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66화 (66/1,303)

66화 때론 원인이 (2)

[알 것 같다고요?]

바루다는 눈이 있다면 동그랗게 떴을 법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지금까지 해 왔던 질문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질문이었다.

논리를 쌓아 나가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 진짜 그냥 궁금해서 묻는 것이란 뜻이었다.

‘어.’

반면 수혁은 지금까지와 같이 차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지팡이를 짚고 몸을 일으키면서도 별 표정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어디, 어디 가시려고요?]

‘진단검사의학과.’

[거긴 왜요?]

‘환자 검체 좀 보려고. 배양 검사 냈어도 나머지 검체 버리진 않았을 거 아냐.’

[그건……. 그건 그렇겠죠.]

어디 주먹구구식으로 굴러가는 병원이라면 검체 보관에 그렇게까지 열을 올리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이곳은 태화 의료원이었다.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고의 병원이란 뜻이다.

각각 의료진들의 수준도 잘 관리가 되는 편이었지만.

그보다도 시스템을 엄청나게 잘 유지하고 있었다.

“여기 어디에 있는데.”

[지도상에는 여기가……. 아, 저게 입구군요.]

머릿속에 이미 병원 전체 지도가 삽입되어 있는 수혁이었지만 아무래도 처음 가는 곳을 거침없이 찾는 건 좀 어려웠다.

특히 진단검사의학과처럼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된 곳이 아니라, 가는 사람만 가는 곳이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바루다의 도움이 있어 아주 어렵진 않았지만.

아무튼, 그는 아주 작은 현판 하나 달랑 달려 있는 진검으로 다가가, 문 옆에 있는 창구에 손을 톡톡 두드렸다.

“누구세요?”

창구에 있던 직원은 수혁이 익숙한 얼굴이 아니란 것을 깨닫곤 조금은 퉁명스럽게 질문을 던져 왔다.

워낙 검사 재촉하는 의료진들을 많이 접하다 보니 어느 정도 피로감이 쌓인 모양이었다.

“내과 1년 차 이수혁입니다. 얼마 전 검사 의뢰했던 검체 때문에 왔습니다.”

“검사요? 그거 저희가 예고한 일정대로 나가요.”

“아니, 결과 때문에 온 건 아니고요.”

“그럼 뭔데요?”

수혁은 여전히 아니, 아까보다도 더 퉁명스러워진 직원을 보며 잠시 고민했다.

[신현태 교수한테 이를까요? 아니면 이현종 원장?]

특히 최근 갑질 아닌 갑질을 하는 데 익숙해진 바루다는 가장 치사한 방법을 제안했다.

하지만 수혁은 원래 흙수저 출신 아니었던가.

어지간하면 자신이 당했던 설움을 상대에게도 느끼게 하고 싶진 않았다.

“검체를 제가 여기서 좀 볼 수 있을까 해서요. 검사에 들어간 검체도 일부분은 한 달간 보관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음.”

직원은 속으로 규정을 셈해 보는 듯한 얼굴이 되었다.

그 저변에 깔린 귀찮음을 읽어 낸 수혁은 재빨리 다음 말을 이었다.

“잠깐이면 됩니다. 환자 생명이 달린 일입니다.”

“하…….”

과연 직원도 병원에서 일하는 직원이라 다르긴 달랐다.

환자 생명을 입에 올리자마자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는 창구 옆에 있는 문을 열어 주었다.

“환자 이름이 뭔데요? 등록번호 알아요?”

그리곤 여전히 불친절한 목소리로, 하지만 협조적인 태도로 수혁을 안쪽으로 안내했다.

물론 그의 그러한 태도는 그렇게 오래가진 못했다.

“어? 이수혁 선생? 여긴 웬일이에요?”

마침 검사실에서 나오고 있던 진단검사의학과 교수 하나가 수혁을 알아보곤 아주 반갑게 인사를 건네왔기 때문이었다.

[홍창기 교수입니다. 신현태랑은 동기, 같이 논문 쓴 적이 많아서 사이가 좋습니다. 주요 논문으로는 「리케차의 병태 생리 및 자연 경과에서의 검사 결과」가 있습니다.]

수혁은 긴가민가한 느낌이었지만, 바루다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이미 병원 모든 교수의 이름과 얼굴을 데이터화한 지 한참이었고.

거기에 더해 이현종 및 신현태 등 주요 교수들의 대화를 토대로 각기 친분 관계까지 끊임없이 업데이트하고 있는 중이었다.

