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80화 (80/1,303)

80화 어린데 (4)

“뭔데 안 나와…….”

밖에 있던 신현태 교수는 초조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일단 안에서 무슨 비명 같은 게 들리진 않았으니 다행인 셈이긴 한데.

그래도 한참을 안 나오니 좀 불안했다.

‘아까 현미경은 왜 들어간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헙.”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병실 앞에 서 있었다.

불안한 마음에 여기까지 걸어온 모양이었다.

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안이나 들여다볼까 하는 마음이 더 크기는 했다.

‘음……?’

그렇게 안을 들여다보는 순간 신현태는 수혁의 옆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다.

현미경을 바라보고 있는 장면이었는데, 어찌나 진지한지 아까 안 따라온 것이 좀 미안해질 지경이었다.

생각해 보면 ‘이수혁 또라이설’이란 것은 결국, 이현종 원장의 설레발에서 비롯된 거 아니었던가.

지금까지 수혁은 단 한 번도 남에게 위해가 될 만한 행동은 한 적이 없었다.

조금 이상한 행동을 하기는 했지만.

바로 조금 전처럼.

‘근데 뭘……. 보고 있는 거지?’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호기심이 불끈 솟아올랐다.

마침 현미경은 교육용인지라 메인 렌즈 외에 우측으로 다른 렌즈가 하나 더 나와 있었다.

안대훈이야 감히 수혁이 뭔가 하는데 가까이 다가갈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고.

인턴은 그저 빨리 일이 끝나서 현미경 돌려다 주고 쉴 생각만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렌즈는 떡하니 비어 있었다.

‘어디…….’

덕분에 신현태는 홀린 듯 다가가 렌즈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수혁은 본인 렌즈에 워낙 집중을 하고 있는 데다가, 바루다와 대화 중이었기 때문에 그런 신현태를 눈치채지 못했다.

물론 신현태가 최대한 수혁을 방해하지 않도록 조용히 다가온 덕도 있기는 있었다.

‘뭐야 이거……. 이거 골수 아냐?’

딱 렌즈에 눈을 가져다 대자마자 든 생각은 ‘이 새끼가 돌았나’였다.

갑자기 새벽에 병실로 쳐들어가서 골수 검사를 할 줄이야.

그리고 그렇게 뽑아낸 골수를 그 자리에서 보고 있을 줄이야.

1년 차 때도 제법 당돌한 면이 있었는데, 2년 차가 되고 나니 완전 무대포였다.

그를 더 기가 막히게 하는 것은 골수 검사는 물론이고, 현미경 앵글마저 완벽하다는 점이었다.

‘미친……. 그사이에 벌써 골수를 뽑았어? 보니까 한 방에 뽑은 건데……. 양이 이렇게 많아? 얘는 진짜 괴물인가?’

늘 이현종이라는 천재를 마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감탄할 일은 없을 거라 믿고 살아 왔던 신현태였건만.

어찌 된 게 이수혁을 알고 난 이후로는 놀랄 일밖에 없는 거 같았다.

그사이 수혁은 뭔가 중얼거리고 있었는데.

워낙 집중하고 있다 보니 본인이 소리를 내고 있는지도 모르는 듯했다.

[세포 비중은 30%. 역시 정상입니다. 암 같은 것은 아닙니다.]

“골수가 정상이라고 다행이라고 할 수는 없을 거 같은데…….”

[그렇습니다. 탐식 중인 세포가 상당히 많이 관찰됩니다.]

“이유는 역시…….”

[거대 전적아구가 관찰됩니다.]

“거대 전적아구는 파보바이러스 감염에서 관찰되지.”

파보바이러스.

일명 ‘Parvovirus B19’라고 불리는 이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면 드물게 급성 간염과 함께 조직구 탐식증을 일으킬 수 있었다.

“이런 미친…….”

그 얘기를 듣던 신현태 교수의 입에서 급기야 욕이 터져 나왔다.

화가 나서 그런 건 당연히 아니었다.

그냥 너무 놀라서였다.

평소 상당한 인격자로 이름나 있는 그가 이랬다는 건.

정말이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어, 교수님. 언제 오셨어요?”

그제야 수혁은 신현태의 등장을 알아차릴 수 있었고.

메인 렌즈에서 눈을 뗀 채 신현태를 바라보았다.

