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Dyspnea (4)
“선생님! 처치실로 옮겼습니다!”
수혁이 병동 스테이션에 도달하자마자 간호사들의 새된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흡사 비명처럼 보이기까지 했는데, 아주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방금 무언가 침습적인 처치를 하고 온 환자가 혈압이 떨어지고 있지 않은가.
의료 사고까지는 아니더라도 무언가 처치와 관계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처치실. 알겠어요. 대훈아, 네가 먼저 가서 일단 보고 있어. 바로 따라갈게.”
“어, 네!”
대훈은 수혁을 부축하려다 말고 즉시 처치실을 향해 달렸다.
다행히 아직 심폐 소생이 필요한, 즉 코드 블루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처치실에 의사 하나쯤은 있어야 안 되겠냐는 생각에서였다.
투둑.
투둑.
수혁은 그렇게 대훈을 먼저 보낸 후, 부리나케 지팡이를 놀려 댔다.
[이제 이것보단 더 빨라질 때도 되지 않았을까요? 연습에 너무 게으른 거 아닙니까?]
‘시끄러워, 인마. 다리 불편한 사람한테 그게 할 소리냐?’
[화가 나면 빨라지길래 한번 말해 봤습니다. 역시 속도가 대략 11% 정도 증가하는군요.]
‘아오.’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는데.
인정하기는 싫지만 바루다 덕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확실히 빡친 후로는 속도가 나고 있었으니까.
“음.”
그렇게 도달한 처치실에는 환자가 침대째로 옮겨져 있었다.
먼저 온 대훈이 삽관이라도 해야 하나 하는 얼굴로 튜브를 들고는 있었지만.
아무리 봐도 저 녀석 혼자서는 목구멍에 제대로 넣을 수 있을 거 같지 않았다.
오히려 그게 가능하면 더 이상한 일이었다.
1년 차 3월 첫째 주에 삽관이라니.
아마 해 낸다면 수혁보다 더 대단한 놈이 왔다는 소문이 퍼지지 않을까.
[바이털이나 보시죠. 안대훈은 지금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작년 수혁도 저것보단 나았습니다.]
‘저것?’
[그냥 넘어가죠. 말투를 수혁한테 배워 놔서.]
‘어후.’
어떻게 된 게 날이 가면 갈수록 빡치게 하는 실력만 늘고 있었다.
아니, 뭐 진단하는 능력도 늘고 있긴 했지만.
아무튼, 수혁은 바루다의 의견을 받아 환자의 바이털 쪽을 바라보았다.
‘혈압은 90에 55……. 아까 노티 받은 거랑 같고.’
[심박동 수가 무려 136회입니다. 너무 빨라요.]
그에 비하면 체온이나 호흡수는 정상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그냥 그런가보다 싶은 수준의 단서겠지만.
바루다가 함께하고 있는 수혁에게는 아닐 수 있었다.
그렇기에 수혁은 다시 한번 바이털 수치를 머릿속에 새겨 넣으며 환자에게로 다가갔다.
어느새 손에 청진기가 들려 있었는데, 미처 응급 검사가 이루어지기 전에 뭐라도 하나 더 알아내기 위함이었다.
‘호흡……. 거친데. 어떤 거 같아?’
[분석 중입니다.]
‘얼마나 걸려?’
[지금 끝났습니다. 수혁이 획득한 청음 데이터 12,752건을 토대로 분석한 결과 환자는 우측 하엽에 혼탁 음이 있으며 원인은 폐부종일 가능성이 98%입니다.]
‘폐렴은 아니고?’
[폐렴일 가능성 또한 0.9%가량 있으나, 바이털 수치 중 호흡수, 체온이 정상임을 고려할 때 무시할 수 있는 수치가 됩니다.]
‘그렇군. 듣고 보니까, 그래.’
의학은 종합적인 사고를 요구하는 학문이었다.
단서 하나에만 매달려 있을 게 아니라, 전부를 떠올려야 한다는 뜻이었다.
바루다는 그간의 연습을 통해 상당한 능력을 키워 왔고, 동시에 수혁 또한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폐부종. 그럼 원인은?’
[일단 신장 조직 검사 부위에서의 출혈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겠지. 상처 부위가 너무 깨끗해.’
수혁은 혹시 몰라 간호사 하나가 꾹꾹 누르고 있던 검사 부위를 들춰 보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쪽은 그저 깨끗하기만 했다.
바늘구멍 하나 나 있을 뿐이었고, 새어 나오는 것도 하나 없었다.
심지어 부은 흔적조차 전혀 없었다.
‘게다가 출혈이 폐부종을 일으키기도 쉽지 않지.’
[그렇다면…….]
바루다는 환자의 심박동 수를 상기시켰다.
분당 무려 132회.
