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전신 위약 (2)
“아……. 네!”
“알겠습니다.”
우하윤은 몰라도 담당 간호사는 나름 병동 간호사로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다.
처방이 없다면 또 모르겠지만.
이미 나온 처방을 수행하는 데에는 별 무리가 없었다.
해서 머지않아 환자에게 약이 차례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수혁은 굳은 얼굴로 약의 효과를 살폈다.
[혈압……. 약간 오릅니다. 아주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오르는 게 어디냐.’
[그건 그렇죠. 아직은 에크모까지 고려할 정도는 아닌 거 같습니다.]
‘좋은 일이지.’
에크모.
일명 체외 산소막 공급 장치는 그야말로 죽은 사람을 소생시키는 기적의 장치였다.
기계가 발명된 이후 여러 환자의 생존율, 특히 심근경색과 같은 급성 질환의 생존율이 급격하게 올라간 것도 사실이었고.
하지만 그 말은, 곧 정말 죽을 가능성이 큰 환자들에게 쓰인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통계적으로 에크모를 단 환자가 생환하는 확률은 기관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개 절반이 채 안 되었다.
그러니 에크모를 아직 쓰지 않아도 된다는 건 무조건 좋은 일이었다.
“혈압 90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일단 이대로 좀 볼게요. 호흡은……. 당장 어떻게 될 거 같지 않으니까, 중환자실로 내리긴 해야겠어요.”
물론 이게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러다가 덜컥 부정맥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죠?]
‘그럴 거 같지?’
[이런 환자 본 적이 있으니까요.]
‘그래, 그렇지.’
그래서 수혁은 일단 심초음파까지만 하고 중환자실로 환자를 내리기로 결정했다.
“선생님 그럼 일단 이건 제가 짜겠습니다!”
“아, 그래 줄래?”
“네. 선생님은 초음파도 보셔야 하고……. 할 게 많으시잖아요.”
“어, 그래, 그럼. 고마워.”
그 말에 하윤은 수혁에게서 인공호흡 주머니를 건네받았다.
이 정도는 이미 많이 해 봤는지, 상당히 능숙했다.
심지어 분당 호흡수도 적절하게 맞춰 주고 있었다.
드르륵.
수혁이 안심했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려니, 아까 뛰어갔던 대훈이 초음파 기기를 끌고 안으로 들어왔다.
원래 이 병동에는 초음파 기기가 없었을 텐데, 마침 누가 사용한 모양이었다.
“금방 왔네?”
“네. 순환기 펠로우 선생님이 협진 때문에 이거 올려놓으신 모양입니다.”
“아직 사용은 안 하셨고?”
“사실 그런 모릅니다. 그냥 있어서 들고 왔습니다. 병동엔 말해 뒀고요.”
“음, 그래 뭐. 금방 보면 되겠지.”
펠로우면 대훈은 물론이고 수혁보다도 훨씬 위였다.
어찌 됐건 전문의였으니까.
그런 사람의 의견을 묻지 않고 물건을 가로챈다는 것은 아무래도 좀 켕기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눈앞의 환자가 더 중요했다.
우물우물하다가 결정적인 타이밍을 놓칠 수도 있었다.
이미 망할 놈의 서효석 때문에 많은 시간을 지체하기도 했고.
“자, 그럼 한번 볼까.”
해서 수혁은 즉시 환자의 웃통을 까고는 초음파 프로브를 가슴에 가져다 댔다.
“어우.”
그와 동시에 수혁의 입에서 탄식 비슷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너무 약한 거 같은데?’
[좌심실의 출력이 정상 대비 대략 24%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어디를 꼭 짚어서 말하기도 힘들 정도로 전제적인 위약이 관찰됩니다.]
‘역시……. 스트레스에 의한 심근병증일까?’
[네. 원인은 불명이지만, 심장은 그렇습니다.]
‘그럼 다시 알코올에 의한 급성 중독도 가능성이 있겠네.’
[음……. 네. 그때 심장이 망가졌다면 가능한 얘기가 됩니다.]
‘망할.’
최대한 가능한 진단명을 줄이려고 검사를 한 건데 오히려 더 많아져 버린 상황이었다.
하지만 마냥 인상을 찌푸리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다른 이들은 수혁의 속마음을 읽어 낼 수 없었으니까.
뭐가 되었건 대훈과는 같은 팀이었기 때문에 의견을 공유해야만 했다.
거의 끌고 가는 느낌의 팀이긴 했지만.
그래도 팀은 팀이지 않은가.
