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73화 (73/1,303)

73화 Dyspnea (3)

어제 오후 회진 때까지만 해도 환자 상태는 퍽 좋았더랬다.

하지만 지금 마주한 환자는 그렇지가 못했다.

놀래서 달려온 신현태 그리고 협진 형식을 통해 환자를 진료 중이던 류마티스 내과 정민경 교수 또한 얼굴이 좋지 못했다.

“언제……. 언제부터 이랬다고?”

신현태 과장은 당황스럽다는 얼굴로 안대훈을 돌아보았다.

안대훈 또한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주말 지나면 퇴원하자는 얘기가 오고 갔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환자 상태는 거의 최악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어제……. 어젯밤입니다. 근데 그때는 진짜 잠시뿐이었고, 바로 좋아졌습니다.”

“음.”

“환자 소변 검사 어땠죠?”

신현태는 입을 다물었고, 그사이 류마티스 정민경 교수가 입을 열었다.

그 말에 안대훈은 급히 환자의 검사 결과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결과가 툭 치면 툭 나오는 사람은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혈뇨에 단백뇨 지속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소변량이 하루 I/O에 맞아서 경과 관찰 중이었습니다.”

물론 수혁은 예외였다.

그의 머릿속에는 환자 검사 결과는 물론 어지간한 교과서까지 모조리 수록되어 있었으니까.

“오늘 흉부 엑스레이는?”

“그건 아직 확인 못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수혁도 이 환자는 백만 보고 있을 뿐, 자기 환자는 아니었기 때문에 매일 아침 확인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문제가 생겼다는 것도 방금 연락을 받고 알게 된 참 아니던가.

게다가 토요일 아침 6시 반의 일이니 딱히 책망받을 만한 일은 아니었다.

“아니, 괜찮아요. 지금 확인합시다. 1년 차 샘?”

“네. 아…… 여기 있습니다.”

“음.”

금일 시행한 흉부 엑스레이와 어제 엑스레이는 일견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차이가 보였다.

“여기……. 횡격막 라인이 약간 둔해졌습니다.”

그 사실을 바루다의 도움으로 누구보다 빨리 캐치한 수혁이 모니터 좌측 하방을 가리켰다.

환자의 우측 가슴 하방이 위치한 곳이었다.

“아……. 물이 찼네.”

그간 스테로이드 치료를 통해 빠르게 호전되었던 환자의 폐에 다시 물이 찬 순간이었다.

원인이 뭘까.

수혁은 엑스레이를 보는 순간 직감할 수 있었다.

물론 류마티스 내과 교수로서 전신 홍반성 루푸스 환자를 많이 보아 온 경험이 있는 정민경 교수 또한 마찬가지였다.

“신부전……. 아마도 루푸스가 신장을 침범한 것 같습니다.”

정민경 교수는 신현태보다 직급이 한참 아래였기 때문에 일단 보고 형식을 취했다.

신현태는 어두워진 얼굴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신장이라니.

너무 중요한 장기 아니던가.

“수혁이 생각은?”

“네. 제 의견도 같습니다. 급성으로 확 염증이 일어날 때, 신장을 침범하는 경우가 잦습니다. 환자 소변 검사 수치도 이를 반영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스테로이드를 프레드니솔론 60mg으로 증량하고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추가해야 합니다. 아, 죄송합니다. 정민경 교수님께 물은 건데…….”

수혁은 습관처럼 신현태의 질문에 답을 해 나가다가, 정민경 교수를 바라보았다.

이제 막 조교수를 단 그녀는 제법 무서운 교수 중 하나였다.

하지만 동시에 수혁의 위치를 아주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아냐, 아냐. 역시가 역시네. 제 의견도 같습니다. 일단 약 그렇게 변경하고……. 그나마 컨디션이 허락할 때 빨리 신장 조직 검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직 검사라. 그게 그냥 진단만을 위한 건 아니지?”

“네. 약제 종류를 결정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입니다.”

신장 조직 검사는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듯 상당히 침습적인 검사였다.

지금처럼 환자 상황이 나빠진 상황에서 단순 진단 목적으로 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얘기.

하지만 치료 방침을 결정할 수 있다고 하면 얘기가 많이 달라졌다.

“그럼……. 해야지. 내가 보호자한테 설명할게. 검사는…….”

“제가 영상의학과 김진실 교수님 노티하겠습니다.”

수혁은 이제 겨우 2년 차가 된 사람답지 않게 병원 내에서 꽤 발이 넓은 편이었다.