정상 속도에 비해 거의 두 배는 빨라져 있는 셈이었다.
‘피가 많이 나서 혈류가 부족해진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빨리 뛰고 있을까.’
[심장 기능……. 자체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심전도 검사를 요청합니다.]
‘좋아.’
그때 마침 병동에서 부른 방사선사가 이동 가능한 X-ray 기기를 들고 밀고 들어오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이 검사를 먼저 시행해야 할 터였다.
뭐가 어찌 되었건 흉부 X-ray는 상당히 많은 정보를 주니까.
하지만 지금의 수혁이나 바루다에게는 아니었다.
이미 폐부종이라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던가.
현대 의사들이 경시하는 청진기 하나 달랑 매고서.
게다가 더 급한 검사까지 떠올린 마당이었다.
“잠깐! 잠깐 대기!”
해서 수혁은 일단 방사선사를 제지 시키고 옆에 있던 인턴의 어깨를 두드렸다.
“선생님, 바로 EKG 좀 찍읍시다. 병동 스테이션에 있으니까 바로 들고 와요. 바로 옆이야.”
“아…… 네!”
인턴의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비록 방사선사가 똥 씹은 얼굴을 하고 있긴 했지만.
저쪽도 일단 순순히 나가고 있지 않은가.
그에 반해 수혁은 대세였다.
의학적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기 이전에 이 사람 말이라면 듣는 것이 좋았다.
드르륵.
해서 인턴은 옆쪽으로 난 통로를 통해 즉시 EKG를 끌고 왔다.
수혁은 본인 다리만 온전했으면 직접 들고 왔을 정도로 마음이 급했기 때문에 힘을 합쳐 환자의 몸에 EKG 기기의 리드를 붙여 나가기 시작했다.
시선은 EKG 모니터에 고정한 채였다.
“이런 젠장.”
모든 리드가 연결되어 모니터에 온전한 심전도가 뜨자마자 수혁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 나왔다.
[V4, 5, 6에서 T wave가 반전되었습니다.]
수혁은 바루다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근병증……. 경색일까?’
[경색의 가능성도 있습니다만, 확률은 떨어집니다. 환자 나이 및 기저 질환을 고려해야 합니다.]
상황이 워낙 급했기 때문에 바루다는 드립도 치지 못하고 의견만 제시하고 있었다.
수혁 또한 그 의견을 기반으로 다른 의견을 내기에 급급했다.
다른 장기도 아니고 심장이라서 그러했다.
‘기저 질환이라…….’
[루푸스뿐입니다. 당뇨, 고혈압은 없습니다.
만약 이 환자가 40대라도 되었거나, 당뇨 고혈압이 있었다면야 당연히 경색을 1순위로 올려다 둬야 할 터였다.
하지만 수혁의 눈앞에 있는 환자의 나이는 이제 고작해야 23.
딱히 비만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건장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지경.
“일단 심초음파! 초음파 있죠? 병동에!”
“아, 네! 가져올까요?”
“네. 그……. 기사님 죄송합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아뇨, 아뇨. 괜찮습니다. 네.”
아까까지만 해도 불만 가득한 얼굴이 되어 있던 방사선사.
하지만 심전도 사진이 비정상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을 보고 난 이후엔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리고 혈액 검사 나갑니다! 일단 기본 풀랩 나가고! CK, CK-MB, TnI에……. BNP 나가 주세요.”
“네, 선생님!”
설령 불만이 남아 있다고 해도 그걸 표출할 수 있을 만한 분위기도 아니었다.
처치실 안은 그야말로 여느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으니까.
그 한가운데 서서 모든 것을 지휘하고 있는 수혁은 이제 겨우 레지던트 2년 차가 된 사람이라고 하기엔 너무 능숙해 보였다.
‘역시……. 이 사람은…….’
안대훈은 그런 수혁을 마치 어떤 신이라도 된 듯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사이 간호사의 손에 의해 피가 얼마간 뽑혔고, 인턴은 초음파 기기를 들고 나타났다.
“네, 교수님. 지금 일단 초음파 보고 있겠습니다.”
“어어! 바로 갈게!”
“네.”
수혁은 짬이 난 틈을 타서 신현태에게 걸었던 전화를 끊고 초음파를 받아 들었다.
그리곤 곧장 젤을 짜 낸 후, 환자의 심장에 가져다 댔다.
툭.
툭.
그러자 어딘지 모르게 힘없어 보이는 심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냥 느낌만 그런 게 아니라, 확실히 심장 뛰는 모습이 좀 이상했다.
‘전체적으로 움직임이 떨어져.’
[분석 결과 두드러지게 움직임이 떨어져 있는 부위는 없어 보입니다.]
