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헨리 (4)
“아스피린?”
“네. 아스피린. 여러 긍정적인 논문이 있지 않습니까? 일부 화이자에서 펀딩한 논문도 있고.”
“그건……. 그렇죠.”
아직 대한민국에서는 아스피린이 대중화되어 있지 않았다.
아니, 사실 해열 진통제 시장에서는 거의 반은 퇴출되어 있다고 보면 되었다.
소아 환자에서 발생 가능한 라이 신드롬 및 다른 진통 소염제에 비교해 월등히 심한 위장관 장애 때문이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예방적 아스피린 복용이 아주 일상화되어 있었다.
[뇌경색 및 심혈관계 질환 예방이 된다고 알려져 있죠.]
‘하긴 우리……. 이현종 교수님도 많이 먹잖아.’
[많이는 아니고, 챙겨 먹죠. 뭘 많이 먹습니까. 약을 밥처럼 먹는 것도 아닌데.]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물론 헨리의 말처럼 긍정적인 효과가 아주 많이 증명되어 있기는 했다.
오죽하면 논문 귀신 이현종이 득달같이 찾아다 먹고 있겠는가.
심지어 최근엔 암 발생률도 어느 정도 떨어뜨린다는 보고가 있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동양인에서는 뇌경색보다 오히려 뇌출혈이 더 흔해서 좀 더 연구가 필요한 상태였고, 앞서 말한 이유와 더불어서 아스피린의 대중화는 아직 요원했다.
“이건……. 먹은 지 오래됐어요. 양을 줄여서 먹기 때문에 위장관 트러블도 전혀 없고.”
헨리는 수혁이 바루다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아스피린 및 여러 약통을 가져왔다.
“비타민 C도 저는 메가 도즈로 먹습니다.”
인제 보니 이쪽의 신봉자인 듯했다.
[뭐……. 비타민도 다시 긍정적인 보고서가 많이 나오고 있기는 하죠.]
예전엔 비타민 그까짓 것 먹어 봐야 별 소용도 없다는 논문이 우르르 나왔던 적도 있었더랬다.
어차피 영양제를 챙겨 먹을 정도로 사회 경제적인 수준이 있는 사람들은 이미 식사에서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고 있다는 내용도 있었고.
아무튼, 일부 의학자들은 비타민의 효용을 얘기했지만, 전반적인 의학계에서는 의구심 어린 시선을 보내왔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최근 연구에서는 다시 비타민을 고용량으로 복용하는 것이 항산화 작용 및 항노화 측면에서 긍정적이란 보고가 이어지고 있었다.
‘솔직히 식이에 관한 연구는……. 부정확한 게 너무 많아서 신뢰할 수 없는데.’
[그렇죠. 그 인간이 다른 거 뭐 먹었는지 알 수가 없으니.]
죄수도 아니고.
어디 가둬 놓고 연구자가 원하는 음식만 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당연히 오류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저탄고지니, 황제 다이어트니 하는 식이가 우후죽순 격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져 가는 이유이기도 했다.
식이에 대해서 만큼은 정확한 연구가 아직은 불가능하다고 보면 되었다.
“닥터 리도 비타민 공부해 보면 얼마나 좋은지 알게 될 겁니다. 나는 감기도 잘 안 걸려요. 아스피린이야 말할 것도 없고. 저는 이게 인류의 수명을 증가시켜 줄 거라고 믿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헨리의 비타민 및 아스피린에 대한 예찬론은 계속되었다.
바루다의 영향으로 논문의 양보다는 질을 우선시하게 된 수혁으로서는 더 들어 주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어느 정도 긍정적일 거라는 건 이론적으로 동의하지만.
솔직히 논문이라고 해서 다 믿을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었다.
딱 한 번만이라도 논문을 써 본 사람이라면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을 터였다.
논문도 다큐멘터리처럼 연구자의 주관이 섞이려면 얼마든지 섞일 수 있었으니까.
[가만……. 이 인간 그럼 아스피린을 수십 년간 먹었다는 거 아닙니까?]
‘얘기 들어 보니까 그런데? 거의 뭐……. 30년 가까이 된 거 같아.’
[아스피린이 물론 좋은 약이지만……. 부작용이 있을 수 있잖아요.]
‘당연히 있을 수 있지. 하지만 30년간 먹어 왔으면……. 이미 급성 부작용은 없다는 얘기야. 건강에는…… 응?’
수혁은 부작용에 대해 언급하다가 돌연 고개를 갸웃거렸다.
헨리는 수혁이 바루다와 대화 중이라는 것을 꿈에도 모르고 있었기에. 자기주장에 의문을 표한 것인 줄로만 알았다.
