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13화 (113/1,303)

113화 기적 (1)

MRI를 본 엡스 교수는 딱 수혁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총알의 파편이 아주 위험한 곳에 박혀 있긴 했지만.

그 와중에 신경은 절묘하게 피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저 신경 곁에 박혀 있으면서 끊임없이 납과 같은 중금속을 흘려 대고 있을 뿐이란 얘기였다.

“스티브. 가서 신경외과 좀 불러와.”

“어……. 네.”

스티브는 수혁이나 엡스 교수처럼 확신을 가지진 못한 상황이었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그는 내과 전공의니까.

허리 쪽 해부에 관해서는 학생 때 배우고 끝이었다.

심지어 그에 관한 MRI는 아예 배운 적도 없다고 보면 되었다.

엡스처럼 교수가 되면야 워낙 여러 케이스에 관한 상의와 협진을 보니까 얘기가 좀 달라지겠지만.

‘뭐가 뭔지 모르겠으니까, 존나 가만히 시키는 것만 해야겠다…….’

해서 스티브는 그냥 엡스가 시킨 대로 밖으로 뛰어나가서 신경외과 쪽에 전화를 걸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오늘 연구 스케줄만 있는 신경외과 교수에게로였다.

대한민국의 대학 병원 같았으면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고 보면 되었다.

일단 시간이 비는 외과계 교수라는 게 있기가 어려울뿐더러.

한낱 레지던트가 다른 과 교수에게 전화를 거는 것 또한 말이 안 되었으니까.

하지만 미국에서는 적어도 협진에 대한 개념이 한국과는 매우 달랐다.

덕분에 스티브는 그렇게까지 표정이 나쁘진 않았다.

물론 여전히 방 안에 있는 수혁이나 엡스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닥터 리.”

엡스는 방금 스티브가 나간 쪽 문을 바라보다가 이내 수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최근 계속 그랬지만 지금은 더더욱 감탄스럽다는 얼굴을 하고서였다.

“네, 엡스 교수님.”

“어떻게…… 어떻게 거기서 여기까지 온 거지?”

엡스는 아직 MRI실에 누워 있는 환자를 가리켰다.

검사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기에 장 폴은 앞으로도 한동안 저기 있어야만 할 터였다.

장 폴을 바라보는 엡스의 표정은 무척이나 복잡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꾀병으로 온 환자의……. 척수 마비를 진단했다 이거지?’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셈 아니겠는가.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었다.

아마 두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절대 믿지 않았으리라.

실제로 그와 절친인 행크에게 보낸 문자에 대한 답문은 이렇게 와 있었다.

-꺼져. 영화 찍냐?

제아무리 수혁의 활약상을 보아 온 행크라 하더라도 이건 좀 너무했다 싶은 모양이었다.

‘정말……. 너무하긴 하지.’

엡스는 잠시 그렇게 고개를 가로젓다가 다시 수혁을 바라보았다.

수혁은 참을성 있게 기다리다 입을 열었다.

“검진할 땐……. 전신을 봐야 한다고 배웠으니까요.”

[옳지. 잘한다. 그럴싸하다.]

최대한 있어 보이는 말투에 있어 보이는 대답이었다.

만약 그저 그런 놈이 이런 말을 했더라면 꼴값이란 생각이 들었겠지만.

엡스는 어쩐지 고개가 끄덕여지는 기분이었다.

“그렇…… 그렇구만. 기본에 충실했다 이거지.”

“네. 저는 그렇게 배웠습니다.”

수혁은 엡스를 따라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주 살짝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사실 이번에 장 폴에게서 이상징후를 발견한 것은 그가 아니라 바루다였기에 그러했다.

정작 수혁은 여기 있는 엡스처럼 환자의 기침에만 집중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표정에는 별반 변화가 없었다.

[역시……. 수혁은 대단한 연기자입니다.]

바루다마저 감탄해 마지 않을 지경이었다.

‘여기는 무슨. 너랑 나 사이에 니 거 내 거가 어딨어.’

[아 연기가 아니라 아예 생각을 그렇게 하시는 건가요?]

‘사실이 그렇잖아?’

[음.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저는 수단일 뿐이니.]

‘뭔 말을 또 그렇게 슬프게 받아?’

[아뇨. 저는 그것으로 만족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제 유일한 입출력자인 수혁이 최고의 내과 의사가 된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수혁은 잠시 바루다의 말을 듣고 있다가 이내 자신 넘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최고의 내과 의사라니.