딱히 의학적인 측면에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었지만.

“아, 홍창기 교수님! 안녕하세요.”

“오. 내 이름을 알아? 우리 처음 보는 거 아닌가?”

“학생 때 뵌 적 있습니다. 리케차에 관한 논문이 너무 인상적이었습니다. 덕분에 치료하는 데 도움 많이 받고 있습니다.”

“이야.”

그냥 이름만 알 때는 그럴 수도 있겠지 싶었는데.

논문까지 줄줄 꿰고 있을 줄이야.

홍창기 교수로서는 최근 이 병원 전체에서 가장 핫한 존재인 수혁이 정말로 평소에 자신을 존경해 왔다고 굳게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이현종 원장님 아들이라더니, 진짜 똑똑하구나. 가끔 보자고. 논문도 같이 좀 쓰고. 우리 쪽은 데이터 진짜 많아. 알지?”

“네, 교수님. 감사합니다.”

“그럼, 볼 일 잘 보고. 아, 김 선생, 여기 이수혁 선생 특별히 잘 챙겨 줘. 병원 실세야, 실세.”

홍창기 교수는 기분이 너무 좋아진 나머지 여태 수혁에게 틱틱거리던 직원에게 다소 부담스러운 청탁까지 남긴 후 사라졌다.

“어…….”

직원, 그러니까 김 선생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지금까지 자신이 딱히 친절하지는 않지 않았던가.

아니, 오히려 불친절했다는 표현이 옳을 것 같았다.

“그…….”

해서 사과라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수혁이 손을 내저었다.

“안내해 주세요.”

“어…… 진짜 원장님 아드님이세요?”

“네? 아, 네. 뭐, 그렇긴 한데, 너무 신경 쓰진 마세요.”

수혁은 아까랑 비교했을 때 애처로울 정도로 변해 버린 직원의 얼굴을 보며 다시 한번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신경 쓰지 말란다고 신경이 안 쓰일 수 없는 상황 아닌가.

세상에 원장 아들이라니.

그것도 석좌 교수 이현종 원장의.

“그……. 여기 잠깐 계시면. 제가 바로 검체 들고 오겠습니다. 부, 불편하실 거 같아서.”

덕분에 직원은 이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친절해져 있었다.

친절하다는 표현보다도 굽신거린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정도였다.

물론 수혁도 아주 호인은 아니라, 자발적인 태도까지 만류하진 않았다.

마침 지팡이 짚으며 좁디좁은 진단검사의학과 내에 난 복도 걷는 것이 힘들기도 했고.

“네. 그럼 일단 제가 앱세스(Abscess: 고름)로 내린 검체 좀 가져와 주세요. 혈액은 됐어요.”

“네네.”

해서 수혁은 현미경이 놓인 검사실에 한가롭게 앉아 검체를 기다릴 수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직접 검체 보관실에 가서 뒤적거려야 했을 텐데.

잘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여기, 여깄습니다. 혹시 뭐 또 필요한 거 있으면 바로 불러 주세요.”

“네.”

과연 직원은 검체 찾는 것에 숙달되어 있어서 정말이지 금세 찾아왔다.

[혼자 했으면 몇십 분 까먹을 수도 있는 일인데. 좋군요.]

‘옛날엔 몰랐는데, 힘 있는 게 진짜 좋은 일이긴 해.’

[원장 아들도 이 정돈데, 나중에 원장 되면 볼 만하겠습니다.]

‘너무 먼 얘기 아니냐?’

둘은 이러쿵저러쿵 대화를 나누면서도 검체 슬라이드를 현미경에 제대로 위치시켰다.

수혁은 슬라이드가 딸깍 소리를 내며 고정된 것을 확인한 후, 현미경에 눈을 가져갔다.

[흠. 일반적인 고름 형태 말고는 모르겠는데요.]

‘그렇지 않았다면 벌써 진검에서 찾아서 연락이 왔겠지. 이건 의심하고 보지 않으면 아마 안 보일 거야.’

[대체 뭘 의심하고 있는 건데요?]

‘직접 봐.’

[음.]

바루다는 애태우며 슬라이드를 연신 바꿔 끼우고 있는 수혁에게 짤막한 불만을 표시했다.

하지만 애초에 만들어지기를 진단을 위한 A.I.로 만들어진 바루다이기에 곧 슬라이드 자체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아.]

그리고 수혁이 대략 5번째 슬라이드를 끼웠을 때, 탄식을 내뱉었다.