워낙에 원장 아들이라는 소문이 그를 밀어주고 있는 것도 있었지만.

실제 능력이 워낙 좋기도 하지 않던가.

일단 수혁과 한 번만이라도 진료를 해 본 사람이라면 거의 다 호감을 두기 마련이었다.

덕분에 감히 다른 과 교수에게 컨택하겠다는 말을.

그것도 주말에.

이토록 거침없이 해 댈 수 있었다.

“그래. 그럼 수혁이가 하도록 하고. 정민경 교수는……. 미안하지만, 주말 사이에 환자 잘 좀 같이 봐줘.”

“네, 과장님. 걱정 마세요. 제 환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환자는 곧 1층 영상의학과 초음파실로 내려가게 되었다.

원래 같으면 레지던트가 굳이 따라가진 않아도 되었지만.

지금은 환자가 너무 좋지 않은 상황 아니던가.

주말이라 달리 할 일이 없기도 했고.

“선생님,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그게 미안한 안대훈은 연신 고개를 숙여 댔다.

“아니, 아냐. 같은 파트잖아. 내가 너 백이고. 어제……. 오후에 봤을 때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물론 수혁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게요. 왜 몰랐을까요?]

바루다 또한 마찬가지였다.

둘 다 안대훈을 탓하기는커녕 자신만 탓하고 있었다.

‘종아리 한 번만 짚어 볼걸.’

[그런데……. 소변 검사 매일 나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변화가 있던가요?]

‘변화는……. 없지.’

[그럼 그게 이 증상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해서 둘은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안대훈을 옆에 둔 채로 끊임없는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미 바루다의 분석 능력이 상당히 발전해 있는 데다가.

수혁의 실력까지 늘어서 굉장히 발전적인 대화라 할 수 있었다.

‘음……. 원인이 아니라고? 근데 그럼 뭘 의심하는데?’

[그걸 모르겠어서 여기까지 그냥 내려온 거죠.]

일단 바루다는 이제 더는 대안 없는 반대를 늘어놓고 있지 않았다.

물론 환자에게 해가 될 거 같으면 당연히 반대하겠지만.

더 좋은 의견을 분석해 내기 전까지는 기다릴 줄 알게 되었다.

‘아무튼, 신장 조직 검사 자체는 의미가 있지.’

[그렇습니다. 하지만 꽝일 가능성 또한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합니다.]

‘네 말 듣고 보니까 그렇네……. 음…….’

[이제 수혁도 분석 능력이 많이 발전했으니, 한번 고민해 보십쇼.]

‘알았어. 흠.’

해서 둘은 그대로 입을 다문 채 각기 생각에 잠겼다.

“아, 수혁 선생.”

잠깐 그러고 있자니 김진실 교수가 나타났다.

주말이라 집에 있다가 온 건지, 완전 사복 차림이었다.

“김진실 교수님. 죄송합니다.”

“아냐. 환자 급하다며. 검사해야지. 근데 검사하면 검체 봐 줄 사람은 있는 거지?”

“네. 신현태 과장님이 백방으로 알아보셨습니다.”

“뭐 VIP야?”

“아뇨. 그건 아닌데……. 환자가 너무 젊어서요.”

“아, 하긴. 신 과장님이나 수혁 선생이나……. 열혈이지. 열혈.”

김 교수는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하는 둘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다가, 이내 초음파실 안쪽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환자가 앉은 채로 김 교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눕히면 숨이 차니,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검사 시에는 잠깐 엎드려야 되는데, 괜찮나요?”

“네. 괜찮습니다. 여차하면 처치하려고 같이 내려왔습니다.”

김진실 교수의 말에 답을 한 사람은 환자가 아니라 수혁이었다.

그는 옆에 미리 챙겨 둔 삽관 세트를 톡톡 두드리고 있었다.

영상의학과 입장에서는 퍽 든든해지는 순간이라 할 수 있었다.

“오케이. 그럼……. 일단 엎드리시고. 따끔해요.”

해서 김진실 교수는 즉시 검사에 나섰다.

워낙 손이 좋기로 유명한 데다가, 환자가 젊은 성인이라 검사는 정말이지 금세 끝이 났다.

“자, 여기 잘 눌러요. 루푸스면 출혈 경향 있을 거 아냐. 안 누르면 큰일 나.”

“네, 교수님. 감사합니다.”

