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Dyspnea (6)
바루다의 말을 듣고 보니, 과연 신현태나 이현종이나 상당히 초조해 보였다.
환자 상태가 좋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에크모를 달 정도이지 않은가.
예전 같았으면 죽었단 얘기였다.
해서 수혁은 더 시간을 끌지 않고 곧장 입을 놀렸다.
물론 바루다가 짠 계획대로였다.
“아닙니다. 지금 즉시 심장 이식 대기자 명단에도 올려야 합니다. 물론 이식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으나, 2주 후에도 심장 기능이 돌아오지 않을 경우 영구적 손상으로 판단하고 이식을 해야 합니다.”
“이식 대기자…….”
신현태는 좀 충격을 먹었는지 자기 근처에 있던 테이블을 짚었다.
다리가 휘청이는 게 보일 지경이었다.
그에 반해 이현종은 어느 정도 염두에 두고 있었는지 아주 많이 놀라진 않았다.
“음. 그래. 올리자. 에크모를 다는데, 올리지 않을 이유는 없지.”
“네. 좋아지면 취소하면 되는 문제니까요.”
“그래. 좋아. 그럼……. 일단 에크모……. 아……. 장기전이 되겠는데.”
이현종은 방금 부른 흉부외과를 기다리기 위해 옆에 있던 의자를 당겨다 앉았다.
비록 토요일 오전이라 정규 근무 시간이 아니긴 하지만.
일단 자신의 손을 탄 환자 상태가 나빠지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대강 정리가 될 때까지는 자리를 지키는 것이 도리어 마음이 편했다.
비단 이현종만의 생각은 아니었기 때문에 신현태 또한 그 바로 옆에 자리를 잡았다.
“너희도 앉아. 근데 수혁아. 너 뒤에 그 친구는 누구냐?”
이현종은 딱 등을 기대고 앉고 나서야 안대훈을 발견했는지, 수혁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그러고 보니 어른들 얘기하는데 자꾸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어린 녀석 하나가 있지 않은가.
보니까 가슴팍에는 내과 의사 명찰도 하나 달고 있고.
“네, 원장님! 이번에 1년 차로 들어온 안대훈입니다.”
그 말에 안대훈이 예의 그 군기 바짝 든 모습으로 인사를 올렸다.
이현종은 딱히 그런 것에 감동하는 타입은 아니었기 때문에 심드렁했다.
“왜 여깄어? 1년 차는 중환자 없잖아, 아직.”
“아……. 이 환자분 주치의가 접니다. 이수혁 선생님이 제 백을 봐 주시고 계십니다.”
“응. 수혁아, 너 환자가 아니야?”
이현종은 애초에 안대훈인지 나발인지 하는 1년 차에게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아예 수혁을 향해 고개를 틀었다.
수혁은 원래 이런 방식의 대화에 익숙해진 터라 별로 당황하지 않았다.
“네. 백 보고 있습니다.”
“안대훈이는 노났네. 수혁이가 백이라니. 그냥 교수님이 봐 주는 거랑 똑같을 텐데.”
“아, 아닙니다. 저는 아직 멀었습니다.”
“멀긴. 네가 멀었으면 우리도 다 멀었어. 아무튼, 안대훈이?”
이현종은 수혁이 얼굴만 봐도 기분이 풀리는지 껄껄 웃어젖히고는 재차 안대훈을 바라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둘의 대화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던 안대훈인지라 곧장 답할 수 있었다.
“네!”
“영광인 줄 알아. 수혁이 밑에 있는 거.”
“저, 저는 이수혁 선생님처럼 되려고 내과에 지원했습니다! 정말, 정말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언제 들어도 참 기운찬 녀석이었다.
꼭 병원이 아니라 군대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할 정도였다.
그 목소리를 들던 이현종이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아, 너 안대훈이라고?”
“네!”
“아……. 네가 그놈이구나……. 수혁이 팬클럽을 병원 내부 동아리로 열어 달라고 요청했던.”
“네!”
“안 되는 거 알지? 동호회는 등산, 테니스, 와인 뭐 이런 뭔가 친목 도모 성질이 있어야 해. 나도 뭐 만들고는 싶은데, 안 된대. 이사진이.”
“네!”
이현종은 끝까지 씩씩한 모습을 보이는 안대훈을 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팬클럽이라니…….’
미친놈인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였다.
물론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팬클럽 얘기를 처음 듣게 된 수혁 또한 마찬가지였다.
[병원에 또라이가 많군요. 임상 시험이라도 해 보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뭔 팬클럽이냐.’
