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07화 (107/1,303)

107화 헨리 (3)

“이명?”

헨리는 방금까지 자신이 골라낸 자료를 건네주려다 말고 수혁을 바라보았다.

[먹혔나? 상당히 놀라 보이는데요?]

‘역시.’

[역시는 무슨 놈의 역시. 그냥 운이 좋은 거지. 하지만 잘했어요. 일단 관심이 있어 보입니다.]

수혁은 바루다의 응원 아닌 응원에 힘입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명. 혹시 이명이 있지 않으세요?”

“어…….”

헨리는 도무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증세에 대해서 의사를 제외하면 그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닥터 요한슨이……. 아냐, 그럴 리가 없어.’

요한슨은 저명하진 않지만, 상당히 신뢰할 수 있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였다.

그에게 들어간 자신만의 비밀이 다른 곳으로 새어 나갔을 거란 생각은 할 수 없었다.

게다가 헨리는 단 한 번도 이명에 관한 얘기는 한 적이 없었다.

그저 잠이 오지 않는다고 했을 뿐.

‘뭐지? 어디서 알아 온 거야?’

해서 헨리는 의구심 가득한 얼굴이 되어 수혁을 바라보았다.

딱히 제대로 된 답은 하지 않은 채였는데, 그런데도 수혁은 확신할 수 있었다.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저는 의사지 않습니까. 몸이 불편한 사람을 보다 보면, 어디가 불편한지 대개는 알게 되기 마련입니다.”

해서 이런 말을 늘어놓았다.

어제 주워들은 얘기가 없었으면 아예 의심조차 할 수 없었겠지만.

지금 그런 걸 굳이 말해 줄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그걸…… 보면 안다고요?”

헨리는 반신반의하는 얼굴이 되었다.

사실 말도 안 되는 말이라는 건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화이자 연구소장쯤 되면 의사들을 숨 쉬듯 만나게 되지 않겠는가.

적어도 지금까지는 단 한 번도 그의 증상을 눈치챈 사람이 없었다.

그저 정신적으로 불안정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정신과적 진단을 권유했던 사람들이나 있을 뿐.

그것도 아니라면 MRI를 찍어 보라고 권유하거나.

“네. 압니다. 저는 보여요.”

하지만 수혁의 아주 당당하기 짝이 없는 태도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흔들리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헨리는 저도 모르게 옆에 있던 의자를 끌어다 털썩 주저앉았다.

수혁은 그렇지 않아도 왼쪽 다리가 조금씩 아파 오던 참이었던 지라 기다렸다는 듯 따라 앉았다.

“얼마나 된 겁니까?”

그리곤 질문을 던졌다.

본격적인 진료 보는 자세를 취하면서였다.

의사들이 대강대강 하는 줄 알겠지만, 사실 학생 때 자세도 다 배우게 되어 있었다.

너무 정면을 향하면 위협적일 수 있고, 그렇다고 또 너무 틀어 앉으면 외면하는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에 45에서 60도 정도가 되게끔 앉는 것이 적당했다.

과연 효과가 없진 않아서, 헨리는 더욱 협조적인 태도로 입을 열었다.

“오래됐습니다.”

나오는 말까지 협조적이진 않았다.

‘왜 이러냐, 보호자처럼.’

[연구소장이지 의사는 아니니까요.]

‘그래도 과학자 아냐? 오래됐어가 뭐야, 오래됐어가.’

[저한테 화내지 마시고, 다시 물어보세요.]

오래됐다는 말은 적어도 의사에게는 딱히 도움이 되지 않는 답변이라고 보면 되었다.

해서 수혁은 바루다의 말을 따라 재차 질문을 던졌다.

“얼마나 오래됐죠? 1년?”

“아니, 그보다 훨씬.”

“그럼 10년?”

“아니……. 20년도 더 됐습니다.”

“20년……. 정말 오래됐군요.”

병적 이명이 20년 넘게 진행됐다니.

수혁은 헨리가 정신병을 얻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이미 얻었을 수도 있었다.

이명 환자에서 우울증의 빈도가 늘어난다는 것과 자살률마저 올라간다는 건 통계적으로 확인된 팩트였으니까.

“양쪽 귀에서 모두 들리나요?”

“음……. 방향을 특정할 순 없어요.”

수혁은 놀라운 마음을 뒤로 하고 질문을 계속 이어 갔다.

헨리 또한 성실히 답변했다.

지금까지 딱 보자마자 자신의 병을 알아본 이가 수혁 하나뿐일 뿐더러.

