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00화 (100/1,303)

100화 왓슨 (1)

“정말 맛있었습니다.”

수혁은 스티브가 모는 차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상당히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방금 그의 말이 빈말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몇 번 더 가야겠군요.]

‘그러게. 내가 가지고 있던 햄버거에 대한 편견을 깨 주는 맛이었어.’

기껏해야 패스트 푸드라고 생각해 왔던 수혁이었다.

당연히 맛에 있어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믿어 왔었고.

근데 아까 먹은 햄버거는 호텔 레스토랑에서 주요리로 내온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맛이었다.

“다행이네요.”

“그럼 지금 바로 연구소로 가는 건가요?”

“아, 네.”

“오후 일정 괜찮은 거예요? 괜히 저 때문에.”

수혁은 일단 칭찬을 통해 스티브의 경계를 허문 후에도 계속해서 저 자세를 고수하는 중이었다.

[잘하고 있습니다. 순진하게 보이십시오. 의학만 아는……. 전공 바보로 알게끔.]

‘알았어. 별짓 다 하네 정말.’

[그런 거치고는 정말 잘하고 있습니다. 원래 전공 바보라서 그런가……. 아니, 이 말은 잊어 주시죠.]

‘그런 말 하면서 데이터베이스화하지 말라고!’

[습관이 되어 놔서. 지울 수도 없는 곳에 넣어 놨네요.]

‘하아.’

전공 바보 행세라도 해 가면서 어떻게든 왓슨의 데이터에 접근해 보기 위함이었다.

수혁이 생각하기엔 어차피 왓슨보다 지금의 바루다가 몇 배는 더 우수할 거 같긴 했지만.

바루다가 꼭 보고 싶어 하니 어쩔 수가 없었다.

바루다를 위한다기보다는 수혁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해 보기는 해야 할 터였다.

‘안 그랬다가는 생지랄을 치겠지…….’

[네?]

‘아, 미안. 들렸냐.’

[수혁의 생각 거의 대부분은 듣고 있거든요.]

‘망할.’

누군가 내 생각을 거의 다 듣고 있다니.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쳐 오는 그런 일이었다.

아마 무심한 편에 속하는 수혁이 아니었다면 정신병에 걸렸을지도 몰랐다.

물론 수혁은 그냥저냥 잘 적응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오후 일정……. 어차피 행크 교수님 연구실에 들러서 도울 예정이었습니다. 괜찮습니다.”

“다행이네요. 아, 여긴가요?”

“네. 여기가……. 주로 내과 관련한 연구가 진행되는 곳입니다. 아예 동떨어진 곳에서 하시는 교수님도 계시긴 한데, 거의 다 이 건물에 계세요.”

“아하…….”

수혁은 애써 놀란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없이 벌어져 오는 입과 눈은 어쩔 수가 없었다.

세상에 아예 건물 한 동이 병원 연구소인 것도 놀라운데, 이게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라니.

[내과가 주로 연구하는 연구소라니. 이것 참…….]

바루다도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출입증은 이거 쓰시면 됩니다.”

“아, 네.”

그사이 스티브는 부리나케 수혁의 임시 출입증을 받아와 건네주었다.

그제야 수혁은 이미 자신이 건물 안에 들어와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로비엔 일종의 게이트 역할을 하는 수색대가 있었는데, 점심시간이 약간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오가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저게 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일까요?]

‘그런가 본데.’

[어마어마하군요. 거의 병원 직원만큼 있는 거 같은데.]

‘그러니까……. 음.’

이것만큼은 대한민국의 의료계가 따라잡기 어려워 보였다.

제아무리 수혁 혼자 잘났다고 까불어 봐야 관여할 수 있는 환자의 수가 몇이나 되겠는가.

평생 환자를 본다 해도 기껏해야 수만 단위일 터.

그에 반해 이곳 연구소에서 개발될 치료제들은 어떠할까.

종류에 따라 수십만에서 수백만, 심지어는 수억에 해당하는 환자들이 혜택을 보게 될 수도 있었다.

[연구라……. 흠.]

수혁뿐만 아니라, 바루다도 깊은 감명을 받은 듯했다.

태화 의료원에서 연구실을 들어가 본 경험이 있었지만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태화 의료원의 연구소에서 이루어지는 연구들은, 미안하지만 그 수준에서 명백한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비하면 영세하다고까지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설비도, 인력도 부족하지 않은가.