그제야 수혁이 뭘 의심하고 있고, 뭘 찾으려고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거…….]

‘찾았다. 없을 수도 있을 거 같아서 좀 불안했는데.’

둘이 동시에 바라보고 있는 것은, 죽어 버린 백혈구들과 그들의 먹잇감이 된 세균들의 사체들 사이에 길게 뻗은 푸른색 선이었다.

푸른색 선을 잘 따라가다 보면 마치 올챙이 머리처럼 생긴 타원형의 둥근 형태가 나왔다.

[곰팡이……. 종류는…….]

‘스케도스포리움(Scedosporium).’

[아, 케이스 리포트에서 분석해 놓았던 결과가 있군요. 이걸 장기 이식과 연결 지을 생각은 못 했는데.]

바루다는 마치 자책이라도 하듯 한숨을 쉬었다.

수혁은 사람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는 바루다를 뒤로한 채, 자신이 방금 발견한 스케도스포리움에 대한 정보를 떠올렸다.

‘오염된 물에 서식하는 진균이지.’

일반적인 경우엔 이 진균에 감염될 걱정 따위는 하지 않아도 좋았다.

하지만 면역이 억제된 경우엔 얼마든지 감염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게 아니라고 해도 감염을 일으킬 수 있는 경우가 있었는데.

익사자인 경우였다.

‘뇌사 공여자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이 균에 감염이 되었을 거야.’

[일반적인 배양 검사에서는 배양이 되지 않았을 테니…….]

‘원인 미상의 발열로만 잡혔겠지.’

아마 환자에게 있어서 주요 문제가 발열이었다면 보다 철저한 검사를 진행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뇌사자는 이미 구조된 이후 내내 저산소증에 의해 뇌사가 빠르게 진행되던 시점이었다.

간혹 찾아오는 발열은 의료진의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는 뜻이었다.

‘손금숙 환자는 이게 퍼진 신장을 이식받고, 면역 억제제를 복용한 거야.’

[당연히 감염이 진행되었겠군요.]

‘항생제를 때려 부어도 소용이 없던 것도 설명이 돼.’

[당장 올라가야 합니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요.]

‘그래.’

진균은 정상 면역력을 가진 사람에게는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면역이 억제된 사람에게는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균주 종류에 따라 정말이지 시시각각 감염 범위가 변하는 것도 있었다.

이 스케도스포리움은 다행히 그 정도는 아니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간이 많은 건 아니었다.

이미 폐를 침범하기 시작했으니까.

이대로 두었다간 불과 하루 이틀이면 잘못될 공산이 컸다.

“저, 죄송한데. 이거 뒷정리 좀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아, 네네. 물론이죠.”

“죄송해요. 방금 너무 중요한 걸 봐서. 환자한테 빨리 가야 할 것 같아요.”

“아뇨, 아뇨. 죄송은요. 조심히 가세요, 도련……. 아니, 이수혁 선생님.”

해서 수혁은 직원에게 뒷일을 맡긴 후, 지팡이를 부지런히 짚어 가며 진단검사의학과를 빠져나갔다.

그리곤 곧장 중환자실로 올라갔다.

“하, 뭐야. 뭐가 원인이야.”

그때까지도 신현태는 머리를 싸맨 채 고민에 빠져 있었다.

고개만 돌리면 손금숙 환자가 보이고, 동시에 죽어 가고 있지 않은가.

비록 환자와 원래부터 알고 있던 사이도 아니고, 그저 응급실로 실려 온 후 쌓인 관계일 뿐이긴 하지만.

그래도 의사에게는 자신에게 자의든 타의든 목숨을 맡기게 된 환자가 늘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하아…….”

해서 한숨을 거의 백 번 쏟아내고 있을 때쯤, 수혁이 그의 앞에 섰다.

특유의 지팡이 짚는 소리를 내면서였기에 신현태는 바로 고개를 들어 수혁을 마주할 수 있었다.

“너…….”

동시에 수혁이 뭔가 아주 확실한 것을 알아냈을 때 짓는 표정을 하고 있다는 것까지 알아차렸다.

수혁은 반가워 죽겠다는 신현태를 향해 자신의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진검에 있는 현미경으로 찍은 사진이었다.

“이거……. 이게 뭐야?”

“고름에서 확인한 겁니다. 여기 이거 푸른색을 보시면.”

“음? 진균인가……? 종류가…….”

“스케도스포리움입니다.”

“스케도스……. 공여자분이…… 익사자시지?”

“네.”

“하, 이거네. 이거야! 이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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