[근데 좀 궁금하긴 합니다.]
‘뭐가?’
수혁의 말에 바루다가 잠시 뜸을 들였다.
인공지능이면 인공지능답게 재깍재깍 출력값을 내놓아야 할 텐데.
감각을 너무 다양하게 느끼게 되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데이터 분석을 사람 뇌로 해서 그런 건지.
사람을 지나치게 닮아가고 있었다.
[규정상 원내 동호회 신청을 하려면 발기인이 열 명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는 건…….]
‘설마 내 팬클럽이 벌써 열 명이나 있다고? 학생도 아니고, 병원에?’
[네. 그렇습니다. 누구일까요?]
‘음.’
[우하윤부터 떠올리지 마시고요. 그러다 상처받습니다.]
‘누, 누가 그랬다고!’
수혁은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내심 우하윤을 생각하고 있기는 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벌써 밥도 따로 먹은 사인데.
나름 압도적인 지적 능력을 보여 주기도 했고.
드르륵.
그가 막 너무 멀리까지 상상의 나래를 펼쳐 가려는 순간, 누군가 중환자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상당히 급해 보였는데 당연한 일이었다.
흉부외과였다.
“원장님. 에크모 환자 어딨습니까?”
“아. 저기.”
“음.”
별로 기분이 좋아 보이진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현종은 흉부외과와 사이가 나쁜 편이었으니까.
게다가 바로 저번엔 이현종이 무려 관상동맥의 해부학적 변이를 NEJM에 싣지 않았던가.
콜 받고 갔다가 그냥 해결된 케이스여서 그런가.
더더욱 도둑맞은 기분이 들었다.
“소독하고.”
“네.”
“기구대 펴. 바로 한다. 환자 혈압이 왜 이래. 빨리해야겠어.”
“네, 교수님.”
물론 그렇다고 해서 환자 처치를 소홀히 하진 않았다.
개인의 감정을 공적인 영역으로 끌고 올 만큼 개념이 없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태화 의료원 아닌가.
여기 있는 의료진들은 전부 프로였다.
이현종만큼 유명하진 못해도, 나름 국제 석학들이란 뜻이었다.
“자, 연결됐습니다. 저희가 연결 부위랑 기기는 매일 와서 볼 거니까 걱정은 하지 마시죠.”
덕분에 금세 에크모가 연결되었고, 환자 혈압 또한 정상화되었다.
망가진 심장이 하던 일을 기계가 대신 하게 되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좋아할 일이 아니란 뜻이었다.
“이대로 돌아와야 할 텐데.”
특히 자기가 보던 환자가 잘못되어 본 경험이 없는 수혁의 얼굴이 어두웠다.
이미 계획이 다 서 있어서 괜찮을 줄 알았지만.
막상 에크모가 달린 환자를 보고 있자니 울적했다.
그러자 이현종이 다가와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때론 기다리는 게 제일 중요한 일일 때도 있는 거야. 특히 내과는…….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해. 이것도 치료의 일환이야.”
“네.”
“그래도 네 덕에 여기까지라도 온 거 아냐? 아까 들어보니까 그렇던데. 충분히 헤맬 수 있는 여지가 있었잖아.”
“음…….”
“아무튼, 나도 심초음파 꾸준히 봐 주긴 할 테니까. 일단 기다리자고.”
“네, 원장님.”
이현종은 방금 자신이 말했던 것처럼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굳이 수혁을 설득하거나 해서 당장 태도를 바꿀 생각을 하기보다는 조용히 중환자실을 빠져나갔다.
“그럼 나도 이만 가 볼게. 오늘 고생 많았다. 토요일인데……. 환자 때문에 나가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좀 쉬어.”
“네, 교수님.”
신현태 또한 자잘한 칭찬 및 격려를 하곤 밖으로 나갔다.
둘만 남게 된 수혁과 대훈은 그제야 비로소 서로를 바라볼 수 있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정말…….”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대훈이었다.
그야말로 수혁 덕에 자신이 담당하고 있던 환자가 살아난 셈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아직 죽게 될 공산이 큰 상황이긴 했지만.
그게 적어도 오늘은 아니게 되지 않았던가.
감사할 일이었다.
“아니, 뭐. 백 보는 건데, 당연하지.”
“아니에요. 역시 선생님은 제 우상이십니다.”
“우상은……. 나 너보다 딱 한 살 많아…….”
“근데 실력은 교수급 아닙니까. 존경받아 마땅하죠!”
“그, 그런 말 너무 크게 떠들지 마. 안 좋게 보는 사람들 있다고.”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소리도 있지 않은가.
