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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닥터-126화 (126/1,303)

126화 이 골절은 이상합니다 (3)

“네, 네?”

이제 막 수술실에서 나와 잠시라도 몸을 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던 강동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당연히 그와 같이 있던 4년 차 치프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 미친놈이 뭔 사고를 친 거지?’

대강이라도 짐작 가는 건 없었다.

어차피 4년 차라고 해 봐야 신경외과 아니던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기로 치자면 1년 차보다 심하면 심했지 결코 덜하진 않았다.

“이 새꺄, 그 환자……. 넌 생각이라는 걸 안 해? 내가 왜 허리 아픈 사람을 받았겠어!”

4년 차와 강동호의 고뇌가 이어지는 동안 최낙필은 아까보다도 더 거세게 소리쳤다.

화를 내다 보면 더 화나는 사람이 있는 법인데, 딱 최낙필이 그랬다.

지금 시각이 새벽 2시인 데다가, 병동 복도였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민폐였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

“아……. 미치겠네.”

최낙필은 이후로도 한바탕 욕을 쏟아 내다가, 황급히 달려온 시니어 간호사의 말을 듣고 나서야 목소리를 조금 낮추었다.

물론 표정은 그리 바뀌지 않은 상황이었다.

보통 외과계 의사들은 수술실에선 성격이 개차반이더라도 나오면 한풀 꺾이긴 마련이었지만.

최낙필은 그렇지 않았다.

그 때문에 4년 차의 얼굴은 더없이 어두워져 있었다.

‘아……. 지랄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을 텐데.’

그냥 더럽기만 한 게 아니라 집요하기까지 한 인간이었다.

아마 한 달은 이걸로 두고두고 괴롭힐 게 뻔했다.

그래서 4년 차는 일단 상황을 좀 더 알아보기로 작정했다.

‘VIP면 뭔가 표시를 해 뒀을 텐데.’

저렇게 난리바가지를 피울 정도라면 반드시 그래야만 했다.

하지만 김다현 환자의 외래 차트에는 아무 기록도 되어 있지 않았다.

그냥 입원이라는 글자만 쓰여 있을 뿐이었다.

다만 입원장을 내자마자, 바로 처리가 된 걸 보면 뭔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기는 했다.

‘이 시발. 이러니까 간호사도 모르고 주치의도 모르고 나도 모르지.’

교수만 아니었으면 당장에 뭐라고 해 줄 텐데.

상대는 그냥 교수도 아니고, 최낙필 과장이었다.

적어도 4년 차의 가까운 미래 정도는 얼마든지 결정할 수 있었다.

‘누가 데려간 거야?’

해서 좀 더 참을 인 자를 그리면서 살펴보니, 주치의가 이수혁으로 되어 있었다.

사실 다른 과인 데다가 연차도 달라서 굳이 알 필요 없는 이름이긴 했지만.

딱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원장 아들이네.’

설마 뭔가 알고 데려간 건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다면 정말 어마어마한 VIP란 얘긴데.

더더욱 최낙필 과장을 볼 자신이 없어졌다.

하지만 반대로 최낙필 과장은 이 새끼가 뭘 봤길래 고개를 삭 돌렸나가 너무 궁금해졌다.

“야, 넌 뭐 봐? 정신없어? 4년 차가 돼 가지고 과 돌아가는 사정을 하나도 몰라?”

사실 최 과장도 이런 말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4년 차가 아니라 과장인 자신도 솔직히 과 돌아가는 사정을 다 알진 못했으니까.

그러니까 그냥 억지라는 뜻인데.

이런 억지가 통하는 게 또 병원이었다.

“죄송합니다.”

“뭐 보고 있어? 비켜 봐.”

“아, 그……. 네.”

“김다현 환자 차트네? 음. 잘했어. 그렇지 않아도 대체 어디……. 내과? 아니, 내과로 갔어?”

최낙필은 차트를 들여다보다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이 되었다.

그렇지 않은가.

분명 골절로 인한 입원이었는데 내과라니.

설마 당뇨 그거 하나 협진 냈다고 데려갔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효석, 이 개새끼가…….’

평소 환자 보기 싫어하기로는 병원 전체 1, 2위를 다투는 것이 서효석 아닌가.

그런 그가 환자를 데려가다니.

이건 분명 환자가 누군지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괘씸한 새끼란 생각이 팍 치고 올라왔다.

그래서 전화기를 딱 부여잡았으나, 차마 다이얼을 누르진 못했다.

서효석이 최낙필보다 아래 기수이긴 했으나, 그 장인은 한참 윗사람 아니던가.

‘하……. 내일 날 밝으면 바로 신현태 찾아가서 따져야지.’

최낙필은 과장으로 끝낼 생각이 없는 위인이었다.

해서 여지가 있을 거 같은 사람들에 대한 화는 곧잘 참았다.

