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10화 (110/1,303)

110화 진짜 이상하네 (1)

미국의 교도소는 그래도 나름 인간적인 편이었다.

비록 한 달에 한 번이지만 이렇게 대학 병원으로 외진을 올 수 있었으니까.

아이오와 주립대학교 병원에서 죄수라고 진료비를 감면해 줄 까닭은 없으니.

고스란히 교도소 돈이 들어가는 셈이었다.

당연하게도 같이 온 교도관들의 죄수들을 향한 눈초리가 그리 좋진 않았다.

“쿨럭, 쿨럭.”

수혁은 스티브와 함께 엡스 교수의 외래에 들어가 있었다.

원래 같았으면 먼저 수혁과 스티브가 문진하고, 그 결과에 대해 엡스 교수와 토의를 하는 방식으로 진료가 진행되겠지만.

교도소 환자들에 대해서는 조금 다른 원칙이 적용되었다.

1, 2차 의원에서 충분한 시간을 두고 치료하다가 의뢰되어 온 다른 환자들과는 달리, 교도소 의무소에서 바로 진료 의뢰되어 온 환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보통은 3차 의료기관인 대학 병원까지 오는 걸 아주 꺼리는 반면에.

이 환자들은 어떻게든 대학 병원에 오고 싶어 했다.

그때만이라도 바깥세상 구경을 할 수 있었으니까.

“기침이 아주 심하시네요?”

그래서 질문을 던지는 엡스 교수의 얼굴엔 온통 의심이 가득 차 있었다.

의무소에서 보내온 소견서에도 특별한 이상 소견 없이 기침만 한다고 쓰여 있었다.

물론 폐암이나 기타 폐 질환에서도 별 이상 없이 기침만 하는 경우도 많긴 하지만.

눈앞의 환자는 너무 젊고 건강해 보였다.

“쿨럭쿨럭.”

양손에 수갑을, 그것도 목으로 연결이 되어 있는 수갑을 차고 있는 환자는 대답 대신 기침을 해 댔다.

딱 영화에서나 보던 그 오렌지색 죄수복을 입고, 하얀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빡빡 민 건지 다 뽑은 건지 모르겠는 머리에는 흉측한 문신까지 새겨져 있었다.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리는 인상이라는 게 뭔지 알려 주러 온 듯했다.

아무튼, 그는 질문을 들은 후에도 한참이나 기침을 해 대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네, 쿨럭. 멈추질 않아요.”

“그렇군요. 음. 네.”

게다가 이런 식으로 쉬지 않고 기침이 나오는 질환은 그냥 없다고 봐도 좋을 지경이었다.

“얼마나 됐다고요?”

“3주요! 3주! 쿨럭!”

거기에 더해 3주 동안 이런 기침을?

만약 그게 사실이었다면 목소리가 안 나와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환자의 목소리는 낭랑하기만 했다.

[거짓말 같은데요?]

‘그러니까……. 거짓말 같아.’

바루다나 수혁의 의견 또한 정확히 일치했다.

하지만 둘에게는 꾀병 환자를 본 기억이 없었다.

아니. 딱 한 번 본 적이 있었는데 그건 꾀병이라기보다는 그냥 그 자체가 질환이었다.

[뮌하우젠 증후군과는 다릅니다. 그건 정신 질환이잖아요.]

‘그래. 이건……. 이건 진짜 꾀병이야.’

[하지만 증상을 호소하고 있으니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겠네요.]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흔히 의사라면 꾀병 환자를 100% 잡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할 테지만.

아쉽게도 의사도 사람이었다.

더구나 의사들은 환자들의 불편에 귀를 기울이라고 배운 사람들이지, 그걸 무시하라고 배운 사람들이 아니지 않은가.

“그럼……. 일단 CT를 찍어 보도록 하죠. 엑스레이는 의무소에서 바로 어제 찍은 게 있으니까. 뭐, 여긴 아무것도 보이는게 없지만 또 모르는 일이죠.”

엡스 또한 그렇게 배운 사람인지라, 검사를 지시했다.

환자는 더욱 오래 밖에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진료실 문 쪽을 바라보았다.

교도관은 그런 환자의 양편에 선 채 굳은 얼굴로 끌고 나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엡스가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다.

“처음엔 지역 사회에 봉사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야.”

교도소 환자 진료는 당연하게도 죄수들의 요청으로 이루어진 일이 아니었다.