“좌심실 움직임이 크게 떨어져 있어. 원인은 불명이지만……. 일단 스트레스성 심근병증으로 생각되고……. 역시 중환자실로 내리긴 해야겠어. 환자 저혈압은 심장 때문이야. 요량 체크 됐나?”
그래서 되도록 자세히 자신이 본 소견에 대해 읊어 주었다.
마지막에는 아까 지시했던 바를 확인하면서였는데, 다행히 병동 간호사가 시니어라 체크가 되어 있었다.
“시간당 50은 나옵니다!”
“그럼 아직은 괜찮네. 혈압이 그렇게 낮았던 거치고는……. 아무튼, 내려갑시다.”
요량, 즉 소변의 양은 괜찮은 수준에 머물고 있었다.
보통 이런 식의 저혈압, 즉 쇼크 상태에서 제일 먼저 나가는 것이 신장임을 감안한다면 상당히 긍정적인 소견이었다.
‘좋아.’
수혁은 환자의 당뇨가 정말로 잘 관리되고 있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병실 밖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바로 환자를 빼기 위함이었는데, 거기 누가 서 있었다.
현재 이현종 밑에서 열심히 펠로우 생활을 하고 있는 김 선생이었다.
미안한 얘기지만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렇게까지 두드러지는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수혁…….’
그와는 반대로 김 선생은 수혁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정작 펠로우는 자신인데, 이현종이 싸고도는 건 저 망할 놈의 수혁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원장님 아들…….’
그냥 아들이기만 하면 시원하게 욕이라도 한 사발 했을 텐데.
저놈은 그런 것도 아니었다.
‘뭔 레지던트가 심초음파를 이렇게 완벽하게 보지?’
솔직히 말하면 아직 펠로우 1년 차에 불과한 김 선생보다 나은 것 같았다.
그 까다롭기로 유명한 이현종이 자기 환자들 심초음파를 믿고 맡길 정도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아, 선생님. 안녕하세요.”
“어, 그래…….”
게다가 수혁은 별로 잘난 척하는 구석도 없었다.
김 선생은 만약 자신이 2년 차 때 저 정도로 실력이 있었다면 어땠을까를 떠올리며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너무 급해서 심초음파 기기에 대해 미리 말씀도 못 드리고 사용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심지어 원장 아들이라는 초월적 지위도 써먹지 않았다.
‘시발놈.’
차라리 인성이라도 좀 개차반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런 상황에서 뒷담화를 까게 된다면 욕을 먹는 건 도리어 김 선생 자신일 터였다.
해서 그는 간신히 평정을 되찾은 채 허허 웃었다.
“아냐, 뭐. 괜찮아. 이 환자가 더 급해 보이는데.”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 그럼 환자 잘 봐라…….”
“네. 선생님.”
그리곤 수혁에게서 심초음파를 받아 쓸쓸히 사라져 갔다.
잠시 후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바루다가 한마디 툭 내던졌다.
[어차피 수혁은 순환기 내과 가지도 않을 건데……. 저 혼자 경쟁의식을 불태우다가 제풀에 나가떨어진 느낌이군요.]
‘그러니까. 그래도 뭐, 이 정도 대응한 거면 잘한 거지?’
[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수혁은 정말 연기력이 우수합니다. 어떻게 이토록 감쪽같이 좋은 사람 흉내를 내는지.]
‘원래 착하거든?’
[진짜 착한 사람은 그런 말 자기 입으로 하진 않을 겁니다.]
‘아오.’
[일단 환자부터 내리죠. 신장이 괜찮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상태는 별로입니다.]
‘알았어.’
수혁은 언짢은 마음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바루다의 말이 얄밉기는 해도 틀리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스트레스성 심근병증은 급성기만 넘기면 대개 좋아지지만.
그 급성기를 넘기는 것이 상당히 어려웠다.
언제 어디로 튈지 알 수 없었다.
드르륵.
그래서 수혁과 대훈 그리고 하윤은 서둘러 중환자실로 향했다.
사실 대훈이나 하윤은 대체 왜 서둘러야 하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그들이 반쯤 신처럼 떠받드는 수혁이 그러고 있으니 잠자코 따를 뿐이었다.
“일단 벤틸레이터 세팅은 내가 했고. 승압제랑 강심제도 약속 처방으로 다 넣어 놨거든?”
수혁은 여전히 자신을 우러러보고 있는 대훈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는 방금 그가 말했던 대로 중환자실 세팅을 완벽하게 마쳐 둔 상태였다.