예전에는 참 허무맹랑하게만 들렸던 얘기 아니었던가.

하지만 더는 그렇지 않았다.

이젠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아니, 어쩌면 전무후무한 의사가 될 수도 있을 거 같았다.

‘뭐……. 꼭 그렇게 되어 줄게.’

[좋습니다. 일단 엡스의 어깨라도 좀 두드려 주시죠. 뭔가 깨달음을 얻은 거 같은 얼굴인데.]

그제야 엡스의 얼굴을 들여다보니, 정말 무협지에서 경지를 깨달은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엡스가 무협에 나오는 고수라면야 당연히 의미가 지대한 순간이겠지만.

그냥 의사 아니던가.

그 말은 곧 아무것도 아닌 순간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엡스 교수님, 괜찮으세요?”

따라서 수혁은 산통을 깨기로 했고, 엡스는 금세 정신을 차렸다.

“어, 어. 아니, 아까 그 말이……. 날 되돌아보게 해서 말이지.”

“주제 넘었던 거 같습니다.”

“아냐, 아냐. 절대 아냐. 자네는 내가 본 어떤 젊은 의사보다도 더 우수해. 아니……. 음.”

엡스는 어쩌면 ‘젊은’이라는 수식어를 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자신의 은사들과 동료들에게 너무 가혹한 처사가 아닌가 해서 고개를 흔들었다.

드르륵.

다행히 조금 곤란한 지경에 이르려고 할 때쯤, 스티브가 돌아왔다.

자신의 핸드폰을 흔들어 대면서였다.

“연락됐습니다. 지금 바로 오신다고 합니다.”

“그래? 지금?”

“네. 오늘……. 예약 펑크 나서 보고 수술 결정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아하. 오, 좋네.”

원체 대한민국보다는 여유롭게 돌아가는 시스템이었다.

특히 태화 의료원에 비하면 거의 무슨 힐링 게임 수준이었다.

거긴 매일 100여 개의 수술실이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곳이었으니까.

예약이 펑크 나?

별 관계 없었다.

대기 중인 환자가 수백 명이었으니까.

그것도 지금 당장 수술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전화를 돌리다 보면 무조건 오겠다는 사람이 꼭 있었다.

드르륵.

하지만 여긴 좀 달랐다.

심지어 문을 열고 들어서는 신경외과 교수의 얼굴에도 얼마간의 여유가 묻어 있을 정도였다.

‘신경외과가 웃기도 하는구나.’

[최낙필 그 인간은 꽤 밝던데요?]

‘그 사람……. 그 사람 얘기는 하지 말자. 별로 좋은 인간도 아닌데.’

[알겠습니다.]

바루다 또한 태화 의료원 신경외과 과장 최낙필에 대한 감정이 좋은 건 아니었다.

수혁이 아파서 쓰러졌을 때, 그저 대외적인 평판만을 생각했던 인간이었으니까.

아마 이현종이 그런 인간이었더라면 수혁의 인생은 지금과는 꽤 많이 달라져 있었을 터였다.

“이 환자예요?”

아무튼, 방금 방 안에 들어온 신경외과 교수 마이크는 싱글거리는 미소를 유지한 채 검사실 쪽을 가리켰다.

엡스랑은 원래 잘 알고 지내는 편인지 별로 어색한 기류는 없었다.

호흡기와 신경외과가 친하다니.

수혁이 ‘그럴 만한 과가 아닌데’라는 생각을 하는 동안, 엡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장 폴이라고. 알죠? 교도소에서 오는 거.”

“아……. 어쩐지 검사실 앞에 교도관이 둘이나 있어서 뭔 일인가 했네.”

“아무튼, 저 환자가 총에 맞은 지 10년 정도 되었는데. 이후로 다리를 심하게 절게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물어보니까 총을 맞은 직후보다 지금이 더 심하다고 하고.”

“증상이 진행됐구나. 그건 좀 재미난 일인데. 어디……. 영상은 아직 다 안 넘어왔네?”

“T1은 넘어왔어요. 여기.”

“아.”

엡스의 말에 마이크는 금세 영상에 빠져들었다.

확실히 맨날 척추 쪽 영상을 보는 신경외과 교수답게 곧 총알 파편을 찾아내었다.

드르륵.

그는 한참을 스크롤을 위로 굴렸다, 아래로 굴렸다가를 반복했다.