“아냐. 근데 나 이제 어디 가거든? 또 부를 거 같은 일 있으면 지금 말해. 지금 하게.”

“아뇨, 교수님. 이제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그래, 그럼. 수고하시고……. 논문 관련해서는 다음에, 다음에 얘기하자.”

“네, 교수님.”

해서 김진실 교수는 거의 오자마자 가나 하는 느낌으로 검사실을 떠났다.

그녀의 말대로 신장 조직 검사는, 특히 환자가 루푸스와 같은 전신 질환을 가진 환자일 때는 꽤 위험할 수 있었다.

때문에 안대훈은 수혁의 코치를 받아 지금 막 검사한 부위를 강하게 압박했다.

이미 붕대를 둘러 눌러 감았음에도 그러했다.

[저만하면 출혈이 생기진 않을 겁니다.]

바루다의 마음에 들 정도로 강하고 효과적인 압박이었다.

해서 수혁 또한 안심을 한 채 병실로 향했다.

“네, 교수님. 검체 올려보냈습니다.”

“어어. 수고했다. 바로 검사할 거야. 약은 일단 그대로 유지하자고. 정민경 교수가 아까 네가 말한 대로 처방 넣어 놨어.”

“네, 교수님.”

“그래. 뭔 일 나면 또 연락해라. 나 그냥 병원 근처에 있으려고.”

“네.”

신현태에게 진행 상황을 모조리 얘기해 주면서였다.

신현태는 뭔가 계획적으로 간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안심할 수도 없어서, 병원 앞 식당으로 향했다.

여기서 식사라도 가족이랑 하기 위함이었다.

그사이 수혁은 안대훈과 함께 환자를 병실로 옮기고, 역시 마찬가지로 식당으로 향했다.

당연히 밖은 아니었고, 지하 1층에 있는 직원 식당이었다.

“밥은 먹어야 해. 안 그러면 못 버텨.”

“네, 선생님.”

별것 아닌 말이었지만.

안대훈은 마치 금과옥조 같은 말씀이라도 되는 듯 가슴속 깊이 새겼다.

그리곤 병원 밥을 펐는데, 솔직히 진짜 별로였다.

토요일 점심 직원 식당 아니던가.

당직 서는 레지던트나 인턴 또는 듀티 온인 간호사들 말고는 먹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뜻이었다.

그나마 태화 의료원이라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쓰레기가 나올 수도 있었다.

“음.”

“후.”

해서 깨작깨작 밀어 넣고 있는데, 전화기가 울렸다.

우우우웅.

왜애애앵.

수혁과 대훈 둘의 핸드폰이 동시에 울렸다.

둘 다 같은 번호가 찍혀 있었다.

바로 김승준 환자가 입원해 있는 그 병동 번호였다.

“설마?”

둘은 바로 입에 있던 것을 내뱉으며 전화를 받았다.

“환자……. 혈압이 떨어집니다!”

“바이털 90에 55입니다!”

90에 55.

단기간에 빠졌다고 치면 상당히 많이 떨어진 참이었다.

이러다 ‘어…….’ 하는 사이에 훅 가는 경우도 많았다.

다른 과 환자들처럼 건강한 환자들이라면 버틸 수도 있지만.

내과는 달랐다.

“올라갈게요!”

“지금 갑니다!”

때문에 둘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식판엔 남아 있는 게 꽤 많았지만.

그 누구도 잔반 버린다고 뭐라고 하진 않았다.

레지던트들이 저렇게 급히 움직일 땐 반드시 누군가의 생명이 걸려 있는 거니까.

두두두.

해서 둘은 그대로 엘리베이터를 향해 달렸다.

물론 수혁은 한쪽 다리가 불편해 속도가 아주 빠르진 않았지만.

안대훈이 거의 목숨을 걸다시피 부축을 해서 제대로 금세 올라탈 수 있었다.

그동안 둘은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안대훈은 패닉 상태에 빠져서였고.

수혁은 바루다와 대화를 하느라였다.

[신장 조직 검사 후 발생한 출혈일까요?]

‘가능성이 있을까? 그렇게 눌렀는데?’

[그럼 왜 혈압이 떨어질까요? 일단은 출혈로 인한 저혈압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늘 가능성 큰 게 우선이니까요.]

‘일단 가서 봐야지.’

[그럼 빨리 가시죠, 수혁.]

‘엘리베이터를 내가 모냐?’

[원장님한테 전화해 보세요. 혹시 압니까.]

‘헛소리하지 말고…….’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