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33화 (133/1,303)

133화 괴질 (3)

‘바로 삽관할까?’

수혁은 떨어지는 산소포화도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와 마찬가지로 상황을 쭉 지켜보고 있던 바루다가 즉각 답변을 해 왔다.

[우측은 즉시 삽관하지 않으면 위험합니다.]

‘왼쪽은?’

수혁이 보기엔 왼쪽도 만만치 않았다.

아직은 포화도만 조금 흔들릴 뿐, 의식이 가라앉지는 않고 있긴 했지만.

지금까지 둘이 거의 같은 경과를 보이지 않았던가.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바루다는 인간의 불안감을 갖고 있지 않았고, 덕분에 더욱 객관적인 판단이 가능했다.

[둘의 경과가 앞으로도 같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산소 포화도 80% 정도는 산소만 줘도 얼마든지 극복 가능한 수치입니다.]

‘그건 그렇지만…….’

[그리고 문진할 대상이 필요합니다. 아까 식당에서 들어서 알고 있겠지만, 이 둘의 경과는 아주 이상합니다. 여러 검사를 긁는 것보다 몇 마디 질문해 보는 것이 단서 찾기에 훨씬 유리합니다.]

‘아.’

바루다의 말을 듣고 보니 과연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때론 문진이 그 어떤 검사보다 더 위력을 발휘하기도 하지 않던가.

특히 이 두 환자처럼 평범하지 않은 환경에서, 평범하지 않은 경과를 밟아 온 환자들이라면 더더욱 중요할 터였다.

“삽관할게요! 이쪽은 산소 풀로!”

“어, 어어. 그래, 그렇게 하자. 군의관! 같이 온 군의관 어딨어?”

다행히 신현태 또한 수혁과 의견이 일치한 모양이었다.

딱히 수혁의 말에 반박하는 대신 군의관부터 찾았다.

그러자 저 멀리서 머리가 애매하게 긴 군의관 하나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원무과 쪽에서 뛰어오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접수를 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어……. 무슨 과지?”

“내과입니다.”

“내과, 그래.”

신현태는 군의관 어깨에 붙어 있는 대위 계급장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100% 확신하긴 어렵지만, 대위면 거의 전문의지 않던가.

어디서 수련받았는지는 알 수 없어도 대강 지금까지 아예 헛짓하진 않았을 거란 믿음은 가질 수 있었다.

“으쌰.”

그사이 수혁은 벌써 환자의 입을 벌리고 후두경을 넣고 있었다.

숙련된 응급실 간호사들의 도움을 받고 있으려니, 일은 일사천리였다.

신현태는 혼자 아주 잘 해내고 있는 수혁을 확인하고는 다시 내과 군의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된 거야? 언제부터 증상이 있었어?”

“아, 네. 그…….”

내과 군의관은 잠시 당황하는가 싶더니, 이내 유창하게 환자에 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비록 군의관으로 있는 동안 녹슬기는 했겠지만.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군대 가기 전 대학 병원에서 쌓은 4년간의 혹독한 경험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 법이었다.

“우선 둘 다 거의 동시에 훈련소 의무실로 찾아왔다고 합니다. 당시 증상은 기침, 가래였는데, 마치 사레 걸린 듯 멈추지 않는 기침이었고……. 약간의 호흡 곤란이 있었다고 합니다. 청진 시에도 기도가 좁아져 있었다고 했습니다.”

“아. 그때부터 본 건 아냐?”

“네? 아, 네. 저는 수도 병원에서 근무합니다.”

“아하. 그럼 전원 받은 건가? 언제 왔지?”

내과 군의관은 잠시 눈알을 굴렸다.

하도 오랜만에 중환자다운 중환자를 보다 보니 하루하루가 무척 길게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 두 환자를 본 지 체감상으로는 거의 한 달은 된 거 같았다.

“어제…… 어제 새벽입니다.”

“어제 새벽이라. 흠.”

내과 군의관은 대답하면서도 상당히 놀란 얼굴이었다.

‘와……. 24시간 좀 넘게 봤는데 이렇게 힘드냐…….’

나도 이제 골로 갔구나 하는 심정이라고 보면 되었다.

