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19화 (119/1,303)

119화 전신 위약 (3)

부우웅.

모두가 잠든 시각, 수혁의 핸드폰이 사정없이 울려 대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수혁이 쓰는 당직실에는 참 이상하게도 다른 사람들이 아예 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덕분에 수혁은 혼자 깨어날 수 있었다.

“어, 씨……. 몇 시지.”

비몽사몽 간에 핸드폰을 짚어 보니 새벽 세 시였다.

수혁은 그제야 자신이 정말 단기 연수에서 병원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절감할 수 있었다.

‘거기가 좋았지.’

무려 한 달 동안이나 새벽에 깨어나는 일 없이 숙면을 취하지 않았던가.

병원에 있을 때야 언제고 일어나는 게 당연했었지만.

계속 자다 보니 지금 이 상황이 당황스럽게만 느껴졌다.

[전화 받아야죠. 뭘 멍때리고 있습니까?]

하지만 바루다는 달랐다.

이놈은 전화가 오는 즉시 병원 모드로 바뀐 듯했다.

‘알았다…….’

덕분에 수혁도 정신을 차리고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서, 선생님!”

딱 받자마자 하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상한 일이었다.

인턴한테 콜이라니.

만약 황선우였다면 전후 사정을 묻기 전에 덮어놓고 화를 냈을 테지만.

수혁은 그럴 수가 없었다.

‘내가 너무 좋다고 전화한 건 아니겠지?’

[미, 미친 소리란 건 스스로 알고 계시죠?]

일단 하윤에 관한 감정이 워낙 좋았기 때문이었다.

‘장난이지, 인마.’

[부디 그러길 바랍니다.]

‘아무튼, 뭔 일일까. 아까 그 환자인가 설마.’

그에 더해 수혁은 어찌 되었건 간에 좋은 의사였다.

환자를 생각할 줄 아는 그런 의사란 뜻이었다.

해서 대꾸하는 수혁의 목소리에도 얼마간 다급함이 묻어 있었다.

“어, 당직실 나가고 있어. 뭔데?”

“아까……. 아까 중환자실로 내렸던 환자 혈압이 떨어집니다!”

“혈압이? 대훈이는 와 있어?”

“네! 아까부터 와 있기는 한데…….”

하윤은 환자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 대훈을 돌아보았다.

미안하지만 위 연차라는 느낌보다는 그냥 보호자라는 느낌이 훨씬 강했다.

솔직히 말해서 전혀 믿음직스럽지가 못했다.

“어, 그래. 무슨 뜻인지 알았어. 지금 달린다. 너는 이거 끊으면 바로 흉부외과 콜 해. 에크모 얘기는 내가 아까 꺼내 놨으니까, 아마 이름 말하면 바로 오긴 할 거야.”

“네, 선생님!”

오히려 전화기 너머에 있는 수혁이 훨씬 더 의지가 되었다.

해서 하윤은 아까보다 훨씬 더 씩씩한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와 동시에 수혁은 부지런히 지팡이를 짚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래 봐야 다른 사람 빠른 걸음 수준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냥 걷는 거보다는 나았다.

‘혈압이 떨어지는 건……. 심장이 버티지 못한다는 뜻인데.’

[단순 알코올 급성 중독만으로 이 정도로 심한 스트레스성 심근병증이 오긴 힘들 텐데요.]

정말 미친 듯이 먹었으면 모르겠지만.

기록에 따르면 환자는 고작해야 소주 두 병 정도 마신 참이었다.

물론 사람마다 간에서 해독할 수 있는 수준이 차이가 나기는 하는데, 그렇다고 해도 절대적인 양이 좀 적었다.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거다, 이거야?’

[확신할 수는 없지만, 가능성은 있죠. 가령 구토에 의한 폐렴이라든지?]

‘근데 엑스레이상 폐부종 정도만 있던데. 청진 소견도 폐렴이라기엔…….’

[그것도 그렇네요. 뭘까요?]

‘아직 감이 전혀 오질 않는데…….’

[일단은 가 보죠.]

사실 가 본다고 해서 당장 뭐가 나올 거 같진 않았다.

지금 가 봤자 어차피 에크모만 달고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안 가면 아예 하나도 알아낼 것이 없을 터였다.

