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이 골절은 이상합니다 (2)
전과는 금세 이루어졌다.
심지어 전실까지 일사천리였다.
원장 아들이자, 가장 똘똘하다는 평을 듣고 있는 레지던트가 전화하는 데 그 누가 들어주지 않겠는가.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여기 특실밖에 없어서. 그냥 거기 계셔도 되긴 되는데.”
“아뇨. 괜찮아요. 치료되는 게 중요하죠.”
물론 그 저변에는 환자의 재력이 뒷받침되어 있긴 했다.
김다현 환자는 무려 하루 병실료만 40만 원이 넘는 특실도 마다하지 않았다.
[재력가신가. 맨날 탕수육에 짜장면 먹겠네, 부럽다.]
‘너는 뼈 부러진 사람보고 그런 말이 나오냐?’
[수혁의 속마음을 읽은 건데요?
‘흠흠.’
바루다의 말처럼 상당한 재력가인 모양이었다.
의료진에게는 참으로 다행한 일이었다.
모든 의료에서 독이 되는 부작용인 ‘재정적 독성’을 염두에 두지 않아도 되니까.
그야말로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진단 방법과 치료를 다 동원해도 좋다는 얘기였다.
“그저 치료만 해 주시면 돼요. 너무 아파요.”
김다현 환자는 수혁의 팔뚝 근처를 잡은 채 간절한 어투로 말했다.
진통제가 들어가고 있음에도 굉장히 아픈 모양이었다.
1점부터 10점까지 통증 정도를 평가하는 검사에서 계속 7에서 8점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네, 환자분. 일단 통증에 대해서도 약을 더 드릴게요. 그리고 다행히 오늘 검사가 가능하다고 하거든요? 밤에 내려가야 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결과를 바로 볼 수 있겠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진단된다고 해서 통증이 사라지는 건 아니겠지만.
환자는 아무튼, 뭐라도 되면 좋다는 생각에 고개를 숙였다.
통증 때문에 완전히 숙어지진 않았지만, 그 마음은 충분히 전해졌다.
‘일단 통증부터 좀 잡자. 어차피 진단에 이제 신체검사가 중요한 건 아니잖아.’
응급실에 아파서 가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알 터였다.
의사가 어쩐지 내 통증을 내버려 두고 있을 때가 있다는 것을.
야속할 수도 있겠지만 이유가 있기는 있었다.
통증이 때론 진단에 있어 가장 중요한 단서가 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미 골절을 확인한 마당에는 얘기가 많이 달라지는 법이었다.
[펜타닐을 추천합니다. 일회성으로 쓰기 좋은 마약성 진통제죠. 그나마 호흡 억제력도 낮고요.]
‘펜타닐……. 그래, 그걸로라도 좀 조절을 해 드려야지. 이대로는 안 되겠어.’
[용량은 잘 조절하십시오. 여자분이고, 체중도 그리 많이 나가지 않습니다.]
‘당연하지. 내가 1년 차냐.’
수혁은 피식 웃어대면서 처방을 넣었다.
너무 방심하는 거 아닌가 싶은 얼굴이었지만 역시나 실수는 없었다.
제대로 처방된 진통제는 곧 위력을 발휘하여 환자의 증상을 경감시켰다.
그렇다고 호흡을 억제하거나 의식을 떨어뜨리는 수준도 아니었다.
덕분에 김다현 환자는 검사실에서 연락이 오자마자 웃으며 내려갈 수 있었다.
수혁은 휠체어를 타고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환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모니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선생님, 협진 다 보시고 전과까지 받으신 거예요?”
그런 수혁을 향해 하윤이 말을 걸어왔다.
아무래도 새 환자가 오다 보니 인턴이 할 일이 좀 생겼는지, 아까부터 병동을 바삐 돌아다니고 있었다.
지금은 그나마 상황이 좀 정리된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처럼 병동 스테이션으로 인턴이 다가올 수는 없었을 터였다.
“아, 응. 아까 낮에.”
“와……. 20개 넘게 있었는데. 언제 다 보셨어요?”
“응? 인턴인데 그건 어떻게 알아?”
“안대훈 샘이 그거 명단 뽑아 놓고 요 며칠 계속 한숨 쉬고 있었거든요. 저야 뭐 이 근처 처방 있으면 계속 오니까, 그때 봤죠.”
“아하.”
수혁은 별거 아니란 투로 답하는 하윤을 대견하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수혁도 2년 전에는 하윤과 같이 인턴을 돌아본 경험이 있지 않은가.
