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77화 (77/1,303)

77화 어린데 (1)

“하나 들고 올걸.”

수혁은 엘리베이터 안에 선 채 중얼거렸다.

올 때는 막 급하게 왔는데, 생각해 보니까 이럴 것까지 있었나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게요. 하나 들고 오시지. 식으면 맛없는데…….]

‘아까 좀 말하지. 너는 뒷북치는 경향이 있어.’

[연산을 수혁의 뇌로 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느립니다.]

‘말을 말자, 말을.’

바루다와의 대화는 보통 이런 패턴으로 흘러간다고 보면 되었다.

어떻게 된 놈의 인공지능이 의학적인 추론 능력보다 사람 빡치게 하는 능력이 더 좋은 것 같았다.

띵.

그렇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으려니, 어느새 1층이었다.

안대훈은 문이 열리자마자 부리나케 내려서 앞으로 달려나갔다.

“먼저 가 있겠습니다!”

이렇게 외치면서였는데, 수혁으로서는 마음만 받고 싶을 뿐이었다.

‘그렇게 도움이 될 거 같진 않은데.’

[그래도 잘 가르쳐 보십쇼. 혹시 압니까? 나중엔 쓸모 있는 노티를 할 수 있게 될지.]

‘아마……. 그렇게 되긴 할 거야. 지금은 아니어서 그렇지.’

동기들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수혁을 포함한 전부가 내과 가운을 입은 인턴이었는데.

지금은 어엿한 내과 의사들이 되어서 환자를 보고 있지 않은가.

태화 의료원 내과 의국 수련이 만만치 않다는 뜻이었다.

타닥.

타닥.

수혁은 그런 생각을 하며 응급실 쪽으로 걸어갔다.

예전엔 이 지팡이질이 그렇게 불편했는데, 지금은 제법 익숙해져 있었다.

나름 속도도 빨랐다.

남들보다는 느렸지만.

“선생님!”

덕분에 그가 도착했을 땐, 이미 대훈이 기본적인 문진을 마쳐 놓은 상황이었다.

수혁은 대훈 뒤쪽에 누워 있는 환자를 힐끔 바라보고는 다시 대훈을 바라보았다.

‘여자 21세라.’

젊은 여성에서 발열을 일으킬 수 있는 질환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면서였다.

그사이 대훈은 방금 자신이 물어봤던 내용에 대해 빠르게 털어놓았다.

“환자 21세 여환으로 1주일 전에 집 근처 병원에서 충수 돌기염 진단받고 복강경 하 충수 돌기 절제술 시행 받았습니다.”

충수 돌기염이란 우리가 흔히 맹장염이라 잘못 알고 있는 질환을 의미했다.

맹장 옆에 돼지 꼬리처럼 생긴 충수 돌기에 생기는 염증이었는데, 일반 외과에서 충수 돌기 절제술은 거의 기본 수술에 해당했다.

“수술 후 감염인가?”

물론 기본 수술이라고 해서 위험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수혁은 환자가 수술을 받은 이상, 수술 후 감염을 배제할 수 없겠다 생각했다.

[가능성은 있습니다.]

바루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건……. 아직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3일 전부터 발열 있었고 오심, 구토 증상이 동반되었습니다. 수술한 병원에서 시행한 검사에서 간 기능 이상 소견이 있어 금일 본원으로 전원 왔습니다.”

“간?”

“네.”

“음.”

단순 수술 후 감염이라면 국소 진행을 하지, 간 기능 저하를 일으키진 않을 터였다.

상당히 진행한 상태라면야 간이고 신장이고 다 망가뜨리긴 하겠지만.

환자 나이가 젊지 않은가.

뭔가 다른 질환 또한 생각을 해 봐야 한다는 뜻이었다.

[일단 신체 검진하고, 혈액 검사 결과를 봐야 합니다.]

바루다 또한 단순한 케이스가 아닐 가능성을 염두에 둔 채 의견을 제시했다.

수혁은 그의 의견을 십분 받아들인 채 환자에게로 다가갔다.

환자는 안색이 몹시 좋지 못했다.

“안녕하세요. 김이수 환자분.”

“아, 안녕하세요…….”

우선 입술이 바짝 말라 있었다.

발열 때문에 수분을 빼앗기고 있다는 뜻이었다.

수혁은 일단 환자 팔뚝에 연결된 수액 떨어지는 속도를 높이며 환자를 들여다보았다.

[황달은 관찰되지 않습니다만, 발목에 점상 출혈이 관찰됩니다. 혈액 검사 결과 확인 시 연관성을 봐야 합니다.]

