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때론 원인이 (4)
“이런 망할.”
수혁은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옆에 신현태 교수가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그러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있던 진균이 다른 세 명의 이름 모를 환자에게도 갔다는 사실을 방금 깨달았으니까.
“응? 왜 그러니?”
당연히 신현태로서는 무척 놀랐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비록 초반엔 이현종이 하도 야단법석을 쳐서 이수혁이 좀 이상한 거 아닌가 한 적도 있긴 했지만.
그 이후로는 이상하긴 해도 절대 폭력적인 성향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지 한참이지 않은가.
근데 갑자기 욕이라니.
안 놀라면 그게 더 이상했다.
[잘하는 짓입니다, 수혁…….]
바루다는 짧은 분석을 통해 신현태가 얼마나 놀랐는지 잡아 낸 후 혀를 끌끌 찼다.
불론 수혁은 그냥 그렇게 멍하니 있진 않았다.
“아, 죄송합니다. 방금 깨달은 게 하나 있어서요. 환자 관련한 일입니다.”
“음? 환자 상태는 좋잖아? 이 환자 말고 다른 환자들도 지금 문제 있는 환자는 없는데.”
감염 질환에서 올바른 타겟 설정은 거의 치료의 전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중요했다.
수혁은 워낙에 그걸 잘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병동에 다른 환자들은 모두 순조롭게 회복 중이었다.
눈앞에 누워 있는 손금숙 환자야 두말할 것도 없었고.
도대체 이놈이 왜 이러나 싶은 순간이란 뜻이었다.
“아, 아뇨. 공여자분 말입니다.”
“공여자?”
“그분, 장기 이식을 이분 말고도 세 분에게 했습니다.”
“아.”
하지만 신현태 또한 수혁에게 이 얘기를 듣고 나서는 더 태연히 있을 수가 없었다.
“이런 망할.”
해서 방금 수혁이 내뱉었던 욕설을 그대로 내뱉은 채 전화기를 빼 들었다.
그리곤 이식외과 류진수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본관 수술방 23번 방입니다.”
지금은 수술 중인지 교수가 받질 않고 수술방 간호사가 받았다.
평소라면 방해되지 않도록 끊었을 테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는 상황 아닌가.
“아, 네. 저 감염내과 신현태 교수입니다. 류진수 교수님 통화 괜찮은가요?”
“어……. 지금 현미경 보고 계시는데요.”
간호사는 나중에 걸라는 말을 돌려서 표현했다.
하지만 신현태는 그럴 수가 없었다.
현미경이고 나발이고 진균 감염은 치료가 조금만 늦어져도 사망에 이르는 질환 아니던가.
지금 이 시간에도 누군가는 죽어 가고 있을 터였다.
아니, 어쩌면 이미 죽었을 수도 있었다.
이식 후 벌써 한 달도 넘게 지났으니까.
“그래도 빨리 통화 연결해 주세요.”
“어…….”
“환자 목숨이 달린 일이에요.”
“아, 네.”
보통 수술방에서 집도의는 신이나 다름없는 대접을 받았다.
그 사람 손에 환자의 목숨이 걸려 있기 때문에, 그의 편의를 다 봐 주는 것인데.
그래서 현미경 수술처럼 어렵고, 그래서 짜증이 솟구치는 술기를 할 때는 안 건드리는 게 상책이었다.
성질이 괜찮은 사람도 성질이 더러워지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목숨 얘기가 나오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는 의료진이 몇이나 되겠는가.
간호사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문 채 류진수에게로 다가갔다.
“저, 교수님.”
“지금 혈관 잇잖아. 이따.”
“신현태 교수님이 환자 목숨이 걸린 일이라고 해서요.”
“신현태?”
“네.”
“음.”
신현태라는 이름에 류진수는 잠시 손을 멈추었다.
‘차기 기조실장에……. 이미 실세. 거기에…….’
그는 신현태의 애제자 이수혁에게 빚을 진 경험이 있었다.
그리고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 이수혁이 이현종의 아들이기도 했고.
신현태가 대놓고 우리 조카, 우리 조카 하고 있으니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환자 목숨이 달렸다고 하지 않는가.
수술이야 몇 분 좀 늦어진다고 해도 대세에 지장은 없으니 전화를 받는 게 여러모로 옳았다.
“네, 신현태 교수님. 저 류진수입니다.”
