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종양은 어디에나 (2)
김진실 교수가 도착한 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어엿한 교수가 일개 레지던트의 요청으로 이렇게까지 해 주다니.
실로 드문 일이라 할 수 있었다.
드르륵.
심지어 자신이 늘 보던 휴대용 초음파 기기를 들고 온 참이었다.
수혁이 고개를 숙인 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응? 아냐, 아냐. 환자 어디 계셔?”
“네, 저기.”
“어.”
김 교수는 잠시 환자를 보곤 탄식을 흘렸다.
환자 상태가 상당히 안 좋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말 그대로 죽다 살아난 상태니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아, 맞아. 에크모 달았다고 했었지.”
“네. 원인이 해결되지 않으면……. 깨어나지 못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너는 그 원인이 갈색세포종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고?”
“네.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흠. 그럼 내가 잘 찾아봐야겠네.”
일순 김 교수의 눈빛에 긴장감이 번졌다.
갈색세포종이란 건 부신, 즉 신장의 위에 있는 조직에 생기는 종양이지 않은가.
원래 같으면 복부 초음파가 아니라 CT나 MRI와 같은 검사로 진단을 해야 했다.
초음파로는 접근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뭐……. 술자의 능력에 따라 갈리긴 하지.’
김진실 교수는 자신의 은사이자 복부 영상의학회의 대부인 이하언을 떠올렸다.
그는 남들 다 못 한다고 하는 췌장 조직 검사도 그냥 척척 해내는 괴물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배운 김진실 교수 또한 자신의 손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슥.
해서 김진실 교수는 상당히 자신만만한 얼굴로 초음파 기기를 환자의 복부에 가져다 댔다.
잠시 시선을 수혁에게로 돌리면서였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네, 교수님.”
“없는 건 못 찾아. 있어야 보이는 거다, 알지?”
“네,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내가 못 찾는다고 해서 다른 검사 안 하지는 말고.”
“네, 교수님.”
김 교수는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일러준 후 재차 모니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다행히 환자는 그렇게 비만한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에 검사가 용이한 편에 속했다.
그래 봐야 찾아봐야 하는 장기가 부신이었기 때문에 만만치는 않았지만.
“일단…… 이제 우측 신장이거든.”
“네.”
“이 상부 쪽으로 보면……. 음.”
하지만 김진실 교수는 그 명성에 걸맞게 금세 우측 신장을 찾아내곤 상부를 비추었다.
그쪽에는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었다.
아니, 있기는 있는데 정상 조직이었다.
“그냥 부신이야. 뭐……. 마음의 눈으로 보면 조금 커진 거 같아 보이기도 하는데, 이상이 있다고 판단할 정도는 아니네.”
“좌측도 한번 봐주시겠습니까?”
“너 정말 확신하고 있구나?”
“네. 교수님.”
다른 사람들이야 전혀 모르겠지만.
지금 수혁은 세계 최고의 진단 목적 인공지능인 바루다와 토의를 마친 상황 아니던가.
이후로도 몇 가지 대화를 더 나눈 참이었기에 수혁은 환자가 갈색세포종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흔들리지 마십시오. 갈색세포종 외에는 이유가 있을 수 없습니다.]
‘알고 있어. 이건 100%야.’
그렇기에 김 교수가 우측에서 아무것도 찾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흔들림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 수혁의 태도는 당연하게도 대훈이나 하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혹시 틀리더라도 영원히 따르겠습니다.’
‘그래……. 내과 의사가 자기 추론에 저 정도 확신은 있어야지. 저게 내과 의사지.’
해서 그 자리에 있던 모두는 아까보다 더 초롱초롱해진 눈으로 초음파 기기 모니터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 괜히 긴장되네.’
모두의 시선을 느낀 김 교수가 고개를 살랑살랑 저어댔다.
검사 하나 하는데 이렇게 많은 해당 과 의사들이 따라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인 듯했다.
‘하여간 웃기는 놈들이라니까.’
내과 의국 내에 수혁의 팬클럽이 있다는 거 정도는 김 교수도 알고 있었다.
