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32화 (132/1,303)

132화 괴질 (2)

“야, 수혁아.”

“어, 네.”

그러나 수혁이 음식에서 헤어 나온 건 메인 디시였던 소고기 안심구이가 끝난 다음이었다.

나오는 요리마다 워낙에 훌륭했던 터라 도리가 없었다.

이현종이나 신현태나 여기 음식이 그럴 만하다고 여기고 있었기에, 딱히 황당해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디저트도 맛있지?”

“네. 어우, 여긴…….”

“괜히 이 가격에도 예약하기 어려운 집이 아니지.”

이현종은 이제 곧 결제될 50만 원 남짓한 금액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점심 한 끼에 지불한다고 하기엔 지나치게 많은 금액이긴 했지만.

먹을 때마다 ‘아, 이런 거 먹으려면 또 힘내서 일해야겠구나’ 하는 동기를 주는 그런 맛이었다.

여러 번 먹은 이현종도 감동받았을 정도였으니, 오늘 처음인 수혁이야 더 말할 것도 없었다.

해서 이현종은 조금 더 기다려 준 후, 수혁이 디저트마저 절반가량 먹었을 때쯤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핸드폰을 보여 주었다.

“지금 우리 병원 응급실로 오고 있는 환자들인데, 한번 봐 봐.”

“네? 아, 네. 원장님. 음.”

수혁은 여전히 입안에 디저트를 머금고 있던 참이었지만, 어찌 되었건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이현종의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핸드폰에는 두 개의 흉부 엑스레이 사진이 떠 있었는데, 골격이 다른 것으로 보아 같은 사람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의 엑스레이 사진인 것 같았다.

[좀 이따가 하면 안 되나. 아직 다 안 먹었는데.]

평소와는 달리 바루다는 진단을 내리는 대신 투덜거리기만 했다.

수혁도 비슷한 심정이었기에 딱히 그를 탓하진 않았다.

‘이거 사 주셨잖아.’

대신 달랬는데, 돈 냈다는 말은 언제나 그러하듯 상당한 힘이 있었다.

[하긴 그렇군요. 잘 보여야 또 사 주겠죠?]

‘그렇지. 그러니까 좀 보자고.’

[흠.]

그 때문에 바루다는 수혁과 함께 사진을 유심히 뜯어 보기 시작했다.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그저 폐만 보지는 않았다.

생각보다 흉부 엑스레이가 품고 있는 정보는 많았으니까.

‘체형은 둘 다 보통……. 뚱뚱하지도 마르지도 않았어. 꽤 젊은 사람들 같은데.’

[네. 기껏해야 20대 초반? 그리고 남자예요.]

골격부터 살집의 정도를 통해 체격을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또한, 골화의 진행 정도를 통해 나이를 알 수 있었고.

방패 연골의 모양을 보고 성별까지 알 수 있었다.

‘수술받았던 적은 없어 보이고…….’

[그런데 폐가 아예 하얗게 됐군요.]

‘그러니까. 아팠던 적도 없어 보이는 사람 폐가 이렇게까지 되다니.’

[나이도 어린데……. 대체 뭘까요?]

사진의 폐는 방금 대화처럼 하얗게 변해 있었다.

원래 까매야 할 것이 하얗게 되어 있다는 건 폐렴이 심각하다는 뜻이었다.

아주 드문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기저 질환이 있던 노인이 아니라, 청년의 폐가 이렇게 되는 건.

“좀 이상하지?”

이현종은 자신의 예상대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수혁을 향해 물었다.

수혁은 현종의 말을 들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환자가 혹시 어떤 사람들이죠? 그럴 나이가 아닌 거 같은데…….”

“뭐 사진 봐서 대강 알겠지만.”

아마 다른 레지던트였다면 이런 말은 절대 안 할 터였다.

하지만 상대가 이수혁이지 않은가.

이현종은 이미 수혁이 자기보다 더 천재라고 인정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해서 자신이 본 거 정도는 다 봤을 거라 굳게 믿고 있었다.

그리고 수혁은 그의 믿음을 절대 배신하지 않았다.

“오른쪽이 22살, 왼쪽은 20살이야.”

“음…….”

“군인이야, 군인. 훈련병 동기.”

“아. 그럼…….”

군인이라면 아무리 젊고 건강하더라도 상식 이상으로 아플 수 있긴 했다.

워낙에 단체 생활을 하는 데다가, 시설은 후지고 또 훈련은 고됐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소견은 좀 너무한데요?”