“이 새꺄. 너, 너 똑바로 해. 너도 인마. 치프가 되어 가지고…….”

대신 화풀이 대상에게 내는 화는 전혀 참지 않았다.

그는 또다시 한 10분가량 욕지거리를 내뱉고는 오늘 수술한 환자 잘 보란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으.’

제일 무서운 사람이 사라졌음에도 강동호는 얼굴을 필 수 없었다.

흉신악살과 같은 몰골이 된 4년 차가 자신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평소 꽤 친한 학교 선후배 사이였지만.

이럴 땐 얄짤없었다.

“너 새꺄 입이 없냐?”

당연하다는 듯 발길질이 날아왔다.

강동호는 아릿한 통증이 느껴지는 정강이를 감싸 쥘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모르면 물어보라고 했지? 사고 치기 전에.”

“그…….”

“에이, 시발.”

4년 차는 잠시 최낙필이 사라진 곳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뭔 환자야. 뭐 의심해서 입원시킨 거야.”

그나마 한 대 친 거로 화가 풀린 4년 차는 비로소 제대로 된 질문을 던졌다.

외래고 입원 기록이고 신경외과 쪽 기록은 별것 없어서 알 수 있는 게 없었다.

“그……. 허리 통증이요.”

“그건 증상이잖아. 진단명이 뭔데? 디스크야?”

“아……. 아뇨. 그건 아닙니다.”

“그럼 뭐야.”

“골절? 이렇게 들은 거 같습니다.”

“골절? 근데 왜 내과에서 데려가. 누가 데려간다고 했어? 설마 네가 먼저 전과 받아 달라고 한 건 아니지?”

4년 차는 만약 그랬다면 한 대 더 칠 생각을 하며 물었다.

강동호는 부리나케 고개를 털었다.

“아, 아닙니다. 이수혁……. 이수혁 선생님이 먼저 데려가겠다고 했습니다. 골절이 내과적인 원인이라고 하면서.”

“이수혁이? 하……. 이 새끼 이거 원장 아들이라고 눈에 뵈는 게 없나.”

물론 4년 차라고 해도 감히 수혁의 앞에서 이런 말을 할 수는 없을 터였다.

강동호도 없으니까 하는 소리란 건 알고 있었지만 일단 맞장구는 쳐 주었다.

“정말 그런가 봅니다. 대체 뭐가 뭔지 저는…….”

“뭐긴 뭐야. VIP 빼 간 거지. 서효석 이 양반도 평소에는 죽으라고 안 보더니……. 진짜 웃기네, 이거?”

“어, 어떻게 하죠?”

“어쩌긴 뭘 어째. 넌 할 일이나 하고 있어.”

“서, 선생님은 뭐 어떻게 하시려고요?”

“내과 치프 불러다 까야지.”

4년 차는 인상을 잔뜩 쓴 채 어디론가 사라졌다.

강동호는 그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진 후에야 짙은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에이……. 이수혁 뭐야, 진짜.”

애꿎은 수혁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으면서였다.

정확히 그 시각으로부터 3시간 반 이후, 수혁이 눈을 떴다.

[왜 이렇게 귀를 후비적거립니까?]

‘몰라. 괜히 간지럽네?’

[그러다 외이도염 걸려요. 조심해요.]

‘나도 알아, 나도. 아무튼, 검사 결과 나왔으려나?’

[검사실에 전화는 해 놓긴 했지만, 알 수 없죠. 일단 검체가 나와야 되는 거니까.]

피야 뽑으면 그만이었지만.

소변은 이 사람이 봐야 검사가 나갈 수 있지 않겠는가.

수혁은 부디 환자가 소변을 제대로 봤기를 바라면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나마 좀 일찍 자서 그런가. 몸이 괜찮네.”

[왜 그걸 입 밖으로 냅니까?]

“나 혼자 있잖아.”

[자꾸 그래서 혼자 있게 된 건 아닐까요?]

수혁은 바루다의 시비를 가뿐히 씹고는 병동으로 향했다.

어제 말했던 대로 하윤이 스테이션 쪽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얼굴엔 졸린 기운이 잔뜩 묻어 있었는데, 아마도 평소보다 더 일찍 나와서 루틴 잡을 끝내 놓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나 돌아오기 전보다는 낫겠지.’

수혁은 어제 싹 정리해 둔 처방을 떠올렸다.

의학에 있어서만큼은 부족한 거보다 과한 게 무조건 낫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굳이 쓸데없는 검사를 반복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1년 차 안대훈이야 불안해서 이것저것 내겠지만.

수혁은 그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 선생님. 너무 일찍 나왔나 봐요. 벌써 일이 끝났어요.”

물론 하윤은 그러한 내막을 알지 못했다.

그저 오늘따라 인턴 잡이 좀 적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수혁은 그걸 좀 말해 줄까 하다가, 자기 입으로 말하면 없어 보일 뿐이라는 바루다의 조언을 전격 수용했다.