“왜 그럽니까?”
“아니……. 아스피린……. 계속 드신 거죠?”
“네. 이건 좋다니까요? 가격도 싸고. 나도 제약 회사에 몸담고 있지만……. 이런 약 하나 만들 수 있으면 좋죠. 인류에 공헌하는 셈이니.”
수혁은 거의 뭐 아스피린 처돌이 수준인 헨리를 보며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곤 아까 자신이 떠올렸던 부작용 부문을 떠올렸다.
극히 드문 부작용인 데다가, 대부분 일시적이라서 넘어갔던 증상 하나가 떠올랐다.
‘아스피린 부작용 중에 이명이 있지 않아?’
[음? 아, 그러고 보니……. 청력 손상을 일으키지 않고, 약을 끊으면 즉시 정상화되는 이명을 일으킬…… 응?]
‘그래. 근데 이 양반은 계속 먹잖아. 보니까 일반적인 예방적 용량보단 많이 먹는 거 같은데.’
[허……. 그렇네요. 이건 약전에도 예전에는 없던 내용입니다.]
‘비교적 최근에 발견된 데다가.’
[심하지 않은 부작용이니까요.]
‘하지만 분명히 원인일 수 있어.’
[얘기해 주시죠. 반발이 좀 있을 거 같지만. 논문 보여 주면 납득할 겁니다. 과학자니까.]
지금 헨리가 떠들어 대고 있는 아스피린의 좋은 점도 결국 자신의 주관적인 경험은 극히 일부분일 뿐이었다.
대부분은 어디 논문에 한 줄이라도 언급되었던 것들을 근거로 삼고 있었다.
뭐가 어찌 되었건 근거 중심의 사고를 하는 과학자라는 뜻이었다.
그래서 수혁은 용기를 냈다.
눈앞의 인상 더러운 사람의 의견에 반해야 한다는 것이 좀 두렵기는 했지만.
뭐 설마하니 다리 불편한 사람 때리기라도 하겠는가.
지금까지 그런 놈은 단 하나도 없었더랬다.
“잠깐. 헨리 소장님.”
“응?”
“이명 말입니다.”
“그건 얘기 끝난 거로 아는데요? 치료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아니, 원인도 모르지.”
헨리는 이명 얘기가 나오자마자 대번에 퉁명스러워졌다.
지금도 저 귀에 거슬리는 종이 찢는 소리를 틀어 놔야 하는 질환이 아니던가.
그 때문에 아래 직원들이 수군거리는 것도 다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해명하지 않은 건, 약점을 내보이기 싫어서였다.
그 약점을 대놓고 언급하고 있는 수혁이 좋아 보일 수가 없었다.
물론 치료를 해 준다면야 얘기가 완전히 달라지긴 하겠지만.
“아뇨. 원인을 찾아낸 것도 같습니다. 아닐 가능성이 크긴 하지만, 의심해 볼 수 있는 정황이 하나 있어요.”
“원인을…… 찾아? 이것 보십쇼. 닥터 리. 내가 여기 소장입니다. 솔직히 어지간한 의사들보다 내 논문 서치 능력이 더 좋다고. 이명에 대해선 거의 교수급이라고 보면 돼요. 그런 내가 못 찾은 원인을……. 바로 찾는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냥 그만둘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반응이었다.
[진짜 고쳐 줬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지는군요.]
‘그러게. 눈물이라도 질질 짜는 거 아냐?’
하지만 수혁이나 바루다나 마냥 착한 인간은 아니지 않은가.
아주 약간은 뒤틀어진 면이 있는 녀석들이었다.
“찾을 수도 있죠. 관점이 다르니까요.”
“하……..”
“일단 얘기나 들어 보시죠. 가치가 있을 겁니다.”
“흥.”
헨리는 일단 한숨을 쉬고, 그다음에는 콧방귀를 뀌어 댔다.
감히 동양에서 온 꼬마 의사 주제에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하지만 이명으로 인한 불편감이 워낙 크지 않은가.
한구석에서는 이런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설마…….’
해서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들어나 보죠.”
그 말에 수혁은 앞에 놓여 있던 아스피린을 낚아챘다.
“원인은 바로 이 아스피린입니다.”
“아스피린……?”
“네. 최근……. 정말 최근입니다. 2달 전에 리포트 되어서 아직 시중에 있는 약전에는 표기가 안 되었을 거예요.”
“무슨 소리를 하려는 건지?”
“아스피린이 단기적인 이명을 일으킬 수 있다는 보고서가 있습니다. 아니, 아니. 복용 중에 이명을 일으킬 수 있다는 보고서라고 보는 게 맞겠네요.”
