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22화 (122/1,303)

122화 약은 아직 무리래 (1)

수혁은 신현태를 따라 그의 연구실에 들어섰다.

명색이 과장인지라 방이 꽤나 넓었다.

그렇다고 이현종처럼 비서가 있거나 하진 않았지만.

아무튼, 수혁은 들어올 때마다 늘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 앉어. 너 아메리카노지? 아이스로.”

“아, 네. 교수님.”

신현태는 자신이 가리킨 의자에 털썩 주저앉는 수혁을 향해 커피를 들이밀었다.

미리 카페에서 사 놓은 것인지, 벌써 얼음이 꽤 녹아 있었다.

심지어 잔에 묻은 물기 때문에 종이로 된 컵 홀더 또한 홀딱 젖어 있었고.

“어…… 죄송합니다. 제가 깜빡 잊어서.”

“아냐, 아냐. 환자 보느라 그런 건데. 에크모까지 넣었더만. 어쩔 수 없는 일이지.”

해서 수혁은 사과를 건넸고, 그가 그럴수록 점점 더 흡족해진 신현태는 허허 웃었다.

‘그래……. 얘는 친하다고 마냥 편하게 지내는 놈이 아니지.’

물론 친하면 친하단 티를 낼 수 있는 법이었다.

신현태는 그런 거 가지고 불편해하는 타입도 아니었고.

하지만 역시 상대가 과장으로서의 권위를 위하고 있단 느낌을 줄 때가 기분이 좋긴 했다.

“아무튼, 그 화이자에서 하는 거 말야.”

“네, 교수님.”

“그거 내가 좀 알아보니까……. 요샌 약만 만드는 게 아니데?”

“그렇습니까? 저는 몰랐습니다.”

수혁은 정말이지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바루다 또한 마찬가지였다.

[제약회사에서 약을 안 만들면 대체 뭘 만든대요?]

‘알 수 없지. 근데 신현태 과장님이 괜한 소리 하시는 분은 아니잖아.’

[그건……. 그건 그렇죠.]

바루다는 그간 쌓아온 데이터를 기반으로 신현태에 대한 평가를 확인했다.

조금 팔불출 같은 모습을 보일 때가 있기는 했지만.

적어도 이현종보다는 말과 행동에 무게가 있는 편이었다.

“이거 봐. 이게 저번 거기서 연 학회 어젠다야.”

“어…….”

“뭐 70% 정도는 제약인데. 나머지는 아니지.”

“아……. 인공지능이네요?”

“그래. 인공지능.”

사실 어떻게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긴 했다.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인공지능을 고려하지 않기는 어려운 시대가 되어 버렸으니까.

첨단 산업의 끝을 달리는 의학 분야에서 인공지능을 어떻게 빼놓을 수 있겠는가.

세계적인 제약회사에서는 그러할 터였다.

물론 둘 다 화이자가 자회사 격으로 여러 인공지능 업체에 투자하거나 아예 사들였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지만.

아무튼, 어젠다만 봐도 이들의 관심이 이쪽으로 쏠려 있다는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이럴 때 제 모습을 보일 수 있으면 대박일 텐데요.]

쭉 주제들을 훑어보던 바루다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솔직히 그렇게까지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지만.

뭐가 되었건 간에 사실은 사실이었다.

이 녀석은 저 닥터 왓슨보다도 더 뛰어난 성능을 자랑했으니까.

‘뭐……. 그건 그렇지.’

왓슨은 기껏해야 연합된 병원의 데이터만을 가지고 있는 거 아니던가.

그간 발표된 진단의 정확도조차 그 병원 의사들과의 일치성을 확인한 것일 뿐이었다.

절대 세계 최고의 진단 툴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정말 전 세계의 케이스를 보고 배우며 빠른 속도로 체득해 나가고 있는 바루다와는 비할 바가 아니란 뜻이었다.

[하지만 방법은 없죠.]

‘그렇지.’

하지만 바루다를 떼어 내면 수혁은 죽고 말 터였다.

심지어 그렇게 하더라도 바루다가 제대로 작동할지 안 할지는 미지수였고.

그 때문에 둘은 각자의 이해관계가 합치되어 정체를 밝히지 않기로 합의한 상황이었다.

“이제 왓슨과 같은 형태의 인공지능 개발은 사그라들었어.”