딱 질문을 시작하고부터는 어쩐지 베테랑 의사의 느낌을 잔뜩 풍겼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청력 검사한 건 언젠가요?”

“3개월 전입니다. 양측 모두 정상으로 나왔습니다.”

“정상이라……. 혹 MRI는요?”

“찍었습니다. 정상입니다.”

반면 수혁은 일단 바에서 확인했던 정보를 다시 확인했다.

‘정상이구나, 진짜. 근데 정말 제대로 기억하고 있으려나?’

[지금까지의 대화와 저기 모아 둔 자료의 양으로 미루어 보건대 이 사람 약간 강박 증세가 있어요. 절대 틀릴 리가 없습니다.]

‘아……. 하긴 서류철 좀 봐…….’

[네. 아마 이명에 대해서도 어지간한 의사들보다 더 잘 알고 있을걸요? 생명과학 쪽 연구원 중에선 그런 경우가 흔하다고 들었습니다.]

수혁도 비슷한 말을 들은 기억이 있었다.

선배가 공중 보건의를 카이스트 내의 의무소에서 했는데, 그때 정말 힘들었다고 했더랬다.

오는 환자마다 자신의 증상에 대해 논문을 뒤지고 오는 통에 입씨름 하느라 죽는 줄 알았다고 했던가.

아마 헨리도 크게 다르진 않을 거 같았다.

아니, 그보다 훨씬 심각할 게 분명해 보였다.

“이것 보세요, 닥터 리.”

과연 헨리는 수혁의 질문을 뚫고 자신이 공부했던 바를 어필하기 시작했다.

“네.”

“이명이란 게 원래 난청……. 그러니까 신경이 손상되면서 결손된 청력에 대한 보상 작용으로 발생하는 거 아닙니까?”

“음, 보통은 그렇죠. 보통은.”

“그런데 저는 청력이 정상이죠.”

“네.”

“그래서 다른 이유가 있나 해서 경추 MRI도 찍어 봤습니다. 화이자 부속 연구소에는 어지간한 설비가 다 있거든요.”

“아…….”

헨리는 지하 쪽을 가리키면서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MRI 기기가 연구소 지하에 있는 모양이었다.

한두 푼 하는 기계도 아닌데, 그걸 연구 목적으로 집어넣다니.

정말이지 세계적인 제약 회사는 클래스가 달랐다.

“그런데 정상입니다. 디스크도 없고……. 사실 목 통증도 없어요, 저는.”

“그럼 근골격계 질환으로 인한 이명도 아니군요.”

“네.”

“스트레스나……. 우울감에 의한 것은 아닐까요?”

“오, 제 얼굴을 보고 하는 말씀인 거 같은데…….”

헨리는 상당히 익숙한 질문이라는 듯 옅은 미소까지 띤 채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려 반년을 쉰 적이 있어요. 화이자에 오기 전의 일인데…….”

“쉬어요? 여행을 다니셨나요?”

“아뇨. 그냥 태국 파타야에 가 있었습니다. 배고프면 먹고, 찌뿌둥하면 마사지 받고 하면서. 그래도 안 없어집니다. 똑같아요.”

“흠.”

태국 파타야라.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곳이긴 했지만.

어쩐지 엄청 좋아 보이는 지명 아닌가.

게다가 배고프면 먹고, 찌뿌둥하면 마사지라니.

누구나 바라마지 않을 삶이었다.

‘스트레스는 아닌 거 같은데.’

[사실 심리적인 이명은 이렇게까지 오래가지 않죠. 뭔가 기질적인 원인이 있어야 하는데.]

‘MRI에서 아무것도 안 잡혔다잖아. 뭐 들리는 건 없어? 객관적인 이명은 아냐?’

이명 중에는 객관적인 이명도 있었다.

나한테만 들리는 게 아니라, 누구나 들을 수 있는 종류의 이명이란 뜻이었다.

대개 중이강(고실) 내에 있는 이소골을 붙들고 있는 근육의 경련이나, 머리 뒤쪽으로 흐르는 정맥의 혈류가 들리는 경우가 여기에 속했다.

하지만 수혁이나 바루다나 지금까지 어떤 소리도 듣지 못했다

게다가 이런 종류의 이명은 환자의 자세와 엄청난 연관이 있기 때문에 특유의 자세를 취하게끔 되어 있었다.

적어도 헨리는 자세가 아주 좋은 편이었기에, 객관적 이명은 배제할 수 있었다.

