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Dyspnea (5)
‘입을 털라니. 이놈아…….’
수혁은 당황한 나머지 한 번 더 바루다를 불렀지만.
바루다는 말이 없었다.
다시 연산에 들어간 덕이었다.
슈퍼컴퓨터를 가지고 있던 놈이 기껏해야 수혁의 뇌나 굴리게 되었으니 무리도 아니긴 했다.
“치료는 어쩌려고?”
그사이 환자는 심혈관계 중환자실, 일명 CCU에 들어왔다.
신현태 환자인 데다가 이현종 원장의 아들 수혁이 백을 봐 주고 있는 환자 아니던가.
당연하게도 자리는 한참 전에 마련되어 있었다.
“삽관 준비하고……. 벤틸 조정 미리 해 주시고요.”
해서 수혁은 일단 이현종의 답을 애써 무시한 채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생각 같아서는 이걸로 1분을 때우고 싶었지만.
환자 상태가 상태다 보니 시간을 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해서 부리나케 지시를 내리다 보니 무려 20초 만에 모든 지시를 내리고야 말았다.
‘하여간 너무 우수한 것도 탈이구나.’
일부러 바루다를 도발해 보았지만.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하.’
수혁은 잠시 한숨을 쉰 후, 환자를 바라보았다.
이제 환자는 숨마저 껄떡거리고 있었다.
아직 산소 포화도는 유지되고 있었지만.
아마 오늘이 가기 전에 삽관해야 할 가능성이 커 보였다.
‘정말 그렇게 호흡만 잡는 게 능사일까?’
아까 자신이 직접 보았던 환자의 심기능을 떠올려 보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고작해야 15%.
중증 심부전이라는 뜻이었다.
물론 스트레스성 심근병증은 4주 이내에 대개 돌아온다고 하지만.
15% 상태로 1주만 계속되어도 환자는 사망하게 될 터였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일단 스트레스성 심근병증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루푸스에 대한 치료는 지속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지금처럼 스테로이드에 면역 억제까지?”
“아뇨. 심장에 부담이 될 수 있는 약제는 소거하고, 스테로이드만……. 프레드니솔론 60mg 하겠습니다.”
“음.”
이현종은 평소와는 달리 긴가민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도 동의는 하겠는데, 이게 최선인지는 모르겠다는 그런 반응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렇게 젊은 나이에, 이렇게 급작스러운 진행은 드물었으니까.
제아무리 천재라 해도 바로바로 치료 계획을 수립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나마 수혁이 기가 막히는 진단 플로우로 여기까지 끌고 온 게 용하단 생각만 들 뿐이었다.
“그리고?”
“일단 혈압을 봐야 하는데…….”
수혁은 그렇게 말하면서 환자의 머리맡에 달린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혈압은 아까 약을 줬음에도 불구하고 수축기 100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에 더해 심장박동 수는 120여 회를 유지하고 있었고.
이러다 심장 처지면 그대로 죽음이었다.
“어쩐다.”
이현종은 흐릿해진 환자의 의식을 확인하고는 본심을 털어놓았다.
명쾌한 답 대신 고민이 튀어나오는 순간이었다.
그 바람에 딱 그만 믿고 있던 신현태가 비명 비슷한 것을 질렀다.
“혀, 형. 형이 이러면 어떡해요.”
“어쩌긴. 경과가 너무 빠르잖아. 이건 뭐……. 의료진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그래도……. 환자가 젊잖아요. 저 회진 돌 때마다 보호자분한테 괜찮을 거라고 했는데.”
“그땐……. 그때 기준에서는 그랬지.”
스트레스성 심근병증이 올지 몰랐으니까.
그저 하루하루 좋아지는 염증 수치와 폐 사진만 확인하고 있었으니까.
딱히 이게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었다.
그저 상황이 바뀌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수혁이한테도 혹시 해서 물었는데……. 쟤도 명확하진 않네.”
“다, 당연하죠. 형, 쟤 2년 차예요. 교수 아니라고.”
“언제는 벌써 교수 수준이네 어쩌네 해놓고서는?”
“그건 형도 동의했잖아요.”
“야야. 다 좋은데, 여기 병원이야. 형이라고 하면 어쩌니.”
“원장님이라고 하면 답 나와요?”
“응? 아니. 고민 좀 해 봐야 할 거 같은데. 근데 버틸 수 있을지……. 그게 문제야.”
