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진짜 이상하네 (3)
‘뭘 놓쳐?’
수혁은 멀뚱멀뚱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장 폴을 바라보았다.
정말이지 이름이랑 너무도 안 어울리는 몰골이었다.
저토록 험악한 인상을 주는 사람 이름이 장 폴이라니.
그에 비하면 교활한 피트라는 별명은 누가 지었는지는 몰라도 거의 걸작 수준이었다.
[일단 밖에서 안으로 들여올 수 있는 게 뭐가 있는지 물어보죠.]
‘그런 게 있을 거 같지 않은데…….’
수혁은 재소자 진료 전에 들어야 했던 브리핑을 떠올렸다.
여러 가지 주의 사항 및 재소자들에 대한 간단한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그에 따르면 지금 수혁이 마주하고 있는 이들은 그야말로 흉악범들이었다.
심지어 교도소 내에서도 살인이 일어나기도 하는, 무법자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개인 물품을 허가해 줄까?
글쎄, 수혁이 교도소장이라면 아무것도 주지 않을 거 같았다.
“저, 교도관님.”
하지만 마치 추리하듯 진료를 해 나가야 하는 처지에서는 뭐라도 더 캐물어야 하는 법이었다.
해서 수혁은 용기를 내어 교도관을 불렀다.
“네, 닥터 리.”
다행히 교도관은 수혁의 날카로운 눈썰미를 높게 보았는지 상당히 협조적이었다.
“혹시 이…… 재소자가 밖에서 들여온 물건이 있나요?”
“없습니다. 휠체어도 교도소에서 새로 지급된 겁니다. 주로 목발을 짚고 다니는데……. 목발도 교도소에서 지급한 겁니다.”
“목발도요?”
“흉기로 쓰일 수 있거든요. 특히 철제는.”
“아.”
딱히 안에 들어가 본 건 아니었지만.
어쩐지 듣는 순간 왜 그렇게 하는 건지 알 수 있었다.
그런데도 수혁의 얼굴은 그리 밝아지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더 어두워졌다.
‘뭐야, 시발 그럼.’
[욕 좀 하지 마시고.]
‘아니, 욕이 안 나오게 생겼냐? 기껏 납 중독인 걸 밝혔는데……. 뭐가 없잖아.’
[없는 게 아니라 못 찾은 거죠.]
바루다가 인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건 동요의 부재였다.
물론 처음보다는 좀 더 감정의 바닥이 드러나는 듯이 보이긴 했지만.
여전히 정상적인 인간에 비하면 로봇이었다.
그리고 그건 적어도 진단 과정에 있어서는 도움이 되었다.
‘못 찾은 거라…….’
[현재 진행형인 납 중독이 있는 건 팩트입니다. 절대 변하지 않죠.]
‘그건……. 그래.’
워낙 확신에 차 있는 목소리를 듣다 보니, 수혁 또한 점차 진정되어 갔다.
그와 동시에 시야가 좀 더 넓어졌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생각의 범위가 더 넓어졌다.
원래도 수혁은 바루다가 자신의 머릿속에 박혔다는 것을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받아들였을 만큼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예 편견 없이 데이터를 분석해 나가는 바루다와 있다 보니 더 유연해졌다.
‘가만……. 가만있어 봐.’
[저는 원래 가만히 있는데요?]
‘이놈아……. 그런 뜻이 아니라. 그냥 혼잣말이잖아.’
[뭐 하러 에너지를 그런 식으로 낭비합니까?]
‘이렇게 하면 좀 더……. 아니다, 됐다.’
수혁은 뭐가 어찌 되었건 깡통에 불과한 바루다에게 인간의 감정을 설명하려 했다는 생각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곤 계속 바루다와 대화를 나누는 대신 재차 교도관과 장 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마침 둘은 눈앞의 의사가 허공을 보고 중얼거리는 것이 슬슬 지겨워지던 참이었던지라, 상당히 반가운 표정이 되었다.
반쯤은 이 사람하고 계속 대화를 해도 되나 하는 표정이었고.
“이…… 이 환자분 말입니다.”
“네, 닥터 리.”
“교도소에 들어올 때 혹시 어떤 신체검사를 했죠?”
수혁의 말에 장 폴이 성을 냈다.
그래 봐야 꽁꽁 묶여 있는 탓에 난리를 피워 대진 못했다.
그냥 아까보다 좀 더 목소리가 커졌을 따름이었다.
“지금 내가 뭘 숨겨 오기라도 했단 거야?”
“조용히 해.”