신현태는 뭐라고 말해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하고 있다가, 이내 둘러대기로 결심했다.

“지금 막 왔지. 아무도 없길래 이리로 왔나 싶어서 왔더니 있네.”

안대훈이 잠시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신현태의 무언의 압박에 대번에 고개를 숙이고야 말았다.

“아, 그렇군요.”

수혁이야 어차피 별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신현태는 도저히 그러기가 어려웠다.

방금 수혁에게 들었던 말이 여전히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아, 아까 뭐라고 했어, 근데. 저 현미경 보면서.”

“아……. 맞다. 노티 드리겠습니다.”

“어어. 그래, 해 봐.”

신현태는 아직 수혁이 대체 어쩌다가 골수 검사를 하게 되었는지조차 파악이 안 된 상황이었다.

그 궁금증을 해소하려면 당사자인 수혁에게 설명을 들어야만 했다.

해서 신현태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면서 벽에 등을 기대었다.

환자 보호자로서는 조금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새파랗게 어린 의사의 말을.

누가 봐도 높아 보이는 의사가 경청하기 시작했으니까.

“우선 환자의 현재 문제 목록은 발열, 간 수치 이상, 범혈구 감소증, LDH, Ferritin의 증가 등이 있습니다. 이중 범혈구 감소증이 가장 심각한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거야 그렇지. 혈액암, 항생제로 인한 억제 또는 자가 면역 질환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검사 들어갔잖아.”

“결과 셋 중 어느 하나도 만족시키지 못했습니다. 다른 원인을 생각해 봐야 한다는 뜻인데…….”

어제와 상황이 달라졌다는 얘기였다.

그 바람에 신현태는 귀를 더더욱 기울이게 됐고, 어느새 등을 벽에서 떼어 낸 채 수혁을 향해 고꾸라질 듯한 자세로 서 있게 되었다.

“음, 그랬지. 그래서 뭘 의심했지?”

“ferritin은 적혈구가 파괴될 때 올라가는 지표 아닙니까?”

“그렇지.”

“그런데 말초혈액도말 검사에서는 이상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즉 이 환자의 적혈구를 파괴하는 원인이 뭔가 다른 곳에 있다는 뜻이죠.”

“그래서……. 조직구 탐식증을 의심했구나. 골수 검사를 한 건 그걸 확인하기 위함이었고.”

“네. 아까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조직구 탐식증 소견이 명확합니다.”

“어, 뭐. 그래.”

사실 신현태가 저 현미경을 보고 파악할 수 있는 건 ‘아 이게 골수구나’ 정도일 뿐이었다.

그 안에 소견이 정상인지 아닌지는 알기 어려웠다.

전공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제자가 눈앞에서 그 정도 아는 건 당연하다는 투로 얘기하고 있는데 어찌 모른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해서 고개를 끄덕였더니 얘기는 보다 어려운 쪽으로 넘어가 버렸다.

“정상 골수 소견에 탐식 소견이 보였고. 거대 전적아구가 관찰되는 것으로 볼 때 파보바이러스에 의한 조직구 탐식증이 확실합니다. 간염 소견까지 보이고 있으니 더더욱 그렇습니다. 파보 바이러스는 급성 간염을 일으킬 수 있으니까요.”

“어……. 그래.”

신현태는 거대 전적아구가 무엇인지 이따 검색해 보든지 누구한테 물어보든지 해야겠단 생각을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수혁으로서는 그가 모든 말을 다 알아듣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바루다가 신현태의 표정 분석을 하고 있었으면 좀 다를 수도 있었을 테지만.

아쉽게도 바루다는 환자 진단을 마쳤으니, 이제 치료를 위해 맹렬히 돌아가는 중이었다.

“따라서 즉시 HLH 2004 프로토콜에 따라 치료할 것을 제안합니다.”

수혁은 그렇게 바루다가 낸 의견을 고대로 읊었고.

“HLH 2004 프로토콜…….”

신현태에게는 경악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거 솔직히 잘 모르겠는데…….’

조직구 탐식증은 그 원인이 설사 감염 질환일지라도 더는 감염내과 소관이 아닌 병이었다.

치료 자체가 면역 억제제와 스테로이드로 넘어가 버릴 뿐더러, 경과에 따라서는 골수 이식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이건 혈액종양내과 질환이었다.