둘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신현태는 쭉 주제를 손으로 짚어 주었다.

그가 말한 것처럼 왓슨처럼 일종의 만능 인공지능에 대한 환상은 많이 깨진 것처럼 보였다.

언젠가는 나오긴 할 테지만.

적어도 근미래는 아닐 거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대신 굉장히 지엽적인 분야로……. 세분화되었네요.”

“그래. 특히 영상의학 쪽으로는 뭐……. 어마어마해 지금 보니까.”

“그러네요. 흠.”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방금 신현태가 짚어 준 부분을 바라보았다.

[흉부 엑스레이에서 폐결절 진단……. 흉부 CT에서 폐암, 내시경상 대장암……. 음.]

바루다 또한 아주 흥미가 동한 듯했다.

자신과 같은 인공지능임에도 불구하고 그 만들어진 목적은 매우 달랐기 때문이었다.

[완전히 진단 보조용이네요. 단독으로는 진단이 어렵겠는데.]

‘그래, 근데……. 이미 상용화된 기술도 있나 봐.’

신현태는 정말 제대로 이 학회에 임할 생각인 듯했다.

각 주제에 대한 최신 지견까지 찾아다가 주석을 달아 놓은 상황이었다.

이 중에서는 폐결절 진단 부분이 어느 정도 상용화되어 사용하고 있는 병원이 있었다.

리포트에 따르면 해당 프로그램을 이용한 경우, 영상의학과 의사의 숙련도가 낮을 때 결정적인 도움이 된다고 했다.

‘1년 차들의 진단 정확도가 올라가는구나.’

[그래도 교수들의 진단 정확도에 미치지는 않네요.]

물론 보조 툴인 만큼, 절대적인 결괏값을 드라마틱하게 변화시키진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심지어 교수들에게도 어느 정도는 진단 편의성을 향상시켜 준다는 보고가 있었다.

뭐가 되었건 간에 도움이 되기는 한다는 뜻이었다.

의료진들의 진단에 필요한 물리적인 시간을 줄여 준다는 것만으로도 해당 툴은 상당히 의미가 있었다.

보고서에서도 의료진의 번아웃 증상이 눈에 띄게 개선되었다고 쓰여 있었고.

“문제는 이걸 어떻게 감염내과 분야에서 사용하느냐야. 우리가 폐렴에 대해서 흉부 엑스레이를 판독하는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건 솔직히 좀 웃기는 일이잖아?”

신현태의 말처럼 내과에서 렴에 대한 판독이 가능한 인공지능을 만드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게다가 기술적인 한계점도 있었다.

괜히 폐결절만 분별하는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결절을 진단하는 것과 폐렴을 진단하는 건 정말이지 하늘과 땅만큼의 난이도 차이가 있는 일이었다.

“음……. 이건 좀 고민이 필요하겠는데요? 내과 쪽에서도 분명히 접점이 있긴 있을 거 같은데…….”

“어, 분명히 있을 거야. 이렇게 지엽적인 인공지능이라면……. 1년 안에 어느 정도는 성과를 낼 수 있을 거 같기도 하고. 아니면, 아이디어만으로 개발비를 딸 수도 있겠지.”

뭔가 거창한 일일수록 투자비를 따기 좋아 보일 수도 있겠지만.

생각보다 투자자들은 비전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은 당장 돈이 될 수 있는가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다.

즉 아이디어는 심플하면서도 실현 가능한지가 제일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아무래도 신현태는 이미 국책 과제를 몇 번 시행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쪽 방면으로는 수혁과는 비교도 어려울 만큼이나 경쟁력이 있었다.

“간단한 아이디어……. 그러면서도 새로워야겠죠?”

“당연하지. 이건 누가 어거지로 줘야 해서 주는 연구비는 아닐 거 아냐. 한두 푼 줄 것도 아닐 거고.”

“흠…….”

“뭐, 나도 당장 뭘 해보자는 건 아니야. 그래도 이렇게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으면, 어디서건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법이거든.”

“네,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근데…….”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신현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결코, 무례한 태도는 아니었는 데다가, 신현태는 수혁을 바보처럼 이뻐하고 있던 터라 그저 웃으며 대꾸했다.

“우리 수혁이, 왜?”

“약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은 없으신 건가요? 그래도 역시 화이자면 약이 메인이긴 할 거 같은데.”

