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97화 (97/1,303)

97화 도장 깨기 (3)

“아…….”

제시는 망치로 뒤통수라도 얻어맞은 듯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대마가 나쁜 거라는 건 그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말로야 뭐 대마는 중독성이 약하다느니 어쩐다느니 떠들고 다니긴 했지만.

‘게이트웨이 드럭’이라는 말이 괜히 있겠는가.

제시조차도 대마로 입문해서 지금은 본격적인 마약이라고 할 수 있는 메스암페타민의 세계에 빠져든 지 오래였다.

‘대마가……. 내 기침의 원인이라고?’

하지만 그 대마가 이 긴 시간 자신을 괴롭혀 왔던 병의 원인이라니.

이건 정말이지 생각도 못 했던 일이었다.

“거, 거짓말 아니지?”

“제가 왜 거짓말을 합니까?”

“그건……. 그건 그래.”

의사가 왜 거짓말을 하겠는가.

게다가 돌이켜 보니 시기도 어느 정도는 들어맞는 거 같았다.

분명 대마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는 증상이 없었으니까.

게다가 그의 고민은 그렇게 오래 지속될 수 없었다.

수혁이 솔깃한 얘기를 늘어놓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치료는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뭐, 뭔데.”

치료 얘기하는 데 딴짓할 수 있는 환자가 몇이나 될까.

제시도 예외는 아니어서 어느새 수혁 앞에 차려 자세를 하고 있었다.

스티브는 그의 극단적인 태도 변화가 우스웠으나 대놓고 웃진 못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 또한 수혁 앞에 차려 자세를 하고 있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그러하듯 수혁의 진단은 어떤 흐름을 가지고 있었고, 흡입력을 가지고 있었다.

한 번 듣기 시작하면 정신없이 빨려들기 마련이었다.

“원인이 되는 것에서 회피하는 거죠?”

“그게 무슨 뜻이야?”

“대마 사업을 하면 안 된다고요.”

“너, 너 의사 아니지? 경찰이지?”

대마 사업을 하지 말라니.

이건 어디선가 들어본 말 아니던가.

아마도 경찰이었을 터였다.

덕분에 제시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하지만 수혁은 별로 당황하지 않았다.

“어어, 이러면 나 나가서 불어요? 대마 사업한다고?”

“야! 의사는……. 의사는 환자 정보 지킨다며!”

“마약은 좀 얘기가 달라질 수도 있죠.”

“이……. 이…….”

“그러니까 조용히 하고 얘기나 들어요. 수틀리면 나가서 불 테니까.”

“너……. 너 그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솔직히 이 시점에서는 좀 움찔했다.

진짜 갱의 협박이었으니까.

한국에서 그냥 너 죽는다 어쩐다,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종류의 협박이었다.

여기선 진짜 총으로 갈겨 버릴 수도 있었으니.

“아, 저 미국 사람 아니에요. 한국 갈 거예요.”

“뭐……?”

하지만 수혁은 곧 평정심을 되찾을 수 있었다.

바루다가 우린 좀 있으면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 덕이었다.

“그러니까 그냥 치료나 받읍시다.”

“허…….”

“일단 대마는 접어요.”

“경찰 아니라, 의사로서 하는 말이지?”

“경찰 아니라니까요? 애초에 한국인이라고.”

“하아…….”

제시는 정말이지 나라 잃은 사람의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마도 심정은 비슷할 터였다.

사업체를 정리해야 했으니까.

물론 그 사업이라는 게 그렇게 떳떳한 건 아니긴 했지만.

아무튼, 뭔가 상실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한 느낌이었다.

“접는다라…….”

“안 그러면 이거 점점 심해집니다. 면섬유증에서 치료의 기본은 일단 회피하는 거예요. 딱 금요일에 심해지는 건 그날 다시 원인에 노출이 되어서 그런 거예요.”

“음…….”

생각 같아선 아니란 말을 하고 싶은데.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증상은 딱 쉬다가 다시 대마를 만지작거릴 때 심해지지 않았던가.

설마하니 이 동양인 의사가 사업체에 캠이라도 달아 놓을 리는 만무하거늘.

족집게처럼 딱딱 맞추는 것으로 볼 때, 수혁의 말을 믿어야 할 것만 같았다.

“그…… 그것뿐인가, 치료는?”

“아뇨. 노출 초기에 관뒀으면 괜찮았을 텐데. 1년 넘었잖아요.”

“그건……. 그렇지.”

“게다가, 대마에 노출되기만 한 게 아니라…….”