점점 개인의 역량보다는 시스템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21세기 바이오산업에서 이 모든 인프라를 역전할 만한 한 방이 나오길 기대하는 건 일종의 망상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돌아가면 일단 연구 역량을 점검해 볼까?’

[좋죠. 하지만.]

‘하지만?’

[그 전에 여기에 있는 모든 것을 데이터베이스화하겠습니다. 약간 어지러울 수 있습니다. 넘어지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너……. 아니다. 그래, 그렇게 해 줘.’

[네.]

수혁은 바루다가 자신의 뇌의 연산 시스템의 일부를 더 가져가는 것을 느끼며 벽을 손으로 짚었다.

평소 운동, 즉 몸을 움직이는 데 쓰여야 하는 뇌의 막대한 연산이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고작 움직이는 데 뭔 놈의 뇌를 그렇게 많이 쓰나 싶기도 하겠지만.

사실 우리 뇌 연산의 대부분은 이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운동에 쓰이고 있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흔히 알려진 것처럼 우리는 우리 뇌의 30%만 사용하고 있는 건 사실이 아니고, 100% 쓰이고 있으며 그 대부분은 이 운동에 쓰이고 있다는 말이었다.

“괜찮으세요?”

스티브는 돌연 수혁이 벽을 짚자 짐짓 걱정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어 왔다.

이러다 혹 수혁이 태화 의료원 교육 시스템의 비밀을 털지 않고 가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수혁은 그의 시커먼 속내를 고스란히 들여다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한쪽 다리가 불편하다 보니, 가끔 이래요.”

상당히 그럴싸한 핑계를 대면서였는데, 언제나 그렇듯 이번에도 통했다.

“아, 아. 그렇군요. 제가 도와드릴까요?”

“아뇨. 저기로 가면 됩니까?”

“네.”

“천천히 갈게요.”

“네.”

수혁은 평소보다 확연히 느린 속도로 몸을 움직였다.

바루다가 그야말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하여 머릿속에 욱여넣고 있기 때문이었다.

출입문은 어떻게 만드는지.

공조 시설은 어디에 어떻게 설치되어 있는지.

인력은 어떻게 배치해서 쓰고 있는지.

솔직히 지금 당장은 알아 둬서 쓸데가 없어 보이긴 했지만.

혹시 모르는 일 아니던가.

삐삐.

해서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으려니 수색대에서 알람이 울렸다.

뒤따라 오던 스티브가 무척 놀란 얼굴로 달려왔다.

“지, 지팡이 때문인가요?”

“아니……. 지팡이는 아닙니다. 이분 머리에서…….”

그러자 경비원 또한 당황스럽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수혁의 머리 쪽에서 계속 알람이 울려 왔기 때문이었다.

그에 반해 수혁은 여유롭기 짝이 없었는데, 이미 공항 검색대에서의 경험이 있어서였다.

“제가 머리를 다친 적이 있어요. 여기.”

해서 수혁은 미리 준비해 간 자신의 진단서를 보여 주었다.

신경외과 최낙필 교수가 영문으로 작성한 것이었는데, 수혁의 머리에 사고로 인한 파편이 박혀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진단서였다.

“아……. 아이고. 실례했습니다. 들어가시죠.”

“네.”

덕분에 수혁은 경비원에게 사과까지 받아 가며 건물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기밀이 최우선시되는 연구소에 생체 해커가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물론 수혁 외에는 그러한 사실을 아무도 몰랐기에 위험할 거리라고는 단 하나도 없었다.

“이쪽으로 오시죠.”

오히려 안내까지 받고 있었다.

“여기가 엘리슨 교수님 연구실입니다.”

“과장님?”

“네. 왓슨이 어디에 있는지는 저도 몰라서……. 아마 과장님이 같이 가실 겁니다.”

“그렇군요.”

수혁은 그렇게 엘리슨 교수의 연구실에 들어섰다.

보통 100만 달러부터 연구비를 책정받아 쓰고 있다더니, 과연 없는 게 없어 보이는 연구실이었다.

특히 돌아다니는 인원이 무척 많았는데 그들 중 대부분이 박사 과정에 있거나 이미 박사를 따고 포스트 닥터 과정에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한국의 대학 병원에서는 감히 꿈도 꾸기 어려울 정도의 인력 풀이라고 보면 되었다.

“아, 닥터 리. 왓슨을 보고 싶다고 했다고요?”