거의 수혁의 나팔수 수준으로 광고를 해대는 사람이 이현종, 신현태에 조태진까지 해서 무려 셋이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슥.
아무튼, 김진실 교수는 숨 막히는 기대감 속에서 다시 기기를 움직였다.
곧 좌측 신장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 상부에 있는 부신 또한 모습을 드러냈다.
“오.”
그리고 거기엔 뭔가가 있었다.
그렇게 작지도 않았다.
아니, 거대하다고 표현해도 좋을 만한 크기였다.
“거의……. 6cm은 되겠다.”
“갈색세포종일까요?”
“어? 어. 아주 명확한데? 크기가 굉장히 크네……. 왜 전까지는 증상이 있다고 느끼지 못했을까?”
이 정도로 큰 갈색세포종이라면 평상시에도 가슴이 두근거린다거나, 속이 메스껍다거나 하는 증상을 충분히 일으키고도 남았을 터였다.
하지만 김진실 교수의 질문은 아직 환자에게 닿지 못했다.
환자는 의식을 완전히 잃은 채 누워 있었으니까.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병원 왔을 땐 이미 의식이 온전치 못 했어서요.”
“가족은 없어? 이 정도면 주변에서 몰랐을 거 같지 않은데.”
“있기는 한데……. 다 외국에 있어서. 입원한 후로 한 번도 찾아온 적은 없습니다.”
“허이구.”
김진실 교수가 알 만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 사는 인구가 늘어나는 것이, 적어도 보건 의료학 측면에서 보면 그렇게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다른 때도 그렇겠지만 특히 아플 땐 가족이나 그에 준하는 가까운 사이의 사람들이 아주 커다란 도움이 되어 주기 때문이었다.
단지 정서적 지지뿐만이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그러했다.
“그럼 환자 기저질환에 대해서는……. 아직 모를 수도 있겠네?”
“그건 다행히 환자가 계속 다니고 있던 병원을 먼저 방문하고 와서, 기록을 확인할 수는 있었습니다. 근데 거기서도 환자가 다른 증상이 있었는지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흠.”
김진실 교수는 다시 한번 자신이 찍어 둔 사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려 6cm에 달하는 거대한 종양이 부신 쪽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
이걸 몰랐다는 것도 놀랍고 또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그걸 걱정하는 일은 의사가 할 일이 아니었다.
“이건 수술해야 할 거 같은데. 지금 이 상황에서는 어렵지?”
의사는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야만 했다.
“네. 지금은 절대 무리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에크모까지 달았는데, 전처치도 없이 갈색세포종을 제거하는 건…….”
수혁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니, 수혁은 이미 한참 전부터 환자의 미래를 생각하고 있었다.
“아, 계획이 있구나?”
“네.”
“말해 볼래?”
“아, 네. 교수님.”
김진실 교수 또한 수혁의 말에서 그의 생각을 일부나마 읽어 낼 수 있었다.
그녀 또한 복부 영상의학과 교수로서 갈색세포종 치료와 진단에 관여한 적이 수없이 많은 사람 아니던가.
일정 부분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사람으로서 수혁의 생각이 궁금했다.
‘이미 얼마나 우수한지는 잘 알고 있지.’
그저 이현종을 비롯한 세 팔불출에게 듣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직접 겪은 적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여전히 수혁이 레지던트란 생각을 완전히 지우기는 어려웠다.
설마 이번에도? 라는 생각이 아주 미약하게나마 남아 있었다.
“일단은 에크모 유지하면서 혈액 검사 추적 관찰을 해봐야 합니다. 아까 에크모 달면서 나간 검사를 보니까 환자 현재 고질소 혈증 및 대사성 산증이 있고, 심장 효소도 증가해 있습니다. 우선은 이게 떨어지는 것을 보고 에크모를 제거해야 합니다.”
“음.”
누가 들어도 그냥 정답이었다.
심지어 내과 의사가 아닌 김진실 교수마저 단박에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이나 명료하기도 했다.
그러나 수혁은 김진실 교수가 미처 놀랄 틈도 주지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다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이번에 발견된 갈색세포종에 대한 증상 억제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원인을 제거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 그럼 뭘 해 줄 건데?”