전전대 교도소 소장의 다분히 인도적인 생각에서 비롯된 요청으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때 그 회의 자리에 있던 모두는, 엡스까지 포함해서 그의 의견에 동의했다.

아무리 중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고 해도 환자가 된 이상 최상의 의료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니.

세상에 어느 의사가 그런 의견을 무시할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선의에서 시작한 일은 죄수에게 일탈의 장이 되고 말았다.

“뭐……. 그래도 토의는 안 할 수 없겠지. 스티브. 이 사진 보면 어떤 거 같아?”

엡스는 잠시 허탈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가 이내 수혁과 스티브 쪽을 돌아보았다.

의무소에서 출력해 온 엑스레이 사진을 보여 주면서였는데.

솔직히 이런 식으로 사진을 보는 건 난생처음이었다.

출력된 엑스레이라니.

적어도 거의 모든 의료 기관이 디지털화되어 있는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어……. 정상 같은데요?”

스티브는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곧장 대답했다.

그러자 엡스의 시선이 수혁을 향했다.

“사진상에 보이는 이상 소견은 없습니다.”

이에 수혁은 스티브와 거의 같지만 실은 전혀 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딱 정상이라는 의견과 이 사진에서는 이상 소견이 없다는 말의 차이는 적어도 엡스와 같이 숙련된 호흡기 내과 의사에게는 너무 확연한 것이었다.

‘확실히……. 수준이 달라. 뭐……. 스티브도 아예 모르고 하는 말은 아니겠지만.’

엡스는 조금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사진에서 이상 소견은 보이지 않지. 사실 저렇게 기침을 해 댔으면 종격동에라도 변화가 있거나……. 기관지 확장증이라도 보여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어. 뭐……. 정면 흉부 엑스레이 사진이 폐의 모든 부분을 확인시켜 주진 않으니 CT를 찍어 보긴 해야 겠지만……. 거기서 이상이 나올 거 같지는 않아.”

결국, 꾀병 같다는 말을 돌려서 말한 것이었다.

이 정도 환자는 교도소 의무소에서 걸러 주면 더할 나위 없을 만큼 좋겠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었다.

자칫 질환을 놓쳤다가는 각종 인권 단체들의 표적이 되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몇 달 전 돌발성 난청 환자 하나를 놓쳤다가 문제가 되기도 했고.

“뭐 CT 찍으려면 좀 걸릴 테니. 다음 환자나 볼까.”

엡스는 그렇게 말을 이으면서 아직 방 안에 들어와 있던 교도관 한 명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교도관은 그것을 신호로 해서 진료실 문을 열어 주었다.

이것 또한 일반적인 진료와의 차이점 중 하나였다.

죄수들은 각 방에 하나씩 들어가서 기다리지 못하고, 이렇게 방으로 들어와야만 했다.

그전에는 대기실에 한꺼번에 모여서 교도관의 통제를 따랐다.

당연한 일이었다.

여기 있는 죄수들은 좀도둑같이 귀여운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아니었으니까.

대부분 진짜 갱이었다.

끼리릭.

다음으로 들어온 죄수는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처음엔 저것조차 꾀병인가 싶었지만, 자세히 보니 그건 아닌 듯했다.

[우측 다리에 위약이 있군요.]

‘좌측은 굵고. 다리는 진짜 불편한가 본데.’

[하긴 지금 호흡기 내과를 온 건데……. 그게 중요한 건 아니겠죠.]

‘그렇긴 하네.’

환자는 그렇게 진료실 안에 들어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기침을 해 댔다.

기침하는 모습만 보고 그 기침의 진위 여부를 판단하는 건 좀 편견처럼 보이긴 하겠지만.

수혁이나 바루다나 바로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이 환자도 꾀병…….’

[그러니까요……. 재미없는데…….]

바루다는 심지어 스티브를 흘겨보기까지 했다.

녀석이 기상천외한 환자들이 잔뜩 온다고 해서 기대하고 있었건만.

이건 뭐 순 꾀병 환자들만 오고 있지 않은가.

‘아니, 잠깐만.’

[왜요. 기침할 때 목으로만 하잖아. 그런 기침이 이렇게 오래……. 그것도 시도 때도 없이 지속된다고? 후비루도 없고, 후두 내시경도 정상이잖아요.]

바루다는 이제 완전히 체념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사람이 가져온 소견서 또한 온갖 사진과 의견들로 점철되어 있었는데.

