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29화 (129/1,303)

129화 VIP (3)

“아.”

김다현 환자는 상당히 긴장한 상황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허리가 아파 입원을 했는데, 알고 보니 몸 이곳저곳에 다 골절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참 아니던가.

그 이유가 뭔지 알아내야 한답시고 조직 검사를 빙자한 수술까지 받게 되었고.

아무리 의료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김다현이라지만 뭔가 낌새가 수상쩍다는 거 정도는 눈치챌 수 있었다.

‘조직 검사라니.’

설마 암인가?

그런 건가?

이제 겨우 나이 마흔을 갓 넘었는데 암이라니.

탄탄대로처럼 쭉 뻗어 있던 인생 여정에 무언가 거대한 돌덩어리가 툭 하고 떨어진 듯한 기분이었다.

“환자분.”

김다현은 아득한 심연에서 건져 올린 것은 수혁의 말 한마디였다.

비록 오랜 시간 가까이 지낸 것 아니었지만.

그간 수혁이 보여 준 단호함과 빼어난 진단 실력은 정신적으로 유약해져 있는 김다현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네, 선생님.”

수혁은 멍한 눈으로 자신을 마주하고 있는 다현의 목을 바라보았다.

작은 거즈에 의해 상처가 가려져 있었지만, 주변부는 확인이 가능했다.

붓기는커녕 빨개진 곳도 찾아볼 수 없었다.

수술은 기가 막히게 되었음이 분명했다.

‘잘못 떼어 냈을 가능성은 없겠지?’

[태화 의료원 이비인후과는 절제 생검만 매일 1건에서 2건을 시행하는 곳입니다. 실수가 있을 거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하긴.’

수혁은 혈액종양내과를 돌던 당시를 떠올렸다.

그때 대체 얼마나 많은 협진 수술을 의뢰했던가.

그중에서 단 한 번도 검사가 잘못되었던 적은 없었더랬다.

레지던트가 해도 그런데 펠로우가 했다면 더더욱 실수는 없었을 터였다.

순간 VIP 신드롬이라는 재수 없는 단어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긴 했지만.

수혁은 재빨리 그 단어를 지워 버렸다.

“수술실에서 혹시 무슨 설명 들으신 게 있나요?”

“아……. 잠시만요.”

“네.”

다현은 이제 막 수술실에서 올라온 사람답게 완전한 제정신은 아니었다.

비록 전신 마취를 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서 더 힘든 감이 있었다.

정신이 멀쩡한데 국소 마취로 목을 짼다고 생각해 보라.

통증이 문제가 아니라 어마어마한 심력 소모가 있어야 했을 터였다.

“그냥……. 수술 잘됐고. 결과는 나중에 내과에서 들으라고 했던 거……. 같아요.”

수혁은 다현의 말을 들으며 내심 감탄했다.

‘과연 펠로우 짬바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네.’

[그러니까요. 혹여 동결 절편이 틀릴 경우를 대비했군요.]

동결 절편이란 정식 조직 검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정식 조직 검사는 조직의 특징을 더욱더 잘 확인할 수 있게 염색을 진행한 후에야 이루어지는 것인데 반해, 동결 절편은 수술실 옆에 마련된 병리과에서 그냥 얼린 조직 절편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태화 의료원 병리과는 워낙 그 경험이 많이 쌓여 있어서 상당히 정확한 진단율을 자랑하고 있지만.

VIP 아닌가.

1%의 확률이라도 오진의 짐은 지기 싫었던 모양이었다.

“아……. 결과요.”

하지만 수혁은 이미 영상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는 감별을 해 둔 상황이었다.

조직 검사는 어디까지나 보험 같은 느낌이었다는 뜻.

거기서도 음성이 나온 이상 거리낄 것은 없었다.

“암은 아닙니다.”

“아……. 암을 의심했었나요?”

“네. 뒤늦게 말씀드려서 죄송합니다만…….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미리 겁줄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제 확인했으니 말씀드리겠습니다. 암은 아닙니다.”

“아……. 감사합니다.”

세상천지에 당신 암은 아니라고 하는데 쌍욕 박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김다현 또한 마찬가지인지라 일단 감사의 인사부터 올렸다.

수혁은 그런 환자를 보며 담담히 웃었다.