“아, 류 교수. 수술 중인데 미안해요.”
“아닙니다. 무슨 일입니까?”
“전에 우리 협진 냈던 손금숙 환자 아시죠?”
“알죠. 어제도 보고 왔는데……. 상태 안 좋던데요? 혹시 그 환자 더 나빠졌습니까?”
류진수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자신이 수술했던 환자가 그리됐다는 생각을 하니 기분이 나빠진 탓이었다.
“아뇨, 아뇨. 아주 좋아졌습니다.”
“아……. 그런데 그럼 무슨……”
“이 환자 원인균이 스케도스포리움이에요.”
“스케…… 네?”
류진수는 안도했다는 표정을 짓다가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스케도스포리움이라니.
단연코 난생처음 들어보는 균이었다.
“진균인데. 사람한테 흔히 발견되는 균은 아닙니다.”
“아…… 근데 그걸 어떻게 진단했습니까?”
“제 주치의 이수혁 선생이 환자에게 장기를 공여해 주신 공여자분의 사망 원인에 집중했습니다.”
“공여자……?”
류진수는 이제 완전히 기구까지 놓고 있었다.
얘기를 듣다 보니 점점 빠져들게 되는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네, 공여자분이 익사자입니다. 스케도스포리움은 더러운 물에 사는 진균이고요.”
“아, 그럼…….”
“네. 공여자분이 먼저 감염됐고, 그 감염된 장기를 이식받은 겁니다. 손금숙 님은.”
“그렇군요. 아니, 아니. 그럼?”
“네. 다른 장기들도 이식 수술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대상자들 명단 알고 있나요? 모두 목숨이 위험합니다.”
“이, 이런. 이런 망할.”
급기야 류진수는 몸을 부리나케 일으켰다.
그 바람에 천장에 달려 있던 무영등에 머리를 들이받긴 했지만.
그런 것 따위는 아무 문제가 되지 못했다.
심장, 폐, 간까지 모두 이곳 태화 의료원에서 수술했기 때문이었다.
“아, 죄송합니다.”
“아뇨, 아뇨. 저도 아까 욕했어요.”
“저, 그럼 잠시만요. 저도 확인을 해 봐야 해서. 나 여기 컴퓨터 메일 좀 열어 줘.”
류진수는 신현태 교수에게 양해를 구한 후, 옆에 있던 레지던트를 불렀다.
제1 보조의인 펠로우가 현미경에 붙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는 하릴없이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잠시 손을 써도 되나 고민하던 그는 이내 장갑을 벗어 던지고 컴퓨터로 붙었다.
어차피 현미경으로 혈관 잇는 동안에 손 다시 닦고 들어오면 되지 않는가.
괜히 미적거리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거기, 거기. 아냐! 한 달 전이니까 한참 뒤로. 뒤로! 앞이 아니라!”
“네네.”
류진수는 그런 레지던트를 닦달해서 한 달 전, 즉 공여자에게 장기를 받아 이식해 준 날로 돌아갔다.
“그래, 그거. 그거 열어 봐.”
“네.”
다른 대형 병원들과는 달리 한국 장기조직 기증원과 직접 연계가 되어 있는 태화 의료원은 모든 장기 이식 수술에 대해 아주 자세한 자료를 남겨 놓고 있었다.
이번 케이스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기 때문에 자료는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신현태 교수님, 지금 듣고 계십니까?”
“네.”
“네. 세 명 모두 본원에서 수술했습니다. 먼저 심장은 20180809번 고미선 님. 폐는 20190826번 유수연, 간은……. 20170922번 표은주 님입니다. 받아 적으셨나요?”
“네네. 감사합니다.”
“네. 꼭 좀 확인 부탁드립니다. 저도 수술 끝나자마자 알아보겠습니다.”
“네.”
신현태는 그렇게 전화를 끊었고, 수혁은 그사이 신현태가 적어 놓은 번호와 이름을 치고 들어가 개인정보를 습득했다.
워낙에 중한 질환을 앓고 있던 사람들인 데다가, 이식 수술까지 해 놓았기 때문에 집 전화 말고 개인 전화번호까지 모조리 데이터베이스에 올라가 있었다.
“네, 혹시 고미선 님 보호자분 되시나요?”
“네…….”
해서 전화를 걸었는데, 어쩐지 목소리가 어두웠다.