그게 다 정상이었다.

1차 진료 기관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검사에서 정상이 나왔단 소리였다.

물론 다른 검사에서 뭔가 더 나올 수도 있겠지만.

일단 증상이 지어낸 증상인 이상에야 뭘 더 의심하겠는가.

하지만 수혁은 그런 바루다를 달래기 시작했다.

“그래요. 기침은 한 3주 됐어요?”

엡스 교수조차 시니컬한 말투로 진료를 해 나가고 있는 동안에도 그랬다.

‘야, 잘 봐 봐.’

[보고 있어요. 어차피 저는 수혁의 시야를 공유하니까.]

‘아니, 주의를 집중하라고.’

[어디에요?]

‘저 환자 손톱 좀 보라고.’

[손톱? 손톱은 갑자기 왜?]

바루다는 시큰둥한 말투를 유지하면서도 수혁의 의견을 따르긴 했다.

주어진 정보를 분석하고, 그것을 토대로 진단 내리는 능력이야 바루다가 월등했지만.

그런 바루다도 수혁의 감을 따라가진 못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감이라는 것도 결국 바루다가 쌓아 둔 데이터에 기반하고 있기는 했지만.

아무튼, 바루다로서는 지금까지 수혁이 보여 준 수많은 활약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러기엔 통계적으로 너무나도 유의미한 성과를 보여 주었다.

‘아니, 저런 손톱……. 약간 병리적인 거 같지 않아?’

[병리적? 손톱으로 병 진단하는 건 거의 미신인 거 알죠?]

그런데도 바루다는 일단 빈정거렸다.

하지만 보다 꼼꼼히 환자의 손톱을 살핀 후에는 그런 말을 더 할 수가 없었다.

[이상한데?]

‘그러니까. 정상은 아냐. 어디서 봤더라, 저런 거?’

환자의 손톱 중앙으로 하얀 가로선이 가 있었다.

이건 손톱의 반월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미즈 라인(Mee’s line)이에요. 중금속……. 납이나 비소 중독에서 보이는데.]

‘비소? 그건 아예 독 아냐?’

[그렇죠. 아, 방금 봤어요? 손바닥?]

‘봤어.’

바루다나 수혁이 아예 다른 문제에 대해 토의를 이어 나가는 동안 엡스 교수는 진료를 이어 나가고 있지 않았겠는가.

그러다 보니 기본적인 혈압도 쟀고, 그러던 중에 환자의 손바닥이 노출되었다.

그걸 유심히 보지 않는 사람에게는 별로 특별할 거 없는 손바닥이었지만.

수혁에게는 달랐다.

[반점이 있습니다. 아주 지저분한.]

‘케라토시스(Arsenic keratosis)인가?’

[정말 비소 중독인가? 근데 그런 것치고는…….]

‘몸놀림이 나쁘지 않아. 다리야 뭐 부상이 있으니까 그렇겠지만.’

[뭘까요?]

‘궁금해지는데…….’

비소 또는 다른 중금속 중독이 아주 강하게 의심되는 순간이었다.

그냥 손바닥의 병변만 있었다면 사실 그렇게까지 캐묻고 싶은 생각이 들진 않았을 터였다.

그건 예전에 노출된 적만 있어도 생길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손톱의 병변은 적어도 이 환자가 지속적으로 어떤 중금속에 노출이 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건 너무 이상한 일 아닌가.

교도소에 있는 환자가 중금속에 노출되고 있다니.

그것도 다른 죄수들이나 교도관들은 전부 괜찮은데.

“그래 뭐. 이 환자도 CT 찍지.”

그동안 엡스는 꾀병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CT 처방을 내리고 있었다.

‘시바 어쩌지? 잡아?’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아무도 모르고 있는 거 같은데?]

심지어 환자 본인도 모르는 듯했다.

만약 알았다면 꾀병으로 나왔겠는가.

중금속 중독을 호소하면서 왔지.

해서 수혁은 잠시 갈등하다가, 교도관이 끌고 나가던 휠체어를 붙잡았다.

“뭡…… 니까?”

교도관은 물리적인 위협을 가하려고 했으나, 수혁의 지팡이를 보고는 일단 뒤로 물러섰다.

수혁은 그런 교도관과 마찬가지로 놀란 엡스 그리고 스티브를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환자 조금만 더 봐도 될까요? 좀 이상한 면이 있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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