“그렇지? 나도 군 훈련병들이 아데노 바이럴 뉴모니아로 오는 건 좀 봤는데. 이 정도는 아니거든.”

수혁의 말에 신현태가 끼어들었다.

아무래도 감염 쪽 얘기다 보니 이현종보다는 신현태가 할 말이 더 많았다.

폐렴이야 호흡기 쪽에서 꽉 잡고 있다지만, 그래도 간혹 감염내과가 메인으로 볼 때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데노……. 아, 그때 그 사건이요?”

“어. 그때 여럿 죽었었지.”

아데노바이러스는 사실 면역 결핍 환자에서 주로 문제를 일으키는 녀석이었다.

당연하게도 정상 면역 인구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하고 있지 않았더랬다.

하지만 신병 훈련소의 열악함은 여러 의학자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그 이후로 겨우겨우 아데노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을 놓을 수 있게 됐지.’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여러 차례 반복이 되었더랬다.

신병 훈련소에서 폐렴에 걸려서 죽었다는 얘기.

아주 이상하게 들리진 않지 않던가.

그냥 훈련이 힘들고 몸이 약해서 그런 거라고 충분히 여기고 넘어갈 수 있다는 뜻이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그때의 난 훌륭했어.’

그 이유가 아데노바이러스일 수 있다는 걸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신현태였다.

당시 감염내과 펠로우까지 마치고 신병 훈련소 군의관으로 가 있던 그는, 아무리 봐도 젊은 성인에서 생겼다고 하기엔 너무 급작스러운 경과를 보이는 폐렴이 수상하다고 생각했다.

딱 한 명한테만 생겼다면 그도 그냥 넘겼을 수도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그때 폐렴에 걸린 환자는 모두 6명이나 되었다.

그래서 그때까지 아무도 해 보지 않았던 아데노바이러스에 관해 검사를 시행했고, 해당 환자 중 절반에 해당하는 세 명을 살릴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후향적 역학 조사를 통해 그때까지 사망했던 훈련병 중 상당수가 아데노바이러스에 의한 폐렴 때문에 사망했다는 것을 밝혀내기까지 했다.

“근데 이건 아데노랑 양상이 달라. 현종이 형, 이거 언제 찍었다고요?”

“증상 생긴 다음 날.”

“너무 빨라…….”

“그래, 너무 빨라. 아데노바이러스에 의한 거라고 하면……. 얘네 군대 가면 안 될 애들일걸.”

물론 바이러스에 의한 폐렴도 엄청 빠른 경과를 나타내는 녀석들이 있기는 했다.

하나의 조건을 충족시킨다면 그러했다.

숙주의 면역이 없을 것.

“그러니까요. 흠……. 증상은 어떻대요?”

신현태의 말에 이현종은 다시 핸드폰을 거두어 갔다.

그리곤 박기태 대령이 보낸 자료를 슥슥 넘겨 보기 시작했다.

“일단 둘 다 열나고, 기침하고, 가래 나오고……. 컨디션 깔리고. 거의 동시에 발생했어.”

“같은 방 쓰는 애들은 모두 몇 명인데요?”

“그런 것도 보냈으려나? 아, 여기 있네. 16명.”

“16명? 북한이야? 왜 이렇게 많어.”

“왜 나한테 화를 내?”

“아뇨, 화를 낸 게 아니라. 황당해서 그렇죠.”

아직도 한방에 16명이 같이 자고 있다니.

신현태는 자기도 모르게 자기가 훈련받았던 논산을 떠올렸다.

그게 벌써 20년 전인데, 그때도 16명이 한방에서 잤더랬다.

‘시발.’

신현태와 같은 인격자조차 저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나올 만큼 끔찍했던 기억.

잠시 몸서리치고 있으려니, 이현종이 말을 이었다.

“그중에서 같은 증상 보이는 애는 없대.”

“없대요? 얘네 언제 이런 건데요?”

“이제 이틀. 근데 사진이 이렇네?”

“허……. 시발, 지금 어디래요?”

“아까 나한테 전화하고 쐈으면…….”

국군 수도 병원이면 분당 아니던가.

거기서 강남까지는 실로 금방이라고 보면 되었다.

“지금 거의 왔겠는데? 우리도 가죠? 얘들 레지던트들이 볼 순 없을 거 같은데.”

“어……. 그래야겠지?”

이현종은 뭔가 좀 아쉽다는 듯 옆을 바라보았다.

작게 난 창밖으로 역시나 작은 사이즈의 폭포가 보였다.