“아……. 생각이야 있지. 너도 있을 걸? 이런 약이 있으면 좋겠다, 뭐 이런 거.”

“네. 그런 약이 있긴 합니다.”

모든 의사라면 응당 가질 법한 생각이긴 했다.

특히 진단까지 다 해 놓고선 쓸 약이 없어서 환자를 떠나보낼 때가 그러했다.

어쩐지 감염내과라고 하면 신약들과 연관이 좀 떨어지지 않나 싶기도 하겠지만.

여기에서도 백약이 듣지 않는 감염 때문에 환자를 잃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예전에는 없던 감염이 생기기 시작한 탓이었다.

현대의학이 발전하면서 면역이 억제된 환자들이 오래 살기 시작하면서 새롭게 대두된 문제 중 하나라고 보면 되었다.

“나도 몇 개 있어. 이미페넴도 안 듣는 균주에 대한 약이라든지 뭐 이런 거.”

“아, 저도.”

“근데 그거……. 너 기전은 정확히 알고 있니?”

“아.”

기전이란 약이 몸 안에 들어가서 어떻게 균을 죽이는지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몸 안에서 어떻게 대사가 되는지, 대사가 된 이후에는 어떻게 몸을 빠져나가는지, 그로 인한 부작용은 어떠한지에 대한 것도 포함하고 있었다.

이런 건 의대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화학과 훨씬 깊은 연관이 있었다.

“나도 그런 거 우리……. 뭐 태화 제약도 있긴 있잖아? 대부분 카피 약을 파는 영업에 가까운 제약회사긴 하지만. 연구진도 있긴 하거든.”

“네, 교수님.”

“거기 그런 거 얘기했더니 막 웃더라고. 그러더니 이런 게 공대생한테 공상 과학을 현실화하라는 것하고 비슷하다고 하더라고.”

“아…….”

“뭐, 우리가 기초 연구실이 딱 마련되어 있고……. 교수들이 거기에 대해서 교육을 받거나 하면 모르겠지만. 이쪽은 너무 어려워. 부끄럽지만 건드리는 게 거의 불가능해.”

신현태는 정말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수혁 또한 비슷한 심정이었다.

‘하긴 아는 게 쥐뿔도 없네.’

[반성하겠습니다.]

‘넌 왜 반성해?’

[너무 임상적인 데이터만 쌓은 거 같습니다. 이제는 더더욱 수혁을 굴려서…….]

‘아니, 잠깐만. 왜 나를 괴롭히는 방향으로 튀어?’

[약 만들어 보고 싶지 않습니까? 그 큰 화이자가 약 하나로 만들어진 곳 아닙니까?]

수혁은 다그치는 듯한 바루다의 말에 제대로 답하기가 어려웠다.

신약 개발이라.

의학자 대부분이 꿈꾸는 일 아니겠는가.

물론 모든 신약이 비아그라나 글리벡처럼 기적의 약이 되는 건 아니었지만.

게다가 그저 그런 신약조차 만들기가 더럽게 어렵긴 했지만.

그래서 꿈은 꿈으로만 간직하는 이들이 태반이긴 했지만.

아무튼, 한 번쯤은 생각해 본 일이긴 했다.

‘만들고 싶기야 하지. 근데…… 아는 게…….’

[그건 쑤셔 넣으면 될 일이죠.]

‘아니, 아직 나는 임상도…….’

[두 배로 노력합시다. 제가 안일했어요.]

두 배라.

지금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 같은데.

숨이 턱 막히는 일이었다.

‘하…….’

[그렇게 싫습니까? 인류의 발전에 공헌하는 일이?]

‘넌 꼭 그딴 식으로 말하더라?’

[그래서 싫냐고요.]

‘아니……. 그건 아니지…….’

[그래요. 노력합시다.]

수혁이 바루다로 인해 내적 수모를 겪는 동안 신현태는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리곤 몸을 일으켰다.

사실 바쁘기로만 따지자면 수혁보다도 오히려 더 바쁜 사람 아니던가.

중요한 회의이긴 했지만, 더는 지속해 봐야 여기서 뭐가 더 나올 회의는 아니었다.

“자, 수혁아. 그럼 일하러 가자.”

“아, 네. 교수님.”

“진료 볼 때 계속 고민은 해봐. 의외로 답이 가까이 있을 수 있어. 나도 할 테니까.”

“네, 교수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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