물론 신현태나 방금 삽관 및 산소 공급을 마치고 온 수혁은 이러한 군의관의 심정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처음 왔을 때 바이털은 어땠나요?”

그저 환자의 상태가 궁금할 따름이었다.

내과 군의관은 갑자기 끼어든, 젊다 못해 어려 보이는 수혁이 조금 불편했지만.

일단 순순히 묻는 말에 답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왜인지는 몰라도, 눈앞에 있는 교수가 수혁의 끼어들기를 완전히 인정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혈압은 둘 다…… 조금 높았고. 이건 아마 애들이 놀라서 그런 거 같긴 했어요.”

내과 의사다운 판단이었다.

기저 질환도 없는 상황에서 고혈압이라면 충분히 이런 상황을 고려해야 했다.

[역시 내과 전문의라는 게 후루꾸로 딸 수 있는 건 아니로군요.]

‘그런 말은 또 어디서 배웠어?’

[제 유일한 입출력자이신 이수혁…….]

‘아아, 그만그만.’

무려 바루다도 인정할 정도의 판단이었다.

그 칭찬이라고 하는 게 좀 이상하긴 했지만.

아무튼, 내과 군의관은 계속해서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마찬가지로 심장박동 수 110회 정도였는데, 심전도는 그냥 빈맥이었고요.”

심장에 별문제가 있거나 했던 건 아니란 뜻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군대에 입대할 정도로 건강한 20대 청년에게 심장이 문제가 있어서는 안 될 테니까.

“호흡수는 둘 다 분당 28회 넘어갔고……. 그땐 뭐……. 포화도까지 떨어질 정도는 아니었어요. 주관적인 호흡 곤란이 있어서 산소 1ℓ 정도는 틀어 주긴 했는데, 그거 말고는 뭐…….”

다시 말하면 바이털 즉 활력징후에서 호흡 곤란 말고는 특이 사항은 없었단 뜻이었다.

“근데 오자마자 찍은 흉부 엑스레이가……. 이거 어디 갔지.”

내과 군의관이 허둥대기 시작하자, 같이 온 것으로 보이는 간호 장교가 철제 차트 두 개를 들이밀었다.

“여깄습니다, 김 대위님.”

“아, 고마워. 사진이……. 여깄네요.”

내과 군의관은 그렇게 전달받은 차트에서 어제 새벽에 오자마자 찍은 엑스레이를 찾아 보여 주었다.

아까 이현종 원장의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던 것과 정확히 같았다.

“아예 새하얘……. 이상한데.”

그걸 본 신현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진 자체가 이상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네. 이상해요. 활력징후에 비해 사진이 너무 안 좋습니다.”

매칭이 안 된다는 뜻이었다.

증상만 들어 보면 이렇게까지 하얄 건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사진은 거의 무슨 곧 죽을 환자의 폐 같았다.

“대체 뭐에 걸린 거야, 얘네.”

감염내과 전문의로 평생을 살아온 신현태도 처음 보는 소견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던진 질문에 내과 군의관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검사는 나갔는데, 아직 나온 건 없습니다.”

“그렇겠지.”

검사만 하면 딱딱 결과가 나온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아쉽게도 일이라는 게 그렇지가 않았다.

특히 감염에 관한 검사들은 보통 균 배양 검사가 되기에 십상인데, 이럴 경우엔 몇 주씩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성질 급한 사람은 그거 기다리다 죽을 지경이 되었는데, 실제로도 환자가 그 기간을 버티지 못하고 돌아가실 때도 있었다.

“처치는 어떤 걸 하셨어요?”

수혁은 결과도 안 나온 검사에 대한 미련을 보이진 않았다.

대신 이 둘이 수도 병원에 가서 대체 어떤 치료를 받았는지가 궁금했다.

“아……. 일단 감염인 거 같은데, 어떤 감염인지 도통 감이 안 잡혀서……. 레보플록사신에 3세대 세파 줬고요.”

“아, 네.”

완벽한 선택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잘못된 선택도 아니었다.

어찌 되었건 저 두 가지 약이라면 어지간한 지역 사회 폐렴은 치료가 가능했을 테니.

“바이러스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어서……. 스테로이드는 처방하지 않았습니다.”

“네.”

이건 안전한 선택이었다.