“의심하잖아요! 저를!”
“의심하게도 생겼지. 생긴 걸 봐.”
“아니, 생긴 거 가지고!”
“링컨 대통령의 말을 잘 떠올려 봐. 네 나이쯤 되면 얼굴에 대한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해.”
“하…….”
제아무리 배운 게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링컨의 말은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었다.
이들에게 링컨은 짧은 역사 가운데서 거의 가장 중요한 위인 중 하나일 테니.
아무튼, 그렇게 장 폴의 불만을 깔끔하게 잠재운 교도관이 수혁을 바라보았다.
상당히 자부심이 느껴지는 표정을 지어 가면서였다.
“저희는 입소하기 전에 옷을 모두 벗기고, 항문까지 검사합니다. 절대 뭘 숨겨서 들어올 수는 없습니다.”
“음.”
수혁은 당연히 그럴 거라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도 그러한 종류의 범죄를 저질러 본 적은 없었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본 적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건 바루다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소득은 없네요?]
‘아니, 없기는 왜 없어.’
[응? 에이……. 왜 쓸데없이 고집을 부리고 그러셔.]
‘아냐, 잘 보라고.’
[음…….]
예전 같았으면 비아냥거리기에 매진했을 바루다였지만.
지금은 잠자코 입을 다물고 있을 따름이었다.
참 이상한 일이긴 한데.
수혁은 발상을 전환하는 데 있어서 천부적인 소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덕에 현존하는 가장 우수한 인공지능조차 발견하지 못한 것을 발견할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럼 CT나 MRI를 찍지는 않죠?”
이어지는 수혁의 말에 교도관은 어이가 없다는 듯한 얼굴로 웃었다.
“그럴 순 없죠. 둘 다 있지도 않습니다.”
“역시 그렇군.”
“네?”
“환자 몸 안에 뭐가 박혀 있으면 알 수가 없겠네요, 그쵸?”
“그건……. 네. 그렇죠. 근데 그게 왜요?”
교도관의 말에 수혁은 즉시 답을 해 주는 대신 여전히 엡스의 손에 들려 있는 소견서 쪽을 바라보았다.
일반적인 소견서와는 달리 환자의 행적이 더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최대한 대학 병원 의료진이 환자와 직접 말을 섞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는데, 그 덕에 수혁을 비롯한 의료진들은 소견서만으로도 장 폴의 지난 발자취를 고스란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중엔 장 폴이 한쪽 다리를 심하게 절게 된, 불행한 사고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여기 보면 장 폴 환자는 총을 맞은 적이 있어요. 그렇죠?”
“오래된 일이지. 제기랄.”
장 폴은 지금 생각해도 고통스러운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아직도 다리를 절게 되었으니까.
이것만 아니었더라도 더 나쁜 일들을 더 많이 할 수 있었을 텐데.
장 폴은 도저히 교도관 앞에서는 털어놓을 수 없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초기 치료를 엘패소에서 받았네요. 엘패소는 미국이 아니라, 멕시코죠?”
“그래. 그 돌팔이 새끼들. 여기서 받았으면……. 이렇게 되진 않았을걸. 아직도 내 몸 안에 그때 제거하지 못한 총알이 들어 있다고!”
하필이면 총알이 몸 안에 틀어박히면서 조각이 나 버린 게 사단의 원인이었다.
그때 멕시코 의사의 말에 따르면 총알이 제대로 된 총알이 아니라, 무슨 어디 갱단에서 제작한 총알이라 그렇다고 했다.
솔직히 완전히 믿을 수는 없었다.
일단 스페인어라 제대로 이해한 건지부터가 문제였고.
“그래요. 이후 찍은 엑스레이를 보면 당시 박은 철심 외에도 작은 파편이 관찰됩니다.”
“그렇다니까. 근데 그게 왜.”
장 폴은 대체 왜 이 동양인 의사가 자신의 해묵은, 그것도 그리 좋지 못한 기억을 파헤치고 있는지 깨닫지 못했다.
하지만 뒤에 있던 엡스나 스티브는 어렴풋이 알 수 있었고.
바루다는 확신할 수 있었다.
[총알……. 총알이 납 중독의 원인이라는 겁니까?]
‘그래. 사제 총알이라잖아. 납으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지.’
납 탄환은 국제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인체 안에서 쪼개지는 행태를 보일뿐더러, 납 중독을 일으키기 때문인데.
사실 좀 웃기는 일이었다.
탄환이라는 거 자체가 살상 목적으로 만들어진 거 아니던가.