[연기의 일환인가요?]

바루다는 이 인간이 여기서 왜 웃나 하는 얼굴이었다.

수혁은 속으로 츠츠 혀를 차면서, 역시나 속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연하지. 이래야 훈훈하잖아. 지금 환자랑 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아하……. 이게 전형적인 보여 주기 식 미소인가요?]

‘그렇게 말하니까 좀…….’

[맞죠?]

‘맞긴 맞지.’

수혁은 그 놀라운 연기력으로 바루다와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훈훈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웃음은 전염된다고 하던가.

어느새 김다현 환자도 수혁의 보기 좋은, 마치 보살과도 같은 미소를 따라 짓고 있었다.

수혁은 이제 됐다고 판단이 들었는지 재차 입을 열었다.

“제가 환자분 신장에서 인이 재흡수되지 못한다고 말씀드렸을 겁니다. 맞죠?”

다현이 신뢰감을 느끼게 되었던 바로 그 말투였다.

단호하면서도 논리적인.

환자 입장에서는 의지가 될 수밖에 없는 그런.

“네, 선생님.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사실 그 원인 중 하나가 암입니다. 제일 확률이 높은 진단명이었죠.”

“아…….”

“그러나 이제 아님을 확인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남는 진단명은 거의 없습니다.”

“어, 그럼 혹시…….”

수혁은 일부러 대화를 멈춰서 나누지 않았다.

아주 천천히 다현이 누운 침대에 기댄 채 병동 스테이션을 향해 걸어오면서 나누던 참이었다.

아무리 느려 봐야 병원이 그렇게 넓지는 않지 않은가.

이미 신현태, 최낙필 그리고 서효석 앞에 당도한 지 오래였다.

“네, 진단명은 알아냈습니다. 정확한 건 유전자 검사를 해 봐야겠지만요.”

“유전자요?”

적어도 김다현은 유전자 검사라는 걸 직접 듣는 건 처음이었다.

당연히 그러했을 터였다.

유전자 검사는 일상적으로 시행되는 검사는 아니었으니까.

물론 옆에 서 있던 교수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전과 받은 지 이제 겨우 만 하루 정도밖에 안 됐는데 뭔 진단을 내린단 말인가.

비단 공부 안 하는 멍청이 서효석에 한정된 일도 아니었다.

‘우리 수혁이는……. 역시 괴물인가?’

공부 열심히 하기로만 따지면 전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신현태도 마찬가지였다.

내과 의사 특유의 병 때문에 이들과 대화를 나누면서도 도대체 김다현의 병이 뭘까를 계속 고민해 왔지만.

아직 실마리조차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뭔 소리야 이놈이. 암이 아니면 뭔데?’

아무래도 수술하느라 신현태보다는 공부할 시간이 적은 최낙필은 놀랍다기보다는 좀 황당한 기분이었다.

아예 감도 안 잡히는 병을 기껏해야 내과 2년 차가 알아냈다고?

그것도 맨땅에 헤딩하듯 환자를 받아 가고서?

‘정말 그런 거면 시발 나 같은 교수들은 다 접싯물에 코 박고 죽어야지.’

반면 서효석은 별생각이 없었다.

너무 무식해서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감이 안 왔기 때문이었다.

그저 이번에 온 2년 차가 좀 똘똘하다더니, 정말 말을 잘하네. 뭐 이런 수준이었다.

“김다현 씨, 혹시 가슴 쪽에는 만져지는 멍울이 있지 않나요?”

“네? 아까는 암이 아니라고…….”

“암 얘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혹시 없나요?”

“음…….”

김다현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있어요. 근데 그거……. 벌써 옛날에 하나 뗐었는데 아무것도 아니라고 들었어요. 그냥 물주머니라고…….”

“한 개였나요?”

“어……. 여러 개요.”

대화가 이어질수록 김다현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수혁이 마치 자신의 속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다는 듯 확신에 찬 질문을 던지고 있지 않은가.

더 환장할 노릇인 건, 그게 다 맞아떨어지는 중이라는 것이었다.

“역시 그렇군요. 그럼 혹시……. 형제나 자매분이 있진 않으십니까?”

수혁은 바루다와 함께 김다현에 대해 알아보면서 확인했던 기사 하나를 떠올렸다.