워낙에 비싼 집이다 보니 조경도 퍽 신경을 쓴 모양이었다.

“뭐 해요. 안 일어나고. 수혁이는 벌써 나갔어.”

해서 구경이나 좀 더 하고, 입안에 감도는 감동을 만끽하고 싶었거늘.

이 멋대가리 없는 놈들이 이미 다 나가고 없었다.

‘망할 놈들이 낭만이 없네.’

하지만 이현종 또한 의사는 의사였다.

아쉬움에 몸서리치면서도 밖으로 향했다.

그리곤 신현태 옆자리, 그러니까 조수석에 아주 자연스럽게 털썩 앉았다.

“차는? 또 안 갖고 왔어요?”

“나 운전 싫어하는 거 알잖아.”

“그럴 거면 벤츠는 왜 샀어?”

“남들 다 타니까. 나만 없으면 섭섭하잖아.”

“나 참……. 수혁아, 안전벨트 맸니?”

이현종이 별종 짓 하는 게 어디 하루 이틀 일인가.

신현태는 잠시 고개를 가로젓고 나서는 곧장 수혁을 챙겼다.

이현종과 대거리를 해 대느니 우리 이쁜 수혁이나 한 번 더 보는 게 의미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네, 교수님. 맸습니다.”

“그래. 너 들어가도 당장 할 거 없지?”

“네? 네, 뭐. 당장은 없습니다.”

“그럼 같이 가서 한번 보자. 대체 뭐야, 이거.”

“네, 교수님.”

수혁은 어차피 말이 없었어도 가 보긴 할 참이었다.

‘데이터에 없어?’

[처음 봅니다, 이런 양상의 폐렴은.]

바루다도 모르는 질환은 실로 오랜만이지 않은가.

환자를 두고 이런 생각하는 것이 좀 꺼림칙하긴 했지만.

뭐가 되었건 간에 호승심이 생겼다.

부우웅.

수혁이 잠시 고민에 빠진 동안 신현태는 차를 몰아 골목을 빠져나왔다.

병원까지는 그리 멀지도 않았고, 막히는 길도 아니었다.

게다가 신현태는 꽤 밟고 있었고.

“어어. 미친놈아. 살살해. 나 오래 살고 싶어.”

이현종은 그게 마음에 안 드는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댔다.

물론 그런다고 말을 들을 신현태가 아니었다.

“환자 온대면서요.”

“아니, 새꺄. 이러다가 우리가 환자로 가.”

“이 차 어지간히 박아도 안 죽어.”

“미친놈이?”

그렇지 않아도 상당히 환자 위하는 마음이 큰 열혈 닥터 아니던가.

그중에서도 군인이라고 하면 눈이 돌아가는 편이었다.

훈련병이라고 더더욱 그랬고.

걔가 폐렴이면 거의 반 미쳐 버렸다.

지금 반 미쳤다는 뜻이었다.

“어어. 제발. 현태야.”

“시끄러워요. 환자가 기다린다.”

“너는 왜 이런 면에 있어서는 늙지도 않냐.”

“형이 이상한 거야. 어떻게 의사가.”

“내가 너보다 많이 살리거든?”

“에에이!”

“미안해! 그만 밟어!”

해서 옳은 소리 해 대는 이현종을 닥치게 하면서까지 병원으로 달렸다.

그 덕분인지 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환자를 싣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군 앰뷸런스와 거의 동시에 응급실에 들어설 수 있었다.

“여기, 여기 주차하시면 안…… 어? 원장님?”

당연히 요원 하나가 달려 나와서 말렸지만.

안에 타고 있는 게 다 의사인 데다가,

“우리 저 환자 보러 온 거야! 주차 좀 대신 해 줘요!”

그중 운전자로 보이는 사람이 급히 뛰어내리면서 방금 앰뷸런스에서 나온 환자를 가리키는 바람에 졸지에 발레파킹을 하게 되었다.

“미안해요. 저도 환자 보러 가야 해서.”

더구나 수혁은 다리를 절룩이면서까지 달리고 있지 않은가.

요원은 달리 어떻게 거절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네네. 차는 걱정 마시고 가십시오!”

“고생이 많다.”

이현종 또한 자신이 주차를 할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그냥 응급실로 향했다.

생각해 보니까 이현종은 자기 차도 안 모는 사람 아니던가.

그런데 남의 차 운전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의식…… 의식 떨어지잖아!.”

“산소 포화도도 떨어집니다!”

그사이 환자에게로 달려간 신현태와 수혁은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환자 둘의 상태가 모두 최악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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