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35화 (135/1,303)

135화 괴질 (5)

‘거짓말?’

수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상당히 뜬금없어 보이는 제스처였지만, 양옆에 서 있던 신현태나 이현종 모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원래 이럴 때가 있는 녀석 아니던가.

게다가 지금은 눈앞의 환자에게 온통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없어요?”

“네.”

“흠…….”

홍창기 교수와 환자와의 대화는 여전히 답보 상태에 있었다.

계속 특이 사항은 없다고 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저거 거짓말이에요.]

‘거짓말이라?’

그동안에도 바루다는 계속 환자가 거짓말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근거는?’

[눈동자가 좌우로 0.5mm 가까이 진동하고 있어요. 어지럼증이 있을 때도 저럴 수 있지만……. 그럴 리가 없잖아요? 그러니 심리적인 불안감을 대변한다고 판단할 수 있죠.]

‘음.’

바루다의 인간 표정에 대한 분석은 나날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 참고 자료가 대부분 수혁 자신이라는 것은 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아무튼, 예전보다는 훨씬 그럴싸한 논거를 들고 있었다.

‘그렇게 말하니까 믿고 싶어지는데.’

[그리고 지금 시선이 계속 저쪽……. 누워 있는 다른 환자 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오.’

저 자리에서 다른 환자가 보일 턱은 없었다.

그런데도 계속 시선을 저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건 무슨 뜻일까.

[어지간히 신경이 쓰인다는 거겠죠?]

‘자기가 말해 주지 않은 정보 때문에 잘못될 수도 있다……. 뭐 이런 생각 때문일까?’

[그렇죠.]

‘근데…… 왜 거짓말을 해? 사고로 독성 물질에 노출이 된 거라면……. 거짓말할 이유가 없잖아.’

[그건 그렇죠. 그게 좀 이상합니다.]

‘음…….’

수혁은 이제 바루다에게 홀랑 넘어가 버린 상황이었다.

그 말은 곧 의혹 가득한 눈으로 환자를 보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의사가 환자의 말을 의심해야 한다니.

좀 슬픈 일이었지만.

의외로 이렇게 해야 할 때가 종종 있는 법이었다.

“그럼 질문을 바꿀게요. 이전에도 이런 적이 있나요?”

홍창기 교수는 환자의 말을 믿은 건지 어떤 건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질문의 방향을 바꾸었다.

환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처음입니다.”

바루다는 그 대화를 지켜보며 빠짐없이 분석을 해내었다.

[저건 사실이에요. 환자는 이런 증상은 처음 겪었습니다.]

‘뭐……. 당연히 그렇지 않을까? 이런 증상을 겪어 봤으면 애초에 군대에 안 갔을 거 같은데.’

[아, 그렇긴 하네요.]

물론 수혁이나 바루다나 딱히 입대에 쓰이는 신체검사 기준에 관해서 알고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중환자실에 와야 했을 정도로 폐렴이 있던 사람이 군대에 가는 건 좀 이상한 일 아니겠는가.

“입대 전에 해외여행 다녀온 적은 없고요?”

“아뇨. 없습니다. 저……. 해외여행 가 본 적 자체가 없어요.”

“그럼 목장이나, 동물원같이 살아 있는 동물들이 있는 곳에 가 본 적은 없습니까?”

“어……. 그건 여자친구랑 고양이 카페 정도?”

“흠.”

고양이 카페라.

현시점 아주 애매한 곳이라고 보면 되었다.

고양이도 수인성 감염 질환을 일으킬 수는 있지만, 이런 식의 폐렴을 일으킨다는 보고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고양이 카페에 있는 고양이들은 기본적으로 애완용.

야생 고양이가 아니란 뜻이었다.

물론 환자를 진료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아예 배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따로 적어 두기는 했다.

[별 의미 없는 정보……. 제 판단으로는 군 입소 후 뭔가 있었습니다.]

바루다는 그 후로도 죽 이어지고 있는 대화를 보며 이런 결론을 내렸다.

한번 의심의 눈초리로 보기 시작한 수혁 또한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봐도 환자는 좀 수상했다.

뭔가 가장 중요한 정보는 숨기고 있었다.

그 정보가 다른 환자는 물론이거니와, 자신의 치료에 관한 단서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하면 곤란해지는 그런 정보인가?’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금 치료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말하지 않는 건 비합리적인 일이니까요.]

‘대체 뭐지? 뭘 숨기는 거야?’

