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88화 (88/1,303)

88화 첫인상 (1)

아이오와 주립대학.

미 중부에 있는 아주 한적한 대학인데, 생각보다 미국 내 순위는 높은 대학이었다.

특히 의과대학으로 한정 지으면 거의 랭킹 10위 안에 드는, 상당히 저력 있는 대학이었다.

[건물이 되게 낮네요.]

바루다의 첫인상은 이러했다.

수혁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그러게. 높지가 않네. 근데 어디까지가 병원인 거지?’

수혁은 이현종, 신현태 등 아이오와 쪽으로 연수를 다녀오거나, 또는 그냥 학회 차 다녀와 본 경험이 있는 교수들이 해 주었던 말을 떠올렸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세계적인 레벨까지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미국 내에서는 준수한 성적을 내고 있는 병원이라고 했더랬다.

그 말은 곧 태화 의료원과 엇비슷하거나 약간 더 나은 부분도 있을 거라는 얘긴데.

지금 눈앞에 보이는 병원은 도저히 그렇게 보이진 않았다.

[모르겠습니다. 기껏해야 저기까지 아닐까요?]

‘엄청 오래된 거 같네. 음. 사람도 없고…….’

[오늘이 일요일이라서 그런 거 아닐까요?]

‘태화 의료원 일요일에 환자가 없디?’

[아, 음. 그건 그렇네요.]

바루다는 빠르게 수긍했다.

생각해 보니 태화 의료원은 주말이고 연휴고 간에 관계없이 언제나 북적거리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에 비하면 이곳 아이오와 주립대학교 부속 병원은 한가롭기 그지없었다.

‘맞지?’

[네. 주소는 정확합니다. 숙소는…… 여기 바로 맞은편이니까, 네, 거기. 거기 맞네요.]

‘숙소는 좋네.’

[그러게요.]

수혁은 바루다의 동의와 함께 일단 병원 맞은편에 위치한 작은 주택으로 향했다.

키는 미리 얘기 들었던 대로 화분 밑에 있었다.

덜커덕.

나무로 된 문을 열고 들어서니 퀴퀴한 먼지 냄새가 풍겨왔다.

[면역 약한 사람은 곰팡이균에 감염되겠습니다.]

나름 냄새에 대한 분석도 가능하게 된 바루다가 못마땅하다는 듯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그의 분석 결과를 들어보니 과연 그럴 만도 했다.

‘아스페질로시스가 공기 중에 있어?’

[네.]

‘새로운 암살 시도인가.’

[수혁의 면역은 지극히 정상이니 전혀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럼 그걸 왜 분석하고 앉았어.’

[연습이죠, 연습. 아무튼, 더럽게 더러운 집이군요.]

수혁은 바루다가 그가 발을 디딜 때마다 새로이 생성되는 발자국을 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듯했다.

아마도 수혁의 표정을 토대로 흉내 내는 것일 뿐이겠지만.

수혁에게는 정말로 바루다가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 같이 여겨졌다.

‘그래도 크다. 전기랑……. 가스, 수도 다 잘 들어오고.’

방이 무려 세 개에 화장실도 두 개나 되는 2층짜리 집이었다.

원래 수혁과 같은 레지던트에게도 제공되는 숙소이지만, 그보다는 외국에서 1년 또는 2년 동안 연수 오게 되는 교수급 인사에게 제공되는 숙소이기에 그러했다.

더러운 것도 그저 청소되지 않아 그랬을 뿐, 전체적으로 낡은 느낌을 주진 않았다.

심지어 TV나 침대 등 거의 모든 기기들이 죄다 빌트인으로 구비가 되어 있어서 어지간한 호텔보다도 더 나아 보였다.

[일단 청소하려면 엄청 시간이 오래 걸릴 겁니다. 마트부터 다녀오죠. 오면서 보니 마트가 일찍 닫는 거 같던데.]

‘아, 그래. 그게 낫겠네.’

아이오와는 일종의 대학 도시라고 보면 되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아이오와 내에서 가장 큰 산업체가 바로 대학이라는 뜻이었다.

대한민국에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워낙에 땅덩이가 넓은 미국에서는 그리 드문 일도 아니었다.

아무튼, 그렇기 때문에 모든 상업 시설의 수가 상당히 부족했고 또 어딘가에 몰려 있었다.

수혁에게는 불행하게도 병원 앞은 해당 사항이 없었다.

‘더럽게 넓네……. 아직도 대학인 거지?’

해서 버스를 탔는데, 30분을 가도 대학이었다.

[그렇네요. 무슨 놈의 대학이…….]

‘그럼 설마 아까 병원 옆에 있던 건물……. 그거 다 병원인 건가?’