수혁은 잠시 말을 멈추고 바루다를 기다렸다.

[확실합니다. 이 인간은 안 한 마약이 없어요. 담배도 피우고요.]

확인을 기다린 수혁은 재차 말을 이었다.

“담배도 피우고 뭐 이것저것 피셨죠?”

“이것저것이라니…….”

제시는 뜨끔했는지 뒤늦게 자신의 입을 가렸다.

본인도 알기는 아는 모양이었다.

구강 상태가 어떤 지경인지는.

“뭐 그것까지야 제가 자세하게 말씀드릴 필요는 없고……. 아무튼, 피우셨죠?”

“피우긴 피웠지.”

“그게 악화 요인 중 하나예요. 면섬유증에서. 그래서 해수에 비해 증상도 심하고 엑스레이도 이렇게 보이는 겁니다.”

“그, 그렇군.”

“그래서 다른 치료도 필요해요. 다행히 그렇게 복잡하지는 않아요. 아, 이건 저 말고 여기 교수님이 말씀드리는 게 좋겠어요.”

“교수? 다른 사람이 또 내 대마를 알게 되나?”

“그분도 의사니까 걱정 마세요. 저는 여기 의사가 아니라서 처방 권한도 없어요.”

“하아…….”

제시는 이제라도 증상의 원인을 알았다는 홀가분함과 자신의 가장 중요한 비밀이 만천하에 알려지고 있다는 곤란함을 동시에 느끼는 중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한숨은 깊고도 또 깊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지금까지 자기를 쥐고 흔든 놈이 교수가 아니라는데.

아니, 아예 여기 의사가 아니라는데.

‘저 새끼는 대체 뭐야…….’

대체 뭔데 의사도 아닌 놈이 대번에 병을 알아맞히는 걸까.

“그럼 잠시 뒤에 뵙겠습니다.”

물론 수혁은 그런 하잘것없는 의문에 대해서 알려주고픈 마음일랑 전혀 없었다.

해서 스티브와 함께 곧장 진료실을 빠져나왔다.

당연하게도 딱 빠져나오자마자 스티브의 질문 공세가 시작됐다.

“어, 어떻게 그걸 의심한 거예요? 면섬유증? 아니……. 일단 그게 뭔 병입니까?”

얼굴을 딱 보아하니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닌 듯했다.

“좀 이따 얘기하죠. 엡스 교수님 앞에서.”

“아, 아이. 그러지 마시고……. 저 또 그러면 무식하다고 혼나요…….”

“근데 우리 시간 너무 많이 잡아먹었잖아요. 이러다 지연이라도 되면…….”

“아.”

제아무리 외래 시간이 넉넉하게 잡혀 있는 미국이라고 해도, 한 사람 앞에 30분이 최대였다.

그런데 벌써 제시에 대한 진료는 20분이 넘어간 상황이었다.

즉 남은 시간이 고작해야 10분밖에 안 된단 뜻이었다.

스티브는 이게 다 핑계라는 걸 알았지만.

정말 그럴싸한 핑계 아닌가.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해서 스티브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방 안으로 향했다.

“왜 이렇게 늦었어? 뭔 일 있었어요?”

엡스는 따분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다만 화가 난 것 같지는 않았다.

정말 궁금한 것처럼 보였다.

“그……. 환자분 병력에 잘못된 점이 좀 있어서요.”

본격적인 토의가 시작되면 한 마디도 못 하게 될 것이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는 스티브가 먼저 선수를 쳤다.

“병력이……. 잘못돼?”

“네. 소견서 정보가 잘못된 점이 있었습니다. 병원 측 잘못은 아니고, 애초에 환자 진술이 잘못된 거 같습니다.”

“흐음……. 어떤 게 잘못됐는데? 아까 여기서 보니까 네가 아니라 여기 닥터 리가 주도적으로 묻는 거 같던데.”

하지만 스티브의 노력은 별 소용이 없었다.

CCTV 때문이었다.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안에서 뭘 하고 있는지는 대강 알 수 있었다.

환자 및 의료진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만 가끔은 지금처럼 감시의 용도로 쓰이기도 했다.

“네,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교수님.”

이미 준비를 마치고 있던 수혁은 아주 자연스럽게 앞으로 나섰다.

스티브를 옆으로 밀어내면서였는데, 스티브로서는 버틸 명분도 힘도 없었기에 그저 하염없이 널브러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요, 닥터 리.”