혹 에크모가 늦어지기라도 한다면 그동안 연명시킬 수 있는 사람은 수혁뿐이기도 했고.

띵동.

따라서 수혁은 최대한 빨리 중환자실로 향했다.

“아, 선생님!”

아직 흉부외과가 도착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하윤이나 대훈 모두 손가락만 빨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어, 환자는?”

수혁은 반갑게 인사를 받아주는 대신 일단 상태에 관해서 물었다.

다행히 대훈은 스스로가 수혁의 팬클럽임을 자처하고 있는 만큼, 1년 차 중에서는 그래도 좀 나은 편이었다.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혈압이 90에 60 정도로 유지되다가 이완기 혈압이 50 밑으로 떨어지더니 지금은 40? 그 미만으로 잡힐 때도 있습니다.”

“에이라인으로 잰 거야?’

“네. 실시간으로…….”

“그럼 신뢰할 만한 상황인데. 흉부외과에서는 온다고 했지?”

“네. 달려오는 중입니다.”

“그럼…….”

수혁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여기서 강심제나 승압제를 쓰게 된다면 반응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심장 자체에 더 무리를 줄 수 있을 터였다.

어차피 혈압이 아예 확 떨어진 건 아니니, 조금은 버텨 보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었다.

“심초음파 혹시 있니?”

“네. 미리 준비해 두었습니다.”

“잘했다.”

해서 수혁은 일단 지금 현 상황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기로 결심했다.

[좋은 판단인 거 같습니다.]

바루다 또한 같은 의견이었다.

어차피 에크모를 달 것이라면 그 전에 심장이 어떤 상태였다는 걸 알아두는 것이 추후 예후 예측이나, 치료 방침 설정에 도움이 될 테니까.

“흠.”

그렇게 심장 초음파를 가져다 댄 수혁의 얼굴이 즉시 일그러졌다.

‘거의 움직임이 없어졌어……. 특히 좌심실 하부는……. 이거 경색은 아니겠지, 설마?’

[아뇨. 경색이라고 하기엔 심전도 소견이 너무 다릅니다.]

‘아, 그렇긴 하네. 그럼 역시 스트레스성 심근병증이 확 심해졌다고 봐야겠어.’

[이상한 일 아닌가요? 알코올이라면 원인이 확실하게 제거된 상황인데.]

전에 보았던 루푸스에 의한 심근병증과는 아예 다른 상황이라고 보면 되었다.

루푸스는 원인 제거가 불가능하지 않은가.

그에 반해 급성 중독은 즉시 제거할 수 있었고, 그 때문에 지금과 같이 심각한 형태의 심근병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환자는? 아, 저기! 에크모 달겠습니다!”

수혁이 잠시 고민에 빠져 있는 사이, 흉부외과 팀이 도착했다.

에크모에 있어서는 완전 베테랑들이었기에 수혁은 황급히 옆으로 비켜서 주었다.

현대 의학은 너무 방대하고 또 깊은 발전을 이루어서 제아무리 뛰어난 의사라도 혼자서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지금 수혁이 해야 할 것은 고민이었다.

대체 무엇이 이 환자를 이렇게 만들었는가에 대한 고민.

‘아무리 그래도 알코올이 아예 영향이 없었을 거 같진 않아.’

[제 의견도 같습니다. 알코올이 어떤 식으로든 환자의 증상 악화에 기여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단독 원인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방아쇠 역할은 했을 거란 뜻이었다.

자연히 알코올이 어떤 증상을 일으키고, 또 어떤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는지로 토의가 이어졌다.

‘알코올에 급성 중독이 되면…….’

하지만 알코올은 상당히 여러 가지 증상을 일으키는 존재였다.

어느 것 하나를 꼭 집어내기는 어려웠다.

약간의 제한이 필요했다.

‘일단 심혈관계부터 떠올려 보자.’

[심장박동이 빨라지죠. 하지만 혈관이 이완되니……. 혈압이 오히려 떨어질 수 있죠.]

역설적인 상황이라고 보면 되었다.

심장은 빨리 뛰게 되는데 혈압은 떨어진다니.

왜 술 먹고 심근경색이 잘 발생하는지에 관해서는 그리 깊은 사유가 필요 없을 정도로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소화기관은?’