이런 사안은 관심이 없으면 절대로 알 수 없었다.
“김다현 환자분 검사 결과 보고 계시는구나. 좀 어떤 거예요?”
인턴이면 사실 시간 날 때마다 눕고 싶을 텐데.
하윤은 태도가 좋아도 너무 좋았다.
수혁은 왜 태도 좋은 인턴을 선배들이 이뻐했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확실히 이쁘네.’
[얼굴이 이뻐서 이뻐 보이는 거 아닐까요?]
언제나 그러하듯 바루다는 일침을 놓았다.
수혁은 뜨끔했으나 그의 뛰어난 연기력에 힘입어 아무렇지 않은 척할 수 있었다.
‘아니, 아니거든? 나는 그렇게 속물이 아니거든?’
[글쎄……. 아무튼, 결과 나왔지 않습니까? 설명해 주는 셈 치고 같이 보시죠.]
바루다는 거기서 더 들이 파지는 않았다.
실제로 결과가 나온 마당인 데다가, 아직 확인하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서 빨리 보고 싶은 마음은 하윤보다 이쪽이 훨씬 더했다.
“어, 그래. 한번 보자. 어디…….”
수혁 또한 비슷한 심정이었기에 급히 검사 결과 창을 띄웠다.
루틴 cbc를 포함한 여러 혈액 검사 결과가 주르륵 눈앞에 나타났다.
“뭐 백혈구, 적혈구, 혈소판 수치는 정상이고……. 칼슘이랑 인 어디 갔지?”
외상이 아닌 다른 이유로 골절이 일어나고 있는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뼈의 주요 성분이었다.
그중에서도 칼슘과 인의 수치는 무척 중요했다.
“아, 여깄어요. 어? 인이 엄청 낮은 데요?”
“어디. 오. 1.6이면……. 확실히 떨어져 있는데. 거기에 ALP는 올라가 있어.”
인의 정상 수치는 2.5에서 4.5 mg/dL였다.
정상 아래 마진에 걸려 있어도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텐데 1.6이라니.
이 정도면 하윤의 말대로 엄청 낮다는 표현을 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본 스캔도 했나 봐요!”
아래턱을 쓰다듬으며 슬슬 허공을 보기 시작한 수혁의 어깨를 하윤이 두드렸다.
정신을 차리니 그녀의 말대로 결사 결과 창에 뭔가 번쩍거리는 곳이 있었다.
새로운 검사 결과가 떴다는 알림이었다.
하도 바쁜 병원이다 보니, 간혹가다가 검사 내놓고선 결과를 너무 늦게 확인하는 경우가 있어 만들어진 기능이었다.
만족도가 아주 높았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오. 빨리 보자.”
해서 수혁은 바루다와의 대화를 잠시 미뤄두고는 본 스캔을 클릭했다.
그러자 지금까지 떠 있던 프로그램 외에 영상 프로그램이 가동되었다.
태화 전자의 후원을 받는 병원답게 모든 컴퓨터 성능이 상당히 좋은 편이라 시간이 크게 지체되진 않았다.
애초에 본 스캔이라는 검사가 영상이 몇 개 없기도 했다.
“흠.”
수혁은 그렇게 열린 본 스캔 영상을 빠르게 훑었다.
골절이 있거나 뭔가 이상이 있는 부위는 새카맣게 나타날 것이었다.
엑스레이와는 달리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것이 장점이었다.
“오른쪽 1, 2, 9번째 갈비뼈에……. 왼쪽은 1, 2, 3번 골절. 꼬리뼈도 부러졌네? 어쩐지 허리를 너무 아파하더라.”
그 외에도 엑스에이에서도 확연하게 확인할 수 있었던 좌측 골반뼈 골절이 있었다.
그야말로 다발성 골절이라는 말이 실로 아깝지 않은 수준이란 뜻이었다.
인이 떨어져 있는데, 다발성 골절이 일어났다라.
수혁은 이번에야말로 본격적으로 허공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일단 인이 떨어질 수 있는 상황이 뭐가 있지?’
[신장에서 재흡수가 안 될 수 있습니다.]
‘튜뷸 쪽에 문제가 생겼다 이건가?’
[어디까지나 가정입니다만, 제일 의심됩니다. 그다음으로는 장에서 흡수가 덜 되고 있을 수도 있고, 호르몬의 영향으로 세포 안으로 과도하게 이동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또는 그물 뼈의 생성이 촉진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감별하려면 또 검사를 내야겠네.’