엡스는 자신의 민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행크가……. 아주 기가 막힌 연수생이라고 했었지.’

미국에서는 대머리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이상한 속설이 있지만.

사실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라고 보면 되었다.

정말 그렇다면 왜 발모제에 관한 연구가 미국에서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겠는가.

아무튼, 행크와 엡스는 둘 다 대머리라는 이유로 아주아주 친했다.

실제로 폐암 관련한 연구도 공동으로 진행 중이었고.

해서 행크의 감탄을 엡스 또한 지겹도록 들은 참이었다.

말하자면 수혁에 대해 어느 정도 기대를 갖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래요. 왜 이렇게 오래 걸렸지?”

“우선 환자가 가져온 소견서를 보면…….”

수혁은 엡스의 손에 들린 소견서 복사본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1년 전부터 발생한 기침에 관해 쓴 약들이 모조리 적혀 있습니다. 보면 진해 거담제, 항히스타민제, 기관지 확장제 심지어 스테로이드에 항생제까지 안 쓴 약이 없습니다.”

“그렇더군.”

이미 기다리는 동안 소견서를 거의 외우다시피 한 엡스였다.

당연하게도 별 감흥이 없었다.

“그중에서 환자가 반응을 보였던 것은 오로지 기관지 확장제뿐입니다. 아주 잠시뿐이지만, 약을 쓸 때만큼은 호전이 있었습니다.”

“아, 그렇지.”

실제로 그렇게 쓰여 있었다.

하지만 수혁의 말대로 아주 잠시뿐이었기 때문에 그다지 눈길을 끌진 못했다.

“그런데?”

“일반적인 간질성 폐렴과는 조금 다른 양상입니다. 스테로이드에도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흠……. 그건……. 그렇지.”

“그런데 또 엑스레이는 전형적인 간질성 폐렴 소견입니다.”

“음.”

“폐 기능의 감소도 있고요.”

“흠.”

엡스는 수혁의 말을 따라가며 고개를 끄덕였다.

머릿속으로 부지런히 정리해 가면서였다.

“요약하면 환자는 간질성 폐렴을 앓고 있지만, 기관지 확장제에만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것도 완전하지 않은 반응이었는데 그걸 감안하고 본다면 엑스레이에서 보이는 소견은 상당히 양호한 편입니다.”

“그렇게 듣고 보니까 좀 이상하네. 하긴 어지간해서는 여기까지 잘 오지 않지.”

“또한 소견서를 보면 환자의 증상이 한 주 동안 어느 정도 변동이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 그럼…….”

“그렇다면 일반적인 간질성 폐렴이 아니라, 무언가에 노출이 되면서 발생하는 폐렴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오.”

확실히 그랬다.

지금까지 말한 특징을 종합해 보면 직업성 간질성 폐 질환과 상당히 유사했으니까.

“그런데 이 근처엔 탄광이 없죠. 환자 손톱에도 검댕이 묻어 있거나 한 게 없었고. 석면을 의심하기엔……. 이미 미국에서는 오래전에 석면의 위험이 확인되어 거의 다 퇴출되지 않았습니까?”

“그것도 그렇지.”

“그럼 남은 것 중에……. 그나마 환자의 외형에 부합하는 폐렴이 뭐가 있을까요?”

“여기선 그렇게까지 자세하게는 안보여요.”

엡스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CCTV를 가리켰다.

그의 말대로 여기서 보는 제시는 안에서 직접 보았던 제시와는 많은 차이가 있어 보였다.

일단 흑백이라 이 사람이 문신을 한 건지 안 한 건지도 분간이 잘 가지 않았다.

“아, 그렇네요.”

“그러니까 그냥 닥터 리가 말해 봐요.”

“네. 음. 우선 환자의 손을 보면, 여기선 안 보이네요. 약간의 떨림이 있습니다. 나이를 고려할 때, 이상한 일이죠.”

“흠.”

“그리고 이를 보면 제멋대로 썩어 있는데, 충치로 인한 것과는 좀 다릅니다. 화학 반응에 의한 손상입니다.”

“마약이군.”

“네. 모든 마약 중독자들은 기본적으로 대마는 다 한다는 보고가 있더군요.”

“아…….”

수혁의 입에서 대마 얘기가 나오자 엡스는 그제야 알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쪽 구석에 찌그러져 있던 스티브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스티브는 거의 경악스럽다는 표정이 되고야 말았다.

‘이걸……. 저 안에서 생각해 냈다고? 뭐야, 이 새끼……. 진짜 그냥 천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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