[아까 같았으면 정신 나갔냐고 했겠지만. 이 모습을 보니 가능성이 있겠습니다.]

‘그럼 배울 게 있을 수도 있겠다.’

[그래야죠. 여기까지 왔는데.]

원래 이런 식으로 단기 연수를 오게 되는 레지던트는 반쯤은 휴가 오는 심정으로 오게 마련이었다.

의국에서도 포상 형식으로 보내 주는 편이었고.

하지만 수혁은 달랐다.

이미 바루다를 얻은 이상 미국으로 건너와서 의사 생활을 할 수도 있는 거 아니겠는가.

어차피 실력으로는 세계 최고가 되고야 말 테니까.

때문에 마음가짐이 조금 달랐다.

[여기 같은데요?]

‘오.’

아무튼, 수혁은 곧 버스에서 내려 마트로 향했다.

그저 마트를 들어갔을 뿐이었지만, 확실히 외국은 외국이었다.

일단 놓여 있는 물건들이 달랐고, 오가는 사람들이 달랐고, 쓰이는 언어가 달랐다.

‘동시통역이 되는구나.’

[물론이죠. 이 정도야 뭐.]

하지만 전혀 두렵진 않았다.

바루다가 대상의 억양이나 말투까지 재현해서 고대로 수혁에게 전달해 주었으니까.

단순히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원어민이 되었다고 보면 되었다.

덕분에 수혁은 어려움 하나 없이 사려고 했던 물건들을 모조리 산 채, 숙소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왜애애애앵!]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언제나처럼 바루다의 알람과 함께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숙소 1층은 어제와는 달리 완전히 깨끗해져 있었다.

2층도 있기는 한데, 어차피 혼자 살면서는 올라갈 일도 없을 거 같아 무시하기로 했다.

‘여유롭네.’

[첫날은 10시까지 오라고 했으니까……. 한 3시간 남았습니다.]

‘미리 가서 분위기나 좀 보지 뭐.’

[그게 좋겠습니다.]

제아무리 대우를 받고 있다고는 해도 레지던트는 레지던트 아니던가.

게다가 수혁은 자기 환자뿐만이 아니라, 어디라도 어려운 환자가 있다고 하면 찾아가는 사람이었다.

당연히 어마어마하게 바빴는데, 지금은 너무 여유로웠다.

맡겨진 환자도 없었고, 노티해 올 일 년차도 없었다.

덕분에 수혁은 텀블러에 커피를 홀짝이며 바로 길 건너에 있는 병원에 느긋하게 걸어갈 수 있었다.

“이쪽으로 오세요.”

우선 어제 못 보던 모습 하나를 볼 수 있었다.

입구 쪽에서 차에서 내린 환자들이 휠체어를 지급받아 병원 복도로 향하는 모습이었다.

[비만……. 환자들이군요.]

‘미국은 진짜 좀 다르긴 하구나.’

고도 비만 환자들이었는데, 적어도 수혁은 한 번도 직접 본 적이 없는 정도로 비만한 환자들이었다.

[질환군이 대한민국과는 다를 수밖에 없겠습니다.]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이건가?’

[그렇죠, 그렇게 배워서 최고의 의사가 됩시다. 돼서 돈도 많이 벌고…….]

‘거기서 또 돈 얘기가 왜 나와.’

[돈 싫어요?]

‘아니, 좋아.’

수혁은 점점 더 자신과 닮아 가는 바루다와 함께 껄껄 웃으며 병원 안쪽으로 들어섰다.

어제는 차마 안쪽까지 들어가기가 그래서 돌아섰던 바로 그 문이었다.

문 바로 안쪽으로는 병원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그걸 들여다보고 나서야 수혁은 어제 자신이 설마설마했던 것이 사실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정말로 이 주변에 보이던 모든 건물들이 병원이었다.

[연구 시설만 따로 두 개의 건물이군요.]

‘어마어마하구나…….’

수혁이 있는 태화 의료원은 국내 제일의 연구 시설을 자랑하는 병원이었다.

최고의 기업에서 후원하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규모가 기껏해야 지하 한 층 정도일 뿐이었다.

여긴 아예 건물이 두 채였고.

[이러니까 연구에서 형편없이 밀릴 수밖에 없겠군요……. 아, 한 동이 더 있네요. 여긴…… 화이자에서 지어 준 건물입니다.]

‘제약회사 펀딩이구나. 어쩐지 논문을 쏟아 내더라니…….’

신약으로 돈을 번 제약회사가 그 돈으로 또 신약을 만드는 시스템이 거의 완벽하게 갖추어진 곳이 바로 미국이라는 곳이었다.

