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괴질 (4)
그사이 이현종은 원무과 쪽에 가 있었다.
석좌 교수가 될 정도로 뛰어난 의사긴 하지만 감염에 관해서는 별로 아는 게 없지 않은가.
‘원래 진짜 뛰어난 사람은 자기가 할 줄 모르는 걸 구분할 줄 알아야 하는 법이지.’
약간 변명처럼 느껴지는 생각을 하면서였지만.
뭐가 어찌 되었건 원장이었기에 원무과에서도 어마어마한 성과를 내고 있긴 했다.
“네, 원장님. 바로 중환자실로 가시면 될 거 같습니다.”
“수납은?”
“에이……. 원장님이 직접 접수하셨는데요. 나중에, 나중에 하시도록 안내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오케이. 좋아. 중환자실은 어디지?”
“본관이죠. 내과계 중환자실로 배정해 드렸습니다.”
“자리가 있었어?”
“네. 딱 두 자리.”
“좋네.”
원래 중환자실로 바로 입원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 입원해 있는 사람 중에도 중환자실에 내려가야 할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지 않은가.
의사들이라 해도 어찌 됐건 사람인지라 기왕이면 자기가 보던 환자를 위하게 마련이었다.
당연히 자리를 어느 정도 킵 해 두는 것이 원칙이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원장 정도 되는 사람이 나서면 아무리 견고한 원칙이라도 깨질 수밖에 없었다.
“야, 중환자실 잡았어. 가자.”
이현종은 아주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수혁과 신현태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그때까지도 둘은 상사와의 대화를 끝마치지 못하고 있었다.
해서 신현태는 조금은 귀찮다는 얼굴로 손을 휘휘 내저었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또 이현종에게 갑질다운 갑질해 보겠냐는 생각도 있었다.
“어, 형. 잠깐만 나 진료 보잖아.”
“야, 나도 의사야…….”
“심장 의사지. 이 환자들은 감염이고.”
“하…….”
평소의 이현종이었다면 대번에 뒤집어엎었을 터였다.
기본적으로 착한 사람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또 인격자인 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말 그대로 그가 낄 자리가 아니었다.
감염내과 전문의이자 권위자이기도 한 신현태가 중환자들을 보고 있는 시점이었으니까.
‘에이, 더러워서 진짜.’
아마 이현종도 본인이 심장 환자 보는데 누가 자꾸 어정거리면 짜증 날 터였다.
그 때문에 아니꼽고 더러웠지만 일단 입을 다물고 뒤로 물러났다.
“그러니까…… 축사 같은 건 없다 이거죠?”
“네? 네. 그럼요. 부대 내에 그런 게 어디 있겠어요. 병사들이 키울 수 있는 것도 아닌데.”
“하긴……. 흠.”
그사이에도 신현태는 상당히 진중한 얼굴로 질문을 이어 나갔고, 상사 또한 성심성의껏 답하고 있었다.
‘축사는 없다. 그럼 수인성 질환이 아닌가?’
물론 수혁도 옆에서 들은 대화를 토대로 바루다와 토의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렇게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습니다. 야생 동물에게 옮았을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 정도로 심각한 질환이라면……. 벌써 난리 났을 텐데? 야생 동물이 진원지라면.’
[그것도 그렇긴 합니다. 흠.]
그렇다고 뭔가 더 진전이 있거나 하진 않았다.
오히려 정보를 캐물으면 물을수록 미궁에 빠져드는 듯한 기분이 들 지경이었다.
신현태 또한 상황이 크게 다르진 못했다.
‘수인성이 아닌가. 그럼……. 그럼 뭘 생각해 봐야 하지.’
아예 머릿속이 하얘지진 않았다.
워낙에 든 게 많은 인간 아니던가.
자꾸 꽝이 나오는 상황에서도 새로운 가설을 세울 수 있단 뜻이었다.
‘오염된 물에서 감염? 흠, 가능성은 있지만…….’
그중에서 그럴싸한 걸 잡아내는 건 또 차원이 다른 얘기이긴 했지만.
“중환자실로 가실 분 누구죠?”
그사이 중환자실에서 파견된 이송 요원 둘이 왔다.
“아, 여기.”
내내 무료하단 얼굴로 서 있던 이현종이 손을 들었다.
상대가 원장이라는 얘긴 익히 들어 알고 있던 요원들이었던지라 부리나케 달려들었다.
“네, 원장님. 바로 옮기겠습니다. 혹시 호흡기는…….”