[네 그나마 통증은 조절되고 있으니 시간은 번 셈입니다.]
‘좋아.’
수혁은 바루다에게 이것저것 묻는 대신 바로 처방을 내렸다.
25(OH) VitD3라고 하는, 쉽게 말하면 그냥 비타민D라고 봐도 되는 녀석 하나와 뼈 생성과 분해에 관여하는 호르몬인 부갑상샘 호르몬 수치를 확인하는 검사였다.
그 두 가지 항목을 본 바루다는 감개무량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좋군요. 아주 좋아요.]
‘많이 늘었지?’
[빈말이 아니라 진짜 서효석보다는 좋은 내분비내과 의사일 겁니다, 이미.]
‘후후.’
[그렇게 웃지만 않으면 더 멋질 텐데. 지금 미소 실제로 얼굴에 반영되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으니까 이러고 있겠죠?]
‘이런 망할.’
수혁은 그제야 바로 옆에 하윤이 있고, 하윤이 그의 얼굴을 고스란히 확인하고 있었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뒤늦게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왔지만.
보아하니 다 본 모양이었다.
하윤은 상당히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인이 떨어져 있으면서 다발성 골절이 있지? 이 경우에는 일단 신장에서 인이 얼마나 잘 흡수되고 있는지 확인해 봐야 해. 그게 안 되고 있다면 신장 질환을 생각해볼 수 있거든.”
“아…….”
물론 수혁은 이미 여느 연기자 뺨치는 수준으로 올라와 있었기 때문에, 대강 둘러댈 수 있었다.
하윤 또한 수혁이라고 하면 껌뻑 죽을 만큼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별문제가 있지는 않았다.
“그거 알아낼 수 있는 공식이 있는데, 혹시 기억해?”
“아…… 배운 거 같아요. 그……. 혈중에 있는 뭐랑 소변에 있는 뭐를 나누는 건데.”
“오. 너 진짜 공부 잘했구나. 족보에도 없는 내용일 텐데.”
수혁은 막상 질문을 던진 마당이었음에도 순수하게 감탄을 터뜨렸다.
이런 내용을 숙지하고 있는 사람은 아마 레지던트 중에서도 거의 없을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신장내과 펠로우 정도나 되어야 알고 있을 터였다.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요. 딱 그 정도만…….”
“있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일걸. 자, 이거랑 이거 보면 아직도 모르겠다.”
수혁은 루틴 검사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검사를 더 처방했다.
소변 내 크레아틴과 소변 내 인 수치를 확인하는 검사였다.
“아. 혈중 인하고 혈중 크레아틴 비율을 보면……. 인이 얼마나 재흡수되는지 알 수 있어요.”
하윤은 그걸 보자마자 예전에 배운 내용을 기억해 냈다.
수혁은 정말이지 대견한 얼굴이 되어 그녀의 어깨를 톡톡 두드려 주었다.
“대단한데? 맞아. 이거 내일 보면 어느 정도는 원인을 잡을 수 있을 거야.”
“내일 회진 시간 맞춰서 와 있을게요.”
“그럴래?”
“네. 인턴이라……. 어떻게 될진 모르겠지만요.”
“그래, 그럼 내일 보자.”
“네. 선배님.”
바루다는 고개를 숙인 후 총총걸음으로 사라져가는 하윤을 보며 중얼거렸다.
[정말 특이한 사람입니다. 수혁이 대체 어디가 좋아서 저럴까요?]
‘나 정도면 꽤 괜찮은 편이지 뭐.’
[자기애성 인격장애라고 들어는 보셨죠?]
‘꺼져……. 일단 좀 자자. 오늘 하루 온종일 돌아다녔더니, 힘들어.’
[인정합니다. 확실히 혈중 스트레스 호르몬 농도가 높아졌습니다. 오늘은 이만 쉬시죠.]
바루다가 보기에도 수혁의 몸 상태가 영 아니었는지, 웬일로 순순히 수혁이 당직실에 들어가 눕는 것을 방관하였다.
그렇게 수혁의 밤은 조용히 넘어가고 있었지만.
아쉽게도 모두에게 그런 밤이 되지는 못했다.
수술실에서 나온 최낙필 과장이 김다현 환자가 전실한 것을 보고 강동호 레지던트 1년 차를 향해 소리치기 시작했다.
“이 미친놈아! 그 환자가 누군지 알고 그냥 보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