그래서 그나마 체면을 지켜야 하는 정부 차원에서는 이를 지키고 있었지만.
그럴 만한 체면이 없는 집단들, 즉 갱들은 오히려 납 탄환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기왕이면 자신의 총알을 맞은 사람이 살아남을 가능성을 줄이고 싶었으니까.
게다가 불법 저지르는 걸 무슨 훈장처럼 여기는 집단이기도 했고.
[오……. 이건……. 이건 가능성이 있겠어요.]
‘그래. 가능성이 있지.’
바루다의 확인까지 받은 수혁은 아까보다 더 자신 넘치는 태도로 입을 열었다.
“그 총알이 환자분의 납 중독의 원인일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 허리 쪽으로 검사를 해 보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 그렇군. 정말 그래.”
그 말에 감명받은 엡스가 고개를 하염없이 끄덕였다.
비록 자신의 세부 전공인 호흡기와는 관계없는 일이 되어 버렸지만.
엡스 또한 ‘호흡기내과 의사’이기 이전에 ‘내과 의사’ 아니던가.
어떤 질환을 직접 칼로 째 보지 않고 진단해 내는 일에 당연하게도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그럼 어떤 검사를 할까?”
해서 정작 당사자인 장 폴은 이렇다 할 의견을 내지 않은 상태에서 진단 계획을 세워 나가기 시작했다.
“저……. 제 생각에는.”
“너는 조용히 하고. 닥터 리에게 물은 거야.”
“아, 네.”
지금까지 내내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였던 스티브가 용기를 냈지만 엡스는 허용하지 않았다.
지금으로선 그 누구의 의견보다도 여기까지 추론을 이끌어 온 수혁의 의견을 듣고 싶었다.
“일단 초음파는 뭐 볼 수 있는 게 없을 겁니다. 범위를 대강이라도 알고 있으면 모를까……. 가망이 없죠.”
“그렇지. 게다가 뼈에 가려져 있을 공산도 있고.”
“그렇다고 CT를 찍으면 노이즈가 심할 겁니다.”
“그래, 그렇지.”
아마 임플란트나 치과 치료를 받은 상태에서 머리 쪽 CT를 찍어 본 사람이 있다면 대번에 무슨 말인지 알아차릴 터였다.
금속은 CT 영상을 심하게 방해했다.
아주 숙련된 영상의학과 전문의는 그런 상태에서도 어느 정도 진단을 내릴 수 있다고 하지만.
기왕이면 노이즈가 없는 편이 좋았다.
“MRI밖에 없겠어요. 컨트라스트는 주지 말고……. 찍어 보죠.”
“금속이 들어가 있으니, 그건 주의해야겠네.”
“테슬라를 줄이면 될 겁니다.”
“그래. 닥터 리는 정말 모르는 게 없구만.”
엡스는 마치 동년배 또는 자기보다 윗사람과 대화하는 듯한 착각을 느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행크나 엘리슨은 무슨 수혁이 대단한 교육의 결과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했지만.
엡스가 보기에 수혁은 그냥 천재였다.
이런 수준의 의사는 절대 교육을 통해서 만들어질 수 없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진짜로 같이 일해 보고 싶어지는 사람이란 말이지.’
하지만 엡스는 지금 당장 그런 말을 하는 대신 일단 진료를 진행하기로 했다.
그편이 오히려 수혁을 꼬시기에 좋을 것 같았다.
수혁의 말이 진짜인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급하기도 했고.
해서 바로 처방을 내렸다.
“MRI 찍자. 스티브, MRI실에 연락해. 지금 바로 확인해야 된다고.”
“어……. 네.”
“교도관님. 오늘 이게 끝이죠?”
“네.”
“그럼 바로 저희도 MRI실로 가겠습니다. 결과 여부에 따라 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어요.”
“수술요?”
엡스의 말에 장 폴이 무척 놀랐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냥 꾀병으로 하루나 이틀 나갈 요량으로 왔다가 수술까지 얘기가 이어지고 있어서였다.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수술을 받게 되면 대체 얼마나 밖에 있을 수 있는 건가 하는 생각에 신나기도 했다.
따라서 무척이나 협조적인 태도로 MRI실에 들어갔고, 덕분에 수혁을 비롯한 의료진은 아주 빠르게 영상을 받아 볼 수 있었다.
[파편이…… 신경에 인접해 있네요.]
‘부순 건 아냐.’
[그럼 지금의 마비는…….]
‘중금속 중독의 영향이지. 이거 제거하면…….’
[걸을 수도 있겠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