“솔직히 놀랐습니다. 이명이 있다는 거……. 그거라도 알아준 의사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거기까지일 겁니다. 제가……. 이명에 대해서 정말 공부를 많이 했어요. 기전하고 치료법에 대해. 하지만……. 제 이명은 이상합니다. 원인도 없고, 치료법도 없어요.”

“흠.”

수혁은 절망스럽다는 얼굴을 한 헨리를 보며 마른 침을 삼켰다.

확실히 헨리의 말대로 그의 이명엔 뚜렷한 이유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모든 게 정상인데, 늘 이 정도 크기의 백색 소음을 틀어 놔야 될 정도의 이명이 들리고 있다니.

‘대체 뭐지?’

[침착하십시오. 원인이 없는 증상은 없습니다. 이건 절대로 변하지 않아요.]

‘음……. 그건……. 그건 그래.’

하지만 바루다의 말을 듣고 보니, 조금은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물론 현대 의학이 우리 몸의 모든 것을 다 알아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알아낸 것과 그렇지 못한 것 중엔 알아낸 부분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치료는 못하더라도 원인만은 알아내는 경우도 많았고.

그러니 아직 헨리의 이명도 여지가 있다는 뜻이었다.

[일단……. 다른 병이 없는지 물어보죠. 가능성은 떨어지지만, 고지혈증이 있다면 경동맥 경화에 의한 이명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

‘자세에 따른 변화가 없는데?’

[그래도 물어는 봅시다. 기본은 해야죠.]

‘알았어.’

모든 학문에 있어서 기본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래도 모자라지 않을 터였다.

그리고 의학에서, 특히 환자를 진료할 때 기본은 더더욱 중요했다.

더 잘하기 위한 기본이 아니라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한 기본이었으니까.

“헨리 소장님. 혹시 앓고 있는 다른 질환은 없습니까?”

“다른 질환? 있죠. 불면증.”

헨리는 이제 수혁에 대해 기대를 접었는지, 상당히 퉁명스러워져 있었다.

원래 이랬던 사람이니 크게 당황스럽진 않았다.

해서 수혁은 침착하게 대화를 이어 나갔다.

“아. 이명에 의한 거겠군요.”

“물론입니다. 이 망할 놈의 이명이……. 제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뜨려 놨어요.”

“그거 말고는 전혀 없고요?”

“네. 없습니다. 전 매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매일 저녁 8km를 뛰어요.”

“오…….”

“음식도 매일 정해진 음식만 먹습니다. 제 체중은 20년간 변화가 없어요.”

그러고 보니 헨리는 우락부락한 느낌은 아니더라도 꽤 탄탄해 보이는 몸을 가지고 있었다.

도저히 혼자 사는 52세로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건장해 보였다.

‘도대체 뭐야, 그럼.’

[그러게요. 모르겠네.]

‘야, 지금까지 이렇게 물어 왔는데……. 모른다고 하면 어떡해!’

[모르면 모르는 거죠……. 대강 얼버무리세요. 화이자랑 연구 안 하면 되지.]

‘이…… 이 새끼야…….’

[아, 몰라. 어?]

한참 모르쇠를 놓던 바루다가 돌연 고개를 갸웃거렸다.

수혁의 시야 어딘가에 집중하면서였다.

아예 신경을 쓰고 있지 않던 부분이었던지라 수혁은 바루다가 뭘 보고 이러는 건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왜? 민망해서 이러지?’

[아니…… 이 사람 아무 병도 없다고 했잖아요.]

‘그랬지.’

[근데 왜 자리에 약병이 있죠?]

‘영양제 아냐? 알록달록하니, 약은 아닌 거 같은데.’

얘기하는 거 보면 건강 염려증이 있나 싶을 정도로 강박적으로 건강을 챙기고 있지 않은가.

먹고 있는 영양제가 한두 개 정도 있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어 보였다.

아니, 없다고 하면 그게 더 이상하리라.

그리고 영양제 중에선 아쉽지만, 이명을 일으킬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니, 좀 자세히 보세요. 저기 하나는 약이잖아.]

‘약? 어……. 그렇네.’

그제야 헨리는 수혁이 자기 얼굴이 아니라 뒤에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뭐 해요?”

“아, 네. 저기 소장님 자리죠?”

“아, 그렇습니다.”

“약…… 먹고 있는 게 있으시네요?”

“약이 아니라 영양제입니다. 오메가 3랑 비타민.”

“아니…… 저건 약 아닌가요?”

수혁은 그 두 개 사이에 있는 하얀 약통을 가리켰다.

그러자 헨리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건 아스피린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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