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71화 (71/1,303)

71화 Dyspnea (1)

“하.”

이제 막 1년 차가 된 안대훈은 옅은 한숨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생각 같아서는 인턴 때 보았던 3월의 이수혁처럼 휙휙 날아다니고 싶은데.

위 연차들은커녕 교수조차 떠올리지 못했던 진단명을 딱딱 말해 주고 싶은데.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하아…… 하아.”

이제 고작해야 나이 23살의 젊은 청년이 숨을 헐떡이고 있음에도 안대훈 혼자서는 해 줄 수 있는 것이 전혀 없었다.

“동맥혈 검사했습니다!”

마구 한숨을 짓다 말고 고개를 돌려 보니, 역시나 이제 막 인턴이 되어 긴장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우하윤이 눈에 들어왔다.

‘하필이면 3월 응급실 인턴이라니…….’

안대훈은 자기도 자기지만 우하윤은 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 어디 봐 봐.”

“네. 여기 검사 결과지입니다.”

해서 긴장감을 감추고, 최대한 부드러운 표정을 지은 채 우하윤이 건네준 결과지를 받아 들었다.

“어떤가요, 선배?”

하윤은 늘 그렇듯 응급실에서도 붙임성이 참 좋았다.

안대훈과는 같은 동아리 출신이기도 했으니 더더욱 그러했다.

‘하, 씨.’

안대훈도 하윤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지만.

그러기가 참 어려웠다.

그도 그럴 것이 환자의 동맥혈 검사는 이렇다 할 특징이 없어 보였다.

‘그냥 과호흡……인가?’

산소 포화도는 100%.

혈중 이산화탄소는 약간 떨어져 있었으며, pH는 반대로 약간 올라가 있었다.

이산화탄소가 빠져나가면서 몸이 알칼리성이 되었다는 뜻인데, 엊그제까지만 해도 인턴이었던 안대훈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진단명이라고는 과호흡 증후군뿐이었다.

하지만 단순 과호흡이라고 하기엔 환자의 호흡이 정말로 힘들어 보였다.

과호흡하면서 갈비뼈 사이의 근육이 푹푹 들어가는 경우가 어디 있단 말인가.

‘으.’

해서 멘붕에 빠져 있으려니, 어디선가 달칵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탁.

탁.

여느 발걸음 소리와는 조금 다른.

그래서 더 반가운 소리.

수혁이었다.

“안녕하십니까!”

그런 수혁을 발견하자마자 일단 하윤이 고개를 푹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원래 3월 인턴은 군기가 빡 들어있기 마련이긴 한데, 이건 정도가 좀 지나쳐 보였다.

아마도 수혁 개인에 대한 존경심이 가득 담겨 있기 때문일 터였다.

“어? 아……. 인턴 됐구나?”

“네, 선배. 오랜만이에요.”

“미안하네. 보자고 말만 하고, 너무 바빠가지고.”

“아닙니다. 진짜 바쁘시잖아요.”

“응급실이면 이번 달 자주 보겠네. 식사나 한번 하자.”

“저, 정말요? 네. 감사합니다.”

하윤은 이후로도 좀 더 여기 붙어 있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보였지만.

3월 응급실 인턴이라는 건, 다른 말로 하면 진짜 노예 그 자체라 할 수 있었다.

그 사람이 로열이건 뭐건 별 관계 없었다.

특히 하윤처럼 열심히 해 보려는 사람은 더더욱 그 정도가 심했다.

“네, 지금 갑니다!”

해서 곧 다른 환자에게로 뛰어가야만 했다.

그때까지도 검사 결과표와 환자를 번갈아 보고 있던.

그러니까 매우 깊은 고민에 빠져 있던 안대훈은 여전히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수혁에게 다가왔다.

뭔가 죄라도 지은 듯 주눅이 잔뜩 들어 있었다.

[뭐라도 할 줄 알았나 보군요.]

바루다는 그런 1년 차 안대훈을 보며 심드렁한 어조로 말했다.

‘너무 그러지 마. 1년 차는 다 그래. 특히 3월은.’

자신도 얼마나 의욕에 차 있었던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바루다를 만났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정말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을 터였다.

그러면서 자신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의사인지 깨달았을 터였다.

멀리 볼 것도 없이, 그저 자신과 비슷한 수준이었던 동기들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세상엔 노력만으론 극복할 수 없는 게 있는 법이었다.

경험이 쌓이기 전엔, 머리에 있는 지식은 모조리 죽은 지식일 뿐이었다.

“동맥혈 검사야? 어때?”