‘역시 경색에 합당한 소견은 아니군. 그럼 심박출량은 얼마나 되지?’
[심초음파에 구비된 CPU는 그 기능이 바루다에 비해 현저히 떨어집니다. 기다려야 합니다.]
‘넌 이 상황에서도……. 아, 아이고.’
환자의 심박출 기능은 15%였다.
명백한 심장 기능 부전을 가리키는 수치라 할 수 있었다.
그나마 나이가 젊어서 이만큼이라도 버티는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쯤 숨이 넘어갔을 터였다.
‘심전도 이상하고, 초음파상에서 심장 움직임 떨어져 있고, 경색 가능성은 떨어져.’
[최근 두부 충격도 없었으며, 피오크로모사이토마(Pheochromocytoma: 갈색 세포종)도 없으며, 뇌출혈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스트레스성 심근병증을 의심할 수 있습니다.]
바루다는 지금껏 처치실에서부터 쌓아 올린 근거를 토대로 가장 합리적인 진단명을 내놓았다.
일단 혈압의 저하에 대한 원인이 신장 조직 검사로 인한 출혈이 아닌, 폐부종을 일으킨 심장 쪽 원인일 것이라고 가닥을 잡았고.
심전도 및 환자 기저 질환, 초음파 소견 등을 통해 심장의 기능 부전이 경색이 아닌 다른 원인.
즉 스트레스성 심근병증이란 결론에 도달한 것이었다.
“이런 젠장.”
수혁으로서는 욕설을 내뱉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스트레스성 심근병증은 이름만 들어보면 별거 아닌 거 아냐 싶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처럼 심근 기능이 떨어진 경우엔 죽음에 이를 가능성이 매우 큰 질환이었으니까.
“일단……. 도파 달고! 바로 심혈관 중환자실로! 대훈아! 넌 교수님한테 연락드려! 중환자실 간다고!”
“네, 네! 그, 근데 병명은 뭐라고 전달…….”
“스트레스성 심근병증, EF 15%라고 전해! 그럼 바로 뛰어오실 거야!”
“네!”
“자자. 일단 내려갑니다! 혈액 검사 결과는 나왔어요?”
수혁은 지팡이도 내팽개친 채, 침대를 밀며 물었다.
인턴이나 간호사들도 한마음 한뜻이었는데 그중 한 명이 고개를 돌려 수혁을 향해 외쳤다.
“네! 그……. 다른 건 다 괜찮은데, CK 비롯한 심근 효소들은 올라 있습니다!”
“그거야 그럴 수밖에 없죠. 다른 건?”
심근병증 아닌가.
심장 근육이 파괴되고 있으니, 안쪽에 있는 효소들이 혈액으로 흘러나와 검출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아, 간 수치가 떴습니다! AST/ALT가 2022, 2617입니다!”
“아. 이거 정말…….”
심장 기능이 떨어지는 건 이래서 무서웠다.
멀쩡한 성인 남자 폐에 물이 차질 않나.
간이 괴사에 들어가질 않나.
이 상태가 좀만 더 지속된다면 다발성 장기 부전으로 인한 사망으로 이어질 것이 뻔했다.
[현 상황 바탕으로 최적의 치료 방법 분석하겠습니다. 한동안 대화는 불가합니다.]
심각성을 인지한 바루다는 아예 분석 모드로 들어갔다.
수혁은 그런 바루다에게 고맙다는 말도 하지 못한 채 침대를 밀었다.
“어, 어떻게……. 어떻게 된 거야?”
중간에 신현태를 만나기 전까지는 아예 입도 열지 않았다.
“환자 혈압이 떨어져서……. 진찰해 보니 폐부종이 있었고, 심장 원인이라 생각해 시행한 심전도에서 V 4에서 6번까지 T 분절 하강이 있어 스트레스성 심근병증 가능성 의심했습니다. 심초음파에서도 이에 합당한 소견 보여 도파 걸고 내려온 겁니다.”
“아.”
신현태는 이런 진단 흐름이 레지던트 2년 차에게 가능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살려 달라는 말을 듣고 달려온 이현종 또한 마찬가지였다.
‘진짜 아깝단 말이지.’
만약 다리만 괜찮았으면 바로 순환기내과에서 낚아채는 건데.
이현종은 수혁의 다리에서 겨우 눈을 뗀 후, 수혁의 얼굴을 마주했다.
“그럼 계획은? 계속 도파 걸고 볼 거야?”
무언가 시험하기 위함이 아닌, 정말 네 생각이 뭔지 궁금해서 묻는 질문을 던지면서였다.
물론 수혁은 그 질문에 곧장 답하진 못했다.
‘야, 아직이야?’
바루다가 가만히 있었으니까.
‘야야.’
[1분. 1분만 끄십쇼. 입 잘 털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