덕분에 대훈은 중환자실 환자 보는 것이 처음이었음에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네, 선생님.”
“간밤에 별 연락이 가거나 하진 않을 거야. 그래도 혹시 연락 오면 너 혼자 끙끙대지 말고 그냥 바로 콜 해. 나 어차피 병원에서 자는 거 알지?”
“네. 선생님.”
수혁은 당직이거나 그렇지 않거나 늘 병원에서 지내고 있었다.
쓸데없이 원룸 살아 뭐하겠는가.
따박따박 월세만 나가지.
그보다는 관리비 안내도 사시사철 뜨신 물 나오는 병원 당직실이 최고였다.
“그럼, 내일 보자.”
“네, 선생님.”
수혁은 아래 연차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든든할 법한 말을 남긴 채 중환자실을 나섰다.
그리곤 거의 자기 방처럼 쓰고 있는 당직실로 향하려는데, 누군가 급히 따라붙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하윤이었다.
처음 병원 들어왔을 땐 거의 거지꼴이더니.
그래도 지금은 인턴 잡도 조금은 익숙해졌는지 멀끔한 모습이었다.
심지어 머리를 아침에 감은 거 같았다.
샴푸 냄새가 나는 걸 보면 알 수 있었다.
“선배님.”
“응.”
수혁은 그런 하윤의 모습에 당황한 나머지 단답형으로 대했다.
그러자 어김없이 바루다의 태클이 들어왔다.
[일부러 싸가지 없게 보이려고 짧게 하는 거예요?]
‘아, 아니.’
[그럼 좀 제대로 답해요. 제가 볼 때……. 우하윤 같은 사람 아니면 수혁은 아예 연애할 기회가 없을 겁니다.]
‘그거 좀 실례되는 말 아니냐?’
[사실이 그런걸요. 제 데이터 분석은 점점 더 정확해지고 있습니다. 정확히 수치로 말씀드리자면…….]
‘닥쳐. 아니, 닥쳐 주세요.’
수혁은 간신히 바루다의 반란을 제압한 후, 뒤늦게 최대한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하윤을 바라보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하윤은 수혁의 짧은 대답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아까 너무 환자 얘기만 하느라 제대로 인사를 못 드린 거 같아서요.”
“아……. 그래. 잘 지냈어? 이번 달 내과 인턴인가 보네?”
“네. 덕분에요. 다들 잘해 주셔서요. 응급실도 그렇고.”
“그, 그래? 털보도?”
“네. 되게 잘해 주셨어요. 악마라길래 걱정했는데.”
“허…….”
수혁은 별명이 악마가 아니라, 그냥 악마 그 자체였던 털보를 떠올렸다.
‘그 양반……. 이쁜 인턴한테는 잘해 준다고 하더니…….’
[수혁, 하윤은 그냥 이쁜 인턴이 아니라 로열에 1등 졸업자입니다. 수혁하고는 아무래도 여러모로 다르죠.]
‘아까부터 자꾸 팩트로 패네. 뭐 삶에 불만이라도 생겼냐?’
[아뇨, 그냥 사실을 말할 뿐입니다.]
하윤은 수혁의 넋 나간 얼굴을 잠시 바라보고 있다가, 급히 자신의 호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아, 네. 네. 지금 갈게요.”
무슨 일이 내려온 모양이었다.
내과 인턴에게는 무척 흔한 일이니, 딱히 놀랄 것도 없었다.
“바쁘구나. 고생해. 이번 달 안에 밥이나 같이 먹자.”
“네, 감사합니다. 선배님!”
해서 수혁은 쿨하게 인사를 건넸고, 하윤 또한 쿨하게 달려 나갔다.
수혁은 잠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이내 바루다를 향해 물었다.
‘근데 말야.’
[우하윤과 잘될 확률을 묻는 거라면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답하겠습니다.]
‘그거 아니거든?’
[그럼 뭔데요?]
‘근데 진짜 시기상조야?’
[네.]
‘음.’
수혁은 잠깐 더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방금 그 환자 말야.’
[휴, 환자 얘기네. 네.]
‘이유가 뭘까? 스트레스성 심근병증이 온 이유 말야. 아까 엑스레이……. 중환자실에서 다시 찍은 거 봐도 폐렴은 아닌 거 같은데.’
[그건…… 그건 아직 저도 모르겠습니다. 시간을 두고 찬찬히 봐야 할 거 같습니다.]
‘시간 있겠지?’
[지금까지 경과를 봐서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