[입소 후에 일어난 일 중……. 말하면 안 되는 일. 아무래도 군에서 금하고 있는 일이겠죠?]

군필자라면 당장 떠오르는 게 있을 텐데.

수혁은 아쉽게도 미필이었다.

그것도 면제가 확정된.

평소 전혀 군에 관해서 관심이 없었다고 보면 되었다.

“저, 잠시만……. 다른 환자 때문에 컴퓨터 좀 쓰겠습니다.”

“어? 어, 그래. 그래. 수혁아 얼마든지.”

따라서 수혁은 슬며시 뒤로 빠졌다.

신현태나 이현종이나 그의 팬이나 다른 없는 위인들이니, 별 무리가 없었다.

오직 홍창기만이 진료 중에 소란을 피웠다는 생각에 언짢아졌을 뿐이었는데.

그마저도 입 밖에 내진 못했다.

존경하는 이현종의 아들에게 이현종 눈앞에서 어찌 뭐라 할 수 있겠는가.

‘흠……. 군 훈련소에서 금기되는 거……. 뭐가 있나?’

평소라면 바루다에게 물으면 될 일이겠지만, 바루다 또한 딱히 군역 대상자는 아닌지라 이에 관해 아는 것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바루다 또한 딱히 군역 대상자는 아닌지라 이에 관해서는 타박하지 않았다.

대신 열과 성을 다해 검색이나 할 따름이었다.

[일단 음주, 흡연이 안 되는군요.]

‘아예 못 들고 가니까……. 그렇군.’

사실 음주는 이해가 팍 갔다.

훈련소에서 음주라니.

이건 좀 미쳤다는 생각까지 들지 않던가.

하지만 금연까지 시키는 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흡연자가 담배 참는 건 꽤 힘들 텐데.’

그 바쁜 인턴 생활을 하면서도 잠자는 시간을 쪼개 담배를 피우는 것이 흡연자 아니던가.

그나마 최근엔 좀 나아졌다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술실, 탈의실에서도 흡연하는 이들이 꽤 있을 지경이었다.

병원 규정에 따라 모조리 감봉 처분을 받게 된 이후로는 거의 사라졌는데.

그런데도 새벽 시간에는 매캐한 담배 연기가 탈의실에서 뿜어져 나올 때가 있었다.

[그렇죠. 힘들죠. 정말……. 의사들도 담배 피우는 거 보면…….]

의사만큼이나 담배의 해악에 해박한 사람들이 또 어디 있겠는가.

심지어 머리로만 아는 게 아니라, 실제 눈으로 보기까지 하는 사람들 아닌가.

하루가 멀다고 담배 때문에 각종 암에 걸렸거나, 간질성 폐렴에 걸리는 환자들을 보게 되는 법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피우는 사람들은 피웠다.

‘담배가 중독성이 대단하지.’

[음.]

‘왜?’

[그렇게 중독성이 대단한 담배를……. 과연 20대 일반인이 오래 참기가 수월할까요?]

바루다는 수혁의 머릿속에 아까 봤던 환자 영상을 띄웠다.

딱히 특별할 거 없어 보이는 인상이었다.

아니, 머리를 잘라 놔서 그런지 더더욱 똑똑해 보이진 않았다.

‘음……. 그러고 보니…….’

[흡연을 어떻게든 했다면 당연히 숨겼을 겁니다.]

‘근데 흡연자가 흡연한다고 저렇게 돼? 담배 독성이 있긴 하지만…….’

[담배로 인한 급성 폐 손상에 관한 보고는 있죠.]

‘그건 비흡연자였어야 되잖아?’

[한방에 16명이나 같이 있다면서요?]

‘아.’

16명 중 어느 용기 있는 하나가 담배를 몰래 꿍쳐 왔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다.

아까 상사도 그러지 않았던가.

별의별 일이 다 있다고.

그중 흡연은 아마 별거 아닌 일에 속할 터였다.

[20대 초반이면 성인이라고 하나, 아직 동료 압박에 영향을 받을 시기죠.]

동료 압박이란 우리 다 하는데 너는 안 해? 뭐 이런 종류의 압박이라고 보면 되었다.

나이 들고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압박이지만.

글쎄, 20대 초반에서도 그럴까?

특히 군대와 같이 동떨어진 환경에 노출된 이후라면 더더욱 강하게 다가왔을 가능성이 있었다.