이현종은 계속해서 신현태 입장에서는 복장 터지는 소리만 해 대고 있었다.
신현태는 그때마다 발을 동동 굴렀지만 그뿐이었다.
어차피 심장에 관해서는 이현종이 최고 아닌가.
딱히 신현태와 비교해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아마 여전히 국내 제일일 터였다.
그러니 이현종의 입에서 뭔가 그럴싸한 계획이 그럴싸한 근거와 함께 나오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분석 완료.]
만약 바루다가 없었다면 그랬을 터였다.
‘오. 뭐 나왔어?’
[수혁, 그래도 죽어라고 뭘 읽기는 했더군요. 관련 자료가 입력되어 있었습니다. 흐릿해서 좀 오래 걸리긴 했지만.]
‘뭐, 뭔데.’
[현재로서는 최선의 방안이라고 생각됩니다만, 저항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저항? 뭐……. 많이 위험한 치료야?’
[보기에 따라 그렇게 보일 수 있습니다.]
‘시바…….’
위험하다는 말에 수혁의 머릿속엔 여러 치료들이 떠올랐다.
장기가 다른 장기라면 또 모르겠지만.
이건 심장이지 않은가.
위험하게 나가려면 얼마든지 위험하게 나갈 수 있었다.
그중에서는 범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들도 있었다.
[거기까지 가진 말고요. 인공 심장은 뭡니까? 나왔어요? 그거?]
다행히 바루다는 안드로메다를 향해 날아가던 수혁의 사고를 붙잡아 주었다.
제대로 된 분석 결과를 얘기해 주면서였다.
[우선 에크모를 달아야 합니다.]
물론 이것도 그렇게 만만한 치료는 아니었다.
‘에크모……? 아직 심정지는 아니잖아. 에크모는…….’
에크모(ECMO).
Extra-Corporeal Membrane Oxygenation.
일명 체외막 산소 공급 장치.
쉽게 말하면 사람의 폐와 심장 기능을 대신해 주는 기기였다.
다시 말해 심폐 소생이 필요하거나, 곧 필요할 거 같은 사람에게서 수명을 강제로 연장시켜 주는 기기라고 보면 되었다.
[수혁이 6개월 전 획득한 자료에 따르면 루푸스로 인한 스트레스성 심근병증에서 초기 심박출량이 15% 정도인 경우 90% 확률로 심정지를 경험하게 됩니다.]
‘6개월 전…….’
[이 경우 예후는 극히 좋지 못합니다. 대부분 사망으로 이어집니다.]
‘그건 안 되지.’
[또한 수혁이 3개월 전 획득한 자료에 따르면 원인과 관계없이 스트레스성 심근병증에서 에크모를 2주간 시도하는 것이 환자 예후에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고 보고된 바 있습니다.]
‘그건……. 그럴 수도 있겠네.
에크모를 돌리게 되면 그 기간 심장은 반강제적인 휴식에 들어갈 수 있었다.
뭔가 다른 원인, 즉 심근 경색 등에 의해 아예 해당 혈관이 먹여 살리던 근육이 죽어 버렸다면야 당연히 소생 가능성이 희박하겠지만.
스트레스성 심근병증은 근육이 죽는 게 아니라 단지 탈진 상태에 빠진다고 이해하면 쉬웠다.
쉬게 해 주는 것이 의미가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2주간 시도했음에도 심장 움직임이 정상화 되지 않는 경우에는 심장 이식이 필요합니다.]
‘하……. 왜?’
[아직 통계로 잡힌 것은 아닙니다. 다만 메이요 클리닉 판단은 그랬습니다. 근거는 ‘에크모를 돌리면서 지켜본 2주가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의 4주와 비슷하다’ 입니다.]
‘그럴싸하네. 하긴……. 에크모를 2주 이상 돌리는 건 부담이지. 그럼 끊어야 하는데 그때까지도 그 모양이면 이식을 고려해야겠지.’
[정리가 됩니까? 수혁? 어려우면 한 번 더 설명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바루다는 수혁의 시야에 비친 이현종과 신현태를 상기시키며 말했다.
둘은 이미 둘만의 세계에 빠진 지 오래라 수혁은 안중에도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현종을 쥐어 짜내는 중이었다.
“아, 모르겠다고. 지금은. 이런 상황이 어디 흔하니?”
“심장 세계 최고라며. 이거 뭐 NEJM 후루꾸로 받은 거 아냐?”