[피부 표면의 혈관으로 혈류가 몰리므로 소화가 안 될 수 있습니다. 직접적인 영향으로 인해 위산 과다 또는 구역, 구토를 유발할 수 있죠.]

‘원래 이런 증상을 가지고 있는 만성 질환이 있을까?’

[원래 심장이 빨리 뛰고, 구역, 구토를 유발할 수 있는 만성 질환이요?]

‘응. 그런 질환.’

수혁은 환자의 몸에 에크모가 삽입되는 것을 지켜보며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의 질문이 그렇게 녹록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바루다는 잠시 침묵을 지켜야만 했다.

‘일단 갑상선 기능 항진증도 가능하기는 하지 않아?’

[아, 그렇군요. 음.]

그에 반해 정작 질문을 던진 수혁은 거침이 없었다.

애초에 그런 방향으로 의심을 하고 있었기에 그러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옳다는 건 또 아니었다.

[하지만 아까 심초음파 하면서 경동맥과 경부도 긁었지 않습니까? 그때 갑상선은 정상이었습니다.]

‘그랬지, 참. 음. 정상이었어.’

물론 모양이 정상이면서 갑상선 항진 증세를 보이는 경우도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심한 증세를 일으키려면 아주 약간은 변화를 보이긴 해야 했다.

그러니 갑상선 질환은 일단 기각이었다.

그것 외에는 딱히 머릿속에 떠오르는 질환이 없었기 때문에 둘은 잠시 침묵에 잠겼다.

“휴. 다 됐어. 그래도……. 빨리 부른 덕에 환자가 당장 어떻게 되진 않겠네.”

아니, 잠시가 아니라 상당히 긴 침묵이었다.

무려 흉부외과 팀에서 에크모를 다 달 때까지도 유지가 되었으니까.

제아무리 베테랑들이라고 해도, 에크모는 그렇게 만만한 술기가 아니지 않은가.

“주치의 선생님?”

“아, 네. 접니다.”

흉부외과의 부름에 안대훈이 즉시 달려 나갔다.

“지정의가……. 아, 서효석 교수님이구나.”

흉부외과는 안대훈에게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로 차트를 살피다가, 서효석이라는 이름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댔다.

혀를 츠츠 차기도 했다.

“아예 우리한테 환자 넘길래요? 그게 나을 거 같은데.”

그리곤 무척 관대한 제안을 해 왔다.

이렇게 어렵고 까다로운 환자를 받아 가겠다니.

정말이지 살신성인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생각해 보면 또 당연한 일이긴 했다.

일단 흉부외과를 택한 사람 아니던가.

어지간한 사명감으로는 걷기 어려운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어마어마할 수밖에 없었다.

“어…….”

제안을 듣는 즉시 대훈은 수혁을 쪽을 바라보았다.

원래 같으면 지정의인 서효석에게 전화를 걸든 해야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럴 필요는 전혀 없을 거 같았다.

그 인간은 환자 안 볼 수 있다는 말만 하면 무조건 좋아할 테니까.

같은 내과라는 게 창피했지만, 뭐 어쩌겠는가.

사실이 그러한데.

“선생님, 어쩌죠?”

따라서 대훈에게 중요한 것은 수혁의 의견이었다.

심지어 흉부외과에서 보기에도 그런 것 같았다.

이수혁은 단순한 레지던트가 아니지 않은가.

그가 지금까지 보여 준 것을 모아 놓으면 어지간한 교수조차 따라가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음. 어쩐다? 갑상선이 아니라면……. 사실 내분비내과에서 볼 이유는 없을 거 같은데.’

[사실 서효석보다는 흉부외과가 잘 보긴 할 겁니다. 하지만…….]

‘하지만 뭐?’

[갑상선 얘기를 듣기 전까지는 별생각 없었는데, 그 얘기를 듣고 나니까 뭔가 내분비 질환인 거 같긴 해서요.]

‘그래? 이런 증상을 일으킬 수 있는 게 뭐가 있는데?’

수혁은 그런 말을 듣고서도 갑상선 말고는 딱히 다른 것을 떠올리지 못했다.

하나 이번에는 바루다가 뭔가 확신을 갖고 있었다.

[내분비 기관의 종양 쪽으로 넘어가면 몇 가지 짚이는 것이 있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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