“과, 과호흡 증후군 같습니다.”

“과호흡……?”

수혁 또한 눈이 있지 않은가.

그가 보기에 환자는 절대로 단순 과호흡 증후군이 아니었다.

정말로 호흡이 어려워 보였으니까.

물론 호흡수가 올라가 있긴 했지만.

그건 어려운 호흡을 보상하기 위함일 터였다.

[호흡이 얕군요. 지금 분당 호흡수가 40에 가까운데, 혈중 이산화탄소 감소가 그렇게까지 두드러지지 않습니다.]

‘물이 찼나?’

[아마도요. 검진해 보시죠.]

‘좋아.’

수혁은 성큼성큼 걸어 환자에게로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음. 김승준 환자분.”

“네……. 허어…….”

“1주일 전부터 시작된 겁니까?”

“네…….”

수혁은 일단 질문을 해 가면서 환자의 전신을 살폈다.

아무래도 나이가 워낙 젊은 남성이다 보니, 무척 건강해 보였다.

그렇다고 아예 이상 소견이 없는 건 아니었다.

[머리카락이 좀 없는데요?]

‘정수리가 비었네. 2에서 3cm가량.’

[스트레스가 많은가?]

‘모르지. 흠.’

일단 탈모가 있었다.

정수리 부근에 원형 탈모.

[광대 부근이 붉군요.]

‘햇볕에 타서 발생하는 양상은 아닌데. 그것보단…….’

[발진 같죠?]

‘응.’

[흠.]

‘기저 질환은 없는 거로 되어 있던데.’

수혁은 이상 소견을 머릿속에 갈무리하며 환자와의 대화도 이어 나갔다.

어차피 환자는 워낙에 숨차 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 느리게 말하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을 지경이었다.

“그전에는 전혀 증상이 없었나요?”

“네. 아, 음……. 흐……. 한……. 1년 전…….”

“네.”

“결핵…… 치료받은…… 적이 있습니다.”

“결핵이라.”

결핵이라면 완전히 치료되지 않은 경우 얼마든지 재발할 수 있었다.

탈모나 얼굴의 발진 등과는 별 관계 없겠지만.

각각 다른 원인으로도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이지 않은가.

처음부터 너무 모든 것을 한 가지 원인으로 이어 가려고 하면 난관에 부딪히기 마련이었다.

바루다와 함께 지난 1년간의 케이스를 정리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 외에 당뇨나 고혈압은 진단받은 적 있습니까?”

“네? 아뇨.”

환자는 확실히 젊은 나이이기 때문에 그런지, 기저 질환은 거의 없는 듯했다.

수혁이 그 외에도 몇 가지 수술 이력 등을 물어보았지만 별로 걸리는 건 없었다.

“자, 그럼 청음 좀 해 볼게요. 아, 엑스레이 찍었나?”

“아, 아뇨. 아직…….”

“그럼 지금 처방 내요. 나 검진하는 사이에.”

“네네.”

수혁은 안대훈에게 처방을 내게 한 후, 환자의 폐 하엽을 콩콩 두드려 보았다.

무언가 둔탁한, 그러니까 뭔가 좀 차 있는 느낌이 들었다.

예전 같았으면야 바루다는 이런 식의 검진에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을 테지만.

지난 1년간 나름 오감에 대한 데이터도 쌓아 온 터였다.

[물. 물이 차 있군요.]

‘역시……. 일단 엑스레이 빨리 찍어야겠어. 열은 없는 거로 보면……. 결핵일 수도 있어, 진짜.’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한때 결핵이 빠른 속도로 급감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해외여행이 늘어나고, 또 해외에서 대한민국으로 오는 경우가 확 늘어나면서 슬금슬금 감염률이 올라오는 추세였다.

즉 절대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다.

“배도 좀 볼게요. 누워 볼 수 있어요?”

“누, 누우면 더 숨이…… 하……. 찹니다.”

“잠깐만요.”

“음……. 네.”

환자는 마지 못해 자리에 누웠다.

어찌 됐건 병원에 왔으니 의사 말은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아까 하윤이나 지금 대훈의 태도로 미루어 볼 때 수혁은 꽤 높은 사람 같았다.

‘음. 비장은 왜 커져 있지?’

그사이 수혁은 환자의 배를 아주 빠른 속도로 훑었다.

[그러게요. 뭔가 시스테믹 한 병도 의심해야겠습니다.]

그러다 비장의 비대가 있는 것을 깨달았는데, 상당히 이상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환자는 젊었고, 아무 기저 질환이 없다고 했으니까.