바이러스성 폐렴인데 스테로이드를 때렸다간 환자를 정말이지, 단박에 잡을 수도 있었으니까.

심지어 결핵 같은 경우도 스테로이드 주사 잘못 맞았다가 확 심해져서 폐 절제술을 해야 할 정도로 번지기도 했으니까.

잘 쓰면 정말 좋은 약이었지만.

조심해야 하는 약이기도 했다.

“그 외에는 사실……. 산소 정도 주는 거 말고는 별 처치는 하지 않았습니다. 아직 삽관할 정도도 아니었고…….”

내과 군의관은 캐묻는 듯한 수혁을 보며 마치 변명하듯 말을 마쳤다.

[뭐……. 나쁘지 않은 처치였는데요?]

‘그래. 그런데 이렇게 나빠졌다는 건…….’

[바이러스일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아니면 슈퍼 박테리아이거나 혐기성 세균일 가능성도 있겠지만…….]

대체 군인들이, 그것도 훈련병이 어딜 가서 그런 이상한 균에 옮아 온단 말인가.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는 사람들도 아닌데.

‘역시 바이러스일까?’

[근데 그것도 좀 이상하긴 합니다.]

바루다는 연신 이상하다는 말만 해 대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수혁도 퍽 짜증이 났겠지만, 이번만큼은 예외였다.

“항생제 두 개를 썼는데……. 호전이 아예 없다라. 이상한데.”

신현태마저 이상하다는 말을 해 댈 정도로 정말 이상했으니까.

“이 친구들 말고, 다른 애들은 어때? 둘만 같은 방 쓴 건 아니잖아.”

신현태의 말에 내과 군의관이 상당히 당당한 태도가 되어 대꾸했다.

“그렇지 않아도 저도 그게 이상했습니다. 항생제가 아예 듣지 않는 것으로 보이거든요? 열도 없다가……. 오늘부터 나기 시작했고. 그럼 바이러스를 떠올려 봐야 하는데…….”

보통 바이러스성 질환은 세균보다 더 잘 번지는 법이었다.

“근데, 같은 방 썼던 애들 중에서는 감기 환자도 없습니다.”

“감기도 없어? 아예 증상이 없어?”

‘제가 너무 이상해서 전원 다 수도 병원으로 불러서 검진했는데……. 아예 없습니다. 기침하는 친구도 없어요.”

“허.”

내과 군의관도 꽤 열정 있는 친구인 모양이었다.

없는 일을 만들어다가 했다니.

본래 군의관은 군 무력증에 빠져서 아무것도 하기 싫은 게 보통인데.

신현태는 자신의 뒤를 이어 장병 건강에 온 힘을 다하고 있는 군의관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며 말을 이었다.

“그럼 16명 중에 이 둘만 이런다 이거지?”

“네.”

그렇다면 매우 드문 확률이겠지만, 사람이 사람에게 옮기는 질환이 아닐 수도 있었다.

이를테면 동물에게서 옮아 오는 수인성 질환 같은 질환일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었다.

“음……. 훈련소 어디라고?”

“양주입니다.”

“양주……. 거기 군의관이나 뭐 관계자는 안 왔나?”

“아, 와 있습니다. 아까 안으로 들어가서 접수했는데. 아, 저기. 저 상사입니다.”

“아, 고마워. 일단……. 자료 넘겨주고 또 생각나는 거 있으면 전화할게.”

“네, 교수님. 환자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혹 변경 사항 있으면 꼭 연락 주십시오.”

내과 군의관은 양주 훈련소 상사를 알려 준 후, 앰뷸런스를 타고 돌아갔다.

신현태는 상사가 이쪽으로 오는 사이, 수혁을 향해 물었다.

“너 생각은 어때?”

아마 다른 레지던트였다면 질문도 안 했을 터였다.

그게 아니라면 문제 내는 식의 질문을 했거나.

하지만 지금 그 옆에 있는 건 수혁이었다.

신현태는 진심으로 조언을 구하고 있었다.

“일단……. 일반적인 형태의 감염은 아닙니다. 사람끼리 옮기는 질환이 아닐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렇지? 네 생각도 그렇구나?”

“한 가지 가능성일 뿐이지만……. 네.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오케이. 그럼 부대 환경에 관해 물어보자.”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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