[김다현은 쌍둥이군요.]

‘쌍둥이 동생이 있구나.’

[쌍둥이 동생은 미국에 있군요.]

아버지가 태화 전자 부사장이라고는 해도 어찌 되었건 태화 집안사람은 아니지 않은가.

자식들이 다 태화에 있으리라는 법은 없다는 얘기였다.

김다현의 동생은 미국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었다.

계열도 아예 달라서, 인문학 쪽이었다.

“아……. 쌍둥이 동생이 하나 있어요.”

다현은 수혁이 알고 있는 대로 답을 해 주었다.

덕분에 수혁은 준비하고 있던 질문을 할 수 있었다.

“혹시 그 동생분은 어디 아프다고 한 적 없나요?”

“어…….”

김다현은 다행히 동생과 꽤 우애가 돈독한 편이었다.

외로울 법한 미국 유학 시절 같이 살았던 자매가 아닌가.

게다가 그냥 자매도 아니고 쌍둥이.

요즘도 상당히 자주 연락을 주고받는 편이었다.

당연히 근황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제 동생은 등이…….”

“역시 그렇군요.”

수혁은 마치 탐정이라도 된다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보기에 따라서 꼴같잖게 보일 수도 있는 모습―바루다는 그렇게 보았다―이었지만, 이미 다른 이들은 수혁의 추론에 매료된 지 오래였다.

아마 수혁이 어지간히 이상한 짓을 하지 않는 이상에는 몰입이 깨지지 않을 터였다.

“제가 의심하는 환자분의 병명은 바로 ADHR, 즉 Autosomal dominant hypophosphatemic rickets입니다.”

신현태를 제외한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처음 듣는 병명이었다.

신현태도 이 병을 가진 환자가 신우신염으로 입원 치료를 해서 알았지, 그전까지는 몰랐었을 정도로 드문 병이기도 했다.

“뭐, 뭐요?”

일단 발음마저 생소한 병이었던 지라, 나름 공부 오래 한 김다현조차 단번에 알아듣지 못하고 눈을 끔뻑거렸다.

솔직히 말하면 서효석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오토조말 뭐라고 했더라?’

그래도 최낙필은 중간 부분 조금 넘어서까지는 들은 참이었지만, 참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수혁은 교수들을 좌절로 몰아넣은 채 말을 이었다.

“유전 질환인데……. 우성 형질을 가지고 있어요. 쌍둥이라면 같은 증상을 보일 가능성이 아주 크다는 뜻이죠. 유방에 여러 낭종을 포함하는 것이 특징이고……. 인의 재흡수가 떨어지면서 다발설 골절의 원인이 되는 병입니다.”

뭔가 듣기만 해도 심각한 질환 아닌가.

다현은 차라리 암이 나은 거 아냐? 하는 생각마저 들 지경이었다.

원래 미지에 관한 공포는 큰 법이었으니,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치료는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수혁의 말이 계속되자, 다현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저, 정말이에요?”

“네. 약만 먹으면 됩니다. 다만 평생 먹어야 된다는 것이 단점인데. 그래도 약만 먹으면 병이 없는 사람과 똑같이 지낼 수 있습니다.”

“아.”

다현은 아까 홀로 암이 아닌가 하고 고민하던 때를 떠올렸다.

불과 몇십 분 전일 뿐인데, 그때만 해도 인생 다 끝났다고 여겼더랬다.

그런데 이제 살 수 있을뿐더러, 별문제 없이 살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있지 않은가.

감개무량하다는 말이란 바로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이란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감사합니다…….”

“아니, 아닙니다. 아직 치료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요.”

“그대로 있었으면 아마 진단이 되지…… 않았을 겁니다.”

다현은 근거리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최낙필 쪽을 힐끔 바라보고는 재차 입을 열었다.

“이수혁 선생님이 협진 보러 왔다가 저를 내과로 데려가지 않았다면 진단은커녕 계속 아프기만 했을 거예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앞으로 제가 도울 일 있으면 돕겠습니다.”

“네? 그게 무슨 소린지…….”

수혁은 짐짓 아무것도 모르겠단 얼굴로 다현을 바라보았다.

애초부터 이렇게 하기로 계획했던 바루다마저 소름이 들 정도의 연기였다.

[미친, 메소드 연기 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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