한창 두리번거리고 있으려니 엘리슨이 반갑게 인사를 해왔다.

어쩐지 처음 봤을 때보다는 좀 더 반가워 보이는 그런 인사였다.

[휴.]

‘됐어?’

[대강은요. 어차피 다 돌아볼 것도 아니고…….]

‘아니고?’

[왓슨이 중요해요. 대체 얼마나 잘 만들어 놨길래 날 만들었던 사람들이 그렇게 라이벌 의식을 활활 불태웠는지 궁금합니다.]

‘음.’

약간은 불필요할 정도로 의식을 하고 있다 싶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미 여기까지 오지 않았는가.

그것도 환대까지 받아 가면서.

돌아갈 이유는 단 하나도 없었다.

“네, 꼭 보고 싶습니다. 어쩌면 제가 도울 수 있는 게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마운 말이네요. 그런데……. 닥터 리의 교수님들은 괜찮은 겁니까? 인공지능을 이용한 교육법이라는 건 들어본 적이 없는데.”

당연한 일일 터였다.

단 한 번도 그런 교육은 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아니, 아예 태화 의료원에 있던 유일한 인공지능인 바루다는 터져 버리지 않았는가.

그나마 태화 그룹이 그룹 차원에서 나서서 묻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엘리슨도 바루다가 터졌다는 걸 알고 있었을 터였다.

‘피해자가 날뛰었으면 얘기가 좀 달라졌겠지만.’

[유일한 피해자가 지금 여기 있네요.]

‘그러니까.’

[교수 얘기는 대강 둘러대시죠.]

‘좋아.’

즉 수혁만 입조심하면 아무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수혁은 결코 사실을 전달해 줄 생각이 없었다.

“아, 비밀이기는 합니다만……. 저는 정말 효과를 많이 봤거든요. 뭐 우수한 의사들이 늘어나면 전 세계적으로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그야……. 그건 그렇지.”

“그래도 비밀은 지켜 주세요. 저희 교수님들이 아시면 저 정말 곤란해집니다.”

“그건 걱정 말아요. 어차피 태화 의료원 교수님들하고 그렇게 자주 만나는 사이는 아니니까.”

“네, 감사합니다.”

“그럼 갑시다.”

“네.”

거기에 더해 수혁은 엘리슨과 행크의 입단속까지 한 후에야 왓슨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

방은 딱 바루다가 있던 방처럼 거대했고, 공조 시설이 무척 잘되어 있었다.

[이게……. 왓슨.]

바루다는 눈앞에 놓인, 그러니까 방 가운데 놓인 거대한 컴퓨터와 화면을 보며 중얼거렸다.

뭔가 심정이 복잡해 보였다.

하지만 수혁은 곧 녀석이 인공지능이라는 것을 떠올리곤 고개를 가로저었다.

감정이 느껴진다니, 너무 나간 느낌 아니던가.

“그럼 이게 대강 어떻게 돌아가는지 좀 볼 수 있을까요?”

“어? 아……. 그래. 음…….”

엘리슨은 기술자를 부르려다가, 바로 이 손으로 기술자를 해고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이미 중단된 프로젝트에 무슨 놈의 기술자를 쓴단 말인가.

지금 아이오와 주립대학교 병원에서 이 왓슨을 위해 해 주고 있는 일이라고는 오직 하나, 전력 공급뿐이었다.

“할 줄 아나? 우리 인력이 지금……. 출장을 가 있어서.”

“아…….”

이건 좀 당황스러운 질문이었다.

아무리 아니라고 하려고 해 봐도 수혁은 기계에 있어서만큼은 문외한이었으니까.

실로 전공 바보라는 호칭이 어울리는 인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할 수 있습니다.]

‘응?’

[자꾸 잊어먹으시나 본데, 전 바루다입니다. 인공지능입니다.]

‘그게 뭐.’

[001000101010000]

‘갑자기 미치셨나?’

[이게 제 원래 언어입니다.]

‘아…….’

그러고 보니 들어본 기억이 있었다.

컴퓨터는 2진법을 쓴다고 했던가.

[컴퓨터 언어가 제 모국어라는 뜻이죠. 맡겨 주시죠. 기술자가 있었다면 얘기가 좀 달라졌을 테지만…….]

‘뭔가 음흉해 보이는 말 줄임표인데.’

[해킹하겠습니다. 보아하니 저 셋도 전공 바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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