“그건 제가 하겠습니다!”
이미 응급실에서도 원장과 내과 과장을 위해 인턴을 붙여 준 참이었던지라, 이동은 무척 수월했다.
심지어 수혁마저도 그저 지팡이만 짚으며 이동할 수 있을 지경이었다.
덕분에 신현태와 수혁은 계속 상사와 대화를 이어 나갈 수 있었다.
“혹시 이 둘이 뭔가 개인 활동을 했을 만한 가능성은 없나요?”
“개인 활동이라……. 음.”
상사는 턱 밑을 긁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훈련병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훈련소에서 뭔가 다른 짓을 할 만한 구석이 없을 거 같겠지만.
벌써 수십 번의 신병들을 받아 본 상사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별의별 놈들이 다 있긴 하지.’
심지어 술을 숨겨 와서 밤에 먹던 놈도 있었더랬다.
즉 이 둘도 뭔가 다른 짓을 했을 가능성이 있기는 하단 뜻이었다.
그것도 기상천외한 짓을.
“뭔가 했을 수는 있습니다. 저희가 물어봤을 땐 뭐……. 아무것도 안 했다고 했지만요.”
“훈육관이 물으면 그건 당연하겠죠.”
“네, 뭐. 아무튼, 통제에서 벗어나서 뭔가 했을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음……. 알겠습니다. 그리고 또…….”
신현태는 계속해서 질문을 이어 나갔다.
중환자실에 도달해서 안에 들어가기 직전까지도 그랬다.
최대한 많은 정보를 알아 둔 후에 환자에게 문진하기 위함이었다.
배경 지식을 알고 묻는 것과 그렇지 못하고 묻는 것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었다.
“감사합니다.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저 아니면……. 저기 하태성 중사가 계속 여기 있을 겁니다. 보호자 분들께는 저희가 따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아, 네. 그럼.”
신현태는 인사를 나눈 후, 즉시 중환자실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삽관을 해 둔 환자는 그대로 인공호흡기를 연결해 주어야만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신현태의 얼굴이 자연스레 어두워졌다.
폐렴 환자에게 있어서 저 벤틸레이터 연결하는 것이 얼마나 예후에 좋지 못한 사인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필수적인 상황이긴 하지만…….’
저기서 바이러스 폐렴이 더 진행하게 되면 속절없이 죽어 가는 걸 봐야만 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아, 신 교수님. 저 왔습니다.”
“어어. 홍 교수.”
다행히 지금 이 환자들은 조금 이상한 루트로 VIP 비슷한 대접을 받게 된 참이었다.
원장에게 디렉트(direct)로 청탁 아닌 청탁이 온 데다가, 원장과 병원 방침이 일단 ‘군 장병들은 최대한 열심히 치료하자’이기 때문이었다.
해서 홍창기라는 호흡기내과 교수가 외래가 끝나자마자 위로 달려왔다.
“얘기는 들었지? 원장님 통해서.”
“네. 경과가 좀 이상하던데요? 혹시 무슨 독성 물질에 노출된 건 아닐까요?”
“어? 독성?”
“네. 사진 보니까…… 너무 경과가 빠르던데. 이거 단순 감염이 아닐 가능성도 있습니다.”
“아……. 독성. 독성이라……. 그건 아예 생각지도 못했는데.”
신현태는 과연 호흡기의 대가는 좀 다르구나 하는 얼굴이 되어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흠. 독성이라.”
이현종 또한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이었기에 자신도 모르게 한 발짝 가까이 왔다.
아는 문제건 모르는 문제건 아무튼, 의학에 관한 거라면 죄 관심을 두는 그의 성정 때문이었다.
‘허.’
반면 수혁은 뭔가에 두들겨 맞기라도 한 듯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그래도 바루다라는 어마어마한 툴을 얻게 된 참이라 자신만만해하고 있었지 않은가.
심지어 저 미국에서도 실력이 팍팍 통했었기에 조금은 거만해지기도 하던 참이었다.
그러나 독성에 관해서는 아예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더랬다.
[독성. 허.]
그리고 그건 바루다 또한 마찬가지였다.
‘반성하자. 우리 아직 멀었다.’
[그러……니까요. 독성이라. 허…….]
물론 이 환자에게 폐렴을 일으킨 원인이 독성 물질이 아니라 그냥 바이러스일 수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독성이라는 걸 아예 생각지도 못했다는 건 좀 문제가 있었다.