신현태가 HLH 2004 프로토콜이라는 치료를 딱 이름만 들어본 것만 해도 대단하다는 뜻이었다.

“아무래도 감염내과 병동에서는 제대로 된 치료가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에 혈액종양내과 조태진 교수님에게 전과를 드리는 것이 좋을 거 같습니다.”

다행히 수혁은 분과에 해당하지 않는 환자를 계속 붙들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치료에 영향을 미치는 인자 중 의사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간호사들의 숙련도 아니었던가.

아무래도 감염 질환은 감염내과 병동에서.

혈액종양내과 질환은 해당 병동에서 보는 것이 환자 예후에 더 좋았다.

신현태는 전과 얘기를 듣자마자 껄껄 미소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잘 모르는 치료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가던 차에 이렇게 알아서 제안이 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어어. 그러자. 내가 전화할게.”

“네, 교수님.”

“그……. 주치의는 어떻게 할까?”

“저 환자 별로 없어서 그냥 제가 계속 봐도 괜찮습니다.”

“어, 그래. 그게 좋을 거 같다. 아마 태진이도 좋아할 거야.”

신현태로서는 마냥 다 좋은 일이었다.

잘 모르겠는 환자가 다른 교수에게로 넘어가게 되었으니까.

딱히 죄책감이 들 만한 일도 아니었다.

본인이 한 건 아니지만.

뭐가 어찌 되었건 진단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가.

가서 치료만 제대로 받으면 예후도 제법 좋을 터였다.

‘아마……. 이렇게까지……. 빨리 조직구 탐식증이 진단되는 경우도 거의 없을걸…….’

전화를 걸면서 생각해 보니까 정말 황당했다.

입원한 지 이제 겨우 이틀째.

시간으로 따지자면 아직 채 만 24시간도 흐르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21살짜리, 젊다 못해 어린 환자의 갑작스럽게 이환된 조직구 탐식증을 원인까지 감별해서 딱 맞춰 버렸다.

‘이 환자……. 나중에 골수 이식 안 받아도 되면 그건 진짜 다 수혁이 덕이다.’

다른 병원으로 갔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적어도 1주일은 더 지연되었을 터였다.

일단 골수 검사 자체를 결정하는 데 시간이 꽤 걸렸을 테고.

제때 골수 검사를 했더라도 이 골수 검사 판독에도 하루 이틀은 걸렸을 테니까.

‘아니……. 우리 병원에서도 마찬가지야. 수혁이가 없었으면…….’

태화 의료원이라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었겠는가.

수혁이 없었으면 달라질 것이 없었을 터였다.

“네, 과장님. 조태진입니다.”

딱 거기까지 신현태의 생각이 닿았을 때쯤, 조태진이 전화를 받았다.

“아, 다른 게 아니고. 내 환자 중에 조직구 탐식증 진단된 환자가 있어서. 파보바이러스 때문인 거 같아.”

“네? 그런 환자가 있어요? 협진 주셨었나요?”

“아니.”

“그럼 어떻게 진단을 하신 거예요? 의심하기 쉬운 병은 아닌데.”

조태진이 놀라는 건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신현태도 수혁에게 조직구 탐식증이라는 단어를 듣기 전까지는 전혀 의심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일단 너무 드문 질환이었다.

위험 요소로 수술 또는 급성 컨디션 저하가 있긴 하지만.

발병 확률이 너무 낮지 않은가.

솔직히 말해서 이걸 의심할 수 있는 게 좀 이상한 거였다.

아주 방대한 사고체계를 가지고 있지 않은 한에는 불가능한 일이란 얘기였다.

“아, 뭐……. 조직구 탐식증이 의심되더라고.”

물론 그걸 후배인 조태진에게까지 털어놓진 않았다.

“진짜 과장님이 혼자 진단한 거예요?”

조태진도 마냥 넘어가지는 않았고.

“그래, 인마! 수혁이가 했어!”

신현태는 결국, 화를 내고야 말았다.

“역시.”

“역시는 뭐가 역시야. 내가 교수야. 걔가 아니라.”

“과장님은 감염내과 교수잖아요.”

“그럼 수혁인? 걔는 어떻게 아는데, 이런걸.”

“걘 천재잖아요. 태화 의료원 사상 최고의.”

“그건…… 그건 그래. 정말……. 놀랬다, 이번엔.”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