안 좋은 예감에 수혁 또한 목소리를 낮춘 채 말을 이어갔다.
“태화 의료원 내과 이수혁입니다. 혹시 고미선 님 지금 어디 계시나요?”
“아, 태화…….”
보호자는 잠시 울먹이는 듯한 소리를 내곤 천천히 입을 뗐다.
“1주 전에 돌아가셨어요. 수술받고 고향 내려가셨다가 열 나서 근처 병원 입원했는데…….”
“아.”
“이런.”
옆에 있던 신현태가 낭패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긴 우리도 놓쳤던 진단명인데…….’
태화 의료원이라는 거대 조직에서조차 떠올리지 못했던 진단명이었고, 진균이지 않았던가.
작은 병원이었다면 어쩌면 슈퍼 박테리아 자체에 대한 대응도 제대로 안 되었을 수도 있었다.
‘아니지……. 나도 뭐…….’
신현태는 규모를 탓하다가 돌연 수혁을 바라보았다.
눈앞에 있는 이 어린 친구가 없었다면 아마 여기서도 진단이 안 되었을 터였다.
손금숙 환자는 빠르게 죽어 가고 있었을 터였고.
이렇게 전화를 돌릴 생각도 하지 못했을 터였다.
“어, 끊겼다.”
수혁은 보호자가 끊은 전화를 바라보다가, 이내 다른 환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벌써 한 명이 사망한 마당 아닌가.
어쩌면 다 죽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기분이 몹시 언짢아지는 상황이었다.
그때 신현태가 여태껏 붙들고 있던 전화기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아, 안녕하십니까. 유수연 님 보호자 되시죠?”
“네? 네. 누구시죠?”
“태화 의료원 내과 신현태 교수입니다. 환자분에 관해 여쭤볼 게 있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아……?”
보호자는 뭔가 이해가 잘 안 된다는 목소리였다.
반면 신현태는 그저 급하기만 했다.
“혹시 환자분 살아계십니까?”
“네?”
해서 조금 이상한 질문을 던지고야 말았다.
신현태는 보호자의 이상한 반응과 자신을 더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수혁을 보고 나서야 실수를 인지했다.
“아니, 아뇨. 그……. 괜찮으신가요?”
“아……. 아뇨. 지금 응급실입니다. 열이 나셔서.”
“응급실? 어디 응급실이요?”
“태화 의료원이요.”
“아! 지금 내려가겠습니다!”
“네?”
다른 응급실들이 그러하듯.
아니, 태화 의료원의 응급실은 더더욱 사람이 많은 곳이었다.
워낙에 큰 병원인 데다가 중증도 있는 환자들을 많이 보는 병원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거기서 열난다고 해 봐야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일쑤였다.
유수연 환자 또한 일단 대기 중이었다.
침대도 내주지 않아서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교수가 대뜸 전화를 걸더니 내려온다니.
보호자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 표은주 님 보호자분? 아, 응급실이에요? 지금 내려가겠습니다.”
그사이 수혁 또한 통화에 성공했고, 환자가 응급실에 왔다는 사실 또한 알 수 있었다.
해서 수혁과 신현태는 동시에 1층 응급실로 향했다.
“네가 표은주, 내가 유수연 환자한테 갈게.”
“네, 교수님.”
“가자마자 일단 보리코나졸부터 때려 붓자.”
“네.”
결의를 다지면서였는데, 과연 둘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밖으로 튀어 나갔다.
각기 다른 이름을 부르면서였다.
“유수연 님!”
“표은주 님!”
아마 그냥 일반인이 이러고 있었다면 가드라도 와서 잡아갔을 텐데.
둘은 의사 아니던가.
게다가 병원에서 꽤 유명한.
자연히 누구도 시비를 걸지 않았고, 심지어 도와주는 사람까지 있었다.
“환자 찾으십니까? 유수연 님!”
“표은주 님!”
“아, 여기요!”
그렇게 해서 둘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각기 둘을 찾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폐를 이식받은 유수연 환자의 상태가 훨씬 좋지 못했다.
그냥 열만 나는 게 아니라 숨도 차 오고 있었다.
물론 표은주 환자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간 또한 크고 중요한 장기였기에 그러했다.
‘그래도……. 아직 살았다.’
신현태와 수혁은 그나마 기회가 있음에 감사하며 처방을 내렸다.
“보리……. 보리코나졸 일단 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