“아스피린이…… 이명을?”
헨리는 그가 말했던 대로 이명에 대한 논문을 아주 많이 읽어 왔더랬다.
발생 기전, 원인, 현재 시도 중인 치료들.
하지만 단 한 번도 아스피린을 의심한 적은 없었다.
심장 연구를 해 온 그에게 아스피린은 일종의 기적의 약과도 같은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그게 이명을 일으킬 수도 있다니.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입 벌리는 거 보소.]
‘표정 볼 만한데?’
[난 이럴 때가 제일 좋더라.]
‘나도.’
수혁과 바루다는 그런 헨리를 보면서 다소 인성 파탄자 같은 대화를 나누며 말을 이었다.
“네. 이거 보세요.”
그리곤 핸드폰으로 검색한 논문 결과를 보여 주었다.
아직 종이로 출간되기도 전이었다.
이펍 단계의 논문이었는데, 사실 레지던트가 이렇게까지 업데이트된 논문을 읽었다는 거 자체가 아주 놀라운 것이었다.
하지만 헨리는 그러한 사실 따위는 떠올리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저 수혁이 보여 준 논문만을 게걸스럽게 탐독할 따름이었다.
“이거……. N수도 적지 않고…….”
무척 놀란 모양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미 아주 널리 쓰이고 있던 약의 새로운 부작용에 관한 이야기였으니까.
심지어 케이스 리포트도 아니었다.
지금까지 발간된 케이스 리포트를 모으고 모아서 만든 논문이었다.
아예 이명을 일으켰던 사례가 없었던 건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걸……. 의심한 게 대단하지.’
[그러니까요. 아스피린을 의심할 생각을 하다니. 연구자가 아주 똑똑합니다. 우리 수혁은 대체 언제가 되어야…….]
‘아니, 말이 왜 또 그쪽으로 흘러가?’
[연구는 이렇다 할 게 없잖아요.]
‘레지던트가 무슨 연구를 해. 임상 논문이나 쓰면 됐지. NEJM에 낸 몸이라고, 무려.’
[에이……. 솔직히 아이디어는 이현종 교수가 줬지…….]
둘이 영혼을 걸고 아주 쓸데없는 논쟁을 벌이는 사이, 헨리는 그 긴 논문을 다 읽어 내려갔다.
원래 연구자들은 남의 논문을 읽는 것이 주요 업무 중 하나이기는 했다.
그로 인해 배우는 것도 있기는 했지만.
제일 중요한 이유는 혹시 어떤 놈이 내가 지금 연구하는 거 먼저 발표하지 않았나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아무튼, 헨리도 그런 축에 속했기 때문에 속도가 대단했다.
“이럴 수가……. 이건……. 이건 정말 원인일 수도 있겠는데.”
그렇게 다 읽은 헨리의 감상은 그리 길진 않았다.
하지만 무척이나 감명받은 듯했다.
일단 수혁을 바라보는 눈빛부터가 아예 달라져 있었다.
“다, 닥터 리. 이 학술지는…….”
“SCI 점수는 그렇게 높진 않아요. 하지만 청각 계통에서는 가장 높은 저널입니다.”
“그럼 신뢰도가 높겠군요.”
“네. 연구 기관이 일단 다기관 연구입니다. 태화 의료원도 껴 있어요.”
사실 껴 있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메인이었다.
아스피린에 있어서 만큼은 불모지나 다름없는 대한민국에서 이런 논문이 나온 것이 의아할 수도 있겠지만.
어찌 보면 또 당연한 일이었다.
미국에서는 너무 만연한 약이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심근경색이나 기타 질환이 발생한 후에나 먹는 약이었으니까.
비교적 의사나 환자나 이 약을 먹은 시점과 용량을 아주 정확히 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건 약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캐치하는 데에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부연 설명해 주자 헨리는 거의 무릎을 꿇을 기세가 되어 있었다.
“정말……. 내 이명이 이걸 끊음으로써 낫게 되면 이 은혜는 절대……. 절대 잊지 않겠네.”
보통의 의사라면 여기서 ‘그냥 그러세요’ 하겠지만.
[뭘 받죠?]
‘받긴 뭘 받아! 의사가 환자 치료한 건 당연한 건데.’
[에이……. 바라는 거 있으면서 이러신다. 잊으셨어요? 전 수혁의 모든 걸 느낍니다.]
‘이런 시바. 그래, 바라는 거 있다.’
수혁은 바루다를 끼고 있었다.
어느 틈엔가 탐욕 덩어리가 되어 버린 바루다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