설마하니 원장을 뒷배로 둔 수혁의 머리를 칠 사람은 없을 테지만.
혹 모르는 일이었다.
여론은 늘 주의하는 편이 좋았다.
“안 좋게 본다고요? 선배를? 감히?”
“감히라니 인마. 일단 한시름 놨으니까, 밥이나 먹자. 배 안 고파? 아까 먹다 말았잖아.”
“아, 그렇고 보니.”
둘은 점심을 반도 채 못 먹고 올라온 상태였다.
그 상태 그대로 환자를 보면서 일반 병실에서 중환자실로 내려왔고.
중환자실에서는 무려 에크모까지 단 참이었다.
벌써 점심보다는 저녁을 먹는 게 더 어울리는 시간이 되어 있었다.
[수혁, 아주 중대한 의견이 있습니다.]
해서 직원 식당으로 가려는데, 바루다가 말을 걸어왔다.
내용처럼 엄중한 말투였기에 수혁은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상당히 뜬금없는 타이밍이었지만, 대훈은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덩달아 멈추어 섰다.
원래 수혁이 이런 면이 있다는 것 정도는 팬클럽을 만들려고 했던 사람이니만큼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지금의 안대훈은 설사 수혁이 길바닥에 똥을 싼다고 해도 다 이유가 있겠거니 여길 정도로 콩깍지가 단단히 씌워져 있었다.
‘뭔데? 아까 그 환자?’
[아뇨. 그 환자는 상황이 정리됐죠.]
‘그럼 뭐야. 뜸 들이지 마. 불안해.’
[지금 직원 식당 가는 거 아닙니까?]
‘그렇지.’
[큰일이군요.]
‘뭔 헛소리여.’
바루다는 개소리 취급하는 수혁을 보고도 여전히 진지했다.
[잊었습니까? 주말 저녁 직원 식당은 지옥입니다.]
‘아.’
그리고 이어지는 말을 들은 수혁 또한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바루다의 말처럼 주말 저녁 직원 식당 메뉴는 이걸 먹으라고 주는 건가 싶을 지경이기 때문이었다.
어지간한 사람은 먹지 않기 때문이라는데, 수혁은 그게 잘 이해가 가질 않았다.
‘주말 저녁에도 직원 식당을 먹어야 하는 사람들이면. 잘 먹여야 하는 거 아니냐?’
[그러니까 말입니다.]
바루다 또한 수혁의 의견에 동조를 보내다 이내 말을 이었다.
[아무튼, 시켜 먹을 것을 제안합니다. 또 그것을 욱여넣을 작정이라면……. 이 바루다, 파업을 선언하겠습니다.]
‘미친…….’
수혁은 바루다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손은 자신도 모르게 핸드폰을 향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시켜 먹기 위함이었다.
“대훈아. 시켜 먹자. 오늘 고생했는데, 맛있는 거 먹자.”
“아, 네. 선배. 감사합니다.”
“피자?”
“전 다 잘 먹습니다.”
“오케이.”
그렇게 수혁은 피자를 시켰고, 피자집은 병원 앞에 위치하는 집답게 거의 바로 배달을 보내 왔다.
1층 로비에서 계산하고 화물 엘리베이터를 통해 당직실로 올라와 뜨뜻한 채로 한 입 베어 무니,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이거지.]
특히 바루다가 좋아했다.
뭔 놈의 인공지능이 기름진 치즈 맛을 좋아하는 건진 몰라도.
아무튼, 녀석은 살찌고 건강에 안 좋은 것을 선호했다.
“좋네.”
물론 수혁도 이 점에 대해서는 마찬가지인지라 별로 불만은 없었다.
“맛있습니다, 선생님.”
안대훈 또한 수혁 바라기였기에 불만은커녕 즐거워하고 있었다.
존경해 마지않는 수혁과의 식사가 한창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우우웅.
그때 그 모든 것을 끝내 줄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아……. 시발.]
‘욕하지 마, 인공지능 주제에.’
[안 나오게 생겼어요?]
바루다는 안대훈 핸드폰에 뜬 번호를 보자마자 욕설을 내뱉었다.
응급실 번호였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순간이었다.
“네, 1년 차 안대훈입니다. 아, 발열이요?”
대훈은 전화를 받음과 동시에 수혁을 돌아보았다.
“먼저…… 제가 내려가서 볼까요?”
이런 질문을 하면서였는데, 수혁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가 봐야 바로 부를 겁니다.]
‘그렇겠지.’
대훈의 실력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니, 같이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