잠시 고민에 빠져 있으려니, 대훈이 말을 걸어왔다.

“선생님, 준비됐습니다. 바로 가면 된다고 합니다.”

“아, 그. 미안한데 같이 데리고 갔다 와 줄래? 내가 다리가 이래 놔서.”

“아, 아닙니다! 아닙니다! 미안하긴요! 제가 갔다 오겠습니다!”

“고마워.”

“아뇨, 아뇨.”

안대훈은 황송하다는 얼굴로 환자와 함께 엑스레이 촬영실로 사라져 갔다.

덕분에 환자는 수혁이 레지던트 2년 차가 아니라, 아주 젊어 보이는 교수인가 하는 착각에 빠졌다.

‘뭐라고 하든 말 잘 들어야겠다…….’

예기치 않게 안대훈이 선순환의 역할을 하게 된 셈이었다.

아무튼, 엑스레이는 특히 흉부 엑스레이는 시간 걸릴 일이 없는 검사 아니던가.

환자가 거동에 문제가 있는 상황도 아니고.

해서 금세 사진을 찍고 되돌아올 수 있었다.

“선생님, 왔습니다!”

“아직 안 넘어왔네.”

“넘기라고 할까요?”

“아니, 아니. 그럴 것까진 없어. 어, 넘어온다.”

수혁은 의욕 넘치는 안대훈의 모습에 실소를 머금은 채 엑스레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혀를 찼다.

폐에 물이 찬 것 맞았는데.

다른 곳에도 물이 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낭에…… 물이 찼어.’

[심막염입니다. 이 역시 결핵이 원인이 될 수는 있습니다.

‘일단 물부터 빼자. 양이 너무 많아 보여. 심박동 수 110회잖아. 이러다 심장 처지면…….’

[이현종 원장에게 부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아니, 이건 내가 하지 뭐.’

[아. 하긴. 충분히 가능하겠습니다.]

심혈관 조영술이 필요한 경우라면 반드시 이현종을 불러야 할 터였다.

하지만 이건 그냥 초음파 보면서 밖에서 처치하면 되는 일 아닌가.

물론 2년 차 주제에 이걸 하겠다고 하는 건 시건방진 것을 넘어 미친 수준이긴 했지만.

수혁은 일반적인 2년 차가 아니지 않은가.

벌써 몇 번이나 해 본 경험도 있었다.

“여기 심초음파 봐야 하니까, 초음파 좀 가져와 줘.”

“아, 네! 펠로우 선생님 노티도 드릴까요?”

“응? 아니. 노티는 이따 내가 할게. 일단 내가 보려고.”

“아……. 역시!”

안대훈은 과연 천재 이수혁이라는 생각과 함께 내달린 후, 초음파를 들고 왔다.

아무래도 태화 의료원이다 보니 응급실 처치실에도 심장 초음파 기기가 비치되어 있었다.

“음.”

수혁은 그 기기를 아주 능숙하게 켜고는 환자의 가슴에 가져다 댔다.

“좀 차갑습니다.”

“으……. 네.”

“좀만 참으시면 편해지실 거예요.”

“네…….”

환자는 눕자마자 앉아 있을 때와 비교해 훨씬 더 숨차했다.

심장에 물이 차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수혁이 초음파 보는 일에 아주 능숙하다는 점이었다.

“따끔해요.”

어느 틈엔가 소독을 했나 싶더니, 바로 찔러야 할 지점을 잡고는 주삿바늘을 찔러 넣었다.

“읍.”

“지금 잘 나오고 있습니다.”

“네, 네…….”

수혁은 그렇게 100cc가량을 뽑아 낼 수 있었다.

육안으로 보기에도 어마어마한 양인데, 이게 심낭 안에 들어 있었다고 생각해 보라.

환자가 엄청 힘들었을 거란 걸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어?”

그에 비례해 환자는 아주 편안해져 있었다.

“어때요?”

“조, 좋아요. 저 다 나은 건가요?”

심지어 다 나았냐고 물을 정도였다.

물론 그럴 리는 없었다.

“아뇨. 이제 치료 시작입니다. 다시 차오를 수 있어요. 일단 입원하셔야 해요.”

수혁은 그렇게 말하면서 방금 뽑아낸 액을 들여다보았다.

아주 맑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탁하지도 않았다.

[결핵이 원인은 아니겠는데요.]

‘바이러스성 질환일까?’

[아직은…….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보다 정보가 필요합니다.]

‘입원시킬 거니까, 일단 두고 보자고. 설마 하루 이틀 사이에 어떻게 되진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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