‘그렇네. 약간……. 창백해 보이지 않아? 빈혈이 있나?’

[현재까지 수혁이 쌓은 데이터를 미루어 볼 때 빈혈 기준 이하로 헤모글로빈 수치가 떨어져 있을 확률이 95% 이상입니다.]

‘숨소리는 괜찮고…….’

수혁은 청진까지 시행한 후, 재차 환자의 얼굴을 마주했다.

“지금부터 배를 좀 눌러 볼 텐데요. 혹시 아픈 곳이 있나요?”

“아……. 네. 수술받은 곳이 조금…….”

“우측 하복부 말씀이시죠?”

수혁은 손가락의 바닥 부위로, 아주 젠틀하게 환자의 우측 하복부를 눌렀다.

동시에 환자의 배 쪽 감촉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경직은 없고, 부드럽습니다.]

안쪽으로 아주 심각한 감염이 있을 가능성은 적다는 얘기였다.

“으. 누르니까 좀 아픈데요.”

물론 수혁의 손가락에 힘이 좀 더 들어가자, 환자의 얼굴이 일그러지긴 했다.

하지만 손을 뗄 때는 통증이 더해지지 않았다.

반발 압통은 없단 뜻이었다.

[수술 후 감염 가능성은 적겠습니다.]

‘그러니까. 음.’

더구나 환자의 수술 부위 안에 들어가 있는 배액 관을 통해 나온 액체의 색 또한 괜찮은 편이었다.

농 같은 것은 아예 없었고, 도리어 투명할 지경이었다.

“우선……. 지금 당장은 뭐 때문에 열나는지 말씀드리기가 어렵네요.”

수혁은 환자에게서 완전히 손을 뗀 후, 환자와 보호자를 향해 말했다.

환자야 뭐가 됐든 너무 아파서 정신이 없었으나.

보호자 얼굴엔 약간의 불만이 스쳐 지나갔다.

기껏 큰 병원에 왔는데 진료 보러 내려온 의사들이 너무 어렸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수혁이나 대훈은 실제로도 어렸고, 얼굴은 더더욱 앳되었다.

햇빛 볼 일 없이 병원 안에만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 그럼 어떻게 되는 겁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당장 성질을 내거나 하진 못했다.

큰 병원은 그 병원 나름의 위압감이 있기 마련 아니던가.

환자로서는 불만이 있더라도 입 밖에 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특히 응급실에서는 더더욱 그러했다.

“일단 기본적인 검사를 하고 결과를 보겠습니다. 점상 출혈도 있기 때문에…… 일단 혈액 검사 결과를 빨리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 수술을 했으니 해당 부위 CT도 찍어 보겠습니다.”

“음. 알겠습니다.”

해서 환자 보호자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불만이 있군요.]

바루다는 그런 보호자의 표정을 알아차렸고.

‘괜찮아. 빨리 진단 내리면 되지.’

수혁은 자신감을 내비쳤다.

지금까지 이런 경험이 어디 한두 번이던가.

결과가 좋으면 환자와의 관계도 좋아지는 법이었다.

“선생님! 응급실 와서 나간 검사들 결과 떴습니다!”

“아, 응. 보자.”

그때 안대훈이 환자가 내원하자마자 응급실 차원에서 낸 검사가 떴음을 알려 왔다.

그냥 루틴으로 내는 검사들이었지만, 어마어마한 도움이 되어 줄 것이 분명했다.

태화 의료원 응급실은 워낙에 중증도가 높은 병원이었기 때문에 애초에 검사를 좀 과하게 내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범혈구 감소증이 있군요.]

바루다는 그 검사를 보자마자 딱하단 말투로 중얼거렸다.

녀석이 말한 것처럼 환자는 백혈구, 적혈구, 혈소판이 모두 크게 감소해 있었다.

원인은 알 수 없었지만.

그냥 이것만 놓고 보더라도 보통 일은 아니었다.

‘진짜 간 수치도 떴네. AST, ALT가 2000, 650이야.’

[LDH도 떴군요. 빌리루빈은 정상인데. 음.]

이 외에도 환자의 출혈 경향 또한 증가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행히 아직 d-dimer(심부정맥 혈전증)가 크게 뜨진 않았지만, 이러다 그렇게 진행되기라도 하면 당장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었다.

“이런.”

수혁의 말에 대훈이 긴장했다.

뭔가 검사 결과가 빨간 것투성이라 좋지 않아 보이긴 한데.

정확히 얼마나 안 좋은 것인지는 미처 알지 못한 상황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환자 나이가 젊어서 내심 괜찮겠거니 하고 있기도 했고.