“호오……. 이거……. 이거 진짜 이것 때문인 거 같은데? 이거 인핸스까지 됐으면 더 좋았을…… 아냐. 음. 확연해, 아주.”

그리고는 보기 좋게 난, 아니, 좀 과하다 싶게 난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엡스는 그런 마이크의 어깨를 톡톡 두드린 후, 수혁을 가리켰다.

“저기 저 친구가 진단한 거예요.”

“응? 엡스 교수, 당신이 아니고?”

“나야 뭐 호흡기내과잖아요. 기침으로 왔지, 오기는.”

“아……. 하긴 하반신 마비로 호흡기내과를 가진 않겠지.”

“어떻게 된 거냐면.”

엡스는 자초지종을 간략히 설명해 주었다.

처음부터 의심하진 못했어도, 수혁의 플로우를 놓칠 정도로 무능한 의사는 아니지 않은가.

따라서 그의 설명은 완벽했다.

“허.”

당연하게도 마이크는 아주 놀란 얼굴이 되었다.

“어디……. 어디에서 왔다고요?”

“대한민국, 태화 의료원. 거기 내과 2년 차래요.”

“2년 차. 천재네?”

“그렇죠. 천재죠.”

“흐음.”

마이크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재차 입을 열었다.

“수혁이라고 했죠?”

“네. 교수님.”

“뭐……. 스케줄 없으면 수술 들어와서 좀 볼래요? 참관실 있는 방이 비어서, 마침.”

참관실이라.

적어도 대한민국에는 없는 시설이었다.

[봐 둬서 나쁠 건 없겠죠. 수술을 하게 될 거 같진 않지만.]

바루다는 수혁의 불편한 다리를 상기했다.

만약 불편한 다리가 아니었다면 딱히 진료의 영역을 내과에만 국한 짓지는 않아도 되었을 터였다.

수혁은 손이 그렇게 나쁜 편이 아닌 데다가, 바루다는 술기에 대한 조언도 어느 정도는 가능했으니까.

‘뭐……. 최종 치료를 본 적이 있으면 아무래도 진단할 때도 뭔가 다르겠지?’

하지만 수혁은 좌측 다리를 절었다.

그것도 지팡이가 없으면 오래 걷지 못할 정도로 심하게.

계속 서 있어야만 하는 수술실에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을 터였다.

해서 둘은 오로지 내과 의사로서의 성장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그리고 한 번쯤은 가 보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미국 외과 의사들 실력은 어떤지도 궁금하군요.]

‘그러니까 말야.’

물론 아주 약간의 사심이 있기는 했다.

“아……. 저는 좋습니다.”

“좋아. 그럼 바로 이동하죠. 마취는 전신 마취도 필요 없겠어. 그냥 척추 마취로 하죠. 어차피 파편 제거야 뭐,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

“이걸 전신 마취로 하지 않나요? 총알인데요?”

“아……. 한국에서는 총알로 인한 손상이 드물죠? 여긴 많아요. 그리고 저는 뉴욕에서 수련받았어요.”

“뉴욕?”

수혁은 그게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엡스가 가만히 웃으며 부연 설명을 해 주었다.

“뉴욕은 총기 사고가 아주 빈번하거든요. 전문가예요, 마이크는.”

“아…….”

“아무튼, 수술방으로 같이 갈까요? 길 모르죠?”

“네. 수술방 쪽은 모릅니다.”

“어차피 저도 외래 끝났으니까, 같이 가죠. 어찌 되는지……. 국소 마취니까 바로 확인 가능할 거 같은데.”

“감사합니다.”

그렇게 수혁은 방을 빠져나왔다.

그때쯤에는 검사도 다 끝난 상황이었기 때문에 장 폴 또한 검사실에서 나와 있었다.

아까처럼 휠체어를 탄 채였지만, 얼굴은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방금 마이크에게 수술을 받고, 재활 치료만 받으면 걸을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거, 거기!”

마이크는 단지 수술 얘기만 하고 간 건 아니었다.

수혁이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다는 얘기 또한 덧붙인 상황이었다.

그래서 장 폴은 수혁을 보자마자 약간은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교도관은 재차 진료 외에는 침묵하라고 말을 하려 했으나, 수혁의 답이 좀 더 빨랐다.

“네, 환자분.”

“그…….”

장 폴은 애써 불러 놓고는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그저 자신의 야윈 볼을 긁적거릴 뿐이었다.

하지만 영원히 그렇게 있진 않았다.

“고, 고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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