“후루꾸? 이 새끼가 어디서 이상한 말을 지어내서 써. 뭔 뜻이야, 그거. 엄청 기분 나빠 지금?”
“이해한 그대로의 뜻이지 뭐.”
“이 자식이 정말, 근데. 아, 일단 나도 자료 본다고.”
“환자 상태가 이런데 어딜 가. 여기서 봐.”
“와, 이놈 봐. 꼬박꼬박 형이라고 하더니 이렇게 막 대하네.”
수혁 또한 바루다와 비슷한 눈빛으로.
약간은 한심하다는 눈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해했어.’
[그럼 이 추한 말싸움을 끝내 주시죠. 더는 못 보겠습니다.]
‘오케이.’
수혁은 바루다의 말에 ‘음’ 하는 소리를 내고는, 들고 있던 지팡이로 바닥을 콩콩 찍었다.
수혁이 생각하기에 다리 절게 된 이후 그나마 좋은 일이 있다면 아마 이것이 아닐까 싶었다.
상당히 손쉽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기는커녕 동정심을 사면서 주목을 끌 수 있었으니까.
“음?”
“왜. 수혁아.”
게다가 이현종, 신현태는 자타공인 수혁 바보가 아니던가.
아마 ‘야, 이 새끼들아, 할 말 있다.’ 뭐 이런 식으로 불렀어도 돌아보긴 했을 터였다.
“교수님, 제가 전에 읽어 본 논문 중 메이요 클리닉에서 발표한 것이 있는데요.”
“음, 말해 봐.”
메이요라면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미네소타주에 있는 커다란 병원이었다.
세계 최고라고 자부해도 별말 안 나올 만한 그런 병원이기도 했다.
“루푸스의 급성 발작으로 인한 심근병증에서……. 이 환자처럼 심장 박출량이 15%까지 떨어진 경우 1주 이내 심정지를 경험하게 될 확률이 무려 90%입니다.”
“어? 90? 그렇게 높아? 루푸스는?”
“네. 그렇게 보고되어 있습니다. 워낙 사례가 적어 조심스럽다는 문구가 있긴 했지만, 메이요 경험은 그렇습니다.”
“계속해 봐.”
이현종은 이제 완전히 수혁을 향해 고개를 틀고 있었다.
그런 이현종을 향해 답을 졸라 대고 있던 신현태는 아예 몸까지 틀었다.
“때문에 선제적인 에크모 삽입이 어떨까 합니다. 쉽지 않은 선택이고, 보호자 설득이 필요하겠지만……. 너무 위험합니다.”
“에크모……. 음.”
에크모라는 말에 두 교수의 얼굴이 동시에 어두워졌다.
에크모란 진짜 죽은 사람 살리는 용도로 쓰는 기기였기 때문이었다.
특히 이 환자가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아니겠지 하고 있던 신현태는 갑자기 환자의 얼굴이 좀 더 창백해 보이기 시작할 지경이었다.
“교수님. 벌써 의식이 흐려집니다. 어쩌면 아까보다 더 심장박동이 약해졌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내려오기 전에 도파를 걸었었다는 걸 감안하면, 상황이 나쁩니다.”
“그래.”
다행히 이현종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누가 뭐래도 심장에 있어서만큼은 세계적인 권위자가 아니던가.
딱 이와 같은 케이스를 본 경험은 없었지만.
비슷한 케이스라고 하면 수도 없이 겪은 것이 바로 그였다.
“달자. 보호자 연락해. 일단 먼저 단다고. 책임은 내가 진다. 원장이 진다고 하면 설마 불만 갖진 않겠지.”
“네? 원장님이요?”
“그래. 안 그래도 나도 에크모를 생각은 했어. 근데 너 말 듣고 보니, 그리고 환자 상태 보니까 안 할 이유가 없어. 지금 너무 위험해.”
“가, 감사합니다.”
“그래. 그럼 되나?”
이현종은 벌써 흉부외과 쪽 번호를 누르면서 수혁을 향해 물었다.
설마 더 나올 게 없겠지 하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이수혁이 아니지 않은가.
그에게는 벌써 계획이 다 있었다.
바루다가 무려 2주 앞까지 내다보고 짠 계획이.
당연하게도 입술을 달싹거리며 시동을 걸고 있었다.
[부릉부릉.]
‘이상한 효과음 넣지 마.’
[푸슈슉…….]
‘불안한 건 더 넣지 말고.’
[그럼 빨리 말씀드리세요. 저쪽 표정도 초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