“이제 6시 좀 넘었는데, 엄청 부지런하네.”

“이쁨받는 인턴이 되려면 이 정도는 해야죠.”

사실 하윤 정도의 성적이라면 딱히 이렇게까지 안 해도 충분히 이쁨받을 수 있을 터였다.

솔직한 얘기로 요즘 같은 분위기에서 과 톱이 내과를 지원하는 일은 상당히 드문 일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아마 교수님들은 하윤이 위 연차를 폭행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무조건 뽑으려 할 것이 뻔했다.

성적 의미 없다 의미 없다 하지만.

1등이 우리 과를 지원했다는 건 언제나 의미 있는 일이지 않은가.

수혁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김다현 환자의 차트를 타고 들어갔다.

아무래도 로딩이 있었는데, 그사이에 하윤이 재차 입을 열었다.

“아, 맞아. 김다현 환자분 말이에요.”

“응, 왜?”

“아까……. 한 5시 반쯤? 신경외과에서 찾아왔었어요. 불편한 거 없는지, 내과에서 진단 제대로 받고 있는 건지……. 이것저것 물어봤어요.”

“5시 반에……. 신경외과에서?”

“네.”

“이상한데.”

수혁의 고개가 절로 갸웃거려졌다.

말마따나 정말 이상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중환자실 보기도 바쁠 텐데, 이미 전과된 환자를 찾아오다니. 신경외과에 인력 충원이라도 있었던 걸까요?]

‘그럴 리가 없잖아.’

[흠.]

하지만 바루다나 수혁이나 진료 외적인 부분으로 사고를 확장하진 못했다.

하윤 또한 사회 경험이 대충 비슷했기 때문에 별말을 잇지는 않았다.

덕분에 둘은 그냥 이상하네 하고는 환자의 검사 결과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다행히 환자는 밤에 소변을 본 건지 어쩐 건지 검사가 떠 있었다.

바루다는 그것을 토대로 즉시 계산을 해내었다.

[TRP(Tubular Reabsorption of Phosphate: 인재흡수율) 71%. 유의하게 감소해 있습니다. 그 외 비타민 D 수치는 정상, 부갑상선 호르몬도 정상입니다.]

‘그럼 신장이 문제네.’

[튜뷸에서의 문제라면 역시……. 암일 가능성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튜뷸은 신장의 한 부속 기관을 뜻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신장암을 의심하는 건 아니었다.

튜뷸의 손상을 일으킬 수 있는 암을 감별해야만 했다.

그때 하윤이 입을 열었다.

“아, 맞아.”

무언가 떠오른 듯한 얼굴이었다.

“왜?”

수혁은 즉시 바루다와의 대화를 멈추고 하윤을 마주 보았다.

비록 바루다는 그런다고 하윤이랑 잘될 거 같냐고 투덜거리고 있었지만.

수혁은 이제 적당히 바루다의 말을 무시할 수 있게 된 참이었다.

“환자가 목 뒤에 뭐 만져지는 게 있다고 했어요.”

“목 뒤라. 설마 임파암인가?”

“암이요?”

진단 플로우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하윤은 눈을 끔뻑거렸다.

중환자실을 들렀다가 오느라 조금 늦게 온 안대훈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

수혁은 그제야 얘들은 바루다의 말을 들을 수 없단 걸 상기한 채 말을 이었다.

“보면 신장에서 인이 재흡수가 잘 안 돼. 튜뷸에 손상이 있다는 건데, 그럼 일단 튜뷸을 급성으로 망가뜨릴 수 있는 종양을 생각해 봐야지. 주로 성장이 빠른 놈들이 이런데……. 목에 덩이가 있다면 역시 임파암부터 생각해 봐야지.”

“아……. 그럼 이비인후과에 절개 생검 의뢰할까요?”

“어, 그래.”

수혁이 티칭 비슷한 처방을 내리고 있을 때쯤, 신현태는 최낙필의 전화를 받고 있었다.

아직 출근하기도 전에 걸려온 전화였기 때문에 약간은 짜증 난 목소리였다.

“왜요, 최 과장님. 저 아직 병원 아닌데.”

“다름이 아니라. 어제 서효석 교수가 레지던트 시켜다가 우리 환자 가로챘거든?”

하지만 최낙필은 새벽부터 이미 오래 참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날카로웠다.

신현태는 천성이 부드러운 편인 데다가, 서효석으로 시작하는 얘기에서는 무조건 불리하다고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급히 태도를 바꿨다.

더군다나 지금 서효석 밑을 도는 레지던트는 우리 수혁이 아닌가.

긴장해야 했다.

“어…….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어떤 환잔데요?”

“태화 전자 부사장님 딸. 지금 본인이 이사기도 하고……. 일부러 티 안 내겠다고 하셔서 나한테만 전화했던 거 같은데……. 어떻게 알았는지 빼 갔어. 정말 이러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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