‘지금 봐서는 제일 가능성 있어.’
[그렇죠.]
가장 그럴싸한 가설이지 않은가.
독성에 노출된 두 명만 문제가 생길 테니, 같은 방을 쓰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 증상이 없는 것도 설명이 되고.
기존에 알고 있던 감염 질환들에 비해 유독 진행이 빠른 것도 설명이 되고.
심지어 사진과 증상과의 괴리 또한 설명되었다.
“근데 무슨 독성일지 모르겠네요. 군대에서 그럴 게 있나?”
아무튼, 수혁이 바루다와 함께 반성 모드로 들어가 있는 동안 홍창기 교수와 신현태 교수와의 대화는 지속되었다.
“그 뭐……. 그거 있잖아. 왜.”
아무래도 둘 다 군대 다녀온 지도 오래된 데다가, 솔직히 군의관으로 다녀와서 아주 열심히 군 생활을 한 건 아니어서 대화가 수월하지는 않았다.
“그거요?”
“그거. 그……. 막 어? 가스, 가스 하는 거.”
“아……. 화생방?”
“그래, 그거! CS 탄인가? 그거 가능성 없을까? 엄청 맵잖아.”
물론 그 와중에도 머릿속에 틀어박히는 충격적인 경험은 있는 법이었다.
화생방이 그랬다.
신현태는 지금도 눈이 따가운지 연신 눈을 끔뻑거리며 열을 올렸다.
거의 100% 그거라는 확신을 가진 표정이었다.
하지만 홍창기는 딱 그 얘기가 나오자마자 고개를 저었다.
“어……. 그거 아니에요.”
“응? 아냐?”
“그거……. 되게 잘 만든 거예요. 독성은 없어요.”
“허. 그럼 뭐지? 뭘까?”
“이제부터 찾아봐야죠. 일단……. 아까 한 명은 보니까 의식 있던데.”
“아, 그래. 일부러 산소만 줬어. 좀 힘들겠지만……. 어쩌겠어, 이거.”
“그렇죠. 가 볼까요? 일단 여기 이 친구는 제가 볼게요.”
“어, 그래. 그게 좋겠어.”
회심의 일격이라 할 수 있는 CS 탄을 부정당한 신현태의 어깨가 어쩐지 좀 움츠러들어 있었다.
이현종은 그 모습이 그렇게 마음에 드는지 껄껄 웃었다.
“이제 감염은 아닌 거 같으니까……. 너 전문도 아니네?”
아까 일침 먹었던 것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었다.
“형은 나이가 몇 살인데 그런 거로.”
“여든 돼도 이럴 건데?”
“어휴. 일단 환자나 좀 보게 비켜 봐요.”
“전문가 아니잖아?”
“그래도 봐야지. 일단 보기 시작한 환자잖아.”
“뭐, 그래. 대신 나도 볼 거야. 독성이라고 하니까 관심이 확 끌려, 아주.”
정작 제일 중요한 사람인 홍창기는 조용한데, 두 어른이 난리인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홍창기가 둘에게 뭐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연배도 차이가 날뿐더러, 하늘 같은 대선배인 데다가, 직위도 훨씬 위였기 때문이었다.
“환자분, 제 말 들리죠?”
다행히 시끄럽긴 해도 개념은 있는 사람들이라 문진을 방해하고 들지는 않았다.
덕분에 홍 교수는 수월하게 질문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환자도 확실히 엑스레이 소견보다는 상태가 나아서 어찌어찌 대화는 이어졌다.
“네, 네.”
“혹시 다른 환자분이랑 같이 둘이서만 따로 활동했던 적이 있나요?”
“어……. 아뇨. 없습니다.”
“아예 없어요? 잘 대답해 주셔야 합니다. 지금 환자분은 그나마 사정이 낫지만, 저기 저분은 그렇지가 않아요. 단서를 주지 못하면 치료가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어…….”
홍창기가 아주 깊숙이 푹 하고 찔러보았지만 별로 나오는 건 없었다.
해서 질문을 좀 바꿔 보기로 했다.
“그럼 처음 맡아 보는 냄새를 맡아 보거나 한 적은 없나요?”
“어……. 아뇨. 아, 화생방.”
“그거 말고는?”
“전혀 없습니다.”
이번에도 별 소득은 없었다.
어쩐다 하는 생각이 들려는 찰나 바루다가 말을 걸어왔다.
[거짓말을 하는 거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