태화 의료원에서 사망한 것이 아니라, 아예 다른 병원에서 사망했기 때문에 메일에 첨부된 파일은 차트와 소견서 등등이 뒤섞인 형태를 띠고 있었다.
분석하는 데만도 시간이 꽤 걸릴 수 있단 얘기였다.
[창 한꺼번에 띄우십시오.]
물론 바루다를 탑재하고 있는 수혁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무려 8개의 창을 띄워 한 번에 8페이지씩 분석에 들어갈 수 있었다.
[환자 나이가 젊군요. 남자 24세라니.]
‘기저 질환은 확인된 바 없고……. 한강에서 발견. 음.’
알고 보니 공여자는 성수대교 인근 한강 둔치에서 동료들과 술을 먹다가, 잠시 화장실을 가겠다고 한 후 물에 빠져 사망한 환자였다.
당시 119를 통해 심정지, 호흡 정지 상태로 인근 병원 응급실로 내원하였으나 입원 6일째 뇌사 판정을 받고, 보호자 동의하에 장기 기증을 진행한 모양이었다.
[입원 기간 중 총 3차례의 발열이 있었군요.]
‘혈액, 소변, 객담 배양 검사에서 확인된 건 없어.’
[거기서 뭐가 나왔으면 일이 더 쉬웠을 텐데. 아쉽군요.]
바루다는 원점으로 돌아갔다는 듯한 어투로 혀를 찼다.
아주아주 안타깝다는 것을 표현할 때 주로 쓰는 행위였는데, 그걸 볼 때마다 진짜 인간인 수혁으로서는 가소롭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수혁은 그런 바루다를 비웃는 대신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간 바루다의 지도하에, 그리고 본인 주도하에 읽어 왔던 케이스 리포트에서 읽었던 내용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아니, 아냐. 아쉬워할 필요가 없어.’
[네?]
‘원인……. 원인을 알 거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