“역시 알파 블로커를 처방해야 합니다. 물론 초음파만으로는 백 퍼센트 진단을 내릴 수 없기 때문에 MIBG scan도 환자 회복 여하에 따라 한 번쯤은 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래. 그런 다음?”
“전처치가 된 상황에서는 수술이 그렇게까지 어렵지는 않다고 알고 있습니다. 복강경 하좌 측 부신 절제술을 의뢰하겠습니다.”
“그래. 음. 그래.”
김진실 교수는 역시 수혁은 우수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진단하는 과정도 놀라웠지만.
진단 후의 계획 또한 완벽하지 않은가.
‘부럽다, 이현종, 신현태, 조태진.’
사실 평소 자랑하는 걸 듣고 있자면 짜증 날 때가 더 많긴 했지만.
이렇게 겪고 보면 셋 다 아니, 이현종은 빼고 상당히 자제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뭐 더 죽치고 있을 필요는 없겠지.’
돌아가서 상대적으로 모자란 레지던트들 티칭할 생각을 하자 조금은 한심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행히 김진실 교수는 올챙이 적을 떠올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물론 그녀 또한 영재 소리는 제법 많이 듣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수혁처럼 우수한 적은 없지 않은가.
‘가자, 가서 우리 애들이나 키우자.’
해서 김진실 교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좋네. 내 의견 남겨 줄 테니까, 비뇨기과에 수술 의뢰할 때 첨부해서 사용해.”
“네, 감사합니다.”
그리곤 초음파 기기를 끌고 중환자실을 나섰다.
아니, 나서려고 했다.
누군가 길을 막고 서지만 않았다면.
“에이 누구야, 누가 길을 막아. 응, 김 교수?”
신현태였다.
평소와는 달리 상당히 격앙되어 있었다.
그 얼굴을 보자마자 수혁은 뭔가 떠오르는 약속이 하나 있었다.
‘아 맞다.’
[벌써 아침인가요?]
‘하, 시바……. 과장님하고 약속해 놓고 잊고 있었네.’
신현태는 김진실 교수에게 부리나케 사과를 던져대고는 수혁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왔다.
심기가 아주 편안해 보이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불같이 화를 내거나 하진 않았다.
“화, 환자 보고 있었니?”
연구실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을 때에는.
심지어 수혁에게 전화까지 걸었는데 안 받을 때는 좀 화도 나긴 했지만.
수소문한 끝에, 사실은 수혁이 집처럼 쓰고 있는 당직실 근처 병동 간호사에게 알아낸 수혁의 행방이 중환자실이었다는 걸 알게 된 후에는 감정이 좀 가라앉았기 때문이었다.
“아, 과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이 환자 보느라…….”
“아냐, 아냐. 보니까 에크모도 박고, 음. 그래. 힘들었겠네.”
신현태는 부리나케 환자를 살폈다.
혹시 별거 아닌 환자였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정말 이상한 감정이었는데, 수혁이 부디 그런 일로 자신을 내팽개쳐 둔 게 아니길 하는 바람이 너무 강하게 들었다.
‘그래 에크모를 했잖아? 그럼 잊을 수 있지. 아마 이현종하고 한 약속이라고 해도 그랬을 걸? 암, 그렇고말고.’
다행히 에크모는 아주 눈에 잘 띄는 곳에 놓여 있었다.
덕분에 신현태는 적잖이 안심할 수 있었다.
“그래도 전화는 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게다가 수혁의 태도에서 어느 정도 진심을 엿볼 수 있었다.
해서 신현태는 도리어 껄껄 웃었다.
“아냐, 아냐. 괜찮아. 이젠 괜찮은 거지?”
“아, 네. 환자 정리됐습니다. 의견도 아까 말해 놔서……. 안대훈 선생이 기록 남길 수 있을 겁니다.”
“그래. 그럼 얘기 좀 하자. 생각해 보니까 내년에 학회 가려면 지금부터 어느 정도는 준비해야 할 거 같아서.”
“네, 교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