하지만 수혁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그게 아닌 거 같았다.

“서, 선배. 어떤 건가요?”

해서 이렇게 물었으나, 수혁 또한 제대로 된 답을 하진 못했다.

딱 진단을 내리기엔 단서가 아직 많이 부족했다.

다만 문제 목록만을 떠올릴 수 있을 뿐이었다.

[정리하자면 발열, 오심, 구토가 있고 범혈구 감소증이 있습니다. 간 수치 또한 올라있으며, LDH 또한 상승해 있습니다.]

‘그럼 바이러스나 톡신에 의한 간염을 일단 생각해야지.’

[아직 수술 부위 감염도 완전히 배제하긴 어렵습니다. 패혈증으로 진행했다면 상기 소견이 모두 가능합니다.]

‘약은 뭘 쓰고 있었지? 약에 의해서 범혈구 감소증이 왔을 가능성도 있어.’

[아, 확인 요청 부탁드립니다.]

여러 약제.

특히 항생제는 장기간 사용할 경우 범혈구 감소증을 일으킬 수 있었다.

해서 수혁은 환자의 약제를 확인했고, 수술을 행했던 병원에서 경구 약제로 1세대 세팔로스포린계 약물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건 가능성이 떨어지는데.’

[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습니다. 해당 약제는 제외하고 아예 다른 계통의 약물을 사용하시죠. 추천 약제는 아지트리오남(Aztreonam)과 레보플록사신(Levofloxacin)입니다.]

‘음. 그게 좋겠네. 그리고 간 수치 증가에 대해서는 일단……. 간 보호 치료(hepatotonics) 해 보는 게 어떨까? 급성이라 근거는 부족하지만…….’

[뭐, 시도해 봐서 나쁠 건 없겠죠. 수혁의 말대로 근거는 부족하지만 할 수 있는 건 다 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명확한 진단명이 나오지 않은 이상, 환자 치료는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오케이. d-dimer는?’

[제일 시급한 문제입니다. 파종성 혈관 내 응고 장애가 이미 진행 중인 것으로 보입니다. 면밀하게 관찰하면서 필요 시 혈소판 수혈이 필요합니다.]

‘그래. 그렇게 하자.’

수혁은 바루다와 합의를 보고 나서야 가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대훈아, 내가 교수님 노티 드릴 테니까. 넌 가서 입원 결정됐다고 말씀드려.”

“아, 네.”

대훈은 위 연차 잘 만났단 생각을 하며 환자에게로 다가갔다.

보통 일반적인 2년 차들은 노티를 던지고, 환자도 던지기 마련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면에서 수혁은 정말 착한 2년 차였다.

사실 수혁에게 교수 노티가 전혀 어렵지 않아서이긴 했지만.

아무튼, 1년 차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네, 교수님.”

수혁은 대훈이 환자에게로 간 사이에 신현태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어. 환자 뭐. 잘못됐어?”

아까 에크모를 박고 돌아간 마당 아니던가.

당연하게도 신현태의 반응은 신속했다.

아니, 다급하다고 해도 좋을 지경이었다.

“아, 아뇨. 그 환자는 안정되었습니다.”

“아……. 그럼?”

“다른 환자가 응급실로 와서 연락드렸습니다.”

“아아. 어떤 환자지?”

신현태는 다른 환자란 얘기에 비로소 긴장을 풀고는 느긋한 어조로 물어 왔다.

수혁에 대한 신뢰가 팍팍 느껴지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었다.

솔직히 수혁이 돌고 있는 달에는 환자에 그렇게까지 큰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지경이지 않은가.

정말이지, ‘알아서 척척척’이라는 말이 수혁만큼 잘 어울리는 사람을 본 기억이 없었다.

“21세 여환으로 타 병원에서 1주 전 충수 돌기염에 대해 복강경 하 절제술 받았습니다.”

“음.”

“3일 전부터 발열과 함께 간 수치 떠서 해당 병원에서 치료하다가, 본원으로 전원 왔는데요.”

“응.”

“범혈구 감소증에 간 수치 뜨고, LDH까지 뜨고 있습니다. 아직 d-dimer는 5 정도로 크게 높진 않으나…… 출혈 성향 보이고 있고, 이미 점상 출혈도 있습니다.”

수혁이 여기까지 말하자, 신현태 교수의 목소리가 재차 떨려 왔다.

“설마 파종성 혈관 내 응고 장애 의심하는 거니?”

“네.”

“갈게……. 입원시켜 둬. 내공 후진 게 너니, 안대훈이니?”

“안대훈 아닐까요?”

“안대훈 이 새끼……. 아무튼,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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