신약을 만드는 비용에는 비단 연구 비용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협력 병원에 대한 후원금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바로바로 임상 시험을 하고, 그 결과를 분석하기 위함이었다.

어마어마한,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국내 제약회사들이 상대되지 못함은 두 번 말할 가치조차 없었다.

[아무튼, 이 건물이 내과군요. 운이 좋네요.]

‘그……. 음. 그렇네.’

운이 나빴으면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건물일 수도 있었다.

가령 안과가 그러했다.

“처음 보는 가운인데, 어디서 왔어요?”

그렇게 한참 지도를 보며 바루다와 떠들고 있으려니, 누군가 인사를 건네 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머리가 새하얀, 백인 의사였다.

“아……. 저는 한국에서 왔습니다.”

“북, 아니면 남?”

“남한입니다. 대한민국이요.”

“아하…….”

수혁이 짧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바루다는 대상의 얼굴을 분석했다.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하는 작업이었는데, 적어도 의학계에서는 상당히 유의미한 일이었다.

[허, 사인받으시죠.]

‘왜, 왜?’

[커밍스입니다. 이비인후과 쪽으로 알아주는 명사죠.]

‘설마 그 교과서 이름?’

[네.]

지금도 그러했다.

“혹시 닥터 커밍스 되십니까?”

“오? 절 아세요? 아, 이비인후과입니까?”

“아뇨. 전 내과인데, 이비인후과 쪽도 재미있게 공부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실 수술이야 못해도 이비인후과적인 지식은 어지간한 전문의 못지않을 터였다.

수혁은 교과서를 그대로 머릿속에 저장할 수 있는 인간이었으니까.

그러자면 먼저 읽어야 한다는 것이 좀 문제이긴 했는데, 그건 바루다가 해결해 주었다.

매일 밤 안 읽으면 지랄하는 방식으로.

“오……. 내과. 그럼 지금 의국으로 가나요?”

“아뇨. 10시까지 오라고 했는데, 그냥 병원 구경이나 할 겸 일찍 왔습니다.”

“음, 음. 역시 한국 사람. 부지런해.”

커밍스는 방금 한 말이 무슨 대단한 농담이라도 된다는 듯 껄껄 웃으며 수혁을 바라보았다.

누가 봐도 이게 안 웃기냐는 듯한 표정이었기에 수혁도 따라 웃어 주었다.

“그럼 제가 안내를 좀 해 줄게요. 아주 실용적인 곳으로만.”

“아, 바쁘지 않으시다면……. 네, 감사합니다.”

“그래요. 영어를 아주 잘하네요? 발음이 아주 좋은 건 아닌데, 악센트가 좋아서 알아듣기는 더 편해요.”

“그……. 네. 공부 열심히 했습니다.”

수혁은 차마 ‘바루다가 일러주는 대로 따라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없어 거짓말로 둘러댔다.

물론 남들은 결코 알아차릴 수 없는 종류의 거짓말이었기에 그 저명한 닥터 커밍스도 홀랑 넘어가고야 말았다.

“여기가 제일 맛있는 카페테리아예요. 점심에만 파는 피자가 솔직히 시카고에서 파는 지오다노보다 맛있어. 아니, 그 정도는 아니지만……. 적어도 아이오와에서는 제일 나아요.”

그리곤 안내를 해 주었는데, 정말로 실용적인 안내였다.

드넓은 병원 내에서 어디가 맛집인지, 어디 커피가 나은지, 어디로 가는 것이 지름길인지 등등.

상당히 입담도 좋아서 정신없이 따라다니다 보니, 어느새 9시가 가까워 오고 있었다.

“어어. 난 외래 가야 해서. 즐거웠어요. 또 봐요.”

“아, 네.”

“참. 이름이 뭐랬죠?”

“이수혁입니다.”

“아, 닥터 리. 알겠습니다. 하하. 좋은 시간 되세요.”

그렇게 커밍스와 헤어진 수혁은 곧장 내과 의국으로 향했다.

지팡이를 짚고 워낙에 오래 돌아다닌 터라 힘들어서 더 돌아다닐 수가 없어서였다.

“누구세요?”

딱 의국에 들어서려고 하니, 웬 사복 차림의 남자 하나가 질문을 던져 왔다.

커밍스처럼 금발에 푸른 눈동자를 지닌, 전형적인 백인이었다.

“아, 이번에 한 달 연수 오게 된 태화 의료원 이수혁입니다.”

“태화?”

“대한민국 태화요.”

“아……. 그…… 네, 뭐. 연수…….”

그는 곧 엄청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슥 하고 고개를 돌리면서 중얼거렸다.

“아, 귀찮게……. 한 달 배우면 또 얼마나 배운다고……. 후진국에서 죽어라고 오냐…….”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