‘군 훈련소에서 처음 흡연을 했다……. 그런데 하필 그중에 두 명이나 담배에 급성 독성 반응을 보였다?’

[희박한 확률이지만, 그나마 지금으로서는 가장 가능성이 있는 가설입니다.]

‘으음……. 동시에 둘이나…….’

담배에 급성 독성 반응은 드물지만, 간혹 볼 수 있는 반응이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담배가 얼마나 유독한 물질인데.

설마하니 만성 독성 반응만 보이겠는가.

급성 반응이 있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급성 독성 반응이라고 생각하면 경과 과정이 다 이해가 가지 않나요?]

‘그렇긴 한데……. 둘이 동시에 왔다는 게 좀…….’

[오히려 그래서 헷갈렸던 거죠. 혼자만 생겼으면 신현태가 헷갈렸겠어요?]

‘그것도 그렇긴 해.’

동시에 둘이 왔기에 감염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혔을 터였다.

그 편견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바람에 케이스가 오리무중이 된 것이었고.

‘근데 아니면……. 아니면 대박인데.’

독성 반응에 관한 치료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제일 중요한 건 역시나 스테로이드였다.

문제는 이놈의 스테로이드가 감염 질환자, 특히 바이러스성 감염 환자에게는 아주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즉, 이게 담배 독성이라는 확신이 필요했다.

‘어쩌지?’

[연기 잘하잖아요? 한번 찔러보죠.]

‘뭘 찔러…….’

[대강 시나리오 짜 보면…….]

바루다는 괜히 우수한 인공지능이 아니라는 듯 팍팍 무언가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하.’

환장할 노릇인 거는 이런 농간에 놀아나고 있다는 점이었다.

들으면 들을수록 그럴싸해 보였고, 심지어 이게 환자를 위한 길이란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게 완성된 대본을 가지고 다시 환자에게 다가갔을 때도 홍창기 교수는 여전히 무용한 대화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결핵도 앓은 적은 없다 이거죠?”

“네.”

다 없다고 하니 뭐 대화가 진전될 일이 있겠는가.

이제는 뒤에 따라붙어 있던 신현태나 이현종도 무료한 얼굴이었다.

독성 물질이라는 신기한 개념을 꺼내 들 때만 해도 뭐가 되겠구나 싶었으나.

그 이후로 아무것도 달라지는 게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저, 교수님.”

다들 지겨워질 때쯤, 수혁이 끼어들었다.

늘 그렇듯 조심스러운 태도인 데다가, 두 팔불출 교수의 지원 사격도 있었다.

“어어, 그래.”

“뭔데, 뭐든 말해 봐.”

상황이 이런데 홍창기가 뭐라 하겠는가.

왜 그러냐고 물어보는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왜 그러지?”

“제가 잠시 물어봐도 될까요? 방금 부대랑 통화했는데, 업데이트된 내용이 있습니다.”

“아, 그래?”

그렇지 않아도 홍창기도 이 답 없는 상황이 슬슬 지긋지긋해지던 참이었다.

이에 더해 아까 삽관했던 환자 상태도 점차 나빠지고 있지 않은가.

뭐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뜻이었다.

“그럼 해 봐.”

따라서 홍창기는 순순히 뒤로 물러섰다.

이게 부디 이현종에게도 점수 따는 일이길 바라면서였다.

“네, 교수님.”

수혁은 홍창기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서는, 일부러 무표정한 얼굴로 환자를 바라보았다.

환자는 아까 부대와 통화했다는 말에 이미 긴장하고 있었다.

원래도 숨이 찬 상황이었기 때문에 교감 신경의 톤은 더욱더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이미 반쯤 낚였습니다.]

바루다는 그 심리 분석을 끝낸 후, 환호성을 질렀다.

수혁은 그런 방해 공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까 미리 짜 둔 대본대로 입을 열었다.

“김기창 씨, 맞죠? 김기창?”

“아, 네……. 선생님.”

“같은 방 쓰고 있는 사람이 모두 16명 맞죠?”

“아, 네.”

지금까지 말한 것 중 거짓말은 단 하나도 없었다.

오직 진실만을 말하고 있단 뜻인데, 이렇게 얘기하는 것의 장점이 하나 있었다.

“그중 흡연자가 있었고……. 그 담배를 나눠 피웠다는 증언이 있습니다.”

다음에 거짓말을 해도 그럴싸하게 들린다는 거.

“어…….”

“그 담배 같이 피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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